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언덕 위에 지은지 오래된 집이 한 채 있었는데 훌륭한 목수가 좋은 자재를 사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다. 햇볕이 잘 들고 풍광이 좋았지만, 거센 바람만은 감수해야 했다. 이 집을 사람들은 '유령의 집'이라고 부른다.

 

<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날 언덕 위의 집을 유령의 집 마니아가 찾아 든다. 집주인인 여류 소설가에게 마니아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지 끊임 없이 물어대며 과거에 그 집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집주인은 태연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고 실망한 마니아는 집을 떠난 직후 교통사고를 당한다. 집주인은 아무리 비참한 일이나 광기도 산 사람들의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2층의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매일같이 엄마에게 학대당하던 '나'는 어느 날도 엄마에게 배를 걷어차인 채 거리에 쓰러져 있었다. 상냥한 여자가 언덕 위의 집으로 데려가 치료해주고 먹여주었다. 상냥한 여자는 유괴범이 돌아다닌다며 지하실에 숨으면 안전할 거라고 말하였고, 그때부터 지하 식료품 저장고에서 살게 된다. 어느 날 경찰들과 엄마가 언덕 위의 집에 들이닥친다. 그녀는 매일 주인 어르신에게 아이들의 고기를 대접했고, 나는 이제 마리네가 되어 안구와 귀 일부만 남아 병에 담겨있을 뿐이다.

 

<우리는 계속 실패만 한다>

쌍둥이처럼 닮은 두 명의 뚱뚱한 여자 요리사가 언덕 위의 집으로 이사온다. 그녀들은 가족을 괴롭히던 아버지를 젖은 수건으로 살해했고, 우연히 일하던 집 할머니가 죽자 돈을 훔쳐 집을 사서 이사온 것이다. 어느 날 감자 껍질을 벗기던 그녀들은 환상 속에서 서로를 칼로 찔러 죽인다. 그들은 어릴 적 승부가 나지 않았던 그림자밟기 놀이를 생각한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랑스러운 너>

소년이 언덕위의 집 마루 밑의 소녀에게 말을 걸고 있다. 소년은 소녀를 무시한 세 명의 친구들이 자살한 이야기를 한다. 세 명의 친구들은 비슷한 시간에 방문을 잠근 채 목을 메어 죽었다. 소년은 소녀가 그 아이들을 찾아갔다는 것을 안다.

마을에서 노인들이 오븐에 머리가 집어넣어 진 채 살해되어 발견된다. 소년은 '착취당하기 전에 착취하기 위해' 노인들을 죽였다고 말한다. 이제 소년은 소녀에게로 가고 싶다. 하지만 소녀가 있는 곳에는 살아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자신의 목을 스스로 베어낸다.

 

<놈들은 밤에 기어 온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 준다. 할아버지는 '끌고 다니는 놈'이니, '기어다니는 놈'이니 했던 존재들에 대해 말한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큰아버지의 농장에서 일할 때의 일로, 한 밤중에 창고의 틈새로 여자 얼굴 둘이 땅 위를 기어가다가 자신의 눈과 마주쳤던 경험을 이야기 해 준다. 그 얼굴들은 아는 얼굴로, 큰아버지의 아내와 딸이었다. 큰아버지는 당시 머리에 혹이 자라면서 난폭해졌고 자신의 아내와 딸을 죽인 후 묻기 위해 끌고가던 길에 할아버지에게 목격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무서운 것은 언제나 인간이지 '기어다니는 놈' 따위가 아니라면서 손자가 죽인 아버지는 자신이 잘 묻어주겠다고 말한다.

 

<멋있는 당신>

유령이 나올 법한 집을 소개시켜 달라는 손님의 요구에 부동산업자인 그녀는 최선을 다한 결과 마침내 언덕위의 집을 찾아내었다. 언덕위의 집에 대해서 설명을 계속하던 중 손님이 갑자기 나의 옷차림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 성수와 십자가를 들이밀더니 '증조할머니의 잘못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한다.

부동산업자는 예전의 일을 떠올린다. 새로 지은 언덕 위의 집에서 토끼굴에 발이 걸려 넘어지며 아이는 쇠스랑에 부딪혀 죽고 자신도 죽고 남편도 목 메달아 죽은 사건을.

 

<나와 그들과 그녀들>

언덕 위의 집에 새로운 손님이 이사오기로 했지만 부동산업자는 수리할 목수를 구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유령이 나온다며 거절했기 때문이다. 기한 내에 수리해준다면 세 배의 품삯을 준다며 목수를 간신히 구했지만, 목수의 조수는 결국 심하게 다치고 그만두고 만다. 목수는 마찬가지로 목수였던 자신의 아버지를 불러 일을 진행한다. 유령들은 처음에 집을 허물려는 것으로 알았지만 집을 고치러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눈에 보지이 않지만 부서진 부분을 알려주는 등 협력한다. 기한을 이틀 앞두고 부동산업자와 새 집주인이 찾아온다. 부동산업자는 기한 내에 일을 마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새주인에게는 오늘을 입주일로 계약서에 써두고, 목수에게는 이틀 뒤를 입주일이라고 구두로 전달하여 나중에 잡아 뗄 심산이었던 것이다. 목수는 부동산업자를 지하 식품저장고에 잠시 내려보내고 부동산업자는 혼비백산하여 돈을 지불한다.

 

<우리 집에 잘 오셨어요>

다시 처음의, 혹은 몇 번째인가의 여류 소설가 집 주인의 등장. 그녀가 환영의 인사를 건낸다. 세상은 점점 더 겹겹이 쌓이고 있으며, 우리들이 죽은 후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태어나고 결국 세상은 모두 우리들이 되고, 세상은 모두 유령이 될 것이며, 이제 곧 세상은 우리들의 시대가 된다고 말한다.

 

<부기.우리들의 시대>

이상이 O가 쓴 소설의 전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라는 말은 상당히 흥미로운 관용구이다. 이 짧은 관용구 안에 현재와 과거라는 두 개의 시제가 있다. 게다가 과거가 현재를 덮쳐누르며 현재를 압도하려는 순간을 나타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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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사건을 과거를 통해 여러가지 버전으로 재해석하여 결국 어떤 것이 진실인지 흐릿하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온다 리쿠의 소품과 같은 소설책이다. 무더운 여름 밤 한 두시간을 보내기엔 나쁘지 않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65468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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