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의 거짓말
제수알도 부팔리노 지음, 이승수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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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섬 안의 튼튼한 요새에 국왕 암살 음모에 가담한 죄로 네 명의 죄수가 수감되어 있다. 다음 날 단두대에서 처형되기로 예정된 그들에게 콘살보 데 리티스 사령관이 하나의 제안을 한다. 네 명중 한명이라도 '불멸의 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배후 인물을 밀고하면 네 명 모두를 살려주겠지만, 모두가 밀고하기를 거부한다면 예정대로 처형하겠다는 것이다. 나 자신은 X표를 적어넣어 신념을 지키더라도 누군가 한 명만이라도 배신한다면 삶은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이미 신념을 배신하는 것이다. 모두가 X표를 적어 넣는다면 죽음을 맞게 될 것이고, 신념을 지키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자신들의 신념이 죽음을 넘어설 만큼 확고부동해야 한다. 사람이 한 일에 일말의 의심도 없을 수 있을 것인가? 교묘한 제안을 남겨둔 채 사령관은 방을 떠난다.

처형되기 전날 밤에 머무는 위안실로 이송된 그들에게 먼저 방에 와 있던 산적 치릴로가 <데카메론>에서 처럼 서로의 얘기를 하며 밤을 보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한다.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면, 많은 걸 극기한 끝에 맞이한 이 종말이 과연 바람직한 결말인지, 아니면 느닷없이 틀린 음적이 들어가 가락이 맞지 않게 된 건 아닌지 이해하게 되겠지..."

 

o 나르시스 루치로라(학생) : 포악하고 혈기왕성한 아버지는 부유한 포목상이었으며 외국에 나갈때마다 새로운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다가 돌아가셨고 누나 올림피아와 주로 시간을 보낸다. 정원사인 가스파레로부터 오보에와 호른을 배운 그는 가스파레를 흠모한다. 어느날 가스파레를 누나 올림피아가 유혹하다가 후견인이 발견하자 올림피아는 가스파레가 추행을 저지른 것이라 덮어씌우는 사건을 벌인다. 이에 나르시스는 가스파레와 더불어 집을 뛰쳐나온다. 어느날 우연히 에우니체라는 여인에게 반하는데 그녀의 남편은 베니에로 마닌이라는 자로 반역죄로 감옥에 갖힌 처지이다. 베니에로 마닌을 탈옥시켜 에우니체와 도망을 치지만 우연히 만난 사냥꾼들이 수상히 여기자 마닌은 나르시스가 바로 그들이 찾고있는 탈옥범이라고 덮어씌운다. 왕국 감옥으로 압송되던 그를 혁명세력이 습격하여 그는 달아나고 그 혁명세력 사이에 있떤 에우니체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가 단두대에서 기억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그날 밤의 이야기이다.

 

o 콜라도 인가푸(남작) : 혁명가인 쌍둥이 동생 세콘디노가 프랑스로 도피한 후 남작은 여행 중 동생을 만나게 된다. 체스 게임 중 시비가 붙어 왕당파인 피브라크와 세콘디노는 폭풍우가 치던 날 결투를 벌이고 동생은 죽게된다. 동생의 죽음과 유서에 쓰인 '형이 가진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내 일을 상속받아 내가 못 다한 것을 형이 해줬으면 좋겠어'라는 말에 그는 동생이 걸었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무서워한다.

 

o 아제실라오 델리 인체르티(군인) : 유랑극단의 배우였던 어머니는 군인에게 강간 당해 자신을 임신하고 역마차 주막 탁자 위에서 태어난다. 수도원에서 자라던 그에게 아라비토 신부는 어머니의 유물이라며 청금석 손잡이가 달린 톨레도 단검 등을 전해준다. 단검에서 빼낸 쪽지에는 "단검의 주인을 찾아라. 그러면 넌 네 아버지를 찾은 거란다. 네 아버지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라."라는 유언이 적혀 있다. 아버지를 찾아 유언을 실행하기 위해 군대에 들어간 그는 우연히 아버지를 찾아내게 되고 그를 살해한 후 체포된다.

