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체르 소나타 (반양장) 펭귄클래식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기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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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o 가정의 행복 

 

'나'는 돌아가신 엄마의 장례식을 치른 후 시골 영지에서 가정교사인 카탸, 그리고 여동생 소냐와 함께 조용히 지낸다. 아버지의 친구인 세르게이 미하일리치가 후견인이 되어 집안일을 돌보아주기 시작한다. '나'는 나이 차가 있는 그에게 점차 호의적인 감정을 품게 되는데, 그 역시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점차 세르게이 미하일리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 하면 그와의 동질감을 강하게 느낀다. 하지만 세르게이 미하일리치는 자신이 너무 늙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솔직한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야외로 나들이를 간 날 세르게이 미하일리치가 우회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그런 속마음을 드러내자 '나'는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주위에 공표한다.

결혼식 과정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시시하다는 느낌을 주었지만 곧 그런 느낌이 사라지고 행복으로 충만한 시기를 보낸다. 하지만 점차 '나'의 감정이 예민해지기 시작했고 어느 날 남편이 바깥에서 있었던 불쾌한 일에 관해 나와 이야기하기 저어하던 일이 발단이 되어 둘 사이가 잠시 삐걱거린다. 남편은 '나'의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 도시로 이사 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페테르부르크 생활을 시작하기 전 남편은 도시 생활을 즐기되 사교계를 경계해야 하고 부활절 주간에는 시골로 돌아가 지내자는 말을 한다. '나' 역시 그런 남편의 말에 동의하지만, 막상 사교계에서 인기를 얻고 선망의 대상이 되자 그 생활을 즐기기 시작한다. M 대공이 자신과 만나길 고대하고 있다는 공작부인의 말에 '나'는 남편과 시골로 돌아가기로 약속했으면서도 주저하는 태도를 보인다. 공작부인이 남편에게 '질투' 운운하자 남편은 냉담한 태도로 화를 내고, '나'는 야회에서 누릴 기쁨을 '희생'하여 시골로 가겠다고 말한다. '희생'이라는 말이 남편을 더욱 자극하여 둘 사이는 냉랭해지고 '나'는 오기에 차서 반드시 연회에 참석하겠다는 말을 하고 만다. 그날 이후 둘의 관계는 완전히 달라지고 만다. 

실랑이와 말다툼은 피했지만 예전과 같은 애정어린 말들도 없어졌다. 그해 여름 온천지에서 '나'는 정렬적으로 구애하는 이탈리아 후작에게 잠깐이지만 욕정을 느껴 키스를 허용하고 만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나'는 그날 밤 기차를 타고 남편이 체류중인 하이델베르크로 향한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용서를 빌 생각이었지만 남편은 울먹이는 '나'를 보고 모든 것을 짐작했다는 듯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 시골로 돌아가자는 말에도 그는 한없이 냉정한 태도로 그곳에서 견뎌내지 못하리란 것을 잘 안다고 말한다.

시골로 돌아온 둘은 아무런 정렬도 없이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낸다. 비가 내리는 날 예전의 피아노곡을 연주하는 '나'에게 남편이 다가와 온화한 태도로 말을 건낸다. 감정에 북받힌 '나'는 과거에 남편이 보여주었던 모습을 책망한다. 남편은 별다른 동요 없이 과거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하며 예전과 같은 불안과 동요가 더는 없다는 사실에 감사하자고 말한다. 마침 유모가 아이를 데리고 오자 '나'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남편과 '나'의 로맨스는 끝이 났고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전혀 다른 행복한 삶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교계를 둘러싼 '나'와 남편의 갈등을 묘사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나'의 욕망은 물론 사교계에서 각광받으며 한껏 즐기는 것이다. '나'는 남편이라는 <권력자>에 의해 자신의 욕망이 억압되길 기대하면서도 정작 우회적인 억압에는 도전한다. '나'는 끝내 남편이 화를 내는 이유를 알지 못하고(혹은 외면하고) 둘 사이는 틀어지고 만다.

