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양장 특별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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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에 나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인천 계산동에서 1500번을 타고 명동에 있는 직장에 나갔다.

당시 명동엔 일본 관광객들이 많았다. 화장품 매장에서는 '이랏샤이마세'를 연방 외쳐댔고, 일본 아줌마들은 배용준 브로마이드 앞에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여고생들처럼 꺄르르 댔다.

중국인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중앙우체국 앞에 파룬궁 수련자로 보이는 중국인들이 인체의 신비전을 연상케 하는 브로마이드를 걸어놓고 포교활동인지 선전활동인지를 할 뿐이었다.

집에 돌아갈 때는 서울역까지 걸어가서 국철을 탔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덜컹거리는 전철에서 책을 읽노라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마치 책을 읽기 위해 아침 일찍 계산동에서 명동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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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었다. 인천에 사는 사람이라면 더욱 친근하게 읽을법한 책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표절한 것 같다는 의구심은 들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레이먼드 챈들러의 문체를 배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책은 재미가 있었고, 쿨했다. 박민규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했다.

<핑퐁>과 <카스테라>를 읽노라니 표절에 대한 작가의 뻔뻔한 태도가 엿보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와 분위기, 구성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이나중 탁구부>의 작가 미노루 후루야의 아이디어도 훔친다. 나중에 박민규는 <시마 과장>으로 유명한 히로카네 켄시의 <황혼유성군>도 표절했다. 도둑질을 하고도 책이 잘 팔리니 대담해진건지, 애초에 그런 정도의 상도덕이 없는 무뢰배인지는 모르겠으나 독자를 바보취급 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런 박민규가 이상문학상도 타고, 황순원문학상도 탔다.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민규의 책은 통속적인 재미는 확실히 보장해주지만 엄연한 표절작가인데 문학판에서 몰라서 그러는건지, 알고도 밀어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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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일정 권수를 넘어서면 집안을 침범한다. 주기적으로 스캔한 뒤 처분해줘야 한다. 신경숙, 이문열, 공지영의 책을 내다버려 50여권의 공간을 확보했다. 이번엔 박민규다. 표절작가는 언제나 책꽂이의 말석을 차지하다가 버려질 처지다.

<죽은 왕녀의 파반느>를 읽는다. 표절작가라고 비난하고 버리겠다고 마음 먹은 상황에서도 읽지 않고 버리지는 못하는 못난 결벽이다.

잘생긴 배우 아버지에게서 버림 받은 뒤 누구나 못생겼다고 외면하는 여자에게 마음을 쏟는 주인공, 아픈 가족사를 숨기고 명철한 태도로 세상을 관조하는 우울증 환자 요한,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나 장편 <노르웨이의 숲>을 연상하게 한다. 표절작가의 작품은 아무리 재미있어도 누구의 작품을 베꼈을까 하는 의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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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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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을 다니기 위해 인천으로 올라온 것이 1994년이었다. 그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기상 관측 이래 첫 번째 던가 두 번째 더위라 했다.

동아리에서 빈민활동 참가자를 모집할 때 나는 별 고민 없이 손을 들었다. 본가라 해도 내가 돌아갈 곳은 경로당 한쪽에 덧붙인 방 한 칸이었으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때 빈민활동을 나간 곳이 인천 만석동이다. 만석동이나, 내가 자취하는 용현 5동의 기찻길 옆 단칸방이나 도긴개긴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두고 블록과 슬레이트로 대충 얽어 더위와 추위에 무방비로 노출된 집, 끊임 없이 올라오는 골목의 하수구 냄새, 그리고 재래식 화장실.

8박 9일 동안 내 임무는 들통을 짊어지고 재래식 화장실에 소독약을 뿌리는 일이었다. 한 집 한 집 찾아가 빈민활동 나온 대학생이라는 간단한 소개를 마친 후 화장실 위치를 물어 소독해 주는 그 일은 퍽이나 단조로웠다.

그리고 어느 집에서였던가... 화장실 안내를 해주면서 몹시 부끄러워하는 여중생을 만났다. 마치 자신의 치부라도 들킨 양, 아이는 얼굴을 붉혔다. 그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여자아이가 자신의 집에서 가장 누추한 공간을 타인에게 보여줘야 하는 그 상황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가난은 겪지 않아도 좋을 많은 것들을 강제로 체험하게 만든다. 그 체험들은 모여 슬픔이 된다. 슬픔은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고여 있다가 다른 슬픔 한 방울이 더해지면 넘쳐 흐른다. 가난한 사람들은, 슬픈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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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바닷가에 '고양이 섬'이 메워지며 육지가 된 후 판잣집들이 들어섰다. 고양이 섬은 '괭이부리말'이라는 이름에 그 흔적을 남겼지만 원주민이 아닌 사람들은 그곳을 행정동인 만석동이라 불렀다. 바로 내가 1994년부터 몇 해를 여름이 되면 들통을 짊어지고 돌아다녔던 그곳.

