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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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는 한 때 잘나가는 유군기자(일정 부서에 속하지 않고 특집 기사를 쓰는 베테랑 기자)였다. 하지만 아내가 사망한 뒤 의욕을 잃고 현재는 <월간 여성의 친구>라는 잡지의 계약직 기자로 노년을 보내고 있다.

1994년 겨울을 앞두고 편집장 이자와가 마쓰다에게 심령담 특집 기사를 써보라며 투고 편지 사진 자료를 몇 개를 건넨다. 마쓰다는 의욕 넘치는 젊은 청년 사진기자 요시무라와 짝을 맞춰 열심히 현장을 돌아보았지만 태반이 오해거나 과장에 근거한 경험담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시모키타자와 역 직전에 있는 3호 건널목의 심령 사진 투고만은 느낌이 달랐다. 컴팩트 카메라와 8mm 카메라에 담긴 여성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기이한 느낌을 주었고, 투고자들 역시 과장이나 허위의 느낌이 없었다.

기차역 관계자를 통해 탐문해본 결과 그곳 건널목에서 최근 열차에 치인 사람은 없었다. 다만 열차의 급정거가 잦은 구역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뛰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설명이 되는 이유였다.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마쓰다가 과거 유군기자 시절 인맥을 활용해 경찰에 문의하니 뜻밖에도 1년 전 한 여성이 칼에 찔려 숨진 장소라는 정보가 튀어나왔다. 광역폭력조직 반도파의 조직원이 강간을 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살해한 것으로 결론이 난 사건인데, 특이한 점이라면 그 조직원이 그 사건 이후 완전히 정신줄을 놓고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쓰다는 살해된 여인이 끝내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얘기와, 새벽 1시 3분 걸려오는 의문의 전화, 그리고 죽은 아내가 유령의 형태로나마 곁에 있었으면 하는 복합적인 이유들로 사건을 좀 더 깊게 파고 들기 시작한다.

여성지의 가십 기사를 다루는 기자로서가 아니라, 유군기자 시절 사회부 기자의 면모를 풍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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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된 여성은 기리노 나쓰오의 <그로테스크>에 등장하는 도코전력 OL을 연상시킨다. 그녀는 친부에 의해 초등학교 때부터 성을 팔도록 강요 받았고, 그 결과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녀는 중의원 노구치 스스무의 성적 취향에 맞아 떨어졌기에 광역폭력단체인 반도파가 그녀를 픽업해 뇌물로 바친 것이었다. 그녀는 그런 뒷사정도 모르고 정부 역할을 했다. 후에 노구치 스스무의 비리가 문제되자 반도파는 유일한 증거인 여성을 살해한다. 여성은 강한 원념을 품고 사망했기에 건널목에 출몰한다.

미스터리 소설이 금기하는 장치가 몇 가지 있는데 해커, 원령, 무당 따위가 그렇다. 만능열쇠가 등장하는 순간 미스터리의 전제가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때로 원령이나 무당의 존재가 등장하더라도 미스터리 작가는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과학적 설명을 하게 마련인데, <건널목의 유령>은 '비합리적인 관념으로만 감지되는 세계'를 남겨둔다.

비리 중의원 노구치 스스무가 법에 의한 처벌을 받거나 탐사보도에 의해 위상이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원령에 의해 심정지로 사망하는데, 이는 작가가 그동안 사회파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보였던 것에 비춰보면 다소 의아한 결말이다.

2001년 <13계단>을 발표해 에도가와 란포상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다카노 가즈아키가 <제노사이드> 이후 11년간 침묵하다 발표한 소설인데, 줄곧 내리막이다.

조지프 헬러가 <캐치 22> 발표 이후 두 번 다시 그와 같은 수준의 작품을 써내지 못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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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사나이 - 그리폰 북스 006 그리폰 북스 6
알프레드 베스터 지음, 강수백 옮김 / 시공사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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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301년, 지구.