남편이 소극적이고 우회적인 이유는 명백하다. 그는 자신이 아내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 위축되어 있다. 남편은 소설의 마지막에서 이제는 아내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시기가 왔고, 예전 사교계에 빠져 있을 당시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이제 남녀의 행복이 아니라 가정의 행복이 찾아왔다는 것인데 이것이 진정 '행복'인지, 아니면 '주어지고 감내해야 할 상황'인지는 의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성(性)과 관련된 욕구'가 아닐까 싶다. 나이 많은 남편은 아내를 성적인 쾌락으로 인도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축된 상태이고, 젊은 아내는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지만 성적 방종에 자신을 내맡기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남편은 아내를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못하는 상태이고, 아내는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남편이 '남편으로서의 권력'을 발휘해 제어해주길 원한다. '남편으로서의 권력'이란 곧 남성성을 보인다는 것인데 그것이 곧 가부장적인 권력, 혹은 인습적인 권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남성 독자는 작가 톨스토이의 여성에 대한 불신감이 반영된 소설이라고 느낄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데 여성 독자가 이 글을 읽었을 때의 감상은 사뭇 다를 수 있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여성이 삶을 스스로 제어하고자 할 때에 남성이 성적으로 주도적일 것이라는 편견에 근거한 성적 권력, 혹은 가부장적 권력은 반발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화자인 '나'의 행동은 일견 이해될 성질의 것이다. 게다가 남편은 화자의 구체적인 행실을 근거로 하여 질투하는 것이 아니고 일종의 부정적인 예견을 근거로 질투를 하고 있다. 그것은 남편의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런 감상도 나오지 않을 이유는 없다.

 

o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른 봄날 '나'는 기차 여행 중 포즈드니셰프라는 사람을 만난다. 그는 주변사람들이 사랑과 결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더니 공격적인 태도로 질문을 던지다가 문득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와 단둘이 객실에 남게 되자 그는 자신이 아내를 살해한 사람이라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려움 없는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결혼 전 방탕한 생활을 일 삼았고 몸을 파는 여자들과 관계하기도 했다. 어느 날 매우 날씬한 몸매의 여인에게 반한 그는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허니문은 생각각과는 전혀 달랐고 그녀와 관계를 갖고 난 후 둘 사이는 점차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는 이유를 성적 접촉 자체에서 찾는다. 남자와 여자가 정신적인 동반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성관계에 있으며 서로에 대한 욕정으로 일시적인 합의에 이르러 쾌락을 얻을 수는 있지만, 괘락을 얻은 이후에는 곧바로 서로를 성적 대상으로 여겼다는 생각, 즉 동물적인 상태가 되었다는 생각에 불쾌감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악화되던 관계는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서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하지만 아내가 젖을 먹여선 안된다는 의사의 충고에 따라 수유를 중지하게 된다. 그는 아내가 '성스러운 어머니'이면서도 '육체적인 욕구를 가진 여성'이라는 기묘한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내와의 관계가 악화 일로를 치닫던 중 트루하쳅스키라는 바이올린 연주자와 교우하게 된다. 포즈드니셰프는 그와 아내가 모종의 불륜관계로 치달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에 시달리면서도 그와 아내의 연주회를 계획한다. 연주회 전 포즈드니셰프는 아내의 태도가 평상시와 달라진 점에 광포하게 화를 내지만 아내는 그의 자존심을 교묘하게 자극하여 연주회는 예정대로 열린다. 그들은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비롯해 몇 가지 소품을 연주한다.

연주회가 끝난 후 포즈드니셰프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그는 문득 아내와 트루하쳅스키의 태도가 불륜관계의 그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집으로 돌아온다. 새벽 1시에 집에 도착한 그는 아내와 트루하쳅스키가 집에 있다는 것을 알고 평온함마저 느낀다. 그가 느꼈던 두려움은 영원히 질투심에 사로잡혀 내면의 분노를 폭발시킬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단검을 집어든 그는 아내를 찌르고 트루하쳅스키는 도망친다. 자살할 생각이었던 그는 아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살의 욕구가 사그라든다. 아내는 죽어가며 포즈드니셰프를 저주할 뿐이었고 자신의 잘못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는다. 관 속에 누운 그녀를 보며 그녀를 죽였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마친 그는 몸을 떨며 흐느끼더니 용서하십시오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톨스토이 자신이 겪었던 가정 불화와 그로 인한 고통이 그대로 반영된 작품이다. 성욕에 관한 셰이커교도적인 관점은 차치하고, 그가 그려내는 포즈드니셰프의 질투, 그리고 그로 인한 번민과 고통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려내는 지옥과 필적할 만하다. 포즈드니셰프가 아내의 불륜 현장을 자신의 눈으로 본 후 느꼈던 안도감은 그런 점에서 이해가 간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아내의 불륜 사실보다 질투심에 사로 잡혀 영혼이 잠식당하는 상태였을 것이다. 분노의 외적 표출로 아내를 살해하고, 내적 표출로 자살을 하겠다는 포즈드니셰프의 결심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톨스토이의 위대한 점은 포즈드니셰프가 트루하쳅스키를 쫓아가 살해하지 않는다는 점과 자살을 포기한다는 점이다. 포즈드니셰프는 양말 바람으로 트루하쳅스키를 쫓아가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술회한다. 그는 자신이 괴물과 같은 모습으로 둘에게 비춰지는 것에 이미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외형적인 마무리에 신경을 쓰는 살인자의 모습을 스스로 연기한다. 이성복의 <그는 참 이상한 꿈을 가졌다>는 시에서 '제가 부는 풍선 속으로 들어가려는' 상태이다. 연기가 모두 끝난 후 관객이 없는 상태에서 자살을 한다는 것은 맥빠지는 일이다. 관객이 없는 상태에서는 연기도 헛헛할 뿐이다.

