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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코.초상화 ㅣ 범우 사르비아 총서 603
고골리 지음, 김영국 옮김 / 범우사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외투>
1839~1841년 집필, 1843년 1월 출판.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볼품 없는 외모의 만년 구등관이다. 동료와 상사들이 그를 한껏 조롱해도 정서하는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며 해나갈 뿐이고, 장난이 너무 심해지면 그때서야 "가만 좀 둬요. 왜 날 못살게 굴어요?" 할 뿐이다. 혹독한 추위를 나기 위해선 외투가 꼭 필요한데 그의 낡은 외투는 이제 더 이상 수선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먹을 걸 줄여 가며 내핍생활을 거듭한 결과 새 외투를 맞춘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벅차오르는 만족감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나 상사가 초대한 모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날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강도를 만나 외투를 빼앗기고 만다. 파출소 순경은 그에게 구(區)경찰서장에게 가보라고 하고, 다음날 찾아간 구경찰서장은 그를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고 오히려 다른 질문으로 괴롭힌다. '유력한 인사'를 찾아가보라는 동료의 말에 바슈마치킨이란 사람을 찾아가지만 그는 죽마지우 앞에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할 양으로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의 어려움은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호통만 쳐서 되돌려보낸다.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집으로 돌아가 열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고, 그 뒤로 시의 변두리에는 외투를 강탈하는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돈다. 정부의 집으로 향하던 바슈마치킨 역시 유령을 만나는데 그 유령은 다름아닌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였으며, 바슈마치킨의 외투가 가장 잘 들어맞았는지 유령은 그 이후로 출몰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유령들이 출몰한다고 수군거렸는데 그 유령의 실체는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의 외투를 빼앗은 강도였던 것 같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푸쉬킨의 <역참치기>와 아울러 러시아 문학에 처음 나타난 경향으로, 그 후의 러시아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는 모두 <외투>에서 나왔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또한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이 <외투>의 영향을 받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한다.
정서하는 일에 만족하는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의 유령은 바슈마치킨을 만난 이후엔 나타나지 않지만, 강도는 여전히 외투를 빼앗고 있고 힘 없는 사람들 사이에 유령으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은 아이러니이다. 또, 친절하고 온화한 성격인 바슈마치킨이 직책이 높아지자 그 직책에 맞게 변모하여 호통만을 치는 설정은 사람의 성정은 천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처한 조건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아카키 아카키에비치가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기 위해서 파출소 순경부터 유력인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강도를 당하였을 때 어디에 가서 호소하는 것이 적당한지에 대한 답이 없으며 카프카의 <성> 역시 <외투>에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
1833~1835년 집필.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어느날 빵 속에 코가 들어있는 것을 알고 기겁을 하는데, 그 코는 다름아닌 팔등관 코발로프의 것임을 알아차린다. 당황한 이발사는 코를 손수건에 싸서 네바 강에 버리고 만다. 한편,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본 코발로프는 자신의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이 밋밋한 것을 보고 기겁을 한다. 경시총감을 찾아가 코를 찾아달라고 말하기 위해 집을 나선 코발로프는 뜻밖에도 자신의 코가 오등관의 차림새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본래 자리로 돌아와줄 것을 부탁하지만 코는 시치미를 딱 떼고 도망치고 만다. 신문에 광고를 내어 찾아볼까 생각했지만 신문의 평판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경찰서장 역시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는다. 어느날 경찰관이 잃어버린 코를 잡아와 코는 다시 찾게 되지만 다시 붙일 방법이 없다. 유력한 용의자인 알렉산드라 포드토치나 부인에게 따져 묻는 편지를 보내보지만 답장을 읽어보니 그 부인도 코를 어찌한 것 같지는 않다. 이 기괴한 사건은 장안을 휩쓸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다가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코발로프는 자신의 코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코발로프도 전의 생활로 돌아가 유쾌하게 거리를 쏘다닌다.
역자 해설을 보면 이 이야기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고 한다. 온갖 사물에 엉켜 붙은 넌센스를 그로테스크한 수법으로 묘사한 해학 문학이라는 설, 코에 직위의 상징성을 인정하여 주인공 코발로프의 추한 출세욕을 보여준 것이라는 설, 코에 성적 상징성을 인정하여 코의 소실(消失)이라고 하는 그로테스크한 사건은 성적 컴플렉스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프로이트적 해석 등.
