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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의 울음 ㅣ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버트는 최근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랭글리에서 15km 떨어진 험버트 코너스라는 마을로 이사 왔다. '랭글리 항공산업' 직원인 그는 부업으로 새를 그리며 조용히 생활했다.
뉴욕에 있는 아내 니키와는 아직 이혼 전이다. 니키는 그림 실력이 그저 그런 화가였는데 자신을 포장하는 일은 잘 했다. 그녀는 비열하고 자기중심적이었기에 조용하고 차분한 로버트와 맞지 않았다.
로버트가 제니퍼를 본 것은 우연이었다. 로버트는 그녀가 발산하는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그 후 로버트는 그녀 집 부근을 배회하며 동정을 살폈다. 그런 로버트의 행동이 다른 사람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터였다.
로버트는 제니와 어떻게 해보겠다는 구체적 계획이 없었다. 제니에게는 그렉이라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는 의약품 외판원이었는데 자존감이 높지 않았고 질투도 심했다.
어느 날, 로버트가 제니의 집을 배회하다 나뭇가지를 밟아 소리를 냈다. 곧 제니가 집 밖으로 나왔고, 로버트를 발견하게 된다. 로버트는 제니가 경찰에 신고할 거라 짐작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니는 로버트를 집으로 들게 해 커피를 대접했다. 그녀는 주변을 배회하는 로버트의 존재를 느껴왔다고 말했다.
제니는 그렉과 정 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는 로버트에게 자신도 모르게 끌리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로버트의 태도였다. 로버트는 제니에게 자신이 아직 이혼 전이라는 것과 정신병력이 있다는 것 따위를 고백했다. 그런 로버트의 행동은 제니에게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고 이해를 구하기 위함이라기 보다, 자신의 조건과 단점을 열거해 제니를 떨어뜨려 놓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로버트는 제니가 바라는 대로 식사도 하고 스키장에 놀러도 갔지만 동시에 '어떤 약속도 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그렉은 로버트의 존재가 몹시 거슬렸다. 그렉은 로버트의 뒷조사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로버트의 전 부인 니키와 선이 닿게 된다. 니키는 로버트가 정신병력이 있고, 자신에게 총을 겨눈 적이 있다는 사실 등을 맥락 없이 알려준다.
그렉은 로버트를 제니로부터 떼어내기로 결심하고 로버트를 미행하다 강변에서 격투를 벌인다. 처음엔 그렉이 로버트를 일방적으로 폭행하는 양상이었으나 곧 둘이 엉겨붙어 싸움이 되더니 마지막엔 그렉이 강물에 빠지는 지경에 이른다. 로버트는 그렉을 강변으로 끌어다 놓은 뒤 자리를 뜬다.
그 사건 이후 그렉이 자취를 감춘다. 경찰은 그렉이 실종, 또는 살해되었다 보고 로버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제니는 로버트의 모호한 태도와 그렉의 실종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다 자살하고 만다. 그녀는 자신의 남동생이 12살 때 뇌척수막염으로 사망한 뒤 때때로 죽음에 매료되는 성향이었다. 그녀의 유서에는 로버트가 '죽음'을 상징한다고 적혀있었다.
사라졌던 그렉이 니키와 공모해 로버트를 곤란하기 위한 갖은 수작을 벌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보석으로 빠져나온 그렉이 로버트, 니키와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되고, 곧 다툼을 벌이게 된다. 그렉이 휘두른 칼에 니키가 목을 베이고 로버트가 찔린다. 로버트는 잭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 나타난 잭은 로버트를 범인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로버트는 맥 빠진 상태에서 현장을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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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는 제니에게 매료되어 그녀의 집을 찾아가 몰래 훔쳐보았으면서도 정작 제니가 다가오자 그녀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같은 집에서 밤을 보내면서도 그녀의 몸에 손을 대지 않는 로버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면 로버트는 제니를 '실제 존재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로버트는 단지 환상의 집 속에서 비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이상적인 모델로서 제니를 상정한 뒤 그 상황만 즐겼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낼 온갖 생활상의 문제를 처리할 의지가 로버트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제니가 다가오자마자 벗어날 길을 궁리한 것이다.
로버트와 제니의 관계는 '험버트 험버트'와 '롤리타'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환상속에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으로 존재해야 할 롤리타. 다른 점이 있다면 '험버트 험버트'는 롤리타와 관계를 맺었고, 로버트는 제니와 관계 자체를 맺지 않았다는 점일까.
한편, 병리적 증후는 제니에게서도 강하게 나타난다. 그녀는 자신의 집 주변을 배회했던, 어찌보면 스토커나 다름없는 로버트에게 집착한다. 하지만 로버트는 그녀를 부담스러워했고, 약혼자였던 그렉이 사망했을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자 로버트를 '죽음'의 상징이라고 믿게 된다. 결국 그녀는 남동생의 때이른 죽음 이후 줄곧 경도되었던 충동에 굴복하여 생을 마감하고 만다. 동생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과도한 죄책감 때문에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막상 불행이 닥쳤을 때 이를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체념적인 태도로 굴복해 버린 것이다.
<올빼미의 울음>은 무척 쓸쓸한 소설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범죄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병리적인 상황을 집요하게 추적하여 사람과 사람이 과연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우리가 타인을 진정 사랑할 수 있는지 등 본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