 

o 악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예브게니 이르테네프는 영지를 관리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할 일은 산재해 있었지만 이르테네프에게는 이 일들을 충분히 꾸려낼 육체적, 정신적인 힘이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괴로운 점은 성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 없었다는 데 있었다. 그는 곧 산림지기 다닐라에게 적당한 여성을 주선해주길 부탁한다. 다닐라는 남편이 도시에 나가 있는 스테파니다라는 여성을 소개해 주고 이르테네프는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한 번으로 끝내려 했던 처음의 마음과는 달리 관계는 꽤 오래 지속된다. 이르테네프는 마침내 관계를 청산하고 일년 뒤 리자라는 이름의 아가씨와 결혼한다.

평온한 시기가 얼마간 지속되는가 싶더니 스테파니다의 모습이 자꾸만 이르테네프의 눈에 들어온다. 이르테네프는 필사적으로 스테파니다의 기억을 떨쳐버리려 하지만 불쑥 불쑥 치솟는 욕망을 어떻게 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진다. 이르테네프는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욕정으로 죄를 짓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사람들은 이르테네프가 자살한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진정한 정신병자는 타인에게서 광기의 징후를 보면서, 자기 자신에게서는 똑같은 것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다.

 

한 번 빠져들었던 육체적 쾌락이 이르테네프를 자살에 이르게 만든다. 이르테네프는 리자를 정신적으로 사랑했으면서도 또 다른 사랑, 즉 육체적인 사랑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욕구야말로 인간을 고뇌하게 만든다.

 

o 신부 세르게이

 

1940년, 중기병대의 화실 기병대장으로서 장차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시종무관이 될 것으로 기대되던 화려한 경력의 미남 공작이 결혼을 한 달 앞두고, 황녀를 보필하며 총애를 받던 아름다운 약혼녀와 파혼하고 퇴역을 신청한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모두 누이에게 넘겨주고 수도원으로 들어가버린다.

그의 이름은 스테판 카사츠키로 어린 시절부터 모든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왔다. 군인이 된 후에도 그의 능력은 두드러져 황제의 신임을 받을 정도였다. 그는 더욱 출세하기 위해 사교계에 드나들었고 뛰어난 집안의 딸과 결혼해 신분을 상승시키기로 마음 먹는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백작의 영양 코로트코바와 약혼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혼인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 그녀가 사실은 자신이 황제의 정부였음을 고백한다. 스테판은 그 고백에 충격을 받아 모든 것을 버리고 수도원으로 간다.

세르게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스테판은 수도원에서 여러 해를 지내면서 세속의 욕망에서 멀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고뇌는 깊어져갔고 자신이 교만에 빠졌음을 깨닫고 탐비노 수도원의 암자에 은거한다.

어느 날 마코프키나라는 이혼녀가 세르게이를 유혹하기 위해 그의 수도원을 찾는다. 세르게이는 마태복음에서 신체의 일부를 훼손시키더라도 욕망에 굴복하지 않는 사례를 떠올리며 자신의 손가락을 도끼로 자른다. 마코프키나는 세르게이가 보여준 금욕적인 모습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껴 수녀가 된다.

