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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ㅣ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소설은 일본 역사상 가장 엽기적이고 미스터리한 것으로 기억되는 <제국은행사건>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1948년 1월 26일 은행 폐점 직후인 오후 3시경, 도쿄 방역반 완장을 찬 중년 남성이 후생성 직원이라고 사칭하며 "근처 주택가에 이질이 발생했으니 GHQ(연합국 총사령부)가 은행을 소독하기 전 예방약을 복용하라"면서 직원 16명에게 청산가리를 마시게 한다. 12명이 사망하고 18만엔에 달하는 현금과 수표가 도난 당한다. 생존자의 진술에 따르면 범인 자신이 직접 약을 복용하였기 때문에 은행 직원들이 큰 의심을 하지 않았고, 약이 치아에 닿으면 손상된다는 말을 들었기에 단숨에 마셨다고 한다.
경찰은 범인이 사용한 청산가리가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육군 세균부대(731부대)에서 연구된 것과 비슷하다는 점을 알아낸다. 또한 유사사건에서 마츠이 시게루 라는 사람의 명함이 도용된 점에 착안하여 마츠이가 명함을 건낸 사람 중에서 용의자로 템페라 화가 히라사와 사다미치를 체포한다. 알리바이가 명확치 못하고 수표 사기 전력이 있는 점, 사건 직후 피해금액과 비슷한 금액을 예금하였으나 출처가 불분명한 점 등이 히라사와를 불리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생존자들은 히라사와를 범인이라고 단언하지 못했고, 히라사와는 범행 일체를 부인한다. 그러던 그가 한달여가 지난 후 자백을 한다. 1심 공판에서는 자백을 번복하며 무죄를 주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형이 판결되고 1955년 5월 7일 일본최고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상고를 기각함으로서 사형이 확정된다.
이에 마츠모토 세이초, 코미야마 유시로 등이 구명운동을 벌였다. 실제로도 고문에 가까운 경찰 조사와 조서 중 일부가 백지에 히라사와가 무인한 후 글씨를 덧붙인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또한 히라사와가 재판 중이던 1954년 이바라키 현에서 보건소 직원을 사칭한 자에 의해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역대 법무대신들은 히라사와의 사형집행 명령서에 서명하기를 꺼려했고, 히라사와는 결국 1987년 향년 95세로 폐렴에 걸려 옥중에서 병사한다.
<제국은행사건>은 공식적으로는 히라사와가 범인으로 확정되어 사형 판결까지 받았지만 그를 진범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분위기이다.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제국은행사건>을 염두에 둔 <천은당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10명을 독살하고 보석을 강탈해 가는데,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츠바키 자작이 지목된다. 경찰 조사 직후 츠바키 자작은 목을 메 숨지고 그가 남긴 유서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 사이에서 나중에야 발견된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의 굴욕과 불명예를 참을 수 없으며, 이것이 폭로된다면 츠바키 가문도 끝장이라는 내용을 남겼다.
츠바키 자작의 딸 미네코가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죽은 츠바키 자작이 만든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가 연주되고, 다마무시 백작과 신구 도시히코, 아키코가 차례로 죽어간다. 츠바키 자작은 자살하기 직전 어딘가를 여행하고 왔는데 그 여행에 사건을 풀 열쇠가 있을 것이다. 여행 중 긴다이치 코스케 등은 다마무시 백작의 집에 종살이를 하던 고마라는 아가씨가 누군가의 아이를 배고 거액의 보상을 받은 후 입을 닫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고마 역시 누군가에게 살해된다. 과연 발견되었던 시체는 츠바키 자작이 맞는가? 그가 말한 굴욕과 불명예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다마무시 백작은 어떻게 밀실에서 살해되었는가?
미스터리는 교묘하지 못하고, 긴다이치 코스케는 역시나 별다른 추리를 하지 않는다. 다만 <빌헬름 마이스터>를 읽고 나니 범인을 알아차렸을 뿐이라는 비판은 일본 내에서도 많았다고 한다. 소설 보다는 소설이 모티프로 삼고 있는 사건이 더욱 흥미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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