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러셀 위픽
문지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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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는 중학교 2학년 때 난소암으로 죽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나'를 혼자 키웠다.

군대 제대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아버지가 재혼 의사를 타진한다. '나'는 다소간 심난한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는 결혼식을 마친 뒤 '나'에게 갖고싶은 게 없냐고 묻는다. '나'는 고모가 사는 미국에 여행가고 싶다고 말한다.

당초 '나'의 계획은 고모가 사는 뉴저지를 베이스로 뉴욕 등지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고모, 고모부, 그리고 열두 살 난 조카 에밀리와 함께 스무시간을 달려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디즈니랜드에 가기 전 고모 친구네 집에서 하루 묵었는데, 거기서 '나'는 돌아가신 엄마의 대학원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고모 친구는 엄마와 함께 디즈니랜드에 간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곳에서 본 불꽃놀이가 매우 인상 깊었는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함께 와서 보겠다고 말했다 한다. '나'는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디즈니랜드는 매우 붐볐다. '나'는 에밀리와 짝을 지어 이동했는데 중간에 에밀리의 제의로 각자 돌아다니기로 한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부터 에밀리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뒤늦게 고모와 고모부가 나타나 에밀리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매우 허둥대기 시작한다.

에밀리는 입양된 아이었는데 그 아이가 다섯살 때 유기된 곳이 바로 디즈니랜드였다. 그들 부모는 가족 동반자살을, 실상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들도 자살하려는 계획이었는데 에밀리만 살아남은 것이었다.

납치나 실종을 의심하며 애타는 시간을 견딘 뒤, '나'는 에밀리를 '프린스 차밍 리걸 캐러셀(메리-고-라운드)'에서 발견한다. 에밀리는 다섯 살 때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에밀리는 그날 '가짜 엄마'가 자신을 버린 게 아니라 동반 자살로 부터 살려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지금의 엄마를 '진짜 엄마'로 생각하고 있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심상하게 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와 결혼한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불러보는 건 어떨까 상상한다.

책 내용과 별도로, 도대체 이 장정과 편집, 가격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단편소설 치고도 짧은 편인 이 소설을 한 줄에 다섯 단어가 겨우 들어가게 편집해 61페이지로 만든 뒤 '사회적 필요 노동량'을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보이는 1만 3천원의 정가를 붙였다는 것은 이 책이 판매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발간된 것 같다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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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건너기 소설의 첫 만남 30
천선란 지음, 리툰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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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비행하기 전 나노봇이 든 캡슐 알약을 먹고 자아 안정 훈련에 들어간 공효가 만나야 할 사람은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다.

공효의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교회가 제공하는 불완전한 위안에 의존해 겨우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갔다.

공효는 어찌보면 까탈스러운 아이였다.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기 보다 상대방이 알아줄 때까지 행동을 멈추고 눈치를 주는, 어딘가 음침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표현이 서툴다 보니 오해도 샀다. 무엇이든 세게 쥐는 버릇 때문에 친구의 오해를 사서 절교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 공효를 어른이 된 공효가 지금 만나고 있다. 무한히 열려있기 때문에 어디로도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닫혔다고 볼 수도 있는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서. 닫힌 공간에서의 공포와 혼란에 자아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타란툴라 거미를 함께 해치우면서, 어른이 된 공효는 어린 공효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해준다. 그리고 자신이 어린 공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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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었음을 깨닫는 것은 결혼이나 자녀의 출산 같은 이벤트가 일어나는 순간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내가 안쓰럽게 여겨지는 때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눈물짓던 아홉 살의 나를 떠올리거나, 겁에 질려 발버둥치는 걸 들킬까봐 치기를 드러내던 십대 후반의 나를 회상하면서, 안쓰러움과 슬픔을 느낄 때 말이다.

"누구나 각자 품고 있는 그 노을을, 무사히 건너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라는 작가의 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특히 '무사히 건너' 라는 대목에 대해.

어린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위로하며,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나 사건이 있었다면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무사히 건너'가 의미하는 것은 이런 정도의 방식일까?

하지만 살다보면 무사히 건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살면서 생기는 문제들은 대부분 막연하고 아련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위해를 가했던 사람, 상처를 주었던 관계,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 그것들은 부조리하다. 부조리한 것은 병리적인 상태를 유발한다.