세르게이의 명성은 점차 높아져갔고 그가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세르게이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가자 그는 자신이 대중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명성에 취해 과거의 신실한 마음이 점차 고갈되어 감을 느낀다. 어느 날 상인이 자신의 딸을 치료해달라며 세르게이에게 부탁한다. 찾아온 상인의 딸은 육감적이었고 세르게이는 그녀의 유혹에 굴복하고 만다.

자살 하려는 마음을 먹은 세르게이에게 문득 어렸을 적에 알고 지내던 파셴카를 떠오른다. 파셴카가 아이들에게 놀림받던 기억을 떠올리던 세르게이는 그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다시 만난 파셴카는 삶이 주는 온갖 번잡함에 눌려 지내고 있었지만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과 신에 대한 두려움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세르게이는 자신은 지금껏 하나님을 핑계삼아 인간을 위해 살았지만, 파셴카는 사람들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하느님을 위해 산다고 느낀다. 다시 길을 떠난 세르게이는 부랑아로 오인되어 시베리아로 쫓겨나 그곳에서 노동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환자를 돌보며 지낸다.

 

출세를 위해 접근했다가 진정한 사랑을 느꼈으나 정작 상대편은 자신의 생각과 달리 황제의 정부였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세르게이는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면서도 내심 세속적인 부와 권력, 명예욕을 버림으로서 그런 것들에 집착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세르게이는 육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육욕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했다고 느꼈을 때에는 명예욕에 사로잡힌다. 하나의 욕망에 굴복하자 극복했다고 믿었던 육욕에도 굴복하고 만다. 세르게이는 파셴카로부터 새로운 구원의 희망을 보게 되지만, 파셴카의 어떤 면이 그러했는지는 애매하게 처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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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인연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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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초등학교 6학년인 고이치와 남동생 다이스케, 그리고 여동생 시즈나가 부모님 몰래 유성군을 보러 한밤중에 집을 나선다. 하지만 그날은 는개가 내리는 날이라서 아이들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무참하게 살해된 부모님의 모습을 목격하고 만다.

가시와바라 형사와 하기무라 형사는 범인이 남기고 간 것으로 보이는 비닐 우산과 다이스케가 목격한 범인의 인상착의를 단서로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결국 사건은 미결이 되고 만다. 아이들은 보호시설로 들어가게 된다.

 

시설을 나온 고이치와 다이스케, 그리고 시즈나는 사기를 당한 후 자신들이 남을 속이는 쪽에 서기로 결심한다. 고이치가 전체적인 계획을 짜고 다이스케가 바람을 잡은 후 시즈나가 남자를 홀리는 식으로 이들은 사기행각을 벌여 나간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도가미 유키나리로 <도가미 정>이라는 유명한 양식당 소유주의 아들이었다. 시즈나가 유키나리에게 접근하여 꼬인 후 다이스케가 가짜 보석을 유키나리에게 판다, 그리고 그 보석을 유키나리가 시즈나에게 선물하도록 한다, 는 계획이었다. 선물 받는 즉시 증거는 인멸될 것이었다.

유키나리는 시즈나의 모습에 호감을 느껴 자신이 새로 개업할 식당에 초대해 그곳의 메인 메뉴인 '하야시라이스'를 맛보여준다. 시즈나는 '하야시라이스'를 먹다가 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만들어 준 맛과 너무도 똑같다는 점에 경악한다. 그리고 다이스케가 도가미 유키나리의 아버지 도가미 마사유키를 목격하고 14년 전에 본 범인이 그라는 것을 확인한다.

고이치는 <도가미 정>에 대해 면밀히 조사한 결과 '하야시라이스'의 레시피가 그곳으로 흘러들어갔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고이치들의 아버지 아리아케와 도가미 마사유키의 연관점도 밝혀낸다. 아리아케는 도박에 미쳐 사설 경마를 주선하는 다방에 자주 출입했고, 마사유키는 그곳에 음식을 배달했었다. 아리아케가 마사유키의 '하야시라이스'에 대해 혹평을 퍼부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 언쟁이 있었던 정황도 드러난다. 아리아케가 살해된 직후 마사유키가 운영하는 <도가미 정>의 '하야시라이스'가 갑자기 유명세를 타더니 지금의 거대 체인점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여러가지 정황과 목격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결정적인 증거가 없이는 도가미 마사유키를 조사해주지 않을 터였다.

