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간염에 걸린 열다섯살의 미하엘은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구토를 한다. 이를 본 서른여섯살의 한나 슈미츠는 소년을 씻겨주고, 성숙한 여인의 에로틱한 모습을 보게 된 미하엘은 한나의 방에서 도망친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오라는 어머니의 말에 다시 한나의 집을 찾은 미하엘은 한나를 도와주다가 석탄가루를 흠뻑 뒤집어 쓰게 되고, 샤워를 마친 후 둘은 관계를 맺게 된다.

어른 세계의 비밀을 알게 된 미하엘은 고등학생이 되고 병을 이겨낸 후 또래의 남자애들과 같은 치기어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이런 점이 여학생들에게 호감으로 작용한다. 한나는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줄 것을 요청하고, 책을 읽어준 후 관계를 맺는 것이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된다. 고등학생이 된 후 예전과 달리 또래와의 생활에 시간을 할애하는 미하엘은 어쩐지 자신이 한나를 배신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어느날 수영장에서 놀고있는 그를 한나가 찾아온 것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미하엘은 한나가 자신을 떠난 이유가 자신이 한나를 부정하고 급우들과의 생활에 눈을 돌린 배신행위 때문이 아닐까 짐작은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그녀가 떠나버렸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으며, 상실감을 안고 살아간다.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게 된 미하엘은 나치 전범 재판 세미나 그룹에 참석하는데 법정에서 피고 중 한 명이  한나인 것을 알게 된다. 한나는 과거 나치 수용소의 감시원이었는데 유대인들을 감금한 교회에 폭격으로 불이 붙었으나, 잠긴 문을 열어주지 않고 수백명이 타죽게 방치한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한나는 전체적인 재판 진행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종종 불리한 진술을 하고 이에 함께 기소된 다른 여자 간수들이 그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다. 증인인 마을 주민들도 자신들이 문을 열어줄 수도 있었으나 하지 못했던 부담감을 덜기 위해 한나가 모든 행위의 책임자였던 것으로 상황을 몰아간다. 결국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도 있었던 보고서를 누가 썼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필적감정을 통해 한나는 혐의를 벗을 수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녀는 모든 사건을 자신이 주도하였다고 시인함으로서 종신형을 받게된다.

미하엘은 문득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고 경악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한나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가 남긴 쪽지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자리를 비웠다며 화를 내었고, 전차 차장으로 승급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를 떠났던 것이었다. 그녀가 책을 읽어달라고 한 이유도, 재판 과정중의 의아한 행동들도, 필적감정을 거부한 것도 모두 같은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미하엘은 이 모든 사실을 재판관에게 말해야 하는지 아니면 한나의 의사를 존중할 것인지 갈등하게 되고 철학자인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결국 그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 평범한 생활을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결혼생활은 파탄나고, 그는 한나에게 책을 읽어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기 시작한다. 수감생활 중 글을 배운 한나가 미하엘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그는 답장을 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흘러 한나가 감형받아 석방이 결정되고 마침내 출감하는 날 미하엘은 한나를 찾아가지만 한나는 그날 새벽에 자살하여 생을 마감한다. 미하엘은 그녀의 방에서 자신의 어린시절 사진을 발견하고 단 한순간도 한나는 자신을 잊지 않았으나, 자신은 그런 그녀를 의심하고 부인해왔다는 자각에 괴로워한다.

 

15세 소년과 36세 여성의 성적인 관계라는 자극적인 설정 자체는 무척 위험스러워 보이지만 외설로 흐르지는 않는다. 이는 한나의 삶 전반이 문맹(약점)을 감추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감정에 충실하는 등 일면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 재판 과정 중 한나를 주범으로 몰아가는 다른 피고들과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전쟁은 모든 이가 피해자라는 잘못된 결론으로 갈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설정이지만, 작가는 이를 훌륭하게 피해 간다.

