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언덕 위에 지은지 오래된 집이 한 채 있었는데 훌륭한 목수가 좋은 자재를 사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다. 햇볕이 잘 들고 풍광이 좋았지만, 거센 바람만은 감수해야 했다. 이 집을 사람들은 '유령의 집'이라고 부른다.

 

<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날 언덕 위의 집을 유령의 집 마니아가 찾아 든다. 집주인인 여류 소설가에게 마니아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지 끊임 없이 물어대며 과거에 그 집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집주인은 태연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고 실망한 마니아는 집을 떠난 직후 교통사고를 당한다. 집주인은 아무리 비참한 일이나 광기도 산 사람들의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2층의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매일같이 엄마에게 학대당하던 '나'는 어느 날도 엄마에게 배를 걷어차인 채 거리에 쓰러져 있었다. 상냥한 여자가 언덕 위의 집으로 데려가 치료해주고 먹여주었다. 상냥한 여자는 유괴범이 돌아다닌다며 지하실에 숨으면 안전할 거라고 말하였고, 그때부터 지하 식료품 저장고에서 살게 된다. 어느 날 경찰들과 엄마가 언덕 위의 집에 들이닥친다. 그녀는 매일 주인 어르신에게 아이들의 고기를 대접했고, 나는 이제 마리네가 되어 안구와 귀 일부만 남아 병에 담겨있을 뿐이다.

 

<우리는 계속 실패만 한다>

쌍둥이처럼 닮은 두 명의 뚱뚱한 여자 요리사가 언덕 위의 집으로 이사온다. 그녀들은 가족을 괴롭히던 아버지를 젖은 수건으로 살해했고, 우연히 일하던 집 할머니가 죽자 돈을 훔쳐 집을 사서 이사온 것이다. 어느 날 감자 껍질을 벗기던 그녀들은 환상 속에서 서로를 칼로 찔러 죽인다. 그들은 어릴 적 승부가 나지 않았던 그림자밟기 놀이를 생각한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랑스러운 너>

소년이 언덕위의 집 마루 밑의 소녀에게 말을 걸고 있다. 소년은 소녀를 무시한 세 명의 친구들이 자살한 이야기를 한다. 세 명의 친구들은 비슷한 시간에 방문을 잠근 채 목을 메어 죽었다. 소년은 소녀가 그 아이들을 찾아갔다는 것을 안다.

마을에서 노인들이 오븐에 머리가 집어넣어 진 채 살해되어 발견된다. 소년은 '착취당하기 전에 착취하기 위해' 노인들을 죽였다고 말한다. 이제 소년은 소녀에게로 가고 싶다. 하지만 소녀가 있는 곳에는 살아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자신의 목을 스스로 베어낸다.

 

<놈들은 밤에 기어 온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 준다. 할아버지는 '끌고 다니는 놈'이니, '기어다니는 놈'이니 했던 존재들에 대해 말한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큰아버지의 농장에서 일할 때의 일로, 한 밤중에 창고의 틈새로 여자 얼굴 둘이 땅 위를 기어가다가 자신의 눈과 마주쳤던 경험을 이야기 해 준다. 그 얼굴들은 아는 얼굴로, 큰아버지의 아내와 딸이었다. 큰아버지는 당시 머리에 혹이 자라면서 난폭해졌고 자신의 아내와 딸을 죽인 후 묻기 위해 끌고가던 길에 할아버지에게 목격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무서운 것은 언제나 인간이지 '기어다니는 놈' 따위가 아니라면서 손자가 죽인 아버지는 자신이 잘 묻어주겠다고 말한다.

 

<멋있는 당신>

유령이 나올 법한 집을 소개시켜 달라는 손님의 요구에 부동산업자인 그녀는 최선을 다한 결과 마침내 언덕위의 집을 찾아내었다. 언덕위의 집에 대해서 설명을 계속하던 중 손님이 갑자기 나의 옷차림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 성수와 십자가를 들이밀더니 '증조할머니의 잘못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한다.

부동산업자는 예전의 일을 떠올린다. 새로 지은 언덕 위의 집에서 토끼굴에 발이 걸려 넘어지며 아이는 쇠스랑에 부딪혀 죽고 자신도 죽고 남편도 목 메달아 죽은 사건을.