고이치들은 증거를 조작하기로 한다. 먼저 차량을 훔친 후 그 안에 DVD와 아버지의 유품을 남겨둔다. 그리고 배를 훔쳐타고 먼 바다로 나가 자살한 정황을 만든다. 경찰은 도난차량을 조사하여 DVD를 단서로 수사를 시작한다. DVD 대여점은 과거 <도가미 정> 자리에 있었고, 남겨진 유류품에서 <아리아케>의 이름이 세겨진 시계가 나온다. 경찰은 미제 사건의 피해자 유류품이 나오자 활발히 수사를 재개한다. 고이치들은 시즈나를 시켜 아버지의 레시피 노트를 유키나리의 집에 두고 오게 한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면 가택 수색 같은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 시간을 보내던 이들에게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진다. 유키나리가 시즈나를 만나 레시피 노트를 두고 간 이유를 추궁한 것이다. 그날 유키나리의 어머니가 시즈나에게 선물한 향수가 화근이었다. 향수의 향기가 노트에 남았던 것이다. 시즈나는 도가미 마사유키의 범행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유키나리는 심각한 고뇌에 빠진다. 유키나리는 고이치를 만나 아버지가 범인이라면 사실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결심을 밝힌다.

고이치와 다이스케가 형사로 가장하여 마사유키를 찾아간다. 현장에 남겨진 우산에서 DNA를 추출하여 마사유키가 범인임을 밝혀냈다는 협박을 해보아도 마사유키는 어쩐지 태연했다. 그는 고이치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이야기한다. 마사유키는 이들의 조사 내용과 같이 아리아케로부터 음식에 대한 비난을 듣는다. 그리고 직접 음식을 먹어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아리아케는 도박 빚에 쪼들리던 차에 음식의 레시피를 마사유키에게 50만엔에 팔겠다고 제안한다. 사건이 일어난 날 밤 마사유키는 거래를 위해 음식점에 들렀다가 누군가 먼저 왔다간 사실을 알게 된다. 경황 중에 레시피 복사본만을 들고 도망을 치다가 우산을 바꿔가지고 온 사실을 알아챈다. 마사유키는 자신이 범인으로 몰릴 것에 대비해 14년간 우산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는 가시와바라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우산을 건내준다.

문득 우산의 손잡이 부분을 보던 고이치는 자신이 지금까지 큰 착각을 했음을 알게 된다. 우산의 손잡이는 바닥에 여러차례 긁힌 흔적이 있었다. 고이치는 과거 자신의 집을 수사하던 가시와바라가 골프에 미쳐 버릇처럼 우산대를 땅바닥에 휘두르던 모습을 기억해 낸다. 우산에 지문이 없었던 것은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가시와바라 형사가 자신의 지문을 닦아냈기 때문이었다.

고이치의 추궁을 듣던 가시와바라 형사는 육교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하기무라 형사는 고이치에게 전화를 걸어 가시와바라 형사가 차량 절취와 살인을 고백하는 자술서를 남겼다고 전한다.

고이치와 다이스케는 자신들의 사기행각을 뉘우치고 깨끗히 살아가기 위해 자수하기로 결심한다. 고이치는 시즈나가 함께 엮이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유키나리에게 무릎을 꿇고 시즈나를 설득해주길 간청한다. 유키나리는 그들에게서 가짜 반지를 사서 피해자에게 사기친 금액을 갚도록 해주고, 반지를 시즈나에게 선물하면서 유성으로 엮인 세 명의 남매처럼 자신도 반지로 인연을 맺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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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도 제작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바 있는 <유성의 인연>은 미스터리물 이면서도 드라마적인 요소를 적절히 가미하여 독자에게 적극 어필하고 있다. 소설의 초입부터 정교하게 숨겨진 복선들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저마다 의미를 찾아가기에 독자는 수수께끼 풀이 측면에서 만족스러움을 느낀다. 또한, 세 명의 아이들의 인생유전이 적절한 드라마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전개되므로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 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여러 사람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원작을 먼저 읽고 싶었기에 아껴두었다고나 할까, 책꽂이에 꽂아두고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82724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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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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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인 '나'는 한 작가의 문학과 삶을 집중 조명해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는 <작가탐구>의 편집자에게 원고 빚을 진 적이 있는데, 편집자가 은근히 당시의 빚을 상기시킨 탓에 소설가 박부길 씨에 관한 원고를 떠맡게 된다. 작업을 위해 박부길 씨를 찾아간 '나'는 그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기 꺼려하는 탓에 발표된 소설과 인터뷰 기사에 의존하여 행적을 쫓아간다. 그리고 미발표 소설을 통해 그의 삶을 재구성한다. 그의 소설을 통해 과거 행적을 추적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그것이 소설이라는 데 있었다. 소설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가려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나'는 선택과 여과 역시 그 주체는 작가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어렸을 적 큰아버지 집에 살던 '나'는 뒤안의 감나무에 가서는 안된다는 엄명을 받는다. 하지만 금기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으로 '나'는 뒤안으로 몰래 숨어들곤 했다. 그곳에는 골방이 하나 있었고, 골방에는 수염이 텁수룩하게 자란 남자가 묶여 있었다. 그는 정신이 이상한 듯 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그가 수재 소리를 들으며 고등 고시에 합격할 것으로 믿어졌던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므로 금기는 감나무가 아니라 감나무가 있는 뒤안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그 남자의 부탁으로 손톱깎이를 가져다 주는데 남자는 손톱깎이를 이용해 자살하고 만다.