벤 라이히는 '얼굴 없는 사나이'가 나타나 은행을 터는 꿈을 꾼다. 매번 악몽에 등장하는 그 사나이의 비밀을 알고 싶어 벤 라이히는 M.D.(의학박사 학위)를 가진 2급 Esper(Extra Sensory Perception)를 찾아간다.

의사는 전의식(前意識) 단계를 살펴보기 위해 연상 단어를 읊어보라고 하는데, 벤 라이히는 dort, air 등의 단어와 '천상의 나라로 여러분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따위의 모토를 무심결에 내뱉는다. 의사는 벤 라이히가 97번의 악몽을 꾸는 동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와 단어를 종합할 때, 벤 라이히가 운영하는 모나크사(社)의 경쟁사 드 코트니(D' courtney)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진단을 내린다. 벤 라이히는 의사의 진단이 맞다고 생각했다. 단지 사내의 정체가 궁금했을 뿐이라면 자신의 내면을 한 층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1급 Esper를 고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벤 라이히는 태양계 경제 전체를 독점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모나크사와 드 코트니사 합병을 제안한다. 드 코트니사는 합병제안에 대해 수락(WWHG) 한다는 암호를 회신하나, 라이히는 불안정한 정신 상태 때문에 거부의사로 오인한다. 이에 벤 라이히는 드 코트니를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문제는 과거 79년 간 단 한 건의 모살(謨殺)도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었다. 에스퍼들의 존재가 살인 이전에 그 의도를 미리 감지해 냈고, 설령 살인에 성공했다 해도 에스퍼들이 범인을 찾아냈다. 에스퍼의 사전 감시, 사후 조사, <파괴> 형벌. 이 세 가지 단계에 의해 살인은 이제 없어진 범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에 벤 라이히는 에스퍼 의학박사 1급인 어거스터스 테이트를 찾아간다. 그는 에스퍼 길드에 대항해 <에스퍼 애국 연맹>을 이끄는 자였고, 그 조직의 유지를 위해 쉽게 유혹당할 수 있는 처지였다.

1급 에스퍼가 살인 계획을 돕고, 다른 에스퍼로부터 전의식 읽히는 것을 방어하는 정신 차폐법을 시행해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드 코트니가 보몬트 저택의 파티에 참석할 것이라는 여행 정보를 입수한 라이히는 골동품 상점에 가서 <파티를 즐깁시다>라는 책을 한 권 산다. 그 책에는 고대인들이 즐길 여러가지 게임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라이히는 어둠 속에서 하는 <정어리>라는 이름의 술래 잡기 게임 부분만 제외하고 책을 낡아 보이도록 꾸몄다. 그런 다음 책을 잘 포장해서 마리아 보몬트의 저택으로 보냈다. 그녀는 보몬트 저택으로 라이히를 초대한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다음으로 극장가에 있는 '멜로디 레인'으로 가서 '심리 음악 주식회사'를 방문했다. 그리고 더피라는 이름의 사장을 만나 '한 번 들으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노래'를 주문한다. 더피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계속되는 노래(징글) 하나를 제시한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았다.

Eight, sir, seven, sir.

Six, sir, five sir,

Four, sir, three, sir,

Two, sir, one!

Tenser, said the Tensor.

Tenser, said the Tensor.

Tension, apprehension,

And dissension have begun.

그 노래는 의미 없어 보이는 단어들의 나열과 반복적인 선율로 인해 한 번 들으면 머리에 들러붙어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라이히는 에스퍼들이 자신의 생각을 읽으려 할 때 이 노래를 떠올리면 훌륭한 자기방어 수단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라이히는 살인 도구를 구하기 위해 추방된 에스퍼 제리 처치를 찾아 전당포로 갔다. 제리 처치로부터 20세기제의 나이프 피스톨을 구한 라이히는 마리아 보몬트의 저택으로 간다. 경호원들은 망막에 작용하는 로돕신 이온화제를 사용해 무력화 시킨 후, 나이프 피스톨에 젤라틴 캡슐을 장착한 뒤 물을 발사하면 증거는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었다.