어린 시절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이제와서 새삼 해결될 수는 없다. 어른이 된 뒤에 떠올려 볼 수 있을 뿐이다. 불완전한 해결, 어정쩡한 타협, 망각으로 대신된 치유. 그것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잘 쓰여진 청춘을 견디는 소설은 쓸쓸한 색채를 띨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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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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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테드 스버슨은 IT 버블 붕괴 직전 주식을 팔아치워 한 밑천 잡은 백만장자다. 메인 주 남쪽 케네윅이라는 곳에 짓고있는 별장이 완성되면 아름다운 부인과 미란다와 그곳에서 남은 인생을 한가하게 즐길 계획이었다. 겉보기에 그는 모든 것을 가진 남자였다.

하지만 얼마 전 별장 건축현장에 갔다가 아내 미란다가 시공업자 브래드 다겟과 불륜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뒤 그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우울감에 빠져든다.

릴리 킨트너를 만난 것은 그가 이러한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 히스로 공항에서 술을 마실 때였다. 빨간 머리에 예쁘장하게 생긴 릴리는 그에게 명랑한 태도로 술에 대해 물어봤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비행기 탑승 뒤에도 줄곧 얘기를 나누게 된다. 둘은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다고 느꼈고, 어느덧 테드는 자신이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것까지 털어놓게 된다.

릴리는 얘기를 한참 듣더니 매우 심상한 말투로 아내를 죽이고 싶다면 도와주겠다는 얘기를 꺼낸다. 처음에 테드는 릴리의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차츰 그녀가 단지 장난으로 꺼낸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로건 공항에서 헤어진 뒤 테드는 고심 끝에 그녀가 말한 날짜에 약속장소로 나간다.

약속장소에서 아내와 불륜남 브래드를 죽이는 살인공모를 하면서 둘은 차츰 서로에게 빠져든다. 어느덧 테드는 굳이 부인을 죽여야하나 의문을 품게 된다. 릴리처럼 매력적인 여자가 좋아졌다면 그냥 바람난 부인과 이혼하면 그만이 아닐까? 어쨌든 테드와 릴리는 살인 계획을 착실히 진행시켜 나갔다. 하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아내 미란다와 시공업자 브래드 역시 테드를 죽이기 위한 살인 모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미란다가 브래드를 부추겨 테드를 살해한 것이 조금 더 빨랐다. 테드는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릴리는 이 사실을 뉴스를 통해 알게된다.

릴리가 첫 살인은 저지른 것은 그녀가 열세 살 때였다. 자신에게 집적였던 소아성애자 쳇을 살해해 집 주변 폐우물에 유기한 릴리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두번 째 살인은 대학 다닐 때였다. 남자친구 에릭 워시번이 전 여친 페이스를 잠자리 파트너로 두고 자신을 기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릴리는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그에게 캐슈넛이 듬뿍 든 치킨 코르마를 먹였다. 이번에도 릴리는 아무 의심도 받지 않았다. 릴리는 페이스 역시 해치우고 싶었지만 확신이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 페이스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릴리는 그녀 역시 에릭과 한통속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백만장자 테드와 결혼했고, 페이스라는 이름 대신 미란다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다.

테드를 히스로 공항에서 만났을 때 그는 릴리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릴리는 테드에게 미란다를 살해하는 데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이 실현되기 전에 미란다가 선수를 쳤다. 테드가 브래드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오마주하며 시작되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 The Kind Worth Killig> 은 2015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후속편으로는 <살려 마땅한 사람들 The Kind Worth Saving>이 있다.

소설은 테드와 릴리의 연애 이야기나, 완벽한 살인 이야기로 전개되지 않는다. 작가는 비정하게 테드 스버슨을 손절하고 릴리의 이야기로 전환시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창조한다. 이러한 전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릴리라는 인물과 서사가 상당히 매력적이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 독자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어쨌든 릴리는 브래드를 설득해 미란다를 살해하고 브래드 역시 우물에 처박는다. 범행 일체를 밝혀내는 데 거의 성공한 킴볼 형사 마저 자신을 스토킹한 것으로 몰아가는 데 성공한 릴리는 완전범죄를 달성한 것 같다.

