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 동서 미스터리 북스 18
딕 프랜시스 지음, 김병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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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에서 종마목장을 경영하는 다니엘 로크는 어느 날 영국 장애물 경주 이사회의 회원인 옥토버경의 방문을 받는다. 옥토버경은 영국에서 일어난 장애물 경주 부정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꺼낸다. 예상치 못했던 말들이 잇달아 흥분상태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말들의 아드레날린 수치만 보자면 약물을 사용한 것이 틀림없었지만 검사 결과는 언제나 깨끗하게 나왔다는 것이다. 옥토버경은 로크에게 영국으로 건너가 잠입 조사를 해준다면 2만파운드의 거금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한다. 로크는 어린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목장을 경영해왔지만 때때로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으므로 제안을 수락한다.

로크는 옥토버경의 목장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마부들과 친분을 쌓는 한편 경마부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불량한 태도를 일관한다. 몇 차례 자잘한 경마부정 제안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것들은 흥분제와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옥토버경의 딸 중 한 명이 로크에게 접근했다가 퇴짜를 맞자 그에 대한 앙갚음으로 옥토버경에게 로크가 자신을 추행했다고 거짓을 말한다. 로크는 결백을 주장하나 옥토버경으로서는 딸의 말을 믿지 않았을 경우의 결과를 두려워한다.

로크는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헨버의 목장으로 들어간다. 헨버의 목장은 다른 곳에서는 취직할 수 없는 수상쩍은 인물들이 선택하는 형편없는 곳이었다. 어느 날 미키라는 말이 3일간 사라졌다가 돌아온다. 미키의 발굽은 온통 붕대 투성이었다. 말이 어떤 짓을 당하고 왔는지는 몰라도 미키는 발광을 거듭하다가 사살되고 만다.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모든 의심스러운 말들은 헨버의 목장을 거쳐갔었다. 로크는 옥토버경의 맏딸 엘리나와 이야기하던 도중 개피리에 관해 알게된다. 헨버와 애덤스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말에게 수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개피리를 불면서 말을 불로 위협했고 말들은 개피리 소리만 들어도 생존을 위해 흥분하게 되는 것이었다.

 

딕 프랜시스의  집안은 수렵용 말을 사육해서 파는 것이 생업이었고 작가 자신도 두 차례나 장애물 경마 부분 챔피언을 지낸 경력이 있다. 그는 이러한 경력을 살려 <경마 미스터리>시리즈를 발표하여 명성을 얻었다.

딕 프랜시스의 <흥분>은 미스터리물로서 수수께끼 풀이 부분도 흥미롭지만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완성도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부유한 목장 경영자인 로크는 영국 경마계에 잠입하여 경마부정을 저지르는 자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의 외모를 비천하고 불량하게 꾸민다. 외모에 걸맞는 대접을 받으며 그는 자신의 자존감이 무너지고 의지가 약해지는 것을 거듭 경험하게 된다. 이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욕구가 임무를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이 와중에 엘리나와의 관계에서 실수를 하게 되고 결국 자신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간다.

딕 프랜시스를 알기 전까지는 로스 맥도널드가 하드보일드의 계보를 훌륭히 이은 적자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러한 견해에 약간 수정을 가해야겠다. 딕 프랜시스는 독창적인 분야에서 개성 넘치는 인물을 창조해 냈고, 인간의 자존감이라는 부분에 주목하여 미스터리에 품격을 더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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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동물원 범우희곡선 8
테네시 윌리엄스 지음, 신정옥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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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는 어릴 적 병을 앓은 후 한쪽 다리가 다른쪽 다리보다 약간 짧은 장애를 갖게 되었다. 그녀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되어 오래된 음악을 축음기로 듣고 유리동물들을 수집하는 것으로 소일하며 외부 세계와는 고립되어 있다.

로라의 어머니 아만다는 한때 화려했던 남부 시절을 추억하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한다. 그런 그녀의 바램이 딸 로라를 번듯한 남성과 결혼시키려는 욕구로 나타난다.