한나는 재판장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럼 재판장님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원망이나 질책이 아닌 정말로 알 수 없어서 묻는 물음에 재판장은 지극히 피상적인 대답만을 할 뿐이다. 작가는 '독자인 당신은 어떻게 했겠습니까'라고 묻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의도가 깔려있는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미하엘이 잠깐 만났던 여자 중 한명은 미하엘에게, 당신의 이야기에는 어머니 얘기가 없다는 말을 한다. 실제로 소설 자체에도 어머니는 한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한다는 장면 외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또한 아버지에게 한나의 문맹 사실과 관련하여 조언을 구하고 아버지는 그대로 두거나 직접 얘기하는 방법을 권유하지만, 미하엘이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 방법 모두 아니었고 그 후로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인상깊었던 구절

 

o 어릴적 미하엘의 생각

"왜일까? 왜 예전엔 아름답던 것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단지 그것이 추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느닷없이 깨지고 마는 것일까? 상대방이 그동안 내내 애인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왜 행복한 결혼 생활의 추억은 망가지고 마는 것일까? 그런 상황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동안은 행복했는데! 마지막이 고통스러우면 때로는 행복에 대한 기억도 오래가지 못한다. 행복이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통을 잉태한 것들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끝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일까? 의식적인 고통이든, 무의식적인 고통이든 간에? 그러면 무엇이 의식적인 고통이고 무엇이 무의식적인 고통인가?"

 

o 한나의 문제로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아버지와의 대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는 것보다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 돼."

"나중에 가서 그들 스스로 그로 인해 행복해질 경우에도 말인가요?"

"우리는 지금 행복이 아니라 품위와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네가 서술한 상황이 그 사람에게 어쩌다가 생긴 것이거나 아니면 유전적인 것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라면 넌 당연히 행동을 해야 한다. 네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이 좋은 건지 알고 있고 그 사람이 그에 대해 눈을 뜨도록 해주어야 한다. 물론 최종 결정은 본인에게 맡겨두어야 한다. 하지만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해. 그사람과 직접 말야. 그 사람 등 뒤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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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날 - 제13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정유리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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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주인공 치즈는 교사인 엄마가 중국으로 간 것을 계기로 도쿄의 먼 친척인 깅코 할머니의 집에서 살게 된다. 대학에 가지 않고 프리터로 일하는 그녀에게는 요헤이라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서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이로 지내고 있다. 요헤이와 헤어질 것을 예감하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 궁금해하던 때에 요헤이가 바람을 피우고 둘은 헤어진다.

역에서 매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후 후지타에게 반해 사귀게 되고 그 무렵 깅코할머니도 호스케 할아버지와 연애를 한다. 할머니 집에서 셋이서 저녁을 먹기도 하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새로운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나타나고 그 순간 치즈는 이별을 예감한다.

후지타가 떠나간 후 임시직으로 일하던 직장에서 정사원 제의를 받은 치즈는 사내 기숙사로 옮기면서 깅코할머니의 집을 떠난다.

 

제136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으로, 딱히 사건이라 할만한 것은 없고 일년간 깅코할머니 집에서의 생활과, 할머니 집을 떠난 후 전철을 타고 그곳을 지나가는 구성이다. 치즈는 아직 사회에 온전히 발을 내딛은 상태가 아닌 불안한 나이이고, 깅코 할머니는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다. 그 둘이 한 공간에 살면서 천연덕스럽게 견제하고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치즈가 집을 떠나던 날 할머니는 눈물을 내비치고 치즈는 그런 할머니에게 "울지 마요"라는 말로 밖에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관계를 맺게 되면 언젠가 관계가 끝날 것을 미리 예감이라도 하는 듯 그 사람의 사소한 물건을 훔쳐 보관하는 모습, 마음껏 화를 내고 싶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며 아슬아슬 균형을 잡는 모습들을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가 썩 훌륭하다.

곧 죽을것 처럼 울고 불고 감정의 과잉상태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소설로 옮겨 쓰는 걸 보면 유독 불쾌해지는 나이기에 담담하게 치즈와 깅코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도 호감이 간다. 김애란의 소설과 비슷한 분위기도 느껴졌고, 아오야마 나나에의 다른 소설도 읽고 싶어졌다.

누군가 볼만한 소설책을 권해 달라고 하면 단연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과 이문구의 <우리동네>중 하나를 권해왔었는데, 앞으로는 아오야마 나나에의 <혼자 있기 좋은 날>이 추가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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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탑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
P.D. 제임스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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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서 이제 회복된 달글리시 경감이 옛 친구인 배들리 신부로부터 직업상 도움을 구하는 편지를 한 통 받는다. 신부를 만나기 위해 요양원에 찾아갔지만 이미 신부는 심장마비로 사망한 뒤였다.

