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한동림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령>

진형은 애인 인숙과 유령에 대해 이야기 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을 떠올린다. 그날 진형은 빈소를 지척에 두고 낯선 여자와 동침했다. 그 기억은 부끄러움이 되어 진형을 괴롭혔다. 맏손주였던 진형은 숙부를 도와 할머니 염습을 하고 장례를 치른 기억을 떠올린 끝에 인숙에게 유령이 있다고 했다. 인숙은 유방암과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를 생각하며 유령이 있다면 다행이라며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한다.

​

<귀가>

닷새째 계속된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버스에서 몸이 불편한 중학생 아이와 어머니를 본다. 불현듯 형과 어머니의 기억이 의식에 스며든다.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일을 하며 아들 둘을 키웠다.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았던 어머니지만, 정작 형이 아플 때는 제대로 된 약을 쓰지 못해 형이 불구가 되었다며 일평생 한을 품고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나'를 형으로 착각해 누렇게 변색한 이불을 한사코 물려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불을 불에 태우니 그 안에서 어머니가 감춰둔 돈이 흘러 나왔다. 형은 그 돈은 내 다리 값이라며 서럽게 운다.

​

<빛 바랜 흑백사진 속의 새벽 새>

사장 면전에 사표를 던진 영훈을 위해 동료 직원들이 송별회를 열어주겠다고 한 곳이 하필이면 창신동 환희였다. 동료들은 나를 대단한 영웅인양 추켜주었다.

그 술집에 대한 기억은 은주와, 그녀를 유다처럼 배신했던 못난 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술집에서 '나'는 억병으로 취했고, 따라온 여자와의 관계도 치루지 못한다.

​

<피어나는 산>

황학산 성불암에서 평섭은 목탁을 깎으며 장영감의 지리한 과거사를 듣는다. 겨울은 불상 조각장이들에게 긴 휴식과 정착을 의미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 휴식기에 들어갈 참이다. 불상을 깎는 평섭의 의식 속으로 그림에 미쳐버린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저주하던 어머니의 기억 따위가 떠올랐다.

그러다 한 여자가 작업장으로 들어왔다. 여자는 추위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는데 산 꼭대기로 가겠다는 둥, 백화산으로 데려가 달라는 둥 횡설수설한다. 평섭은 여자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쉬게 해주며 상념을 이어갔다.

다음 날 여자는 자취를 감추었는데 덮고 있던 담요를 관세음보살상에게 씌워 놓고 떠났다. 담요를 치워보니 관세음보살상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조난>

안나푸르나 정상에 섰던 현숙이 훈련을 위해 산에 올랐다가 조난을 당한다. 의식이 점차 희미해지며 시시포스의 신화와, 안나푸르나 등정에서 함께 캠프를 나섰다 실종된 박선배의 기억 따위가 떠오른다.

​

<변태 시대>

삼류영화관에서 그는 <빠삐용>으로 추정되는 영화를 보고 있다. 주인공은 탈출을 시도하지만 쉽지 않고, 옆자리에 호모가 앉아 추근댄다. 그의 의식이 과거로 향한다. 도로에서 들렸던 기관총 소리, 아내와 태중의 아이가 사망한 기억.

탈출에 실패한 영화 속 주인공이 스크린에 비추고, 그 스크린을 나방 한 마리가 영사기에 비춰 가로 막는다.

​

<핏빛 바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말에 '나'는 혼란을 느낀다. 아버지는 분명 내 손으로 죽였는데 어떻게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말인가. 정신과의사를 앞에 두고 '나'는 기억을 더듬는다. 집을 나간 어머니, 형과 '나'를 학대했던 아버지. 형은 나를 아버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끝내 집을 나갔고, 나는 견디다 못해 아버지를 죽였다. 그리고 최근 죄책감에 형사에게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실토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살아있다니.

의사는 내가 아버지를 죽이는 상상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틈입하는 기억. 찾아낸 형, 그리고 형에게 학대받았음이 분명한 조카들. '내'가 죽인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형이었단 말인가.