 

<나와 그들과 그녀들>

언덕 위의 집에 새로운 손님이 이사오기로 했지만 부동산업자는 수리할 목수를 구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유령이 나온다며 거절했기 때문이다. 기한 내에 수리해준다면 세 배의 품삯을 준다며 목수를 간신히 구했지만, 목수의 조수는 결국 심하게 다치고 그만두고 만다. 목수는 마찬가지로 목수였던 자신의 아버지를 불러 일을 진행한다. 유령들은 처음에 집을 허물려는 것으로 알았지만 집을 고치러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눈에 보지이 않지만 부서진 부분을 알려주는 등 협력한다. 기한을 이틀 앞두고 부동산업자와 새 집주인이 찾아온다. 부동산업자는 기한 내에 일을 마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새주인에게는 오늘을 입주일로 계약서에 써두고, 목수에게는 이틀 뒤를 입주일이라고 구두로 전달하여 나중에 잡아 뗄 심산이었던 것이다. 목수는 부동산업자를 지하 식품저장고에 잠시 내려보내고 부동산업자는 혼비백산하여 돈을 지불한다.

 

<우리 집에 잘 오셨어요>

다시 처음의, 혹은 몇 번째인가의 여류 소설가 집 주인의 등장. 그녀가 환영의 인사를 건낸다. 세상은 점점 더 겹겹이 쌓이고 있으며, 우리들이 죽은 후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태어나고 결국 세상은 모두 우리들이 되고, 세상은 모두 유령이 될 것이며, 이제 곧 세상은 우리들의 시대가 된다고 말한다.

 

<부기.우리들의 시대>

이상이 O가 쓴 소설의 전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라는 말은 상당히 흥미로운 관용구이다. 이 짧은 관용구 안에 현재와 과거라는 두 개의 시제가 있다. 게다가 과거가 현재를 덮쳐누르며 현재를 압도하려는 순간을 나타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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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사건을 과거를 통해 여러가지 버전으로 재해석하여 결국 어떤 것이 진실인지 흐릿하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온다 리쿠의 소품과 같은 소설책이다. 무더운 여름 밤 한 두시간을 보내기엔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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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표적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2
로스 맥도날드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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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립 탐정 루 아처가 샘프슨 부인으로부터 사건 의뢰를 맡는다. 샘프슨 부인은 남편 랠프가 전날 앨런과 함께 로스엔젤레스로 비행기를 타고 떠났는데 혼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며 현재 그가 있는 곳과 함께 사라진 사람의 신원을 밝혀달라고 한다. 랠프는 석유를 통해 많은 돈을 거머 쥔 자수성가형 인물이었고, 샘프슨 부인은 그의 후처였다.

아처는 비행기를 조종했던 앨런, 랠프의 딸인 미란다와 함께 랠프의 흔적을 뒤쫓는데 그 과정에서 미란다가 앨런에게 흠뻑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앨런은 랠프에게서 탐탁치 않은 평가를 받았고 앨런 자신도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한편 샘프슨 부인에게 아처를 소개시켜준 전직검사 앨버트 그레이브스가 미란다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상태였다.

아처는 미란다로부터 실종된 랠프가 점성술과 미신에 빠져들기 쉬운 타입으로 산 하나를 통째로 수상쩍은 수도사에게 증여한 전력이 있고, 자신의 방갈로를 페이 이스터브룩이라는 여자 배우의 조언에 따라 12궁도를 나타내는 형태로 개조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듣는다.

그리고 한 장의 편지가 날아든다. 편지는 랠프가 직접 쓴 것으로 좋은 건수가 있어 거래를 할 계획이므로 사람을 시켜 10만 달러의 현금을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아처는 랠프가 납치당한 후 강박 상태에서 편지를 쓴 것으로 보인다고 생각한다.

점성술과 관련된 페이 이스터부룩에게 접근한 아처는 기회를 만들어 술취한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고 그곳에서 1만 달러 상당의 현찰과 손익계산서로 보이는 쪽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미치광이 피아노'라는 술집이 수상한 장소로 부상하고, 그곳에서 베티 프레일리라는 이름의 마약중독자 피아니스트를 알게 된다.

페이 이스터부룩이라는 수상쩍은 여배우와 다량의 현금, 페이의 남편이라고 자처하는 냉혈한 트로이, 미치광이 피아노라는 술집과 베티 프레일리라는 마약중독자, 이러한 조각조각의 단서들을 수집하던 즈음 다시 편지가 날아든다. 이번의 편지는 노골적으로 랠프가 납치당했으므로 살리고 싶다면 10만 달러를 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아처는 샘프슨 부인에게 10만 달러를 준비하여 건내주도록 하고 돈을 가진 범인의 차를 추격한다. 하지만 범인은 패커드를 탄 여성에게 살해 당하고, 그 여성은 베티 프레일리였다. 살해된 사람은 에디 프레일리, 베티의 오빠였다.