얼마 후 어머니가 종적을 감추고 '나'는 큰아버지 집에서 살게 된다. 큰아버지는 끝내 뒤안에 갖혀있던 남자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고, 어머니의 행적에 대해서도 입을 다문다. '나'는 두 번 다시 고향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아버지의 무덤에 불을 지르고 가출한다.

가출 후 중국집 배달부를 전전하다가 어머니를 만난다. 어머니는 표면상 아버지의 정신이 그리된 데 대한 시댁의 질책에 못 이겨 쫓겨난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어머니의 장래에 대한 시댁의 배려가 있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나'를 서울의 중학에 입학시키고 자취를 시킨다.

자취방은 어두컴컴하고 눅눅했지만 '나'는 그곳의 어둠에 차츰 순응된다. 바깥 세상은 '다른 이들의 세상'으로 생각하고 사람들 속에 처하기를 꺼려하였으며 헌책방에서 책들을 빌어다 읽을 뿐 다른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였고 자신과 동류의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통금을 피해 뛰어 들어간 교회에서 종단을 만난다. '나'는 종단이 원하는 남성이 되기 위해서 신학대학교를 지원하고,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하지만 '나' 자신의 투영으로서 그녀를 바라보았던 탓에 사랑의 형태는 집착적이고 편집증적인 그것으로 변질된다. 결국 그녀는 '나'를 참지 못하고 떠나고, 나는 신학교를 자퇴한 후 과거의 어두컴컴한 자취방으로 돌아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소설의 구성이 독특하다. 소설가가 또 다른 소설가의 문학과 삶을 추적하는 형태를 취한 이 작품은 작가 이승우가 3년에 걸쳐 집필하였고, 자전적인 소설임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액자 속 이야기는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다른 점이라면 어머니를 취하는 대신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종단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박부길의 아버지는 자신이 건내준 손톱깎이로 자살을 한다. 박부길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는 곧 재가하므로 박부길은 모성의 심각한 결핍을 경험한다. 이러한 결핍 때문에 박부길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종단에게 쉽게 끌리게 된다. 박부길은 그 사랑을 '숭배'라고 지칭하지만 집착적이고 편집증적인 그 형태는 사실 '자기만을 바라보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그런 사랑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 이외에는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소설은 오이디푸스 이야기의 변형이다.

 

천안에서 세제 개편과 관련한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집어든 책이다. 책은 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작고, 다른 책 밑에 집어 넣으면 표가 안날 크기이다. 학교 다닐 때 내내 수업 중 다른 책을 읽었다. 그 책이 읽고 싶었다기 보다는, 수업과 무관한 짓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 다닐때에는 아예 수업을 빼먹고 읽었다. 직장을 다니는 지금은 교육 시간에 몰래 책을 읽는다. 교육 내용을 숙지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어짜피 나누어준 자료를 다시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을 듣는 것이 차라리 낫다. 그런데도 교육 시간에 책을 읽는다. 어쩔 수 없이 굳어진 버릇이다.

