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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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펜실베니아 주에 위치한 부엘은 한 때 철강 산업으로 부유한 마을이었으나 철강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마을은 점차 황폐해 지고 만다. 

아이작 잉글리시는 부엘 마을에서 가장 똑똑한 청년이었다. 아이작의 아버지 헨리는 마을의 철강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먼 곳에 있는 철강 공장에 가서 일을 해 돈을 부친다. 그런 생활이 얼마간 이어지다가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헨리는 불구의 몸이 된다. 아이작의 어머니는 돌을 주머니에 한 가득 넣고 강물에 투신 자살한다.

아이작의 누나 리 역시 머리가 뛰어났고 대학 입학 시험에서 만점을 맞은 후 예일대에 입학한다. 아이작은 거동이 불편한 헨리와 고향 마을에 남게 된다. 아이작 역시 대학 입학 시험에서 뛰어난 점수를 받지만 진학을 포기한다. 아이작은 자신을 의붓 아들처럼 대하는 헨리에게 인정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이작은 헨리가 자진해서 자신을 놓아주길 바랬다.

한편 포는 마을에서 가장 운동 신경이 뛰어난 청년으로 고등학교 내내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 했고 대학에서도 그를 스카웃하려 했다. 하지만 포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에 압박감을 느꼈고,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어머니 그레이스와 트레일러에 살며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이 사슴을 밀렵하며 살아간다.

아이작이 부엘에서 몇 년간 허송세월을 한 끝에 더 이상 헨리의 인정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헨리의 돈 4천 달러를 훔쳐 달아난다. 아이작은 떠나기 직전 포에게 들르고, 포는 아이작을 마을 경계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다. 비를 만난 둘은 폐허가 된 공장 부지에서 몸을 말리다가 부랑아 세 명과 마주친다. 아이작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바로 떠나려 했지만 포는 호승심이 일어 아이작을 따라 함께 일어서지 않는다. 잠시 후 아이작은 포가 걱정되어 돌아왔고 포가 목에 칼이 겨눠진 채 성추행 당하기 직전임을 발견한다. 아이작이 던진 베어링 뭉치가 스웨덴인의 이마에 맞아 그가 숨지고 둘은 그 자리를 떠난다.

다음 날 둘은 공장터에 가방과 옷을 찾으러 갔다가 경찰서장 해리스에게 발각당한다. 해리스는 포의 어머니 그레이스를 사랑했기 때문에 포를 감싸주려 한다. 그날 밤 포와 리가 관계를 맺는 것을 엿들은 아이작은 집을 다시 떠난다.

사건 현장에 있던 자가 경찰에 증인을 자처하고 나서자 새로 임명된 검사는 포를 구속한 후 악명 높은 감옥에 가둔다. 감옥 속에서 포는 흑인쪽 거물과 싸움이 벌여 그를 다치게 하고 백인들의 보호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백인들은 포에게 공짜 선물을 준 것이 아니었다. 포는 교도관을 손 봐 주든가 백인과 흑인 모두에게 적이 되든가 선택해야 했다. 포는 이제라도 스웨덴인을 죽인 것은 자신이 아니라 아이작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야 할지 갈등한다. 포는 자신이 그 싸움의 원인이었고 아이작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와줬다는 점을 상기한다. 그리고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교도관을 손 봐 주기 전 또다시 백인과 문제를 일으킨 포는 결국 백인들에게 린치를 당해 큰 부상을 입는다.

한편 아이작은 집을 떠나 부랑아처럼 떠돌며 린치를 당하고 돈을 빼앗기는가 하면 살기 위해 도둑질도 마다 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아이작은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을 밝혀야 하리라 생각한다.