그제서야 아처는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다. 트로이는 범죄 조직의 두목으로 그는 페이와 수도사를 통해 랠프를 구슬러 산을 내놓게 하고, 그 산에 수도원 비슷한 건물을 지은 후 돈을 받고 밀입국자들을 들여오는 사업을 해왔다. 이 와중에 베티와 에디, 그리고 랠프 집안의 사정을 잘 아는 누군가가 랠프를 납치하기로 독자적인 계획을 세웠으나, 중도에 베티가 에디를 배신한 것이다. 아처는 제3의 인물이 다름아닌 앨런임을 알게 된다. 앨런이 아처의 추궁에 권총으로 답을 하려는 순간 앨버트 그레이브스가 앨런을 사살한다.

베티가 트로이에게 꼬리를 밟혀 고문당한 후 10만달러와 랠프의 행방을 실토하고, 이를 엿들은 아처는 앨버트 그레이브스를 통해 지원을 요청하고 자신도 랠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숨어있던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한 후 뒤늦게 도착한 앨버트가 아처를 깨운다. 깨어난 아처는 랠프가 이미 숨져 있고, 그 시신이 따뜻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처는 명사수인 앨버트가 앨런의 머리를 겨냥하여 사살한 것이 단지 삼각관계에서 온 질투심만은 아니었으며, 랠프를 죽인 것도 그가 죽게 될 때에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자각한 앨버트의 짓임을 깨닫는다. 앨버트는 모든 범행이 완전범죄였고, 증거도 없었으나 아처가 깨달았다는 사실에 자신의 정직성을 북돋워 자수한다.

 

로스 맥도널드의 본명은 캐네스 밀러(Kenneth Millar)로 1938년(23세)에 추리작가인 마거릿 밀러와 결혼, 교직생활을 하면서 단편소설과 시를 썼으며 1945년에 <여자를 찾아라>가 단편 추리소설 응모에 당선되며 작가 생활을 시작한다. <움직이는 표적(The Moving Target,1949)>는 루 아처(Lew Archer)가 최초로 등장하는 시리즈로 1976년의 제 20번째 시리즈 <푸른 망치(The Blue Hammer)>까지 이어진다. '현대 추리소설을 창시한 작가는 더쉴 해미트, 발전시킨 작가는 레이먼드 챈들러, 세련화한 사람은 로스 맥도널드' 라는 평이 있듯이 로스 맥도널드는 하드보일드 계보를 계승한 작가로 평가 받는다.

 

깡패들과 매음부들, 나쁜 놈들과 어수룩한 놈들 - 나는 그들과의 공모자였고, 부정한 침실의 열쇠구멍을 들여다보는 사립탐정이었고, 의처가의 밀고자였으며, 칸막이 벽 뒤에 스며드는 비열한 놈이었고, 일당 50달러면 아무에게도 총잡이로 고용되는 그런 놈이었다.(67p)

 

흠씬 두들겨 맞은 후 아처가 속으로 읇조리는 대사이다. <움직이는 표적>은 더쉴 해미트와 레이먼드 챈들러의 그림자가 아직은 완전히 걷히지 않은 초기작이나 개성 넘치는 루 아처의 활약을 선보임으로서 이후 이어질 20편의 루 아처 시리즈의 성공에 기여한 수작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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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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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을 그만둔 '나'는 이런 저런 중고 음반을 거래하다 비틀즈의 <Route 7>을 손에 넣는다. 왜 파냐는 '나'의 질문에 <Route 7>의 임자는 자살할 계획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음반에는 J&S라 쓰여 있었다. 얼마 후 그는 자살에 실패하고 음반을 다시 사고 싶다고 말하고 이에 응하지 않자 갖은 욕설을 퍼붓는다.

음반의 주인 최재현은 원래 밴드를 만들고 싶은 기타리스트 지망생이었으나 대학에서 한눈에 반한 서연을 따라 운동권 동아리에 들어간다. 재현을 눈여겨본 선배가 본격적으로 그를 '키워'주기 위해 연애를 관두라고 말하자 재현은 깽판을 치고 동아리를 그만 둔다. 서연은 캐나다로 떠나고 재현은 전화박스를 부수다가 손을 왼손을 다친다.