한편 로라의 동생 톰은 시를 쓰고자 하나 현실은 어머니 아만다와 누이 로라를 부양하기 위해 구두 만드는 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다.

어느 날 아만다가 로라의 짝이 될 만한 번듯한 사내를 집으로 데려오라는 말에 톰은 같은 창고에서 근무하는 짐을 데려온다. 짐은 로라가 고등학교 시절 동경했던 사내로 당시에는 모든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졸업 후에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창고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라디오공학과 화술을 배우며 출세의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집으로 찾아온 짐을 로라는 한 눈에 알아본다. 짐은 고등학교 시절 로라를 푸른 장미라 불렀었다. 둘은 과거를 회상하며 대화를 나눈다. 짐은 로라의 장애가 별 것 아니며 현실로 나아가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둘은 함께 춤까지 추게 된다. 그런데 짐의 실수로 로라가 가장 아끼는 일각수 유리인형이 깨지고 만다. 로라는 일각수의 뿔이 부러져 이제는 보통의 말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 때 짐은 문득 현실로 돌아왔다는 듯 자신은 결혼할 여자가 있다고 고백한 후 집을 떠난다.

톰 역시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렸듯이 어머니와 누이를 버리고 집을 떠나가버린다. 아만다가 로라의 짝을 지워주기 위해 켰던 촛불을 로라가 불어서 끈다.

 

<유리동물원>은 1944년 12월 26일 밤, 시카고의 시빅 극장에서 첫 막이 올랐고 그때까지 별로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던 테네시 윌리엄스가 유명해지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작품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작품의 해설자이자 등장인물인 톰이 바로 테네시 윌리엄스의 분신으로 볼 수 있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1932년 미주리 대학을 중퇴한 후 약 2년 동안 <유리동물원>에 묘사된 것과 같은 생활을 했고, 1937년에는 가장 사랑했던 누이 로즈가 뇌엽 절개 수술로 말미암아 영원히 정상적인 의식을 상실하게 된 슬픈 체험을 하게 된다.

로라는 짐에게서 '푸른 장미'로 불리우고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유리동물은 일각수이다. 푸른장미와 일각수는 모두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녀는 오래된 음반과 유리동물원이라는 순수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사실 그 세계는 '유리'의 속성상 깨어지기 쉬운 세계이다. 실제로 짐의 실수로 일각수의 뿔이 잘려나가 보통의 말이 되고 만다. 로라는 동경했던 짐과 맺어지는 환상을 잠시 품었기에 뿔이 잘려나간 것을 슬퍼하지 않는다. 뿔이 잘려나가 보통의 말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다른 말과 어울릴 수 있다고 좋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곧 짐이 자신에게는 약혼녀가 있다고 고백함으로서 로라의 순수한 세계만 파괴되었을 뿐 그녀가 보통의 사람들과 같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 증명되고 만다. 결국 그녀가 연극의 마지막에서 촛불을 끄는 행위는 그녀가 스스로 유폐를 자처한 세계에서 잠시나마 보통사람들의 세상을 엿본 죄로 죽음에 이르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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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세계문학전집 13
에밀 졸라 지음, 최애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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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 겨울, 아홉 살 난 소녀가 성녀들이 세겨진 보몽 성당 문 앞에서 떨고 있었다. 사제복 제조 장인인 위베르가 아이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 집으로 데려간다. 소녀는 책 한권을 소중하게 안고 있었는데 그것은 빈민 구제 사무국의 아동기록부로, 소녀의 이름이 마리 앙젤리크라는 것과 부모로부터 버림 받아 1851년에 수용되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위베르는 과거 장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위베르틴과 결혼했는데 장모는 죽어가면서도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저주하며 죽어갔다. 위베르틴은 아이를 낳을 수 없었고 그것은 어머니가 내린 저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위베르 부부는 앙젤리크를 거두어 기르기로 한 후 사제복에 수 놓는 일을 가르친다. 그들은 앙젤리크를 정식 딸로 맞아들이기 위해 조사를 하던 중 앙젤리크의 어머니가 행실이 나쁜 여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위베르 부부는 앙젤리크에게 그녀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가 없었고 이미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들은 앙젤리크가 나쁜 영향을 받아 비뚤어질 것을 우려하여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미사를 보기 위해서만 외출을 시킨다. 앙젤리크는 자수 일을 배우면서 <황금빛 전설>이라는 성녀들의 수난사를 읽으며 자신을 성녀들과 동일시하는 황홀경에 빠진다. 특히 아그네스의 이야기가 그녀를 매혹시킨다.