문제는 보몬트의 저택에 갤렌 처빌이라는 젊은 2급 에스퍼가 파티에 잠입하는 내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테이트는 자신이 3급 에스퍼 다수와 2급 에스퍼까지 모두 차폐해 주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살인을 멈춰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라이히는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노래'를 흥얼거려 마음을 숨기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불을 끄고 사람을 찾아내는 <정어리> 게임이 시작되자 즉시 드 코트니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간다.

드 코트니는 무척 쇠약한 상태였다. 그는 라이히의 힐난에 대해 라이히가 무언가 오해하고 있다는 것, 자신은 합병에 찬성했다는 것 등을 다소 무기력하게 항변했다. 그는 자신이 벤 라이히의 적이 아니라고 반복해서 말했지만 라이히는 그의 입 속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그 과정에서 드 코트니의 딸이 뛰어 들어와 약간의 드잡이가 있었지만 어쨌든 드 코트니는 사망했다. 현장에서 도망친 드 코트니의 딸 바바라가

새로운 변수가 되었지만 어쨌든 라이히의 1차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살인 사건의 해결을 위해 1급 에스퍼 링컨 파웰 총경이 투입된다. 링컨 파웰은 여러가지 사정을 종합해 볼 때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라이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이히의 재력과 그를 방어하는 변호사 쿼터 메인, 1급 에스퍼 테이트, 그리고 물증과 증인이 없다는 점, 그의 뇌 속을 떠다니는 정체불명의 반복적인 노래 때문에 애를 먹었다. 동기, 방법, 기회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모자익 멀티플렉스 기소 담당 컴퓨터가 불기소할 것이 뻔했다.

파웰은 <무능 & 민완> 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100명의 무능한 경찰이 엉뚱한 조사를 해서 라이히의 경계를 무너뜨린 뒤 민완 형사들을 투입해 그를 무너뜨린다는 계획이었다. 아울러 바바라를 찾는 경찰에게 5계급 특진을 시켜주겠다는 공고도 내걸었다. 한편, 라이히 역시 바바라를 찾기 위해 키노 퀴자드에게 소브린 금화 10만을 뿌렸다.

라이히는 에스퍼들을 동원해 경찰들의 동태를 살폈는데 '무능팀'의 헛발질이 고스란히 라이히에게 감지되었다. 라이히는 차츰 경계를 풀기 시작했다. '무능팀'은 엉뚱하게도 마리아 보몬트가 범인은 아닌지 의심했고, 라이히의 알리바이 등에 대해서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이상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편, 라이히도 부지런히 자신을 방어했는데 경비원들의 시각과 기억을 상실시킨 로돕신 이온화제를 제공한 생리학자 윌슨 조던을 빼돌리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테이트의 조언을 받아 모나크에 잠입한 경찰 끄나풀을 솎아내는 데도 성공했다.

파웰은 실점을 만회하기 위해 바바라를 먼저 확보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대신 테이트를 대동하고 제리 처치의 전당포에 찾아가 살인에 사용된 흉기를 사간 사람이 테이트가 아니냐는 방식으로 압박해 테이트로부터 제한적인 자백을 받는다. 하지만 그 때 키노 퀴자드가 보낸 킬러에 의한 하모닉건의 공격을 받게되고 전당포는 완파된다.

또 다시 실점한 파웰이었지만 라이히의 암호 통신 책임자 하솝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모나크와 드 코트니 사이에 오간 통신문 내용을 통해 동기를 입증할 수 있을 터였다. 아울러 시체에서 발견한 젤라틴 조각에서 추리를 재구성해 라이히가 발사한 것이 탄환이 아니라 물이었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서 살해 방법도 알아낸다.