소설은 그 괭이부리말을 배경으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쌍둥이 숙자와 숙희, 부모가 죽거나 그들로부터 버림받아 오발탄처럼 살아가는 동수와 명환, 괭이부리말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그곳을 부끄러워하는 교사 명희,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영호의 일상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가난이라는 채찍이 노상 그곳에 사는 부모와 아이들을 때려대니, 괭이부리말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불행과 함께 살아간다. 알지 못해도 좋을 일을 알게 되고, 경험하지 않아도 좋을 일을 겪은 아이는 일찍 어른이 된다. 일찍 어른이 된 아이의 눈보다 슬픈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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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토익 만점 수기 -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심재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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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 점수가 겨우 500점대에 불과한 '나'는 취업 전선에서 일패도지하여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호스텔에서 아무나 붙잡고 막무가내로 회화 연습을 시도하던 '나'는 제임스라는 수상쩍은 인물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사소한 부탁을 받게 된다. 이곳에 있는 물건을 저곳으로 옮기는 일.

문제는 그 물건이 마리화나라는 데 있었는데, '나'에게 있어 토익점수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면 선악을 판별할 의욕조차 불러일으키지 않았기에 선선히 승낙한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바나나 농장. 이곳의 주인은 스티브였는데 바나나는 사실 카나비스 사티바, 즉 대마초 재배를 감추기 위한 위장에 불과했다. 그는 아침부터 케첩통을 개조한 물담배통으로 대마초를 피워댔고, 이를 명상의 한 방편이라고 우겨댔다.

그리고 그에게는 요코라는 이름의, '아폴로 13호'를 믿는 괴짜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세상 만사가 일루미나티의 사악한 의도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또 세계는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있다고 믿었기에 지하 벙커에서 보호복을 입고 생활했다. 그런 그녀를 스티브는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둘 사이는 소원한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요코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의 아버지 역시 '이주일을 닮은 예수'를 믿는 특이한 종교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주일'이나, '아폴로 13호'나 인 것이다. 게다가 요코는 한국말을 무척 배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나'는 요코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고, 스티브와 요코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그런데 토익 990점을 달성할 절호의 찬스가 한류 영향으로 좌초될 위기에 처한다. 요코와 스티브가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부터 덜 싸우고 더 친밀해진 것이다. 둘은 바나나 농장에서 아예 한국말만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웃 바나나 농장으로 토익 실력을 높이기 위해 이직한다. 그런데 이곳 부부가 알고보니 토익 리스닝 문제를 내는 성우들이었다. 게다가 지하창고에는 기출문제까지 있었다. '나'는 옳타꾸나 하고 토익 실력 향상의 기회로 삼아 주야를 가리지 않고 그들과 대화하고 문제를 베껴댔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바나나를 따다 실수로 농장주의 푸들을 낫으로 절단 내 황천길로 보내는 사고가 일어난다. 나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푸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냈고, 농장주는 경찰을 불렀다. 이 과정에서 스티브가 대마초 키우는 게 들통났고, '나'는 요코를 보고 놀란 경찰이 발포한 총에 맞아 한쪽 눈을 잃고 만다.

경찰서장과 적당한 선에서 합의(의안+스티브의 방면)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토익시험을 치른다. 결과는 990점 만점. 

야심차게 지원한 종합상사의 압박 면접에서 면접관이 '아프리카 반군에게 잡히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나'는 '기꺼이 인질이 된다', '그들의 말을 배운다' 따위, 얼마 전 호주에서 겪었던 경험에 기반한 답을 내놓는다.

'이주일을 믿는 아버지'는 한국어 강사 자격으로 스티브와 요코의 바나나 농장으로 간다. 아버지와 요코는 죽이 잘 맞아 모녀처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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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주제의식을 잘 나타내 주는 문장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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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그 나라 국민이 되는 거야?"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이다. 같은 문학상 수상작이라도 수준이 천차 만별이거나, 결이 매우 다르거나 한 경우가 있다. 초기 <오늘의 작가상>은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었다. 그러다 차츰 작품의 질이 예전과 같지 못해지더니 <철수 사용 설명서>라는 기괴한 작품에 이르면 심사자 이름을 한 명 한 명 찬찬히 살펴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은 그야말로 1억원 고료가 합당하게 돌아갔다는 생각이 드는 멋진 작품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이다. 2회 <트렁크>는 나쁘진 않지만 1회 수상작에 필적 할만 한 수준이나 결이 아니다. 그리고 3회인 <나의 토익 만점 수기>를 보면 역시 재기발랄한 문체나 문제의식이 나쁜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문학성 측면에서 수작으로 꼽아주기엔 뭔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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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부터 25일까지 마츠야마 여행 중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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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ㅣ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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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0년대 후반 동인천이 썰렁해지고, 2000년초 주안 시민회관 인근도 쇠락의 길에 접어 들었다.