그러던 어느 날 앙젤리크는 성당 그림 수선공인 펠리시엥이라는 사내를 알게 된다. 앙젤리크는 <황금빛 전설>을 읽으며 성녀들의 수난사에 매혹되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동화 속 왕자님을 만나 엄청난 부귀를 누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갖고 있었다. 그녀는 펠리시엥이 사실은 고귀한 신분일 것이라 생각하며 그에게 매혹된다. 순결한 삶과 부귀를 누리는 삶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는 펠리시엥에게 자신의 마음과는 다른 냉담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둘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며 미래를 약속한다.

7월 28일 축일 행진이 있던 날, 앙젤리크는 주교와 나란히 서 있는 펠리시엥을 보고 한편으로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믿음이 실현되었음을 알게 된다. 펠리시엥은 주교의 아들로 유서 깊은 오트쾨르가의 상속인이었던 것이다. 펠리시엥의 어머니는 펠리시엥을 낳다가 사망했고 주교는 그런 아들을 원망하며 버려둔 채 성직자의 길로 들어섰다가 20년만에 아들을 자신의 곁으로 불러온 것이었다.

펠리시엥이 누구인지 알게 된 위베르틴은 앙젤리크가 불행해질 것을 염려한다.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전철을 앙젤리크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앙젤리크의 열정과 자만심이 그녀를 불행하게 할 것이라 생각했고 복종을 통해서만 그녀가 행복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앙젤리크는 주교가 자신을 보고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둘의 결혼을 허락해 줄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을 품고 주교를 찾아가 간청한다. 주교는 둘 사이를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는 한 마디만을 남긴다.

위베르틴은 앙젤리크가 불행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앙젤리크와 펠리시엥 모두에게 거짓말을 해서 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든다. 앙젤리크는 펠리시엥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병이 나고, 그런 그녀를 펠리시엥이 밤중에 찾아온다. 아버지의 허락을 구할 수 없다면 도망치자는 펠리시엥의 말에 앙젤리크는 동요한다. 하지만 자신이 복종과 순결한 삶을 살 것이라며 주교의 허락 없이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펠리시엥은 주교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앙젤리크는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종부성사를 청하기에 이른다. 종부성사는 뜻밖에도 신부가 아닌 주교가 집전한다. 주교는 자신이 앙젤리크에게서 자신의 아내를 떠올렸음을 깨닫는다. 주교는 오트쾨르가의 선조들이 치유의 기적을 일으켰던 그 입맞춤으로 앙젤리크를 기사회생시킨 후 아들과의 결혼을 허락한다.

마침내 펠리시엥과 앙젤리크가 결혼하고 행복의 절정을 맛보며 성당 문을 나서기 직전, 앙젤리크는 펠리시엥과 입맞춤 한 후 사망한다.

 

루공-마카르가 총서의 열여섯번째 작품인 <꿈>은 을유문화사에서 2008년에 국내 초역된 소설이다. 

앙젤리크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도입부에서 읽게 된 후 <나나>나 <목로주점>을 떠올리며 그녀가 열정과 자만심에 굴복하여 비참한 처지로 빠지는 결말을 예측했었으나, 작품은 한층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앙젤리크는 난잡한 생활을 이어갔던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았고 위베르틴은 그런 점을 염려하여 그녀를 철저히 고립된 환경 속에서 양육한다. 앙젤리크가 보고 듣는 것은 대부분 성당의 것들이었고 그녀가 읽었던 책도 <황금빛 전설> 한 권에 불과했다.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단선적 투쟁 과정을 예상했으나 의외의 요소가 개입한다. 바로 환상과 꿈이다.