그러나 그녀가 계산하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시체를 유기한 우물이 있는 공지가 개발업자에게 팔려 파헤쳐지기 시작했다는 아버지의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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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힘든 긴 밤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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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3년 3월 2일 화창한 토요일 오후, 장시 지하철 1호선 시후 문화광장역에 한 남자가 여행가방을 끌고 나타났다. 남자는 열차를 타기 위해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는지 검색대에 가방을 올리라는 보안요원의 말에 눈에 띄게 당황한다. 보안요원과 옥신각신하던 남자가 갑자기 가방을 끌고 도망치려 한다. 수상쩍게 여긴 보안요원들이 그를 에워싸자 남자는 자신에게 살상무기가 있다, 열면 폭발한다 따위의 말을 두서 없이 주워 섬긴다. 사태가 심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보안요원은 샤청구 공안분국에 출동을 요청했다. 하지만 폭탄 제거반이 현장에 도착해 측정기로 검사한 결과 폭탄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 가방 안에는 나체 상태의 시체 한 구가 들어 있었다.

용의자는 형사소송 전문변호사인 장차오로 그날 저녁 살인 혐의를 대체로 인정했다. 피해자의 이름은 장양. 장차오가 대학 교수를 하던 시절 제자였다.

장양은 졸업 후 검찰관이 되었으나 뇌물수수에 연루되고 도박에 손을 댔으며, 부적절한 여자관계로 아내와도 몇 년 전 이혼했다. 그 후 기율검사위원회에 고발되어 조사를 받은 뒤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소 후 찾아온 장양을 장차오는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시내의 집을 공짜로 제공했고, 30만 위안도 빌려 주었다. 그런데 장양은 한 달 뒤 돈을 더 빌려 달라고 했다. 알고보니 장양은 빌려준 돈을 모두 도박으로 탕진한 상태었다. 실망한 장차오는 장양을 꾸짖었고 이 때문에 둘 사이가 틀어졌다. 사건 발생 바로 이틀 전에도 크게 다투는 소리 때문에 인근 파출소에 신고가 되기도 했다.

3월 1일 7시, 장차오가 차를 몰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고 장양은 그날 8시에서 12시 사이 밧줄로 목이 줄려 사망했다. 밧줄에서 장차오 지문이 검출 되었고, 장양의 손톱에서 장차오의 피부 조직이 검출되었다.

택시를 타고 시체를 유기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도 장차오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됐다. 그는 시체 유기 전 불안감에 술을 마셨는데 생각보다 취해버렸고, 운전을 하다 사고라도 내면 범행이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체를 가방에 넣은 후 택시를 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탄 택시가 문화광장역 부근에서 추돌사고를 당한 탓에 경찰이라도 출동하면 곤란하다고 생각한 장차오는 어쩔 수 없이 역으로 들어간 것이다.

희대의 엽기적인 이 사건은 가해자가 혐의를 인정했고, 다수의 증거가 발견된 덕택에 쉽게 마무리 되는 듯 했다.

하지만 2013년 5월 28일, 장시 중급 인민법원에서 1심 재판이 열리자 장차오는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정했다. 그는 장양이 살해된 3월 1일 정오에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에 갔다가 3월 2일 오전에 장시로 돌아왔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왕복 비행기 표, CCTV, 탑승 기록, 호텔 수박 기록, 면담 고객의 진술 등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했다. 명료했던 사건이 한순간에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사뭇 자극적인 도입부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2001년 본 성 칭시 핑캉현 관할 먀오가오향이라는 낙후된 지역에서 일어난 범죄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우구이핑은 장화대학교 법학과 3학년으로 초등학교 교육지원 프로그램에 자원하여 교사가 된다. 2년 기간을 채우면 시험 없이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

그런데 어느 날 허우구이핑은 가르치는 아이 중 하나가 임신을 해서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게다가 다른 아이 하나가 마을 깡패의 차를 타고 어딘가 갔다 온 뒤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사건도 일어난다.

허우구이핑은 부모가 도시로 돈 벌러 나갔거나 조부모 손에서 크는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성상납되고 있는 정황을 파악하고 증거를 수집해 고발하지만 그의 고발은 누군가에 의해 번번히 묵살되었다. 허우구이핑에 대한 회유와 협박이 이어졌지만 그는 그만두지 않았고 결국 살해되고 만다.

경찰은 대학 측에 허우구이핑이 부녀자를 겁탈한 뒤 자살했다고 통보했다. 이 때 장차오는 대학에서 법학 강의를 맡고 있었다. 장차오는 검시보고서가 엉터리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권력형 범죄라는 것을 직감하고 미리 포기하고 만다.