신부가 기거하고 있는 요양원의 책임자는 윌프래드 앤스티라는 사람으로 몸이 경직되는 병에 걸렸다가 루르드에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기적적으로 몸이 회복된 인물이다. 이후 그는 요양원을 건설하여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을 돌보며 매년 두 차례 루르드 성지순례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정상태가 악화되어 요양원을 신탁회사에 넘기거나 매각하는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다. 요양원은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과거가 석연치 않은 종사원들이 고용되어 있는데, 의사 에릭 휴슨은 과거 16세의 여환자와 문제가 있어 협회에서 제명당한 적이 있는 인물이며, 그의 아내 매기는 요양원 생활에 넌더리를 내고 있는 알콜 중독자이다. 한편 간호사 헬렌 레이너는 의사와 불륜관계이며, 간호부장 도트 목슨 역시 과거 환자를 학대한 이유로 병원에서 해고된 전력이 있고, 잡역부 필비는 전과자이다.

신부의 방을 조사하던 달글리시는 신부가 죽었을 당시에 영대를 두르고 있었다는 점(고해가 끝나면 영대를 벗는다), 책상의 시건장치가 파손되고 최근 일기가 없다는 점, 그리고 추악한 편지 한 통이 발견되었다는 점 등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신부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니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

신부가 죽기 얼마 전, 빅터 홀로이드라는 환자 하나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데 이 사건 역시 전직 외교관인 줄리어스 코트가 남자 간호사인 데니스 러너의 알리바이를 증명하고 있어 자살로 결말이 나고 만다.

그후로도 요양원장인 앤스티가 검은탑에서 불에 타 죽을 뻔 하고, 환자 그레이스 윌슨이 사망하며 의사의 아내 매기가 자살한다. 어느것 하나 증거가 없고,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달글리시는 방관자적 태도와 직업적인 신념 사이에서 방황한다.

유산으로 받은 신부의 장서를 꾸려 집으로 돌아가려던 달글리시는 뒤늦게 신부에게 도착한 편지를 통해 신부가 자신과 상담하고자 했던 일이 범죄와는 관련 없는 일이었음을 알게 되나, 신문에서 우연히 후원자 명부를 잃어버렸다는 앤스티의 광고에서 그레이스 윌슨의 사망 원인을 알아차리게 된다. 명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레이스 윌슨 뿐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헤로인 제조에 요양원의 생산시설을 이용하고 접선 루트로 루르드 성지순례를 이용하려 했던 줄리어스 코트와 그의 종범 데니스 러너의 소행으로 밝혀지고 달글리시는 다시금 자신의 직업으로 되돌아오지만, 헤로인 밀매와 범죄를 연결짓는 추리의 끈이 너무 허술해 아쉬움이 남는다.

 

1972년 작인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를 지난해 여름에 읽었는데 추리소설의 명쾌함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추천할 만한 책이 아니다. 주인공 코델리아는 탐정사무소를 물려받아 이제 막 일을 시작했을 뿐이고, 신출내기가 겪게 마련인 감정의 동요와 불안함을 작가는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추리 과정도 대단원을 향해 명쾌하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동업자의 자살과 그로테스크하고 도착적인 방식으로 죽은 사체 등이 다른 추리소설과 달리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제목 역시 원제인 An Unsuitable Job For A Woman를 직역하자면 <여자에게 맞지 않는 직업>정도가 될테니, 애초에 타고난 탐정의 이야기를 쓸 생각은 없었던 듯 하다.

지난해 여름 송도쪽의 지하철 역사 안팎에서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를 읽었을 때의 한가했던 기분을 맛보고 싶어, 1975년에 발표된 <검은탑>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분위기는 비슷하다. 400페이지에 걸쳐 작가가 집중하는 것은, 역시나 추리보다는 인간의 양면성 혹은 인간의 어두운 면이다. 예를 들어 요양원장 앤스티는 자신의 재산을 희생해 요양원을 운영하긴 하지만 자신의 침실은 쾌적하고 안락하게 꾸미는가 하면 도색잡지의 콜렉션을 가지고 있고, 환자인 에슐리 홀리스 역시 자신의 불치병으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가엾은 여자이나 남편의 미래를 빌어주기 보단 자신을 남편이 다시 받아들여 살아야 한다고 믿는 약간의 이기적인 면도 있다. 탐정 역시 날카로운 추리와 정의에 대한 신념을 가진 전형에서 벗어나 삶의 어두운 면에 괴로워하고 현재의 일에 회의를 품곤 한다. 책 말미의 역자 후기에서도 그녀가 자부심을 가지고 써내려가는 것은 '철저히 훈련받은 전문경찰관의 수완과 완전한 아마추어의 순수한 노력'을 중심으로 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본격문학으로의 미스터리라고 하니,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을 그녀의 작품에서 기대했다가는 대실망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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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 베이비
가네하라 히토미 지음, 정유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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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4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가 아무런 여과도 없이 자의식을 줄줄 써내려간 쓰레기 같은 글이다. 인간에 대한 통찰도, 글쓰기에 대한 진지함도, 소수자에 대한 어떠한 관심도 없는, 화장실 낙서에 살을 좀 붙여놓은 수준이라고 하면 될까.