유전적 요인에 의한 환상은 그녀가 왕자를 만나 부귀를 누리리라는 세속적인 꿈이다. 한편 앙젤리크는 아그네스와 같은 성녀의 삶을 동경하기도 한다. 그녀는 주교를 찾아가 자신의 세속적 꿈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나쁜지 묻는다. 주교는 대답 대신 그녀에게서 자신이 20년간 고통받고 억눌렀던 성적 환상을 본다.

앙젤리크는 성녀의 환상에 경도되어 펠리시엥을 거부하고 그 결과 세속적 환상을 쟁취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성당 문을 나서기 전 죽고 만다. 소설은 환상과 현실이 기묘하게 교차하며 기존의 에밀 졸라의 소설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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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사이코 - 상 밀리언셀러 클럽 15
브렛 이스턴 엘리스 지음, 이옥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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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프라이스는 월스트리트에 자리 잡고 있는 인수 합병 회사 피어스 앤 피어스 CEO이다. 그는 브랜드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하고 헬스 클럽 엑스클루시브에서 몸을 단련하며 최고급 레스토랑에 예약하길 즐긴다. 그는 에벌린이라는 아름다운 여성과 사귀고 있으나 여자를 돈으로 사기도 하고 친구의 애인과 바람도 피운다. 포르노와 고어물 비디오 테이프를 탐닉하고 자극적인 <패티 윈터스 쇼>를 챙겨 보는 그는 전형적인 여피족이다.

노숙자에게 적대적이고 공공연히 인종주의적 편견을 드러내던 그가 할시온, 자낙스, 코카인 등에 취해 분열 증세를 나타내고 자신 이외 모든 존재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그는 손쉬운 상대인 개, 노숙자, 어린아이를 살해한 후 돈으로 산 여자들을 난자하더니 급기야 자신이 따내지 못한 큰 건을 다루는 폴 오언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폴 오언의 아파트는 이제 여자들을 살해하기 위한 장소로 쓰인다.

광기에 사로잡힌 패트릭의 살인 행각은 대로변에서도 이어지지만 우려하던 경찰의 추적은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 동료 여피족들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나누던 그는 술집 문을 나서다가 '여기는 출구가 아닙니다'라는 글자를 발견한다.

 

<아메리칸 사이코>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미국을 휩쓸던 시기의 이야기이다. 레이건은 복지 분야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노동자계급을 탄압했으며 기업의 이윤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각종 법안을 통과시켰다. 79년에 집권한 대처가 벌였던 추악한 짓을 레이건은 한 점 부끄럼 없이 미국에서 감행한 것이다. 자본은 눈 없는 괴물처럼 모든 것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 패트릭 프라이스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자로서 적대적 M&A를 통해 재산을 증식시키는 인물이다. 패트릭이 타인을 판단하는 척도는 그 사람이 어떤 브랜드의 옷과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있는가이다. 아르마니, 보테가 베네타, 브룩스 브라더스, 지방시, 켄조 등 수백 가지 브랜드 명이 나오지만 타인이 하는 말이나 생각은 전혀 패트릭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은 서로를 다른 이로 착각하지만 그 점에 대해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사람이 폴이든, 루이스든 부르는 이름이 다를 뿐 피상적인 관계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패트릭이 폴 오언을 살해했지만 패트릭에게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패트릭은 폴 오언을 살해한 후 그의 자동응답기에 영국으로 가겠다는 음성을 녹음해 놓는데 아무도 목소리가 다르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심지어 영국에서 폴 오언을 보았다는 증인이 몇 명이나 나타난 것이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노숙자에게 1달러를 적선하느니 눈 앞에서 불 태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패트릭은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 인격이나 존엄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의 살인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노숙자의 눈을 칼로 도려내고 어린아이의 목을 따는 일을 무감동하게 수행해 나간다. 그는 자신이 인종주의자임을 숨기려 들지 않는다.