파웰은 드디어 모즈 옹(모자익 멀티플렉스 기소 담당 컴퓨터)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솝 심문 과정에서 드 코트니가 WWHG(합병에 승낙)로 회신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파웰의 가정은 산산히 부서지고 만다. 드 코트니가 합병에 승낙했다면 라이히는 경제적인 이유로 그를 죽일 이유, 즉 살해 동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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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베스터는 1913년 뉴욕 맨해튼 태생으로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심리학과 화학을, 컬럼비아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1939년 SF 전문지에 <부서진 공리 The Broken Axiom>를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한다.

본작 <파괴된 사나이 The Demolished Man>은 1952년 <갤럭시 Galaxy>지에 게제된 뒤 1953년에 출간, 제 1회 휴고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구성,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는 기법, 스타일리시한 등장인물 등 SF 소설을 신화의 영역까지 끌어올린 작가의 솜씨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파웰은 라이히를 정상적인 방법, 즉 동기, 방법, 기회를 입증하여 기소하는 방법으로는 그를 단죄할 수 없게 되자 에스퍼의 평의회를 설득해 집중된 에너지의 집단 카텍시스(프로이드의 용어로 어떤 표상에 충당된 심적 에너지가 다른 표상으로 이동하는 현상)를 실시한다.

이 과정을 통해 라이히의 악몽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얼굴없는 자'가 라이히 자신이자 드 코트니임이 밝혀진다. 드 코트니는 라이히의 생부였고 바바라는 이복동생이었다. 라이히는 <파괴 Demolition> 형벌을 받게 된다.

칼 세이건, 윌리엄 깁슨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진 알프레드 베스터는 올드 웨이브(40년대)와 뉴 웨이브(60년대)를 잇는 문학적 가교 역할을 한 작가이며, 80년대 사이버펑크 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371p)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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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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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윤재는 태어날 때부터 이상하리만치 감정 표현을 잘 못했다. 유치원생이던 여섯 살 때, 윤재는 우연히 중학생의 집단 폭행을 목격한다. 윤재는 가까운 슈퍼에 들어가 아저씨에게 심상한 말투로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한다. 폭행당한 아이는 죽었고, 아이의 아버지는 슈퍼 아저씨였다. 이 사건으로 윤재 엄마는 아이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는다. 검사 결과는 알렉시티미아, 감정 표현 불능증이었다. 편도체가 비정상적으로 작아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며, 감정의 이름들을 헷갈린다고 했다. 다행스러 것은 윤재의 경우 지능 저하나 편집증적인 성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정도였다.

엄마는 아버지와의 결혼을 반대할 당시 절연하다시피 한 할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할머니는 윤재를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괴물' 이라고 부르더니 함께 살기로 한다. 셋은 중고책방을 운영하며 그럭저럭 살아간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윤재는 주변 사람과 상황들에 공감하지 못한다. 엄마와 할머니는 '희로애락오욕' 게임 같은 것을 하며 상황에 따라 취해야 할 답변과 행동들을 주입식으로 교육한다. 윤재는 '조금 이상하긴 해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어 생활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상태가 된다.

윤재가 생일을 맞은 날, 셋은 평양냉면을 먹으러 간다. 냉면집에서 계산을 마치고 나올 때 사건이 일어난다. 세상에 불만을 품은 사람의 묻지마 칼부림에 할머니가 사망하고 엄마가 식물인간이 되버린 것이다. 윤재는 눈 앞에서 사건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슬프거나 억울하지 않았다.

2층 빵집 아저씨이자 전직 의사였던 심박사의 도움과 보험금 덕택에 윤재는 중고책방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심박사의 친구이자 경영학과 교수인 윤권호가 윤재 앞에 나타난다. 그는 다소 생뚱맞은 부탁을 하는 데 사경을 헤매는 아내를 만나 아들인 척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렸을 적 아들을 놀이공원에서 잃어버렸는데 죽기 전에 아내와 아들을 상봉시켜주고 싶다 했다. 윤교수의 아내는 윤재를 죽기 전에 아들이라 생각하고 꼭 안아준 뒤 사망한다.