'나'와 재현은 음반을 카페 7번국도에 맡겨두고 공유한다는 절충안에 합의한다. 둘은 때때로 카페 7번국도에서 만나 술을 마신다. 그곳에서 할머니가 죽어 울고 있는 세희를 만나고, 그후 재현과 세희는 연애를 한다. 하지만 둘은 수시로 다퉜고 결국 재현이 세희를 때린다. 이번에는 '나'와 세희가 잠을 잔다. 세희는 둘 중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나'와 재현과 함께 7번 국도를 자전거로 여행하고 세희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일본인 친아버지를 찾으러 간다. 그녀는 돌아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만 '나'나 재현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소설 첫머리에 세풀투라를 듣는 세희가 나올 때부터 별로 느낌이 안 좋았다. 비틀즈로 이어지고, 화분이 나오고, 지루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다분히 모방한 이미지와 대화들 때문에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느꼈던 호감들은 가차없이 사그라져버렸다. 시간의 순서를 이리 저리 바꾸며 기교를 피웠으나 소설에 면면히 흐르는 가벼움마저 가릴 수는 없었다. 작가 스스로 차고 넘쳐 쓴 글이 아니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저 세풀투라에서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90년대 초반에 헤비메탈에 미쳐서 들었던 음악들을 생각하며 별다른 감흥 없이 전철에서 읽었다. 세풀투라의 사진을 Hot Music에서 처음 봤을 땐 브라질 출신의 기괴한 상판들에 약간 동했지만 막상 음반들을 들었을 때엔 별로라는 느낌이 강했다. 세풀투라가 나쁜 밴드는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좋은 밴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하면 적절한 설명이 될까. 아직 메탈리카도 Load를 발표하며 야릇한 방향으로 선회하기 전이었고, 판테라가 Cowboys from Hell을 내지르던 때에 세풀투라는 내 귀에 차지 않았다. 김연수도 나쁜 작가는 아니다. 다만 좋은 작가들이 더 많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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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과 다른 사람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4
세스 노터봄 지음, 지명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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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책>

필립이 열살일 때 안토닌 알렉산더 삼촌의 집에 간다. 삼촌은 칠십살 가량 되었고 혼자서 살고 있다. 삼촌은 필립에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고, 필립은 한밤중에 버스 타고 다니는 것과 물가에 앉아있는 것, 그리고 가끔씩 누군가와 뽀뽀하는 것이락고 답한다. 필립과 삼촌은 밤중에 버스를 타고 로스드레흐트의 호수에 가서 앉아 있다고 집으로 되돌아온다. 삼촌은 필립을 위해 챔발로를 연주해 주고 보이지 않는 바흐를 소개시켜준다. 필립은 폴 스웨일로라는 사람에게 선물된 책들과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아리아 <성배 이야기>가 담긴 음반에 관해 궁금해한다. 동네 아이들은 필립의 삼촌을 호모라고 놀린다.

육년 후 필립이 삼촌 집에 두번째로 방문한다. 삼촌은 예전과 같이 챔발로를 연주해주었고, 비발디와 스카를라티 등 보이지 않는 음악가들을 필립에게 소개시켜준다. 그리고 폴 스웨일로에 관해 이야기해준다. 폴 스웨일로는 알렉산더 삼촌이 서른이 넘었을 때에 옆집에 이사온 인도네시아계 소년으로 어느 날 알렉산더 삼촌은 자신의 친구들이 선물한 것처럼 책들에 서명을 해서 소년에게 준다. 소년은 그 뒤 이사를 가고, 삼촌은 소년의 집을 산다. 집에는 삼촌이 선물한 책들이 책장에 꽂혀있었다.

삼촌의 집을 떠나 필립은 여행을 시작한다. 남의 차를 얻어 타고 프로방스 지방으로 가면서 동성애자 운전자에게 욕을 먹기도 하고, 여자들과 잠깐 조우하기도 한다. 마반테르라는 사람을 만난 필립은 그로부터 동양인 여자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여자아이의 알 수 없는 행동들과 KRUSAA라는 단어를 들은 후 필립은 그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책>

페이라는 중국인 여자아이와 만난 후 필립은 파리로 차를 얻어 타고 간다. 그곳에서 미혼모 간호사인 비비안을 만난다. 필립은 그녀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된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그녀를 배웅하러 바닷가에 갔다가 찾고 있던 소녀를 발견하지만 소녀는 곧 떠나고 만다. 계속해서 유럽의 이곳 저곳을 여행하며 필립은 다시 페이를 만나고 그곳에서 수사가 되고 싶어했던 사르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을 떠난 필립은 어떤 나라를 통과한 후 여권에 찍힌 KRUSAA라는 단어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가 거기 서있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필립을 다시 떠나가고 오랜 시간, 혹은 그리 오래지 않은 후에 필립은 알렉산더 삼촌에게 돌아간다.