후에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하게 된 것이 허우구이핑의 대학 동창 장양이었다. 막 검찰관이 된 장양은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조사하지 않았지만 법의관 천밍장, 경찰 주웨이 등의 후원과 도움으로 차츰 사건에 몰입하게 되고 마침내 권력형 범죄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권력과 공안, 폭력조직 까지 결탁한 세력에 의해 모든 증거는 말소 되고 장양 마저 함정에 빠져 검찰관에서 파면 당한 뒤 징역형까지 살게된다.

진실을 알릴 모든 방법이 거세되고 사건에 관계했던 사람들이 죽거나 징역을 살고 패배한 그 순간, 장차오는 과거 자신이 제자의 사망 사건을 허투루 다룬 것을 후회하고 하나의 사건을 기획하게 된다. 누가 봐도 명확한 범죄사건을 일으킨 다음 정 반대 결과를 법정에서 제시해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킨 다음 허우구이핑 살해 사건의 재조사를 촉구한다는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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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진천은 저장대학교 수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해 명성을 얻었다. 공대 출신 추리소설가가 흔히 그렇듯 쯔진천도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 불린다. 하지만 작풍이 상당히 달라 억지스런 느낌이 있다. 오히려 홍콩의 찬호께이가 이러한 별칭에 어울릴 것 같다.

영화 <데이비드 게일>의 모티프를 도용한 감은 있지만 <동트기 힘든 긴 밤>은 우직하게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과 인물들의 입체적 묘사가 훌륭해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시비를 어느정도 상쇄한다.

10년간의 희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관계된 인물 대부분은 죽거나 중형을 받고, 범인은 법의 처벌을 받지 않고 자살한다.

작품은 "2014년 7월 29일 거물급 호랑이가 낙마했다" 라고 끝을 맺는데, 이 날은 중국 당국이 부정부패 혐의로 저우융캉 전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대한 공식 조사에 착수한 날이라고 한다.

시진핑 집권 직후 개혁 이미지 확산 차원에서 책의 출간이 허용된 것인지, 중국 정부의 자신감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이라는 폐쇄된 사회에서 이만한 사회파 추리소설이 나왔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664685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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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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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멈춘 연쇄살인범이 있다. 그는 이십오육년 전 마지막으로 살인을 했다. 살인을 멈춘 것은,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술회한다.

살인자는 열여섯에 첫 살인을 시작했다. 아버지를 죽였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첫 살인 치고 나쁘지 않았다. 그 뒤로 수의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고, 30년간 훌륭하게 사람들을 죽여왔다.

그러다 사건이 일어난다. 시를 배우기 위해 드나들던 문화센터에서 살해한 은희 엄마가 죽기 전 절규한, "제발 우리 딸만은 살려주세요"가 그의 마음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킨 것이다. 은희 엄마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고, 뇌수술을 받은 뒤 그의 살인 충동이 사라진다. 살인자는 은희를 입양해 키우면서 정적과 평온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마을에 자신의 동업자가 나타나면서 살인자는 다시금 묻어두었던 본능을 일깨운다. 연쇄살인범은 은희가 사귀기 시작한 남자친구 박주태가 틀림 없었고, 다음 대상은 은희가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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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트릭의 문제는 독자를 뻔뻔하게 속여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들은 독자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여러가지 보완점을 발전시켜 왔는데, 그중 그럴싸한 대책이 바로 화자의 기억을 화자 스스로도 믿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일시적인 기억상실, 정신착란, 환각 등등. 이것은 나중에 썩 괜찮은 변명이 된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화자는 알츠하이머라는 패를 쥐었다. 이제 작가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결말을 손에 쥐게 된다.

작품 속 살인자가 엉뚱한 말을 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은희 엄마 살해 사건 부터이다. 사실 그는 은희 엄마뿐 아니라 은희도 살해했고, 그 직후 일어난 교통사고로 살인충동이 거세된 것이다. 은희를 입양해 키웠다는 것은 말짱 헛소리이고, 실상은 알츠하이머 때문에 요양보호사로 오는 동명의 은희를 자신이 입양한 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뿐이다. 게다가 연쇄살인범 박주태 역시 자신을 끈질기게 뒤쫓는 형사이다.

모든 것이 들통난 뒤에도 살인자는 반야심경의 구절을 외우며 피안의 세계 속으로 숨어들 뿐 자신의 죄책감을 직시하고 기억의 진위를 가리는 것을 거부한다.

작품 말미에 실린 류보선의 <수치심과 죄책감 사이 혹은 우리 시대의 윤리>에 꽤나 소상한 작품 분석이 실려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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