며칠 간 <김남주 평전>을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읽게 된 <생의 이면>은 그리 와닿지 않는다. '정치는 똥이고 똥에 꼬이는 쇠파리가 되고 싶지 않다'며 시대에 침묵한 것을 변명하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김남주는 시 <학살>에서 말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외적의 앞잡이이고 수천 동포의

학살자일 때 양심있는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은 전선이다 무덤이다 감옥이다

도대체 형제의 살해 앞에서 저항하지 않고

누가 자유일 수 있단 말인가

 

이승우는 같은 시기에 똥에 꼬이는 쇠파리 운운을 하며 떠나간 여인에 목이 메어 정신 분석에 골몰하고 있다. <생의 이면>은 결코 가벼운 소설은 아니며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도 엿보인다. 작가의 역량 또한 가볍지 않다. 그러나 전적으로 소설에 공감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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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 해의 미스터리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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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플 양은 조카 레이먼드의 권유에 따라 카리브해의 섬 생 토노레에 휴양을 간다. 그곳에서 펠그레이브 소령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여러가지를 떠벌이는데 급기야 살인자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는 자신이 살인자를 한 명 알고 있다면서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어 보여주려고 까지 한다. 그런데 마침 그 때 펠그레이브 소령이 누군가를 알아보는 눈치더니 급히 다른 화제를 꺼낸다. 다음 날 펠그레이브 소령이 사망한 채 발견되고 의사는 그의 방에서 혈압약이 발견된 점과 주변 사람들이 펠그레이브 소령은 고혈압이었다고 진술하자 단순 사망으로 결론내린다.

하지만 마플 양은 펠그레이브 소령이 죽기 전날 사진 속의 살인자를 섬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급히 화제를 돌렸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펠그레이브 소령이 고혈압이었다는 얘기를 그에게서 직접 들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점도 의심스러웠다. 청소하던 하녀가 펠그레이브 소령의 약 중 고혈압약은 없었다고 진술하자 마플 양은 살인으로 결론짓는다. 며칠 뒤 하녀가 살해되는 사건까지 일어나자 이제 살인범이 섬 안에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거듭되는 살인에 호텔의 여주인 몰리가 정신적으로 불안해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끔 기억을 잃는 일이 있다고 고백한다. 몰리의 시체가 시냇가에서 발견되자 남편 팀 켄들은 절규한다. 하지만 시체는 몰리가 아니라 머리 색깔이 같은 러키 부인이었다. 펠그레이브 소령이 알아본 살인범은 누구였을까?

몰리는 결혼 전 한 남자에게 빠져 정신을 못 차렸고 가족과도 척을 지게 되었다. 하지만 팀 켄들을 만나면서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마플 양은 결혼 전 만났던 남자와 팀 켄들이 동일인물임을 알아낸다.  팀 켄들은 몰리의 가족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듣고 가족들과 대면하여 인사하는 것을 피한 후 새로 만난 남자인 척 하여 몰리와 함께 가족들을 속여 넘긴 것이다.

팀 켄들은 아내를 습관적으로 살해한 자였다. 그는 아내를 살해하기 전 마약 등을 이용하여 정신을 불안정한 상태로 만든 후 수면제를 먹인다. 부인은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서 자신이 수면제를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죽음에 이르지는 못할 양의 수면제를 팀 켄들이 먹인 것이다. 그는 의사를 찾아가 울면서 아내의 소생을 애원하는 등 갖은 연기를 벌인 후 두번째 시도에서 아내가 자살한 것처럼 꾸며 살해한다. 의사와 경찰은 한 번 자살 시도를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결국 또다시 자살을 결행한 것으로 보고 팀 켄들에게는 아무런 혐의도 두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살인 행각이 거듭 성공하자 습관적으로 아내를 살해하게 된 것이다.

 

1964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작가의 70번째 추리소설이고 장편으로는 55번째 작품이다. 마플 양은 세인트 메어리 미드라는 시골에 사는 노처녀 할머니로 살인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깊은 통찰력을 발휘해 자기 마을에 사는 누군가와 비교하곤 한다. 포와로가 논리적인 추리를 기본으로 하는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이라면 마플 양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난 탐정이다.

 

제인 마플이 등장하는 장편은 12편으로 다음과 같다.

