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0년대 후반 동인천이 썰렁해지고, 2000년초 주안 시민회관 인근도 쇠락의 길에 접어 들었다.
지하도 상권이 붕괴되고, 식당들이 문을 닫았다. 나는 당시 시민회관 맞은편 '카라'라는 카페 겸 술집에서 낮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는 사람의 가게였다.
손님이 거의 들지 않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팔기 직전이었을 것이다.(권리금은 끝내 못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없어진 시민문고가 가게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해문미스터리 시리즈나 범우사 세계문학 시리즈를 한 권씩 사다가 읽었다. 5천원이면 책 한 권을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이 책은 그때 처음 읽었다. 그리고 유키 하루오의 <방주>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언급되길래 추억에 잠겨 꺼내 읽는다. 처음 읽는 소설처럼 내용이 생소하다.
오언이라는 갑부의 초대를 받은 여덟 명의 손님이 데븐 해안 근처 인디언 섬으로 모인다. 그런데 섬에는 오언은 없고 하인 로버스 부부만 기다리고 있었다. (Ulick Norman Owen = U.N.Owen, Unknown)
저녁 식사를 대접받은 손님들이 흡족한 기분을 맛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들 중 누구도 오언이라는 사람을 직접 만난 적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누군가 식탁 한 가운데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 놓여 있다는 것을 지적한 직후 축음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는 열 명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그들의 죄를 읊어댄다.
암스트롱: 의사, 술에 취해 수술을 집도하다 환자를 죽임
에밀리 브랜트: 청교도적 성격으로 임신한 하녀를 쫓아내 죽게 만듬
블로어: 경시청 출신 탐정. 거짓 증언으로 무고한 사람을 투옥시켜 옥사하게 만듬
베라 클레이슨: 가정교사로 일할 때 아이 아버지를 사모해 아이를 익사하게 방치
필립 롬바드: 장군. 아프리카에서 부족민 21명 학살
매카서: 군인. 아내의 정부를 살아돌아올 수 없는 정찰에 내보내 죽임
앤소니 마스튼: 망나니 스피드광. 존과 루시 컴베스 형제를 교통사고를 내 죽임
로저스 부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제니퍼 브래디 죽임
워그레이브: 판사. 잘못된 판결로 에드워드 세튼 죽임
영국에서 최초 출판될 때 제목은 <Ten Little Niggers>였다. 하지만 미국에서 원제가 가지는 뉘앙스 때문인지 <And Then There Were None>으로 출판되었고, 이 이름이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외딴 섬에서 마더 구스의 동요 <Ten Littel Indians>에 맞춰 살인이 진행되고 끝내 아무도 생존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1939년 발간 이후 누적 판매 부수 1억부를 넘겼으며, 미스터리 써클 소설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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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인디언 소년이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한 명이 목이 막혀 죽어서 아홉 명이 되었다.
- 앤소니 마스튼, 독이 든 위스키 마시고 질식사
아홉 명의 인디언 소년이 밤늦게까지 자지 않았다.
한 명이 늦잠을 자서 여덟 명이 되었다.
- 로저스 부인,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다음 날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
여덟 명의 인디언 소년이 데번을 여행했다.
한 명이 그곳에 남아 일곱 명이 되었다.
- 매카서 장군, 일행과 떨어져 바닷가에 앉아 있다가 둔기로 머리를 맞아 사망
일곱 명의 인디언 소년이 도끼질을 했다.
한 명이 자신을 두 조각 내서 여섯 명이 되었다.
- 로저스, 장작을 패다가 도끼에 맞아 사망
여섯 명의 인디언 소년이 벌집을 가지고 놀았다.
한 명이 말벌에 쏘여 다섯 명이 되었다.
- 에밀리 브랜트, 거실에서 청산가리 주사를 목에 맞고(쏘이고) 사망
다섯 명의 인디언 소년이 법률을 공부했다.
한 명이 대법관이 되어 네 명이 되었다.
- 워그레이브, 판사 가운을 입고 가발을 쓴 채 이마 한 가운데 총을 맞고 사망
네 명의 인디언 소년이 바다로 나갔다.
한 명이 훈제 청어에 낚여 세 명이 되었다.
- 암스트롱, 절벽에서 거짓 정보에 속아(Red herring, 훈제청어, 기만) 익사
세 명의 인디언 소년이 동물원을 걷고 있었다.
한 명이 큰 곰에게 잡혀 두 명이 되었다.
- 블로어, 곰 모양 대리석 시계에 맞아 사망
두 명의 인디언 소년이 볕을 쬐고 있었다.
한 명이 햇볕에 타서 한 명이 되었다.
- 필립 롬바드, 베라 클레이슨이 쏜 총에 맞아 사망
한 명의 인디언 소년이 홀로 남았다.
그가 목을 매어 죽음으로써 아무도 없게 되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
- 베라 클레이슨, 미리 장치된 의자와 밧줄을 보고 죄책감에 자살
이 중 범인은 워그레이브 판사. 아홉 명에 대한 범죄 정보를 바탕으로 직접 심판을 내린 워그레이브는 사건의 진상이 적힌 종이를 병에 넣어 바다에 던진 후 최초 사망 당시와 똑같은 형태로 자살한다. <십각관의 살인> 결말이 이 부분을 오마주한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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