 

<필립과 다른 사람들>은 미국의 비트 제네레이션을 대표하는 A.긴즈버그의 장편시 <울부짖음(Howl)>(1956)과 J.케루악의 <길 위에서(On the Road>보다 앞서 발표된 방랑 소설의 초시로 알려져 있다. 비트 제네레이션은 현대 산업사회로부터의 이탈, 원시적 빈곤의 감수를 통해 개성을 드러내고 특별한 목적도 없이 떠도는 그들의 에피소드를 일련의 맥락없이 묘사하는 산만한 구성을 특징으로 한다. 또 무정부주의적, 반문명적, 반체제적 자세와 개인주의적 색채가 짙게 드러나고 형식이나 기교에 얽매이지 않는 특징이 있다.

<필립과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산만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소설이다. 잭 캐루악이 <길 위에서>를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썼다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필립> 역시 그런 혐의가 짙다. 맥락 없이 전개되는 스토리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대화들, 필립이 찾는 중국 소녀와 페이가 동일인인지 아닌지, 사르곤이 곧 마반테르인지 혹은 마반테르가 필립 자신인지조차 나중에는 모호하다. 작가 스스로도 정련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써놓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대목이다.

유럽인들이 신비스럽게 여기는 동양적인 분위기는 사실 동양인들에게는 그리 새롭지 않고 오해가 만연해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유럽인이 그려내는 동양적인 분위기가 동양인에게는 조악하게 느껴지는 때마저 있다. 르 클레지오의 <조서>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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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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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동구에게 여동생이 생긴다. 아버지가 3대 독자이고 동구가 4대 독자이니 할머니는 남자아이를 바랬으나 여자아이가 태어나자 엄마에 대한 구박은 더욱 심해진다. 동생은 할머니의 짧은 한자 지식으로 인해 복자(福子)라는 촌스러운 이름이 될 뻔 하였다가 가까스로 영주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동구는 영주를 무척 귀여워하고 자랑스러워한다. 한편 할머니의 엄마에 대한 구박은 점점 도를 지나치게 되고 아버지는 중재 역할을 못한채 엄마의 희생만을 강요한다.

동구가 3학년이 되고 얼굴이 예쁘고 마음씨 착한 박영은 선생님이 담임이 된다. 박영은 선생님은 동구가 한글을 잘 읽고 쓰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난독증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박영은 선생님은 동구에게 방과 후 한시간씩 한글을 가르쳐주는데 동구가 고민하는 집안 일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알아 듣기 쉽게 설명해준다. 박영은 선생님의 따뜻한 가르침에 동구는 점차 자신감을 갖게 되고 그런 동구를 박영은 선생님은 귀여워한다. 이런 동구와 달리 영주는 세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한글을 깨우쳐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 즈음부터 신기하게도 할머니는 영주와 친해져서 둘은 사이가 좋아진다.

엄마와 할머니의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아버지는 수수방관하는 상태가 지속되던 1979년 박정희가 암살당하고 시국은 어수선해진다. 중앙청 앞에 탱크가 있다는 소문에 동구는 친구와 함께 구경하러 갔다가 도중에 고시 공부를 하는 주리 삼촌에게 걸려서 탱크 구경도 못하고 주리 삼촌이 마시라고 준 소주에 취하고 만다. 주리 삼촌은 탱크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라며 동구를 혼내고 알 수 없는 소리들을 한다.

1980년 4학년이 되고 박영은 선생님과 헤어진 동구는 새로운 담임으로 변태같은 오선생을 만난다. 그는 잘못한 아이들의 귀를 깨무는가 하면 겨드랑이 냄새를 맡게 하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일삼는다. 동구가 박영은 선생님과 공부하며 얻었던 자신감은 조금씩 사라져 다시 어눌한 동구가 되었고, 오선생은 동구를 이용해 박영은 선생과 엮여볼 궁리만 한다. 동구는 오선생이 박영은 선생님에게 추근대는 것이 싫어 생긴 고민을 주리 삼촌에게 이를 털어 놓는다. 주리 삼촌은 오선생을 만나 자신의 큰 덩치와 낮은 목소리로 위협하여 상황을 해결해준다.