해리스가 그레이스를 위해 증인을 해치운 날 아이작이 해리스를 찾아가 자신이 실제 범인이라고 밝힌다. 해리스는 자신이 할 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제목 <아메리칸 러스트>에서 상징하듯 미국의 몰락과 그로 인한 삶의 피폐화를 다루고 있다. 철강 산업은 미국의 힘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철강 산업 노동자인 아버지들은 아이들의 롤 모델이다. 그런데 철강 산업의 몰락과 함께 아버지 헨리는 불구가 되고 아들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닥쳐온다. 어머니는 가족을 남겨두고 자살한다. 자살하기 전 어머니는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고 홀가분해 보였다는 점은 더욱 큰 혼란으로 다가온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롤모델을 잃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리는 문제를 외면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착각했고, 아이작은 문제에 직면하긴 했으나 문제를 해결할 힘이 전혀 없었다. 마찬가지로 포 역시 부모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으리란 두려움에 자신의 삶을 내팽개쳐버린다. 그 결과 뜻 밖의 살인 사건에 휘말린다.

아이작은 스스로 길을 떠난다. 아이작에게는 4천 달러가 있었으나 그 돈을 거의 쓰지 않고 시련을 자처한다. 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또 다른 자아인 '아이' 가 말을 한다. 어느 순간 아이작은 자신에게는 또 다른 자아인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성숙해진다. 그 결과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하기로 마음을 먹고 돌아온다.

포 역시 감옥에 갖혀 교도관에게 폭행을 가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그들 모두와 싸우더라도 옳은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또한 아이작의 이름을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작가 자신이 볼티모어의 철강 지대에서 자라며 관찰한 바를 소설 속에 담았다고 하는데 소설은 사뭇 위험한 경계에 있어 보인다. 철강 산업의 몰락을 통해 우의적으로 표현한 미국의 몰락과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 과거 강한 미국에 대한 향수에 기반하고 있고, 그 강한 미국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한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여타 국가에 대한 작가의 인식 역시 약간 조악하다. 소설에서는 뜻밖에 남한과 북한이 각각 한 번씩 언급된다. 남한은 모든 산업이 국유화되어 조선업을 휘어 잡은 나라로 표현되고 북한은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해 미국을 위협하는 나라로 묘사된다. 일본과 독일은 철강 산업에 끊임 없이 투자를 해서 미국과 달리 산업을 지켜낸 나라로 묘사된다.

작가는 아이작과 포에게 선물을 안겨준다. 해리스가 증인을 죄다 죽여준 것이다. 아이작과 포는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그 댓가를 받은 것이다. 뒷맛이 개운치 못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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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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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은 일본 역사상 가장 엽기적이고 미스터리한 것으로 기억되는 <제국은행사건>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1948년 1월 26일 은행 폐점 직후인 오후 3시경, 도쿄 방역반 완장을 찬 중년 남성이 후생성 직원이라고  사칭하며 "근처 주택가에 이질이 발생했으니 GHQ(연합국 총사령부)가 은행을 소독하기 전 예방약을 복용하라"면서 직원 16명에게 청산가리를 마시게 한다. 12명이 사망하고 18만엔에 달하는 현금과 수표가 도난 당한다. 생존자의 진술에 따르면 범인 자신이 직접 약을 복용하였기 때문에 은행 직원들이 큰 의심을 하지 않았고, 약이 치아에 닿으면 손상된다는 말을 들었기에 단숨에 마셨다고 한다.

경찰은 범인이 사용한 청산가리가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육군 세균부대(731부대)에서 연구된 것과 비슷하다는 점을 알아낸다. 또한 유사사건에서 마츠이 시게루 라는 사람의 명함이 도용된 점에 착안하여 마츠이가 명함을 건낸 사람 중에서 용의자로 템페라 화가 히라사와 사다미치를 체포한다. 알리바이가 명확치 못하고 수표 사기 전력이 있는 점, 사건 직후 피해금액과 비슷한 금액을 예금하였으나 출처가 불분명한 점 등이 히라사와를 불리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생존자들은 히라사와를 범인이라고 단언하지 못했고, 히라사와는 범행 일체를 부인한다. 그러던 그가 한달여가 지난 후 자백을 한다. 1심 공판에서는 자백을 번복하며 무죄를 주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형이 판결되고 1955년 5월 7일 일본최고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상고를 기각함으로서 사형이 확정된다.