지하도 상권이 붕괴되고, 식당들이 문을 닫았다. 나는 당시 시민회관 맞은편 '카라'라는 카페 겸 술집에서 낮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는 사람의 가게였다.

손님이 거의 들지 않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팔기 직전이었을 것이다.(권리금은 끝내 못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없어진 시민문고가 가게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해문미스터리 시리즈나 범우사 세계문학 시리즈를 한 권씩 사다가 읽었다. 5천원이면 책 한 권을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이 책은 그때 처음 읽었다. 그리고 유키 하루오의 <방주>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언급되길래 추억에 잠겨 꺼내 읽는다. 처음 읽는 소설처럼 내용이 생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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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언이라는 갑부의 초대를 받은 여덟 명의 손님이 데븐 해안 근처 인디언 섬으로 모인다. 그런데 섬에는 오언은 없고 하인 로버스 부부만 기다리고 있었다. (Ulick Norman Owen = U.N.Owen, Unknown)

저녁 식사를 대접받은 손님들이 흡족한 기분을 맛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들 중 누구도 오언이라는 사람을 직접 만난 적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누군가 식탁 한 가운데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 놓여 있다는 것을 지적한 직후 축음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는 열 명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그들의 죄를 읊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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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트롱: 의사, 술에 취해 수술을 집도하다 환자를 죽임

에밀리 브랜트: 청교도적 성격으로 임신한 하녀를 쫓아내 죽게 만듬

블로어: 경시청 출신 탐정. 거짓 증언으로 무고한 사람을 투옥시켜 옥사하게 만듬

베라 클레이슨: 가정교사로 일할 때 아이 아버지를 사모해 아이를 익사하게 방치

필립 롬바드: 장군. 아프리카에서 부족민 21명 학살

매카서: 군인. 아내의 정부를 살아돌아올 수 없는 정찰에 내보내 죽임

앤소니 마스튼: 망나니 스피드광. 존과 루시 컴베스 형제를 교통사고를 내 죽임

로저스 부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제니퍼 브래디 죽임

워그레이브: 판사. 잘못된 판결로 에드워드 세튼 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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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최초 출판될 때 제목은 <Ten Little Niggers>였다. 하지만 미국에서 원제가 가지는 뉘앙스 때문인지 <And Then There Were None>으로 출판되었고, 이 이름이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외딴 섬에서 마더 구스의 동요 <Ten Littel Indians>에 맞춰 살인이 진행되고 끝내 아무도 생존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1939년 발간 이후 누적 판매 부수 1억부를 넘겼으며, 미스터리 써클 소설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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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인디언 소년이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한 명이 목이 막혀 죽어서 아홉 명이 되었다.

- 앤소니 마스튼, 독이 든 위스키 마시고 질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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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명의 인디언 소년이 밤늦게까지 자지 않았다.

한 명이 늦잠을 자서 여덟 명이 되었다.

- 로저스 부인,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다음 날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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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명의 인디언 소년이 데번을 여행했다.

한 명이 그곳에 남아 일곱 명이 되었다.

- 매카서 장군, 일행과 떨어져 바닷가에 앉아 있다가 둔기로 머리를 맞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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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인디언 소년이 도끼질을 했다.

한 명이 자신을 두 조각 내서 여섯 명이 되었다.

- 로저스, 장작을 패다가 도끼에 맞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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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명의 인디언 소년이 벌집을 가지고 놀았다.

한 명이 말벌에 쏘여 다섯 명이 되었다.

- 에밀리 브랜트, 거실에서 청산가리 주사를 목에 맞고(쏘이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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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인디언 소년이 법률을 공부했다.

한 명이 대법관이 되어 네 명이 되었다.

- 워그레이브, 판사 가운을 입고 가발을 쓴 채 이마 한 가운데 총을 맞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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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인디언 소년이 바다로 나갔다.

한 명이 훈제 청어에 낚여 세 명이 되었다.

- 암스트롱, 절벽에서 거짓 정보에 속아(Red herring, 훈제청어, 기만) 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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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인디언 소년이 동물원을 걷고 있었다.

한 명이 큰 곰에게 잡혀 두 명이 되었다.

- 블로어, 곰 모양 대리석 시계에 맞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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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인디언 소년이 볕을 쬐고 있었다.

한 명이 햇볕에 타서 한 명이 되었다.

- 필립 롬바드, 베라 클레이슨이 쏜 총에 맞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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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인디언 소년이 홀로 남았다.