​

<혹서의 계절>

며느리 옥순이 마을 앞 횡단보도에서 화물트럭에 치어 숨진 뒤 아들은 손자와 손녀에게 함부로 하며 자신을 망가뜨렸다. 그날 며느리의 죽음을 지켜본 목격자들은 자살 같다고 했다. 김노인은 억장이 무너졌다.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빵공장을 빌려 한여름에 땀을 바가지로 쏟아가며 일을 했지만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 며느리는 그런 현실에 절망에 트럭에 몸을 던졌을까.

아이들과 아들, 그리고 김노인이 다시 희망을 부여잡고 빵공장을 열어 빵을 만들다 김노인은 깨달았다. 과로와 탈수가 현기증을 일으켜 며느리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

------

​

한동림 소설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에 과거의 한 장면이 틈입하며 시작된다. 과거는 대게 아팠던 기억들인데 상처가 벌어진 채로 잊혀지거나 무의식 속에 묻혀있던 순간들이다. 그 과거는 현재로 이어져 있으므로 어느 때고 상기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띠고 있다. 소환된 과거는 현재와 의식 속에서 뒤섞인다. 현실과 과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 경계의 어느 부분을 한동림은 소설로 포착해낸다.

​

과거를 반추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때로 과거는 윤색되거나 왜곡되어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과 만나 격렬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진실이 드러나고, 재해석되며, 현재와 화해를 시도한다.

​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작품 해설에 앞서 발터 벤야민을 인용한다.

​

과거는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어떤 은밀한 목록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

한편, 한강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한강은 한동림의 동생이다)

​

바라보는 관점은 다소 다르지만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그 지점에서 이뤄지는 진지한 성찰과 탐구가 우리를, 그리고 이 사회를 좀 더 옳은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것 아닐까 싶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907362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지금의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은 장정일의 독서일기 때문이었다. 장정일은 자신의 꿈이 '무엇무엇'이 되어 5시에 퇴근한 뒤 딱딱한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것이었노라고 그 책에 적고 있다.

내가 막상 장정일의 못 다한 꿈을 이루려고 그 직업을 가져보니, 장정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빙충이였다. 업무는 5시에 끝나지 않았고, 잘리지 않는다 뿐이지 스트레스가 심했으며, 주거 역시 불안정했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와야했다.

하지 말라는 것은 무수히 많았고, 전쟁이 나면 어디로 가서 무엇무엇을 하라는 것까지 카드로 적어 속박했고, 월급은 겨우 먹고 살만큼 줬다.

그러다보니 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업무가 바뀌기를, 진급을 해서 직급이 올라가기를, 다른 곳으로 발령 받기를 바라며 유예된 시간을 견디곤 한다. 그리고 기다리던 진급이, 보직 변경이, 전보 발령이 이뤄지면 다시 다음번 진급을, 다음번 보직 변경을, 다음번 발령을 기다리며 괴로운 시간을 견딘다.

그렇게 한 20년 뺑뺑이를 돌면 얼추 남은 직장생활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거지반 결정이 되는데, 문득 허탈한 생각이 든다. 다음번 진급을, 발령을 위해 현재를 견디다 보니 가장 중요한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참고 견딘 그 시간이 사실은 가장 가치 있고 귀한 시간이었음을 뒤늦게 알게되는 아이러니.

​

정유정이 악을 다루는 방식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주인공과 함께 저 밑바닥으로 함께 떠밀려 가며 광적으로 휘갈겨대는 묘사는 사뭇 빼어난 데가 있어 몰입감 측면에서 더할 나위 없지만, 다시 현실로 빠져나오는 데 서툴기 때문이다. 때로 인물들에 휘둘려 허우적 대거나, 출발점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어정쩡한 지점에서 힘이 달려 마무리 짓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았다.

그런데 <완전한 행복>에서는 그런 느낌이 없다. 고유정이라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하여 쓰여졌기 때문에 이미 출발점이 명확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의 호흡과 내공이 강해진건지 잘 모르겠다.