이에 마츠모토 세이초, 코미야마 유시로 등이 구명운동을 벌였다. 실제로도 고문에 가까운 경찰 조사와  조서 중 일부가 백지에 히라사와가 무인한 후 글씨를 덧붙인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또한 히라사와가 재판 중이던 1954년 이바라키 현에서 보건소 직원을 사칭한 자에 의해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역대 법무대신들은 히라사와의 사형집행 명령서에 서명하기를 꺼려했고, 히라사와는 결국 1987년 향년 95세로 폐렴에 걸려 옥중에서 병사한다.

<제국은행사건>은 공식적으로는 히라사와가 범인으로 확정되어 사형 판결까지 받았지만 그를 진범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분위기이다.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제국은행사건>을 염두에 둔 <천은당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10명을 독살하고 보석을 강탈해 가는데,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츠바키 자작이 지목된다. 경찰 조사 직후 츠바키 자작은 목을 메 숨지고 그가 남긴 유서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 사이에서 나중에야 발견된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의 굴욕과 불명예를 참을 수 없으며, 이것이 폭로된다면 츠바키 가문도 끝장이라는 내용을 남겼다. 

츠바키 자작의 딸 미네코가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죽은 츠바키 자작이 만든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가 연주되고, 다마무시 백작과 신구 도시히코, 아키코가 차례로 죽어간다. 츠바키 자작은 자살하기 직전 어딘가를 여행하고 왔는데 그 여행에 사건을 풀 열쇠가 있을 것이다. 여행 중 긴다이치 코스케 등은 다마무시 백작의 집에 종살이를 하던 고마라는 아가씨가 누군가의 아이를 배고 거액의 보상을 받은 후 입을 닫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고마 역시 누군가에게 살해된다. 과연 발견되었던 시체는 츠바키 자작이 맞는가? 그가 말한 굴욕과 불명예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다마무시 백작은 어떻게 밀실에서 살해되었는가?

 

미스터리는 교묘하지 못하고, 긴다이치 코스케는 역시나 별다른 추리를 하지 않는다. 다만 <빌헬름 마이스터>를 읽고 나니 범인을 알아차렸을 뿐이라는 비판은 일본 내에서도 많았다고 한다. 소설 보다는 소설이 모티프로 삼고 있는 사건이 더욱 흥미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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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입술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0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책세상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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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프레도 르 페라의 격정적인 탱고 가사에 뒤이어 코로넬 바예호스에서 출판된 월간지 <우리 이웃>의 1947년 4월호 기사가 실려 있다. 기사에는 후안 카를로스 에체파레가 투병 생활 끝에 스물 아홉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쓰여 있다.

네네는 카를로스 에체파레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낸다. 네네는 후안 카를로스의 죽음을 <우리 이웃>을 통해 알게 되었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은 후안 카를로스 뿐이었다는 사실을 편지에 적는다. 그리고 후안 카를로스의 누이이자 자신의 친구였던 셀리나와의 불편했던 관계에 대해서도 말한다. 시간은 과거로 흘러간다. 

1930년대 중반 코로넬 바예호스에 살던 네네는 후안 카를로스에게 반한다. 후안 카를로스는 네네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한편 부자집 딸인 마벨에게도 마찬가지 말을 건낸다. 그러면서도 과부와는 주기적으로 성관계를 맺어오고 있었다. 후안 카를로스의 누이 셀리나는 네네, 그리고 부자집 딸인 마벨과 친구 사이였는데 내심 자신의 동생이 마벨과 연결되어 사교계로 진출하길 원한다. 셀리나는 자신이 미인대회에서 탈락한 것을 트집잡아 네네와 결별한다.

