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한동림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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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진형은 애인 인숙과 유령에 대해 이야기 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을 떠올린다. 그날 진형은 빈소를 지척에 두고 낯선 여자와 동침했다. 그 기억은 부끄러움이 되어 진형을 괴롭혔다. 맏손주였던 진형은 숙부를 도와 할머니 염습을 하고 장례를 치른 기억을 떠올린 끝에 인숙에게 유령이 있다고 했다. 인숙은 유방암과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를 생각하며 유령이 있다면 다행이라며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한다.

<귀가>

닷새째 계속된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버스에서 몸이 불편한 중학생 아이와 어머니를 본다. 불현듯 형과 어머니의 기억이 의식에 스며든다.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일을 하며 아들 둘을 키웠다.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았던 어머니지만, 정작 형이 아플 때는 제대로 된 약을 쓰지 못해 형이 불구가 되었다며 일평생 한을 품고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나'를 형으로 착각해 누렇게 변색한 이불을 한사코 물려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불을 불에 태우니 그 안에서 어머니가 감춰둔 돈이 흘러 나왔다. 형은 그 돈은 내 다리 값이라며 서럽게 운다.

<빛 바랜 흑백사진 속의 새벽 새>

사장 면전에 사표를 던진 영훈을 위해 동료 직원들이 송별회를 열어주겠다고 한 곳이 하필이면 창신동 환희였다. 동료들은 나를 대단한 영웅인양 추켜주었다.

그 술집에 대한 기억은 은주와, 그녀를 유다처럼 배신했던 못난 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술집에서 '나'는 억병으로 취했고, 따라온 여자와의 관계도 치루지 못한다.

<피어나는 산>

황학산 성불암에서 평섭은 목탁을 깎으며 장영감의 지리한 과거사를 듣는다. 겨울은 불상 조각장이들에게 긴 휴식과 정착을 의미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 휴식기에 들어갈 참이다. 불상을 깎는 평섭의 의식 속으로 그림에 미쳐버린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저주하던 어머니의 기억 따위가 떠올랐다.

그러다 한 여자가 작업장으로 들어왔다. 여자는 추위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는데 산 꼭대기로 가겠다는 둥, 백화산으로 데려가 달라는 둥 횡설수설한다. 평섭은 여자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쉬게 해주며 상념을 이어갔다.

다음 날 여자는 자취를 감추었는데 덮고 있던 담요를 관세음보살상에게 씌워 놓고 떠났다. 담요를 치워보니 관세음보살상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난>

안나푸르나 정상에 섰던 현숙이 훈련을 위해 산에 올랐다가 조난을 당한다. 의식이 점차 희미해지며 시시포스의 신화와, 안나푸르나 등정에서 함께 캠프를 나섰다 실종된 박선배의 기억 따위가 떠오른다.

<변태 시대>

삼류영화관에서 그는 <빠삐용>으로 추정되는 영화를 보고 있다. 주인공은 탈출을 시도하지만 쉽지 않고, 옆자리에 호모가 앉아 추근댄다. 그의 의식이 과거로 향한다. 도로에서 들렸던 기관총 소리, 아내와 태중의 아이가 사망한 기억.

탈출에 실패한 영화 속 주인공이 스크린에 비추고, 그 스크린을 나방 한 마리가 영사기에 비춰 가로 막는다.

<핏빛 바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말에 '나'는 혼란을 느낀다. 아버지는 분명 내 손으로 죽였는데 어떻게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말인가. 정신과의사를 앞에 두고 '나'는 기억을 더듬는다. 집을 나간 어머니, 형과 '나'를 학대했던 아버지. 형은 나를 아버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끝내 집을 나갔고, 나는 견디다 못해 아버지를 죽였다. 그리고 최근 죄책감에 형사에게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실토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살아있다니.

의사는 내가 아버지를 죽이는 상상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틈입하는 기억. 찾아낸 형, 그리고 형에게 학대받았음이 분명한 조카들. '내'가 죽인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형이었단 말인가.

<혹서의 계절>

며느리 옥순이 마을 앞 횡단보도에서 화물트럭에 치어 숨진 뒤 아들은 손자와 손녀에게 함부로 하며 자신을 망가뜨렸다. 그날 며느리의 죽음을 지켜본 목격자들은 자살 같다고 했다. 김노인은 억장이 무너졌다.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빵공장을 빌려 한여름에 땀을 바가지로 쏟아가며 일을 했지만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 며느리는 그런 현실에 절망에 트럭에 몸을 던졌을까.

아이들과 아들, 그리고 김노인이 다시 희망을 부여잡고 빵공장을 열어 빵을 만들다 김노인은 깨달았다. 과로와 탈수가 현기증을 일으켜 며느리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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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림 소설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에 과거의 한 장면이 틈입하며 시작된다. 과거는 대게 아팠던 기억들인데 상처가 벌어진 채로 잊혀지거나 무의식 속에 묻혀있던 순간들이다. 그 과거는 현재로 이어져 있으므로 어느 때고 상기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띠고 있다. 소환된 과거는 현재와 의식 속에서 뒤섞인다. 현실과 과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 경계의 어느 부분을 한동림은 소설로 포착해낸다.

과거를 반추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때로 과거는 윤색되거나 왜곡되어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과 만나 격렬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진실이 드러나고, 재해석되며, 현재와 화해를 시도한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작품 해설에 앞서 발터 벤야민을 인용한다.

과거는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어떤 은밀한 목록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한편, 한강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한강은 한동림의 동생이다)

바라보는 관점은 다소 다르지만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그 지점에서 이뤄지는 진지한 성찰과 탐구가 우리를, 그리고 이 사회를 좀 더 옳은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것 아닐까 싶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90736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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