얼마 뒤 윤재네 반에 윤교수의 진짜 아들이 전학온다. 이름은 윤이수였지만 부모와 덜어져서 소년원에서 불리던 '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다. 곤이는 윤재가 자기 대신 아들 노릇을 했다는 것에 심통이 났는지 윤재를 폭행하고 괴롭히는 등 위악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윤재의 '감정 표현 불능증'에 위악이 기대하던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자신을 선입견 없이 바라보는 태도 때문에 차츰 윤재의 주변을 맴돌며 친해지려고 한다.

한편, 사춘기에 접어든 윤재 앞에 나타난 또 다른 아이가 도라였다. 도라는 달리기를 좋아하고, 무슨 일에든 솔직담백하게 감정 표현을 하는 아이였다. 윤재나, 곤이와는 대척점에 있는 도라에게 윤재는 차츰 어떤 '감정 비슷한 것'을 느낀다.

수학여행에서 곤이가 도둑으로 억울하게 몰린 뒤 곤이는 집을 뛰쳐나가 과거 소년원 시절 알고 지내던 선배 '철사'를 찾아간다.

윤재는 곤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철사를 찾아간다. 호락호락하게 곤이를 놔주지 않으려는 철사와 윤재, 곤이의 다툼 과정에서 윤재가 철사의 칼에 찔린다.

윤재는 다행히 목숨을 건진다. 그 사건 뒤로 윤재는 약간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심박사는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곤이는 철사를 찔렀지만 정당방위로 인정될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가 병상에서 일어나 휠체어를 타고 문병 온다. 윤재는 자기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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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를 보면 연쇄살인범들은 하나 같이 정신적인 흠결을 갖고 있다. 어렸을 적에 학대를 당했든, 뇌에 선천적인 문제가 있든, 그들은 살인을 통해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종(種)'이다. 이들은 교정이 전혀 불가능하다. 물론 이미 살인이 일어난 이후의 사건을 다루고 있으니, 이제와서 교정하는 것도 의미가 없긴 하다.

그런데 아직 성장기였을 경우, 또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에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 '소설읽기를 통한 고민'을 하고 싶다면 정유정의 <종의 기원>이나 필립 K.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더해 <아몬드>가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청소년 소설다운 전개와 결말, 다소 억지스러운 사건들이 튀는 느낌을 주지만 작가의 따뜻한 시선 덕에 큰 흠결로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나 작품 속에 나오는 어떤 상황이 나의 그것과 유사해 꽤 몰입해서 읽었다.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과 제17회 일본서점대상(번역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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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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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공기와 물이 오염되고, 온난화가 가속화 되어 쓰나미가 발생한 지구. 한번에 수백만명을 죽일 수 있는 원자폭탄이 언제 발사될 지 모르는 상태였고, 광신적인 종교 지도자는 '누군가를 죽이면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믿음을 설파해 지구 곳곳에서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 지구는 자정작용을 잃어버린 듯 보였다.

이런 시기에 발명가이자 과학자인 이브 크라메르가 화학 연료 대신 빛 에너지를 사용하는 태양 범선 프로젝트를 생각해 낸다. 억만장자 가브리엘 맥 나마라가 돈을 대고, 세계 단독 요트 일주 경기 2회 연속 우승자 엘리자베트 말로리가 키를 잡는다.

프로젝트 이름은 <마지막 희망 Dernier Espoir>으로 명명되었는데, 약 2광년(약 20조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14만 4천명의 사람을 태우고 천년 동안 여행해 이주하는 계획이었다.

비폭력적인 사람들을 선발해 지구를 탈출하는 계획은 각국의 반대를 불러 온다. 급기야 군대가 급파되어 프로젝트를 무산시키려던 순간, 프로젝트 발기인인 이브와 멕나마라 등은 부족한 대로 출발을 결정한다.