 

세 명의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 아야는 22살의 호스티스로 단지 집세를 아끼기 위해 남자 대학동창인 호쿠토와 동거를 하고 있다. 둘 사이 성적인 관계는 없다. 어느날 나간 미팅 자리에서 도모코란 여자가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스스럼 없이 아야에게 밝히고, 화장실에서 아야는 자기도 알 수 없는 충동에 아야와 성적 관계를 먼저 제안한다. 어느날 호쿠토의 직장 동료인 무라노에게 반한 후 절망감에 자신의 허벅지에 과도를 꼽는 자해를 하고, 무라노에게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차라리 무라노가 자기를 죽여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호쿠토에게 닭과 토끼를 구해다 주고 처참하게 동물들을 죽인다.

호쿠토는 생후 6개월된 아이를 유괴하여 성적 도착을 일삼고, 나중에는 아야가 구해오는 닭, 토끼와 수간을 한다.

무라노는 32세의 이혼남으로 모든 것에 냉소적이며 아야의 성적 제안에도 오케이, 결혼하자는 제안에도 오케이 만사 오케이이지만 마음만은 열지 않는다.

 

먼저 레즈비언이 어떤의미에서 보자면 커밍아웃을 미팅자리에서 술먹다가 불쑥 꺼내는 것부터 말도 안되고, 한번도 그런 경험이 없는 아야가 화장실에서 먼저 제안을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과도로 자해를 한 후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얼굴을 적실 정도이지만 그 순간에도 생에 대한 일말의 관심도 없이 딴 생각을 해댄다. 유괴해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생후 6개월된 아이를 상대로 호쿠토가 더러운 짓을 하고 있는데도 차라리 죽여버리라고 말하고, 심지어는 동물을 구해다 주며 수간을 유도한다.

호쿠토라는 놈은 그저그런 성도착이라고 애써 넘어간다고 해도, 무라노는 32세의 이혼남이다. 이혼을 했다는 것은 온갖 번잡한 절차를 겪어보았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냉소적인 성격이라는 이유로 아야의 결혼 제안에 바로 좋다는 말이 나올까.

 

물론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은 있다. 섹스, 자해, 아동학대 및 유아성애, 동물학대 등 온갖 자극적이고 추잡한 행동들이 나오지만 그 이상의 것들을 등장 인물들이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자의식이 스스로 출산한 광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떤 절망에서 나온 것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야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한 적도 없고, 단지 취직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스티스로 일한다는 설정이다. 그런 그녀가 냉소적인 무라노와 사랑에 빠진 후 거절당할 것이 두려운 상황이 곧바로 자해와 죽음으로 이끌려 간다는 것은 도무지 억지스럽다.

 

역자 역시 이러한 비난을 피해갈 수는 없다. 역자 정유리는 이러한 쓰레기 같은 글을 번역한 데 대하여 변명부터 늘어놓는다.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가네하라 히토미의 두번째 작품이라는 이유로 읽어보지도 않고 번역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번이고 책을 집어던지고 울었다고 한다. 불쾌감 거부감에 울었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등장인물들이 애처로와 울었다고 하는데, 유괴된 6개월된 갓난아이 때문에 울었다는 것이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말미에 부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묘사에 눈을 잃지도, 눈을 돌리지도 말고, 처절하도록 고독하고 나약한 영혼의 절규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달라고 부탁한다. 6개월난 갓난아이를 집에 가둬두고 성적 대상으로 삼는 고독한 호쿠토, 닭의 목을 비틀어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집어넣고 토끼의 얼굴 껍질을 벗겨내고 귀를 뽑아내는 주인공 아야의 나약한 영혼의 절규.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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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코.초상화 범우 사르비아 총서 603
고골리 지음, 김영국 옮김 / 범우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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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외투>