내 생각에는 코발로프가 코를 잃어버린 후, 귀가 없다거나 혹은 차라리 팔이나 다리 하나가 없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코발로프는 자신의 직위를 여러사람에게 떠벌리는 것을 좋아하며 그 직위를 이용하기를 염원한다. 그런 코가 오등관의 차림을 하고 돌아다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욕망이 어느덧 실체화 하여 스스로 현현(顯現)한 상태가 된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욕망을 상징하는 코는 더 이상 코발로프의 의지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인다.
<초상화>
1833~1834년 집필, 1835년 발표. 개작 후 1842년 발표.
어느날 가난한 화가 차르트코프는 시장에서 초상화 한 점을 사게 된다. 어쩐지 미완성품인 것 같았으나 초상화 속 인물의 눈은 이상한 생기를 내뿜고 마치 보는 사람을 노려보는 것 같다. 초상화 때문에 악몽에 시달린 다음 날 집세 독촉을 위해 방문한 경찰서장이 액자틀을 세게 움켜쥐는 바람에 그 안에서 금화가 한무더기 발견된다. 돈문제만 해결되면 예술을 위한 노력에 매진할 것이란 평소의 생각과 달리 차르트코프는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번듯한 아틀리에를 꾸민 후 돈많은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가며 명성을 얻는다. 인물에 내재하는 본래의 매력 따위와 상관없이 그림을 의뢰한 자만을 만족시켜주다 보니 그의 재능은 시들어가고 화풍은 틀에 박히고 만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그에 반비례해 더욱 높아만 가는데, 어느날 같이 수학했던 옛 동료의 그림을 평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화랑에서 수년간을 오로지 예술을 위해서 정진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만다. 자신도 마음을 다잡고 그런 그림을 그리려 해보지만 이미 시들어버린 재능과 굳어버린 화풍을 되돌릴 수가 없다. 비뚤어진 그는 수많은 돈을 써 훌륭한 작품들을 사다가 모조리 찢어버리는 일을 거듭하던 어느날 죽고 만다.
시간이 흘러 이 초상화가 경매에 나오는데 경매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한다. 이 때 한 젊은 화가가 경매를 중지시켜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림의 내막을 들려준다. 초상화의 모델은 지독한 고리대금업자로 이상하게도 그의 돈을 빌린 사람들은 모두 불행해지고 만다. 자신의 아버지는 고리대금업자로부터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요청받고 훌륭한 모델이라는 생각에 작업에 착수하지만 아버지 역시 그림이 완성되어감에 따라 점차 비뚤어지게 된다. 어느날 제자의 성공을 참지 못한 아버지는 콩쿨에 제자와 더불어 작품을 출품하고, 그 작품이 1등을 차지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한 성직자가 그 작품에는 악마적인 것이 깃들여져 있으며 화가의 손이 부정한 기분에 조종되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평을 한다. 모든 사람은 그 성직자의 말이 사실임을 납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그림의 인물들 눈이 모두 고리대금업자의 눈과 똑같은 것이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초상화를 없애버리려 하지만 절친한 친구가 안타까운 마음에 그 걸작을 가져가고 아버지는 수도원에 들어가 참회를 거듭하여 결국은 다시 붓을 손에 쥘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디선가 그 초상화를 본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찢어 없애줄 것을 부탁하고, 15년여가 흐른 후 그 초상화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지금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바로 그 작품이라는 것이다.
역자 해설에는 따르면 개작하기 전 작품에서는, 초상화의 고리대금업자는 적그리스도의 화신이며 화가가 경건한 수도사가 되어 수년간에 걸친 기도와 봉사의 결과 마침내 악마의 마력을 이겨내고, 초상화의 노인상이 사라지고 그 그림이 풍경화로 변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악마가 옮겨진 살아있는 그림이라는 모티프는 낭만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속적인 것으로서 고골의 특질도, 러시아의 특질도 아니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고골의 소설을 읽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고골적인 특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차르트코프가 초상화를 그리면서 고객의 욕구에 맞추어 나가며 자신의 재능을 갉아먹는 부분은 스티븐 킹의 <미저리>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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