네네는 의사와 관계한 전력이 있었고 셀리나도 몸을 함부로 놀렸다. 둘은 서로의 잘못을 비난한다. 후안 카를로스가 폐결핵에 걸리자 마벨은 그를 멀리하고 경매사와 결혼하기로 한다. 하지만 경매사와 마벨의 아버지 사이에 소송이 일어나 불안한 상황에 처한다. 

한편 후안 카를로스의 친구인 벽돌공 판초 역시 후안 카를로스처럼 피부가 하얀 네네를 욕망하고 마벨과도 관계를 갖고 싶어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녀인 히프를 유혹하여 임신을 시킨다. 히프가 아이를 낳을 즈음 판초는 경찰 후보생이 되어 교육을 받으러 떠나고, 경찰이 된 후에는 히프를 외면한 채 마벨과 관계를 맺는다. 어느 날 이런 관계를 눈치챈 히프가 판초를 칼로 찔러 죽이고 추문에 휩싸일 것을 우려한 마벨은 판초가 히프를 겁탈하려다가 살해당했다고 거짓 진술을 한다.

네네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떠나고 마벨 역시 평범한 남자와 결혼한다. 셀리나는 외판원들과 놀아나는 여자라는 소문만 돌 뿐 시집을 가지 못한다. 셀리나와 어머니는 후안 카를로스를 치료할 돈이 부족해지자 과부에게 후안 카를로스를 떠맡긴다. 후안 카를로스는 결국 죽는다.

그의 죽음을 접한 네네는 과거의 격정적인 사랑을 떠올리고 후안 카를로스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낸다. 어머니의 답장을 받은 네네는 한층 대담하게 과거의 격정을 편지에 풀어 놓는다. 하지만 실제 편지를 받고 답장을 한 것은 셀리나였고, 셀리나는 네네의 편지에 적힌 현재 생활과 남편에 대한 불만에 밑줄을 그어 남편에게 투서를 보낸다. 남편은 분개하고 네네는 남편 곁을 떠나 코로넬 바예호스로 떠난다.

네네는 오십이 넘어서 사망한다. 기존의 유언은 자신과 후안 카를로스가 주고 받은 편지를 시신과 함께 묻어달라는 것이었으나 죽기 직전 편지를 태워달라고 수정한다. 남편인 마사가 불 속에 넣은 편지를 집어 넣는다. 타기 직전 잠깐 동안 글씨들이 환하게 떠올랐고, 후안 카를로스의 다정했던 말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조그만 입술>은 잡지의 뉴스, 편지, 3인칭 서술 장면, 비망록, 상대편의 대답이 생략된 대화, 감정이 배제된 사건의 나열, 의식의 흐름 등 갖가지 수법들이 동원되어 등장 인물들 각각의 시각이 제시된다. 소설은 종장에 이르기까지 독자에게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조각조각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추악한 욕망과 배신이 설핏 엿보인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편지가 타기 직전, 이미 죽어버린 후안 카를로스가 보냈던 편지의 다정했던 말들이 환하게 밝아올 때, 나는 격정적이고 열정적이었던 그들의 한 때를 생각했다. 단지 그들은 헐리우드 영화나 잡지, 열정적인 탱고의 가사들이 보여준 환상적인 삶과 자신들의 실제의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의 무대가 된 코로넬 바예호스(Coronel Ballejos)는 상상속의 지명으로 작가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헤네랄 비예가스(General Villegas)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낸 곳이다. 작가의 첫 작품인 <리타 헤이워스의 배반(1968)>과 <조그만 입술(1969)>의 무대가 된다. 