그가 목을 매어 죽음으로써 아무도 없게 되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

- 베라 클레이슨, 미리 장치된 의자와 밧줄을 보고 죄책감에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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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범인은 워그레이브 판사. 아홉 명에 대한 범죄 정보를 바탕으로 직접 심판을 내린 워그레이브는 사건의 진상이 적힌 종이를 병에 넣어 바다에 던진 후 최초 사망 당시와 똑같은 형태로 자살한다. <십각관의 살인> 결말이 이 부분을 오마주한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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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ㅣ 미친 반전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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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등산 동아리 모임에서 인연을 맺은 7명이 오랜만에 다시 모였다. 이들은 유야라는 회원의 제의에 따라 나가노현 산 속에 있는 미스터리한 지하 건축물에 들어가게 된다. 맨홀 뚜껑 같은 덮개를 열고 들어가니 지하 3층으로 이루어진 그곳에는 발전기와 가스가 갖춰져 있었고 물도 사용 가능했다. 그리고 스쿠버다이빙 장비와 산소통 각 2세트도 있었다.

그곳은 어쩐지 70년대 과격파의 아지트나 종교 단체의 비밀 건물 같았다.

버섯을 따러 왔다 길을 잃은 야자키네 가족도 합류하면서 총 10명이 그 건물에서 잠을 자게 된다. 그런데 그날 밤 지진이 일어나 출입구쪽이 바위로 막혀 버린다. 게다가 지하 3층에 차있던 물이 차츰 불어나면서 며칠 내로 탈출하지 못하면 모두 수장될 처지가 된다.

유일한 탈출방법은 출입구쪽을 막고 있는 바위를 지하 2층으로 떨어뜨려 출구를 여는 것. 하지만 그러려면 바위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잡아당겨야 하는데 닻감개를 돌린 사람은 지하에 갇히고 만다. 과연 누가 희생되어야 하는가.

완벽히 밀폐된 공간에서 지하 건축물에 들어가자고 최초로 제안했던 유야가 살해 당한다. 그 다음으로 요가 교실 직원 사야카가 목이 잘려 살해 당하고, 마지막으로 야자키 가족의 가장이 죽는다. 살인범이 잡히면 그가 닻감개를 돌리게 되리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이뤄진 상황에서 일행은 필사의 추리를 해나간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mysterystory&no=23240 지하건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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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마이로 밝혀진다. 마이는 살인이 일어나고 범인이 밝혀지면 그가 희생자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유야를 죽인 뒤 남편 류헤이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다. 사이가 안 좋았던 남편을 희생자로 만든 뒤에는 화자인 슈헤이와 미래를 함께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야카가 자신이 범행에 사용한 끈을 찍었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빼앗으려고 그녀도 죽였다. 하지만 하필 사야카가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직후라 회수하지 못한 마이는 누군가 사야카의 스마트폰을 발견하고 안면 인식으로 잠금 해제할 것을 우려하여 목을 잘라 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야자키는 범인이 범행에 사용된 칼을 되찾으러 올 때 잡으려고 잠복하고 있다가 도리어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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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의 남편 류헤이는 끝까지 그럴리 없다고 현실을 부정했고, 화자인 슈이치는 마이와의 연애감정에 잠시 흔들린다. 만약 마이와 함께 남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고민하던 슈이치는 상념을 떨치고 그녀가 닻감개를 돌리도록 내버려두고 떠난다. 그리고 바위가 2층으로 떨어진 직후 마이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통에 슈이치는 경악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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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드서클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이야 말로 본격 미스터리 소설의 본령에 닿아 있는 상황 아닌가 싶다. 눈 덮인 설원 산장에서의 살인이나, 폭우로 다리가 끊긴 별장에서의 살인 등등. 어렸을 적에 그런 미스터리 소설 도입부만 읽어도 도파민이 분출되어 흥분 상태에 빠져 들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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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교수상회>로 데뷔한 유키 하루오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부모 밑에서 자라 고등학교를 중퇴했다고 한다. 현대보다는 과거, 사회파 보다는 본격물에 경도된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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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는 지진 직후 막혀버린 곳이 자기들이 들어왔던 출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빠져나갈 곳은 지하 3층을 관통해 가야 하는 비상구뿐. 스킨스쿠버 장비는 2개 뿐이었으므로 마이는 CCTV를 뒤바꿔 출구가 열려있다고 속인 뒤 살인을 시작한다. 유야를 살해한 동기는 당초 추리와 유사했지만 사야카를 죽인 이유는 그녀가 입구와 출구가 찍힌 사진을 가지고 있어서 뒤바뀐 CCTV가 들통날까 두려워서였다. 슈이치가 만약 마이와 남기로 결정했다면 그는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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