​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

저 문장을 읽노라니 매번 현실을 부정하며 다음번 이벤트까지만 어떻게든 참고 버티자는 식으로 직장 생활을 해온 내 과거가 오버랩 된다. 완전한 행복이 어디있겠는가. 그저 다음 진급, 다음 발령만 바라보며 달려온 내 직장생활도 어찌 보면 저놈의 '완전한 행복' 신기루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890472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골든슬럼버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 사카이 마사토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아오야기는 대학시절 친하게 지냈던 모리타로 부터 8년 만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로 나간다. 둘은 대학 시절 어느 날처럼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함께 햄버거를 먹고 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런데 모리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점점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빚을 진 자신에게 접근한 수상쩍은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던 모리타는 '모든 것이 그들의 의도대로 흘러갈 것이니 도망치라고, 너는 오즈월드처럼 되고말 것이라고' 하며 아오야기를 차에서 밀어낸다.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차에서 나온 아오야기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경찰들로부터 일단 도망치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음이 들려온다.

매스컴은 총리, 그리고 총리 암살범 아오야기의 친구 모리타가 폭사했다고 떠들어댔다. 아오야기를 뒤쫓는 경찰들은 서슴없이 아오야기에게 총질을 해댔고, 매스컴은 아오야기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속속 제시했다.

하지만 영상 속 '아오야기'는 아오야기 자신이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을 닮은 이가 사칭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그리고 최근 2년간의 일들이 아오야기의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2년 전 아이돌 린카를 구해주어 매스컴으로부터 영웅처럼 취급되던 일, 지하철에서 치한으로 누명을 쓴 일, 친근하게 접근한 여성으로부터 무선헬기 조정을 배운 일 따위였다. 그리고 모리타의 마지막 말, '너는 오즈월드처럼 되고 말 거야' 라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오즈월드는 케네디를 암살한 용의자로 체포되지만 감옥으로 압송되던 중 잭 루비에게 살해 당했다. 오즈월드가 범인이라고 단정하기엔 여러가지 의심쩍은 정황이 있었지만 진실은 묻혀버리고 만다. 아오야기는 도망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시절 친하게 지냈던 후배 가즈, 그리고 첫사랑 히구치 등의 도움을 받으며 최선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

"시작 부분 기억나?" 그렇게 말한 뒤 모리타는 첫 부분을 흥얼댔다. "Once there was a way to get back homeward."

"옛날에는 고향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는 의미던가?"

"반사적으로, 대학 시절 함께 놀던 때가 떠올랐어."

"대학 시절?"

"돌아갈 고향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는 늘, 그 시절 우리가 떠올라."

​

"골든 슬럼버". 가즈는 노래를 그치더니 말했다. 'Once there was a way to get back homeward' 라는 구절을 반복했다.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들어요. 이제는 두 번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옛날에는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어느새 다들 나이를 먹고."

​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 사카이 마사토 주연의 2010년판 영화 <골든 슬럼버>와 노동석 감독, 강동원 주연의 2018년 리메이크작 <골든 슬럼버>, 그리고 이사카 코타로의 2008년도 소설 원작까지 <골든 슬럼버> 여정을 마쳤다.

찬란했던 한 때는 거창한 목표를 공유했다거나, 인생에 도움이 되는 활동에 함께 매진했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목적도 없이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 때문에 찬란했던 게 아닐까 싶다. 목적 없이 보낸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믿음, 신뢰, 이해, 그런 것들은 어떻게 다시 만들어보려 해도 억지로는 안된다.

​

어른이 되면, 무의미한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가족이라는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최소 계약단위에 매몰되어, 살기 위해 직장에 나가다 보면 '목적없이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잊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함께 빈둥댔던 친구와 선후배 얼굴이 떠오르면 비틀즈의 <골든 슬럼버> 도입부 "Once there was a way to get back homeward"를 흥얼거릴 수 밖에 없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863114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벌레를 밟았다 ㅣ 반올림 47
김지민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른 아이

'나'는 코덕부티라는 이름으로 SNS에서 활동중이다. 화장하는 것도, 화장해주는 것도, 화장품 교환도 좋아한다. 하지만 남자라서 거래할 때는 누나 대신 나온 척 한다.