1973년에는 3번째 소설이자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해피 투게더>의 원작으로 알려진 <부에노스아이레스 사건(1973)>을 출판한다. 하지만 페론과 군사정부에 의해 판금되자 오랜 망명길에 오른다. 첫 망명지인 멕시코에서 우리 나라에도 잘 알려진 <거미 여인의 키스(1976)>을 출판한다. 그 후 <천사의 음부>, <보답 받은 사랑의 피(1982)>, <열대의 밤이 질 때(1988)> 등을 집필한다. 1990년 7월 22일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대학 시절에 우연히 <거미여인의 키스>를 영화로 접하는 행운을 얻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강렬한 인상이 사라지지 않았었다. <거미여인의 키스>가 번역되었을 때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릴라 발렌틴에게 동성애자 몰리나가 매일 밤 자신이 보았던 영화를 조금씩 각색해서 들려주는 이야기에 흠뻑 빠진 나는 소설이란 본래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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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밀러 펭귄클래식 27
헨리 제임스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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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브베라는 마을에서 윈터본은 데이지 밀러라는 아가씨를 알게 된다. 데이지는 미국인 아가씨로 어머니와 남동생, 그리고 안내인을 데리고 여행중이었다. 윈터본은 데이지에게 한눈에 매혹되고 그녀의 제안들에 가슴이 설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바람둥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윈터본은 아주머니인 코스텔로 부인에게 데이지를 소개시켜려 하지만 코스텔로 부인은 데이지 밀러 일행이 천박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윈터본의 눈에 비친 데이지는 한편으로는 천진난만하고 순진해 보였지만 안내인 유제니오와 가깝게 지내는 태도는 정숙해보이지 않았다. 윈터본은 시옹성으로 데이지와 함께 구경을 간다. 제네바로 돌아간다는 윈터본의 말에 데이지는 윈터본에게 숨겨진 애인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면서 자신과 더 오래 있지 않는 것을 원망하는 말을 한다.

다음 해 1월말 경 윈터본은 로마로 갔다가 그곳에서 데이지와 재회한다. 데이지는 잘생긴 이탈리아인 조바넬리와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같은 미국인들은 그런 데이지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날 조바넬리와 단둘이 산책을 하는 데이지에게 워커 부인이 잘못된 행동이라며 그만 두고 자신의 마차에 오를 것을 권한다. 그러나 데이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워커 부인의 권유를 무시한다. 얼마 후 데이지는 워커부인이 주최한 사교계 모임에서 차가운 대접을 받는다.

윈터본이 어느 날 밤 들른 투기장에서 조바넬리와 함께 있는 데이지를 발견한다. 윈터본은 데이지에 대한 고민, 그녀가 순진한 아가씨인지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아가씨인지, 에 대한 결론을 스스로 내리고 데이지에게 열병에 걸릴 수도 있는 행동을 했다며 비난한다. 2,3일이 지나고 그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돈다. 호텔을 방문한 윈터본은 데이지가 열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데이지의 어머니는 데이지가 조바넬리와 약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윈터본에게 전한다. 

데이지는 끝내 사망하고 조바넬리는 장례식장에서 윈터본에게 데이지가 자신이 알았던 가장 순진한 아가씨였다고 말한다. 윈터본은 자신이 데이지에 대해 품었던 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알게 되고 그녀가 누군가의 존중을 고마워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팽귄판은 1879년 맥밀란 출판사가 영국에서 처음 출간한 텍스트를 번역한 것이다. <데이지 밀러>는 크게 두 가지 판본이 있는데 1879년 판본과 1909년 판본이 그것이다. 독자와 평론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는데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1879년 판본이 많은 부분을 생략하여 독자가 판단할 여지를 남겨둔 데 반해 1909년 판본은 작가의 개입과 서술이 1879년 판본에 비해 많다고 한다.

출간 당시 소설 속 데이지의 행동에 대해 독자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이에 대한 헨리 제임스의 답변이 엘리자 린 린턴 부인과 주고 받은 서신에 나와 있다. 헨리 제임스는 데이지가 사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조바넬리와의 행각을 이어갔던 이유를 그녀가 단지 너무 순진했고 사람들의 비난을 이해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덧붙여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요점은, 가변고 가녀리고 꾸밈없고 예측하기 힘든 한 존재가 정작 자신과는 별로 관련도 없는 사회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희생당하는 짧은 비극인 셈" 이라고 말한다.