우주선을 회전시켜 인공 중력을 만들고 지구와 최대한 유사한 환경을 만든 '파피용(나비, 나방)'호는 처음엔 순조로운 항해를 이어갔으나 유성의 충돌로 인한 돛의 손상,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병에 걸린 자들의 반란, 치정살인과 같은 범죄의 발생과 처리를 둘러싼 이견, 광신적인 지도자의 발생 등 지구에서와 거의 유사한 폐단들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고 급기야 민주주의가 실종되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등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국 예정된 시간보다 200년 이상 지연된 시점에 살아남은 사람은 여성 1명과 남성 5명에 불과했다.

새로운 행성이 발견되었지만 모두 비행선에 탈 수는 없었다. 공간과 산소가 한정되었기에 엘리자베트-15(동명이인인 경우 숫자를 붙임)와 아드리엥-18이 착륙하기로 결정한다.

새로운 행성에 내린 둘은 그곳에 공룡이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공룡들은 둘이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차츰 멸종의 길로 접어든다.

둘은 가지고 온 식물과 동물 표본을 옮겨심거나 부화시켜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하고, 인류의 번식을 위해서도 노력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2년간 임신이 되지 않았고 사소한 다툼 끝에 엘리자베트가 집을 나가 동굴로 가버린다. 3개월 뒤 아드리엥-18이 엘리자베트-15를 찾아가 화해를 청하려 했으나 그녀는 뱀에 물려 죽은 상태였다.

외로움에 넋을 놓고 있던 아드리엥-18이 수정란이 있었음을 생각해낸다. 하지만 신선한 골수가 부족해 세포분열이 되지 않자 자신의 갈비뼈 일부를 절개해 마침내 에야라는 여성을 탄생시킨다.

에야는 청력에 문제가 있어 이름들을 헤깔렸는데 반란을 일으킨 사틴을 '사탄'으로, 아드리엥-18을 '아담'으로, 자신의 이름 에아를 '이브'로 발음하곤 했다.

어찌보면 파피용 호는 이 거대한 우주에서 정자의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몰랐다. 새로운 행성이 난자의 역할을 한 것이고. 둘의 이야기가 어쩌면 새로운 창세기 이야기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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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과학적 설정에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하지만 작가의 순진한 세계관과 정세 인식 탓에 소설의 기본 전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잘 안된다.

천재 과학자, 억만장자, 스포츠 스타가 모여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과정도 억지스럽지만, '탈출만이 희망'이라는 논리도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이는 작가가 의도한 설정, 즉 한 행성에서 출발한 우주선(정자)가 행성(난자)와 만나 우주적 의미의 수정이 이루어지고, 거기서 지능을 가진 생명체의 역사가 시작한다는 설정을 거꾸로 짜맞춰가다 보니 그렇게 된 듯 하다. 소설이 결말부의 아담과 이브, 뱀, 갈비뼈로 여성을 만드는 대목을 만들어 내기 위한 기나긴 중언부언 같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류츠신의 <삼체> 3부 역시 <파피용>과 같은 우주여행과 우주사회학의 공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데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570783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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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검산장 1
고룡 / 뫼(뫼야컴)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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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추적(慕容秋荻)은 무림의 사대 세력 가운데 하나인 강남 칠성당의 여식이었다. 그녀는 외모가 아름다웠고, 효성이 깊기로 유명했다. 그런 그녀가 탈명십삼검(奪命十三劍) 연십삼(燕十三)을 만나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한 남자를 사랑했지만, 그 남자는 그녀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 남자는 모용추적에게 십년을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그것은 허언이었다. 모용추적은 남자의 사생아를 낳아 기르며 원한을 키워갔다.

남자의 정체는 취운봉 옆 녹수호에 있는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사효봉이었다. 신검산장의 대청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었다.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

오래 전 강호의 검객들이 화산논검(華山論劍)을 한 결과 그 명칭을 신검산장에 주었고, 그 후손인 사효봉이 그 이름을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의 정체를 알게된 연십삼은 자신이 그를 당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모용추적은 사효봉의 검법에 있는 단 한 점의 빈틈을 연십삼에게 알려준다.

연십삼은 그 빈틈을 자신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검에 생을 건 사나이로서 그와 대결하고 싶었다.