어느 날 아버지가 몽골인인 어츠기를이 전학 온다. 어츠기를 역시 화장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와 금새 친해졌다.

체육대회 날, 어츠기를이 계주에서 결승 테이프를 코 앞에 두고 넘어진다. 아이들은 일제히 어츠기를을 비난했다.

'나'도 단체줄넘기를 빼먹는다. 모상형도, 코덕부티도 모두 나라고 생각하며 어츠기를을 찾아가니 나에게 '센비노, 모상형' 이라고 말을 건냈다.

​

벌레를 밟았다

어느 날 인형 뽑기방에서 토끼를 뽑았는데 거기에 벌레가 붙어 있었다. '나'는 벌레를 상자에 넣어 키우기 시작했다. 딱히 귀엽다거나 불쌍해서 그런건 아니었다. '나'는 때로 벌레 더듬이를 라이터로 지지는 등 가혹하게 굴었다.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언제나 '나'에게 규율을 강조하고, 거기서 벗어나면 구타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폭력을 배운건지도 모른다.

강제전학을 당한 건 은규의 팔을 부러뜨렸기 때문이다. 은규는 내가 벌레 같아서 괴롭혔다고 했다. 그 말에 머리가 돌아 계단 난간을 부러뜨려 휘둘렀다.

전학 예정인 학교에서 도서관 사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선생님에게 책 한권을 달라고 했다. 사서 선생님은 오래되고 버려질 책 <변신>을 정성스럽게 수선해서 주었다.

아버지가 또 다시 구타하려하자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밀치고 벌레가 담긴 상자를 들고 집을 뛰쳐 나온다. 그리고 벌레를 풀밭에 풀어주었다.

​

리얼 메리 크리스마스

아빠가 2년 전 회사에서 잘린 뒤 생계가 막막해졌다. 그래서 온 가족이 달려들어 양말 포장일을 했다. 하나 포장하면 10원인 그 일을 하다 양말을 떼다 파는 일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짝퉁 양말을 사지 않았다.

지금은 엄마와 아빠가 곱창을 판다. 역시 장사는 신통치 않다.

친구들과 미팅을 나갔다. 입고 나갈 옷이 마땅치 않아 오만원만 달라고 했지만 아빠는 삼만오천원을 먼저 주며 나중에 만오천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 궁상스러움에 짜증이 났다.

미팅에서 만난 오빠는 밑도 끝도 없이 '사랑한다'고 했다. 그 말에 마음이 달떴지만 그 오빠가 '빌려서 들고 간 명품 가방이 진짜인지' 친구를 통해 물었다는 얘기와, 불쌍한 할머니의 모금함에 대해 퍼부었던 무신경한 말들 덕분에 현실로 돌아온다.

크리스마스 날, '나'는 아빠에게 받은 돈으로 선물을 산 뒤 팔다 남은 곱창을 뎁혀 동생과 나눠 먹으며 부모님을 기다린다.

​

딱지를 사랑한 지구인

진몽은 휴대폰을 딱지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진몽은 SNS 팔로워 수와 좋아요, 그리고 딱지와 소통하는 시간들이 현실의 관계보다 중요했다.

학교에서 휴대폰을 수거할 때 진몽은 딱지를 숨겨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담임에게 걸려 딱지를 빼앗기고 만다.

금단 증상에 시달리던 진몽은 담임선생님 책상 서랍에서 딱지를 훔쳐 달아난다.

​

펜트하우스에 갇힌 날

도박중독에 빠진 아빠를 참지 못한 엄마가 마침내 이혼을 결행한 뒤, 은유와 엄마는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간다. 제일 꼭대기 층이니까 펜트하우스라며 엄마는 씩씩하게 말했다.

그날 집 안으로 고양이 한마리가 뛰어든다. 고양이 주인인 듯한 검은 마스크의 여자는 고양이 이름이 '밤이'라고 했다. 그 여자는 집 안에 한참을 머물며 고양이를 데려가려 했지만 고양이는 침대 밑에서 나오지 않았다. 고양이가 돌아간 것은 다음날이었다.