박영은 선생님에게 호감을 느낀 주리 삼촌이 동구를 통해 편지를 보내 술자리가 마련된다. 그 자리에는 이태혁이라는 사람도 함께 하는데 박영은 선생님은 대학때 이태혁과 함께 운동을 하던 사이였고, 주리 삼촌의 후배였다. 박정희가 죽고 계염령이 발한 시국에 대해 주리 삼촌은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하지만 이태혁은 군부 독재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박영은 선생님은 자신이 비겁해서 운동을 떠났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희망을 찾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엄마 몰래 서준 보증이 잘못되서 엄마는 적금을 모조리 깨야했고 할머니는 속이 상한 엄마를 더욱 구박한다. 방학이 시작되고 박영은 선생님이 광주로 내려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다. 주리 삼촌은 선생님이 죽었을 거라는 소식을 전하며 운다. 영주에게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는 감나무에 달린 감을 만저보게 해주려다가 동구가 발을 잘못 디뎌 영주가 계단에 머리를 부딪혀 죽고 만다. 영주를 예뻐하던 할머니는 엄마에게 '아이 잡아먹은 년'이라고 욕하고 엄마는 할머니 앞에서 장독을 패대기친 후에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박영은 선생님이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어떤 조언을 해줬을까 고민하던 동구는 할머니가 엄마와 아버지를 떠나는 길밖에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하여 할머니께 시골에 내려가서 둘이 살자고 한다. 아버지는 동구의 이런 결정에 착찹한 심정이 된다. 동네에 유일한 3층 집의 아름다운 정원을 보던 동구는 죽을줄로 알았던 곤줄박이 새가 살아있음을 발견한다. 동구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하며 섭섭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어린 동구의 눈을 통해 가족과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 소설이다. 난독증을 갖고 있는 동구가 보는 아버지와 엄마, 할머니의 관계를 담담하게 그려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과 그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희생당하는지 보여주는 한편 박정희 정권의 몰락과 군부독재 정권의 쿠데타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소설 자체는 그다지 잘 쓰여진 편은 아니다. 동구의 개인적인 삶과 주변부 인물의 삶이 당시 사회모습과 자연스럽게 배치되지 않았고 아름다운 정원과 곤줄박이 새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애매하다. 동구의 아름다원던 기억을 의미한다고 보기엔 사회 상황이 그렇지 못했고, 희망을 상징한다고 보기에도 이후의 군부독재 정권과 들어맞지 않는다.

동구의 시선으로 소설이 진행되었어야 하지만 주리 삼촌, 이태석, 박영은 선생의 만남과 대화들은 결코 동구의 시선이 아니다. 80년 광주를 이야기하기 위해 박영은 선생님이 광주로 가는 부분과 함께 작가가 '이야기해야 하는 부담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광주민주화항쟁은 나에게도 낯선 것이 아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1980년에 아버지의 이직으로 광주에 있었다. 당시 한일극장 뒤편에 살고 있었는데 군인들이 이곳 저곳에 서 있었고, 나는 그것이 신기했다. 지금은 이름을 잊은 동네 아이와 2층에 있는 큰 통 속에서 우리는 군인 놀이를 했고, 내가 밖으로 나간 줄 알았던 엄마는 울면서 미친듯이 나를 찾아 헤맸었다. 통 속에서 발견된 나는 흠씬 두들겨 맞았던가, 그리고 다음 날부터 2층에 살던 가족들이 1층의 우리집에 내려와 지냈다. 총알이 2층으로 날아올지 모르므로 담이 있는 1층에 있어야 안전하다고 했다. 앞집 고등학생 형이 없어졌고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3주일쯤 지난 후에야 밖으로 나갔다 돌아왔고, 금남로에 여전히 불에 탄 자동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사람이 무수히 죽어나갔다고 들었고, 그 후에 사진과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한 후 우리 사회에 광주에 진 빚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 97세 된 나치 전범이 잡혔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접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광주에 대해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다.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사회가 분열될 우려가 있다며 외장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분열이 아니라 축소, 혹은 사라질 그들의 기득권이다. 분열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회는 이미 분열되있으므로 '정치'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정치는 자신이 바라는 바를 실현하려는 단순한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그 욕망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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