 

어제 군산 선유도로 갔다가 오늘 돌아왔다. 바다 낚시를 할 만한 일기가 아니었으므로 가벼운 산책으로 선유도의 메인 일정은 끝나버렸고, 밤에는 술과 화투와 축구경기 관람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 세가지 모두에 소위 '젬병'이므로 화투판의 물주를 자처하다가 슬그머니 다른 방으로 스며들어 <데이지 밀러>를 읽었다. 왼쪽 방에서는 광을 파는 소리가, 오른쪽 방에서는 섰다를 위해 '학교 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데이지 밀러>를 읽는 내가, 사실은 이번 행사의 주최자였다. 행사 주최도 나는 '젬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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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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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인 '나'는 자동차 회사의 리콜 담당이다. 스웨덴제 가구를 사 모으는 취미가 있고,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잠을 자는 것이 가장 훌륭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므로 말기암 환자 모임에 나가 그들의 불행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일종의 휴식과 평온을 얻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무런 병에도 걸리지 않았으면서 자신처럼 말기 암 환자 모임에 나오는 말라를 알게 된다. 그녀가 의식되면서 휴식과 평온이 방해받는다. '나'는 말라와 모임을 나누어 나가기로 협정을 맺는다.

영사기사로 일하는 타일러 더든과 어느 날 밤 술집 앞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서로를 때리기 시작한다. '나'는 육체가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상황을 겪으며 일상 생활에서 의미를 부여해왔던 것들이 실상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하게 되고 마침내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 개조'가 아니라 '자기 파괴'임을 깨닫는다. 모든 것이 파괴된 곳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일러 더든이 만든 파이트 클럽은 몇 가지 단순한 규칙, '절대로 파이트 클럽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와 '일대 일로 싸운다' 이외에는 사람들을 구속하지 않았고 참가자들은 열광하였다. 그들은 다음 날이면 엉망이 된 얼굴들 속에서 연대의식을 느낀다.

말라가 자살하는 것을 타일러가 막은 날, 둘은 관계를 맺는다. 타일러는 말라의 어머니가 지방흡입술로 덜어낸 지방으로 비누를 만든다. 둘의 아지트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메이헴 계획이 세워진다. 그 계획은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무정부주의적인 계획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회 곳곳에 파이트 클럽 회원들이 침투하여 암약하기 시작한다.

화자는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이 파이트 클럽 회원들로부터 선생님이라 불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타일러와 말라가 단 한번도 함께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나'는 타일러가 또다른 자아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은 무정부주의적인 상상으로 가득차 있다. 마치 Sex Pistols의 노래 <Anarchy in the U.K.>의 소설 버전 같다. 무정부주의의 요체가 무엇인가? 그것은 '거부'와 '파괴'이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과학적 전략, 전술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분노의 엘리트적 표출이다. 소설 속 타일러는 이러한 무정부주의적 원칙에 충실하다. 조직의 보위(발설하지 말것), 완전한 평등(일대 일로 싸운다), 건설을 위한 파괴(각종 테러 행위들) 등등. 

모든 것이 철저히 파괴되기 위해서는 파괴의 희열을 스스로 경험해야만 하는 바, 그 첫걸음으로 나를 파괴한다. 그 속에서 여타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별 것 아니었음을 경험한다. 새차에 흠집이 나면 머리를 감싸 쥐게 되지만 이미 흠집 투성이인 차의 외관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과 같이 사물을 보는 다른 관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외관은 엉망이니 달리는 기능 자체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외관도 엉망인데 기능은 아무려면 어떠랴 하든가이다. 무정부주의의 한계는 바로 '아무려면 어떠랴'하는 식이 될 개연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73767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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