 

1. 목사관 살인사건(The Murder at the Vicarage, 1930)

2. 서재의 시체(The Body in the Library, 1942)

3. 움직이는 손가락(The Moving Finger, 1943)

4. 예고살인(A Murder is Announced, 1950)

5. 마술살인(They Do It with Mirrors, 1952)

6. 주머니 속의 죽음(A Pocket Full of Rye, 1953)

7. 패딩턴발 4시 50분(4:50 from Paddington, 1957)

8. 깨어진 거울(The Mirror Crack'd from side to side, 1962)

9. 카리브 해의 비밀(A Caribbean Mystery, 1964)

10. 버트램 호텔에서(At Bettram's Hotel, 1965)

11. 복수의 여신(Nemesis, 1971)

12. 잠자는 살인(Sleeping Murder,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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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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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이오네스코는 현대 부조리극의 선구자로 1909년 루마니아의 슬라티나에서 태어나 1911년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한 후 정착하여 1994년 삶을 마칠 때까지 살았다.

옮긴이 오세곤에 따르면 이오네스코는 거의 40대에 이르러서야 극작가로 나서는데 그 동기가 무척 엉뚱했다고 한다. 영어 공부를 위해 영어책을 읽다 거기서 지고의 진리들을 발견하였고, 감격한 나머지 그것을 널리 알리고자 메모해 놓고 보니 전혀 생명이 없는 죽은 말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에 초기 삼부작인 <대머리 여가수(1950년 초연)>, <수업(1951년 초연)>, <의자(1952년 초연)>을 차례로 발표하는데, 여기서 다룬 것은 인간 언어의 부조리함이었다. 즉 인간은 자신들의 언어를 지극히 합리적이라 믿으며 문화의 축적과 의사소통의 도구로 삼지만, 실제로 그것은 대단히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해서 인간의 언어생활은 원초적으로 소통이 불가능한 오해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론에서 다룬 주제와 일면 맥을 같이하고 있다. 실제 희곡을 읽다보면 일면 알 수 없는 말들의 나열에 불과해 보일 때도 있다.

 

<대머리 여가수>는 시계 종소리와 시간이 전혀 맞지 않는 것을 시작으로 부부 사이의 대화가 얼빠진 자들의 그것처럼 빗나가기 일쑤이고 소방대장이 풀어놓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중언부언 하거나 전혀 재미있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말장난이 이어지더니 문득 막이 내리는 식이다. 그들은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말을 이어감으로서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을 보여준다.

<수업>에서는 박사가 되기 위해 교수를 찾아온 학생 사이에 수업이 이루어지는데 이들의 수업은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양상을 띤다. 초보적인 덧셈과 뺄셈에서 끙끙대다가 철학적인 의미로 발전하려 하는가 하면 언어학에서는 같은 말을 나열하면서 다른 언어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하녀는 언어학이야 말로 재앙의 지름길이라며 교수에게 충고하지만 교수는 성적 정렬을 암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수업을 계속 진행한다. 학생은 언어학 수업이 계속될수록 고통을 호소하고 교수는 알 수 없는 정렬에 휩싸인 끝에 학생을 식칼로 살해하고 만다.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 결국 살인으로 귀결되고 만다.

<의자> 역시 난해하기 짝이 없다. 90세가 넘은 노인과 노파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손님들을 계속 맞이한다. 노인은 자신의 사상을 대변해 줄 변사를 기다린다. 마침내 황제마저 노인을 방문하자 노인은 감격한다. 하지만 노인과 노파는 별안간 자살하고 그토록 기다리던 변사는 벙어리처럼 웅얼대다가 칠판에 백묵으로 글씨를 쓰는데 그나마도 '안녕'이라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책은 각주로 넘쳐나고, 그 각주의 대부분은 원작을 어떻게 한국어로 바꿀 것인지 고민한 번역자 오세곤의 흔적이다. 오세곤은 최대한 충실한 번역을 위해 영문 번역판과도 비교하며 적절한 한국어 번역에 골몰하나, 실제 이 연극이 한국에서 상영될 때 프랑스어 원작의 미묘함을 관객에게 적절히 전달할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이다. 언어의 부조리함을 전달하기 위해 상당부분 의역이 불가할 것이다.

현실의 부조리를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 현실의 이면을 좀 더 잘 인식할 수 있도록하는 것이 부조리극의 목적이라고 했을 때 작가의 역량을 판가름짓는 것은 독자, 혹은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정도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조리를 보여주고 관객의 반응은 각자에게 맡기는 것은 일류 작가가 아니다. 부조리극이지만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부조리극 작가가 골몰해야만 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조리극 작가들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결국 독자, 혹은 관객은 참을 수 없는 답답함과 난해함의 바다에 빠져 산소가 부족한 듯한 상황에 내팽겨쳐진 후 스스로의 이해력 부족을 탄하기 십상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81909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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