 

1839~1841년 집필, 1843년 1월 출판.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볼품 없는 외모의 만년 구등관이다. 동료와 상사들이 그를 한껏 조롱해도 정서하는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며 해나갈 뿐이고, 장난이 너무 심해지면 그때서야 "가만 좀 둬요. 왜 날 못살게 굴어요?" 할 뿐이다. 혹독한 추위를 나기 위해선 외투가 꼭 필요한데 그의 낡은 외투는 이제 더 이상 수선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먹을 걸 줄여 가며 내핍생활을 거듭한 결과 새 외투를 맞춘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벅차오르는 만족감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나 상사가 초대한 모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날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강도를 만나 외투를 빼앗기고 만다. 파출소 순경은 그에게 구(區)경찰서장에게 가보라고 하고, 다음날 찾아간 구경찰서장은 그를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고 오히려 다른 질문으로 괴롭힌다. '유력한 인사'를 찾아가보라는 동료의 말에 바슈마치킨이란 사람을 찾아가지만 그는 죽마지우 앞에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할 양으로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의 어려움은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호통만 쳐서 되돌려보낸다.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집으로 돌아가 열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고, 그 뒤로 시의 변두리에는 외투를 강탈하는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돈다. 정부의 집으로 향하던 바슈마치킨 역시 유령을 만나는데 그 유령은 다름아닌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였으며, 바슈마치킨의 외투가 가장 잘 들어맞았는지 유령은 그 이후로 출몰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유령들이 출몰한다고 수군거렸는데 그 유령의 실체는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의 외투를 빼앗은 강도였던 것 같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푸쉬킨의 <역참치기>와 아울러 러시아 문학에 처음 나타난 경향으로, 그 후의 러시아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는 모두 <외투>에서 나왔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또한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이 <외투>의 영향을 받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한다.

정서하는 일에 만족하는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의 유령은 바슈마치킨을 만난 이후엔 나타나지 않지만, 강도는 여전히 외투를 빼앗고 있고 힘 없는 사람들 사이에 유령으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은 아이러니이다. 또, 친절하고 온화한 성격인 바슈마치킨이 직책이 높아지자 그 직책에 맞게 변모하여 호통만을 치는 설정은 사람의 성정은 천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처한 조건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아카키 아카키에비치가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기 위해서 파출소 순경부터 유력인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강도를 당하였을 때 어디에 가서 호소하는 것이 적당한지에 대한 답이 없으며 카프카의 <성> 역시 <외투>에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

 

1833~1835년 집필.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어느날 빵 속에 코가 들어있는 것을 알고 기겁을 하는데, 그 코는 다름아닌 팔등관 코발로프의 것임을 알아차린다. 당황한 이발사는 코를 손수건에 싸서 네바 강에 버리고 만다. 한편,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본 코발로프는 자신의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이 밋밋한 것을 보고 기겁을 한다. 경시총감을 찾아가 코를 찾아달라고 말하기 위해 집을 나선 코발로프는 뜻밖에도 자신의 코가 오등관의 차림새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본래 자리로 돌아와줄 것을 부탁하지만 코는 시치미를 딱 떼고 도망치고 만다. 신문에 광고를 내어 찾아볼까 생각했지만 신문의 평판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경찰서장 역시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는다. 어느날 경찰관이 잃어버린 코를 잡아와 코는 다시 찾게 되지만 다시 붙일 방법이 없다. 유력한 용의자인 알렉산드라 포드토치나 부인에게 따져 묻는 편지를 보내보지만 답장을 읽어보니 그 부인도 코를 어찌한 것 같지는 않다. 이 기괴한 사건은 장안을 휩쓸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다가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코발로프는 자신의 코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코발로프도 전의 생활로 돌아가 유쾌하게 거리를 쏘다닌다.

 

역자 해설을 보면 이 이야기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고 한다. 온갖 사물에 엉켜 붙은 넌센스를 그로테스크한 수법으로 묘사한 해학 문학이라는 설, 코에 직위의 상징성을 인정하여 주인공 코발로프의 추한 출세욕을 보여준 것이라는 설, 코에 성적 상징성을 인정하여 코의 소실(消失)이라고 하는 그로테스크한 사건은 성적 컴플렉스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프로이트적 해석 등.