얼마 후 연십삼이 대결을 위해 신검산장에 이르렀을 때 연십삼은 대결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검산장에는 사효봉의 아버지가 아들의 관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젊은 나이에 급사한 사효봉의 관 앞에서 연십삼은 허탈함을 느꼈고, 더 이상 검을 잡지 않겠다고 맹세한 뒤 돌아가는 뱃머리에 열 십자를 새겨 표식을 남긴 뒤 검을 호수에 버린다.(刻舟求劍)

세월이 흐른 뒤... 한가항의 기생집 한대내내의 집에 '쓸모없는 아길'이라는 자가 무전취식 후 곤욕을 치루고 있었다. 멀쩡한 허우대 덕에 한대내내, 소려 같은 갈보에게 유혹받았으나 아길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지 성을 낼 뿐이었다. 기생집에서 얼마간 일하던 아길은 똥을 푸는 일을 하게 된다. 별 것 아닌 일임에도 불구하고 동네 건달패들은 돈을 뜯어갔다.

아길은 묘족 출신인 노묘자(老苗子)라는 친구의 도움으로 겨우 끼니를 이을 수 있었다. 노묘자에게는 아리따운 동생이 있었는데 왜왜(娃娃)라 했다. 왜왜는 며칠 뒤 고기를 사가지고 집에 왔는데, 자세히 보니 그녀는 소려였다. 몸을 팔아 겨우 생계를 잇는 이들 가난한 집에서 우애와 슬픔을 느끼던 아길은 건달패 대노판과 그의 수하 죽엽청, 철호 등을 해치우기 위해 다시 검을 잡는다. 그의 정체는 사망한 것으로 위장하고 강호를 떠난 사효봉이었다.

사랑과 미움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모용추적, 사효봉과 모용추적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소제, 그리고 검을 버리고 의술을 익혀 단십삼이 된 연십삼이 사효봉의 등장과 함께 천하제일검이 누구인지 가리기 위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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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소야적검>은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삼소야의 검' 인데, 여기서 삼소야는 사효봉이 신검산장의 세번째 아들이라서 친근하게 부르는 이름이다.

작품의 주인공 사효봉은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검을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존재론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었기에 검을 버린다.

하지만 묘족 출신의 소박한 사람들인 노묘자와 왜왜에게서 인간적인 정을 느끼고, 그들을 지켜야 하는 순간이 오자 다시 검을 집어든다.

결국 검이라는 것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깨달음 덕분이었다.

하지만 사효봉의 이런 단순한 깨달음이 자족으로 끝날 수 없었다. 나무는 가만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가만 두지 않는 법. 결국 사효봉은 연십삼과 천하제일검의 칭호를 두고 결전을 하게 된다.

연십삼은 탈명십삼검에서 변화를 주어 십사검을 완성하지만 사효봉은 그의 십사검에서 한번 더 변화한 십오검이 있음을 깨닫는다. 연십삼 역시 대결 직전 십오검의 변화를 깨우치지만 그 십오검은 자신의 목을 찌르고 만다. 연십삼은 의사 단십삼의 신분이었을 때 사효봉을 치료하여 그의 목숨을 구했기 때문에, 이제 십오검으로 그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십오검은 검의 주인조차 제어할 수 없었고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야 했기에 연십삼은 자신의 목을 찌른 것이다.

<절대쌍교>, <초류향>으로 유명한 대만 작가 고룡의 작품이다. 고룡은 무협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유명세에 비해 정식판으로 나온 작품이 드물다. 이 작품도 <신검산장>이라는 이름의 해적판으로 소개된 바 있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다.

<삼소야적검>은 스토리와 대사 위주라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장점이 있지만 입체적인 인물 구성이라든가 배경의 충실한 안배가 부족해 전반적으로 영화 대사집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 이유인지 두 번 영화화 되었는데 1977년 작품은 초원이, 2016년 작품은 서극이 감독을 맡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569366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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