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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평점 :
내가 대학을 다니기 위해 인천으로 올라온 것이 1994년이었다. 그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기상 관측 이래 첫 번째 던가 두 번째 더위라 했다.
동아리에서 빈민활동 참가자를 모집할 때 나는 별 고민 없이 손을 들었다. 본가라 해도 내가 돌아갈 곳은 경로당 한쪽에 덧붙인 방 한 칸이었으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때 빈민활동을 나간 곳이 인천 만석동이다. 만석동이나, 내가 자취하는 용현 5동의 기찻길 옆 단칸방이나 도긴개긴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두고 블록과 슬레이트로 대충 얽어 더위와 추위에 무방비로 노출된 집, 끊임 없이 올라오는 골목의 하수구 냄새, 그리고 재래식 화장실.
8박 9일 동안 내 임무는 들통을 짊어지고 재래식 화장실에 소독약을 뿌리는 일이었다. 한 집 한 집 찾아가 빈민활동 나온 대학생이라는 간단한 소개를 마친 후 화장실 위치를 물어 소독해 주는 그 일은 퍽이나 단조로웠다.
그리고 어느 집에서였던가... 화장실 안내를 해주면서 몹시 부끄러워하는 여중생을 만났다. 마치 자신의 치부라도 들킨 양, 아이는 얼굴을 붉혔다. 그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여자아이가 자신의 집에서 가장 누추한 공간을 타인에게 보여줘야 하는 그 상황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가난은 겪지 않아도 좋을 많은 것들을 강제로 체험하게 만든다. 그 체험들은 모여 슬픔이 된다. 슬픔은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고여 있다가 다른 슬픔 한 방울이 더해지면 넘쳐 흐른다. 가난한 사람들은, 슬픈 사람들이다.
인천 바닷가에 '고양이 섬'이 메워지며 육지가 된 후 판잣집들이 들어섰다. 고양이 섬은 '괭이부리말'이라는 이름에 그 흔적을 남겼지만 원주민이 아닌 사람들은 그곳을 행정동인 만석동이라 불렀다. 바로 내가 1994년부터 몇 해를 여름이 되면 들통을 짊어지고 돌아다녔던 그곳.
소설은 그 괭이부리말을 배경으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쌍둥이 숙자와 숙희, 부모가 죽거나 그들로부터 버림받아 오발탄처럼 살아가는 동수와 명환, 괭이부리말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그곳을 부끄러워하는 교사 명희,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영호의 일상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가난이라는 채찍이 노상 그곳에 사는 부모와 아이들을 때려대니, 괭이부리말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불행과 함께 살아간다. 알지 못해도 좋을 일을 알게 되고, 경험하지 않아도 좋을 일을 겪은 아이는 일찍 어른이 된다. 일찍 어른이 된 아이의 눈보다 슬픈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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