자본은 친구가 없다. 폴 오언이 패트릭의 손에 희생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자본은 독점을 통해 다른 자본을 잡아먹고 결국에는 제국주의로 화한다. <아메리칸 사이코>는 지독한 고어물이지만 패트릭의 행동이 자본의 속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끔찍함이 공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번역은 그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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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미우라 아야코 지음 / 한림미디어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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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공선>의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는 몰락한 농가의 차남으로 태어나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상고를 졸업한 후 은행원이 된다. 원래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으나 큰아버지가 돈벌이에 도움 되지 않는 짓은 집어치우라는 말에 몰래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은행원으로 일하여 번 돈으로 집안을 건사하는 한편 소설을 써나가던 다키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에 깊은 동정을 느꼈고, 그들의 가난을 구조적으로 해소할 수는 없는지 고민한다. 

다키지는 창녀촌에 소설 취재를 갔다가 다미라는 아가씨는 만난다. 그는 다미의 처지를 동정하여 월급을 털어 빚을 갚아주고자 하고, 다키지의 어머니 세키는 그런 아들의 따뜻한 마음을 이해해준다. 다미를 며느리로 맞을 것이라는 세키의 예상과 달리 다키지는 다미를 독립할 수 있도록 도울 뿐이었다. 다키지는 자신이 빚을 갚아주었기 때문에 다미에게 결혼을 청하면 그녀는 거절하지 못할 것이고, 그런 행동은 돈으로 여자를 사는 것과 진배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미는 자신에게 청혼하지 않는 다키지의 의중을 짐작하지 못한다. 다미는 자신이 창녀였고 집안이 가난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청혼하지 않는 것이라 오해한다. 둘 사이의 그런 오해는 7년간을 사귀면서 계속된다.

다키지는 <게공선>으로 유명작가의 반열에 오르지만 고등경찰의 감시와 미행이 시작된다. 공산당에 입당한 후에는 검거와 투옥, 도피생활이 반복된다. 1933년 2월 20일 경찰은 고바야시 다키지에게 고문과 폭행을 가한 끝에 그를 처참하게 살해하고 만다.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처음 읽을 때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밤을 세워 읽었다. 다음 날 서점에 <속 빙점>을 사러 가면서 얼마나 두근댔는지 모른다. 지금도 나는 스토리 텔링에 있어서만큼은 미우라 아야코를 따라올 작가가 몇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은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머니>라는 이 책을 발견하고 주저 없이 구매했다. 세키의 과거 회상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큰 아들을 병으로 잃는 사건 등 세키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후 둘째 아들 다키지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넘어 사회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때까지만해도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에 대한 오마쥬이거니 했을 뿐이다. 그리고 미우라 아야코가 그런 내용의 소설을 썼다는 것에 대해 뜻밖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게공선>이라는 이름이 나오고, 다키지가 바로 그 고바야시 다키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게공선>이라는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1994년도, 동아리 <사회과학연구회>의 책장에서였다. <사회과학연구회>에는 책이 참 많았다. 나중에 그 책들의 대부분이 소설가 조혁신 선배가 기증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기증된 책에는 어김 없이 밑줄이 그어져 있었고 논평이 곁들여진 것들도 많았다. 루카치와 브레히트를 그 때 알게 되었다. 함께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나는 그 방대한 책들 때문에 조혁신 선배를 흠모했었던 것 같다. 또다른 선배는 <백사>라는 동아리 소속이었는데 시를 잘 썼었다. 농활이 끝나고 한동안 그 선배의 자취방을 뒹굴었는데 방 안 가득 들어찬 책들을 보며 황홀경을 느꼈었다.

당시에는 읽고 싶은 책을 사서 볼 정도의 돈이 없었다. 직장을 다니는 지금은 원하는 책은 언제든지 사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책을 사볼 수 있는 여유가 되는 지금도 나는 당시의 기억 때문에 중고 서점을 기웃거리는 경우가 많다. 이제 책은 사서 볼 수 있는 처지가 되었지만 나는 메인 몸이다. 책을 읽을 시간은 그 당시보다 형편 없이 줄어들었다. 밥벌이의 지긋지긋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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