어느 날 검은 마스크 여자를 다시 만났다. 여자는 온유를 집에 들인 뒤 까르보나라 불닭 볶음면을 대접했다. 그리고 온유의 집에 전에 살던 폭력적인 성향의 남자가 하늘이라는 고양이를 죽인 일, 밤이가 그 집에 간건 하늘이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다는 일 따위를 이야기 했다.

그날 엄마는 하루 종일 마트에서 수박을 팔다가 마트 앞 트럭에서 파는 싼 수박을 사왔다. 엄마와 온유는 수박에 하얀 설탕을 뿌려 나눠 먹었다.

​

작가 김지민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이자 소설가이다. 아이들과 접점이 많아서인지 작품 속 풍경들이 아이들의 정서를 잘 드러내고 있다.

작품을 관통하는 소재는 '폭력'과 '가난'이다. 폭력과 가난에 노출된 아이들은 그 힘에 압도당해 더 중요한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되기 쉽다. 그래서 왕왕 자신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되어 힘을 가졌다고 착각하거나, 가난에서 손쉽게 벗어날 방법에 골몰해 도박이나 한탕주의에 빠져들기 쉽다.

작가는 그런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이 좀 더 가치있는 삶을 영유하길 바라며 소설을 쓴 것 같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765377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도미노 구라파식 이층집 ㅣ 사계절 1318 문고 68
박선희 지음 / 사계절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고생 몽주는 지어진 지 30년이 다 된 구라파식 집에 산다. 집은 처음의 산뜻한 모양새를 잃고 서서히 낡아가고 있는데, 담이 기울었고 테라스 타일이 깨졌으며 마루가 꺼졌다.

집이 낡아감에 따라 가족들도 해체되는 듯 했다. 아버지는 무기력하게 PC방을 운영했고, 엄마는 '낭만'을 찾으며 에스프레소 향에 취해 하루를 보냈다. 오빠 일구네는 분가해 나갔고, 자기 앞가림만 하던 언니는 목하 열애중이다.

몽주는 부쩍 외로움을 타는 할머니를 위해 도현, 무열 등과 함께 마술을 배워 할머니를 즐겁게 해드리려 하는 한편 도서관 사서 꽁지머리와 사귀어 보려 애를 쓴다. 하지만 쉽게 돌아가는 일이 별로 없었으니, 꽁지머리는 자기가 동성애자임을 고백했고 가족들은 저마다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나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 야동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 커피전문점 사장과 불안한 사제관계가 된 엄마, 집안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입양하려하는 오빠네, 그리고 흑인 이슬람 교도와 사귀는 언니.

낡아버린 집을 수리하면 가족들의 끈끈한 유대도 다시 돌아올까 싶어 몽주는 모아둔 돈을 헐어 친구들과 함께 집 수리를 시작하는데... 과연 집이 수리되면 가족들도 정상궤도로 돌아오게 될까?

​

1990년대 초반 잠깐 2층 양옥집에 산적이 있다. 양림동 기독병원 앞이었다. 당시 그 집을 어른들은 이태리식 양옥집, 또는 집장사집이라 불렀던 것 같다. 구라파식 집은 이태리식 집과 또 어떻게 다른 것인지...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비슷비슷한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그 동네는 철거된 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집이 철거되기 직전 동네 분위기는 참 을씨년스러웠다. 지금이야 어느 지역이 재개발된다 하면 한 몫 잡는 경우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재개발로 원주민이 이익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워낙에 낙후된 동네라 땅 값어치도 얼마 안되었기 때문이었을까?

​

<도미노 구라파식 이층집>은 소재가 참 매력적이고 집과 가족을 연계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아이디어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맛깔스러운 소설로 기억되진 못할 듯 하다.

작가가 이야기 속에 풍덩 뛰어들어 한바탕 놀다 나오지 못하고 물가에서 막대기로 조금 지분대다 만 느낌이랄까. 쓰고 싶은 이야기가 쌓이다 결국 터져나와 소설이 되었다기 보다는, 괜찮은 소재와 아이디어로 어찌어찌 책 한권을 엮어낸 그런 느낌이다.

​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711493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