내 생각에는 코발로프가 코를 잃어버린 후, 귀가 없다거나 혹은 차라리 팔이나 다리 하나가 없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코발로프는 자신의 직위를 여러사람에게 떠벌리는 것을 좋아하며 그 직위를 이용하기를 염원한다. 그런 코가 오등관의 차림을 하고 돌아다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욕망이 어느덧 실체화 하여 스스로 현현(顯現)한 상태가 된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욕망을 상징하는 코는 더 이상 코발로프의 의지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인다.

 

<초상화>

 

1833~1834년 집필, 1835년 발표. 개작 후 1842년 발표.

 

어느날 가난한 화가 차르트코프는 시장에서 초상화 한 점을 사게 된다. 어쩐지 미완성품인 것 같았으나 초상화 속 인물의 눈은 이상한 생기를 내뿜고 마치 보는 사람을 노려보는 것 같다. 초상화 때문에 악몽에 시달린 다음 날 집세 독촉을 위해 방문한 경찰서장이 액자틀을 세게 움켜쥐는 바람에 그 안에서 금화가 한무더기 발견된다. 돈문제만 해결되면 예술을 위한 노력에 매진할 것이란 평소의 생각과 달리 차르트코프는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번듯한 아틀리에를 꾸민 후 돈많은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가며 명성을 얻는다. 인물에 내재하는 본래의 매력 따위와 상관없이 그림을 의뢰한 자만을 만족시켜주다 보니 그의 재능은 시들어가고 화풍은 틀에 박히고 만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그에 반비례해 더욱 높아만 가는데, 어느날 같이 수학했던 옛 동료의 그림을 평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화랑에서 수년간을 오로지 예술을 위해서 정진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만다. 자신도 마음을 다잡고 그런 그림을 그리려 해보지만 이미 시들어버린 재능과 굳어버린 화풍을 되돌릴 수가 없다. 비뚤어진 그는 수많은 돈을 써 훌륭한 작품들을 사다가 모조리 찢어버리는 일을 거듭하던 어느날 죽고 만다.

시간이 흘러 이 초상화가 경매에 나오는데 경매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한다. 이 때 한 젊은 화가가 경매를 중지시켜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림의 내막을 들려준다. 초상화의 모델은 지독한 고리대금업자로 이상하게도 그의 돈을 빌린 사람들은 모두 불행해지고 만다. 자신의 아버지는 고리대금업자로부터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요청받고 훌륭한 모델이라는 생각에 작업에 착수하지만 아버지 역시 그림이 완성되어감에 따라 점차 비뚤어지게 된다. 어느날 제자의 성공을 참지 못한 아버지는 콩쿨에 제자와 더불어 작품을 출품하고, 그 작품이 1등을 차지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한 성직자가 그 작품에는 악마적인 것이 깃들여져 있으며 화가의 손이 부정한 기분에 조종되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평을 한다. 모든 사람은 그 성직자의 말이 사실임을 납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그림의 인물들 눈이 모두 고리대금업자의 눈과 똑같은 것이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초상화를 없애버리려 하지만 절친한 친구가 안타까운 마음에 그 걸작을 가져가고 아버지는 수도원에 들어가 참회를 거듭하여 결국은 다시 붓을 손에 쥘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디선가 그 초상화를 본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찢어 없애줄 것을 부탁하고, 15년여가 흐른 후 그 초상화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지금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바로 그 작품이라는 것이다.

 

역자 해설에는 따르면 개작하기 전 작품에서는, 초상화의 고리대금업자는 적그리스도의 화신이며 화가가 경건한 수도사가 되어 수년간에 걸친 기도와 봉사의 결과 마침내 악마의 마력을 이겨내고, 초상화의 노인상이 사라지고 그 그림이 풍경화로 변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악마가 옮겨진 살아있는 그림이라는 모티프는 낭만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속적인 것으로서 고골의 특질도, 러시아의 특질도 아니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고골의 소설을 읽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고골적인 특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차르트코프가 초상화를 그리면서 고객의 욕구에 맞추어 나가며 자신의 재능을 갉아먹는 부분은 스티븐 킹의 <미저리>가 생각났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5269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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