 

o 살림베니(시인) : 민중이 아닌 귀족을 주로 선동하던 그는 마니아체 공작의 집으로 향한다. 여행 도중 머리를 다친 그는 이미 사망한 마니아체 공작집에 머무르게 된다. 그 집에는 공작부인과 부인의 의붓아들인 아마빌레가 살고 있다. 공작부인과 아마빌레 모두가 살림베니에게 연정을 품고 있지만 그는 그 집을 떠나게 된다. 떠나는 그를 배웅하던 중 미망인은 잃어버린 반지를 찾아오라며 의붓아들을 되돌려 보내고 둘은 오두막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산적 살리바가 그를 묶어두고 미망인을 강간한다. 살림베니는 반지가 미망인의 목걸이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미망인이 자신을 유혹했음을 알게 된다. 잠시 뒤 오두막에 들어온 아마빌레는 그 광경을 보고 자살한다. (이 이야기에 대하여 치릴로 수도사는 살리바라는 산적은 시인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며, 실제 정사를 벌인 것은 살림베니 자신일 것이라 지적하자 살림베니는 대단한 통찰력이라고 말한다)

 

네 명의 이야기는 제각각 혁명가로서 죽음을 앞둔 이의 이야기 치고는 세속적이기만 하다. 나르시스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하며 살고 싶다고 외치는 나약한 모습이고, 남작은 혁명적인 활동을 한 것이 동생의 죽음과 자신의 정신적인 공허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아제실라오 역시 고위장교를 죽인 것이 혁명적 대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복수를 한 것에 불과하였던 것이며, 살림베니는 공작부인과 정사를 벌이고 그 의붓아들을 죽음에 빠지게 만든 파렴치한이다.

그들은 얘기를 마친 후 '불의의 신'이 자신들을 구하러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을 하는 지경에 이르자, 그가 궁에서 오랜 기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처지라서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한다. 왕이 아니면 왕의 동생에게 작별을 고하고 오면 되지 않느냐는 치릴로의 말에, 어떻게 불멸의 신이 스스로에게 작별을 고하겠느냐는 말 실수로 불멸의 신의 정체는 다름 아닌 왕의 동생이었음이 밝혀진다. 이때 치릴로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알아야 할 것을 알았다고 외친다. 침대에 누워있던 치릴로의 정체는 사령관 콘살보였던 것이다. 그는 네 명에게 제각각 이야기를 하게 만들어 그들의 신념을 흔들리게 만들고 그 와중에 '불멸의 신'의 정체가 밝혀지도록 연극을 꾸민 것이다. 그들 네 사람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과연 그들은 사령관 콘살보에게 속아 넘어가 신념이 흔들리고 결국 '불멸의 신'이 누구인가 발설하는 실수를 한 것일까? 콘살보는 오히려 그들 네 명에게 속아넘어간 것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었음이 밝혀지는데, 사후 조사를 통해 남작의 경우 죽은 것이 아우가 아니라 형 쪽이며 스스로 자살한 것으로 밝혀진다. 나르시스는 올림피아 누나를 여러 차례 유혹했기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 것이며 아제실라오는 치졸한 싸움을 벌이다 상관을 살해했을 뿐이다. 살림베니의 이야기는 이미 콘살보가 그날 밤 거짓말을 하였다고 밝혀냈다. 그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지어내어 콘살보(치릴로)를 속여 '불멸의 신'이 왕의 동생임을 끊임없이 암시하고, 결국 유일한 왕위 계승자를 반역자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소설에서는 삶과 죽음, 의지와 나약함, 진실과 거짓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소설의 결말을 읽고 나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이탈리아 최고의 문학상 스트레가 상 수상작으로 스트레가 상 후보자 전원이 "이렇게 훌륭한 작품과 경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라며 사퇴를 하였다고 한다.

 

책 말미에 시칠리아 카타리나 대학의 교수인 눈지오 자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배경이 다른 네 이야기는 한 가지 주제로 모이고 그것을 축으로 하여 돌아간다. 그것은 바로 정체성에 대한 불안한 추구이다. 억압되고 분열된, 혼란스럽고 당황스런, 독창적인 개성이 있는 이야기들은 자유주의 혁명을 대의 명분으로 하면서 개인의 어둡고 지울 수 없는 충동의 파동 위에서, 이데올로기적인 영역에서 무의식의 헤아릴 수 없는 영역으로 쉽게 넘어가는 동기들의 파동 위에서 긍정적인 출구를 찾는다."

 

네 명의 이야기는 그들이 지어낸 얘기와 실제 얘기 모두가 어찌보면 혁명적 대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의 나약하고 어두운 면에도 불구하고 그들 넷은 혹독한 고문에도 배후를 대지 않았으며(어쩌면 배후는 원래부터 없었는지 모른다), 유일한 왕위 계승자를 죽음에 이르도록 한 후 처형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마르크스의 가정사야 워낙에 잘 알려진 일이고 엥겔스의 취미는 고급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었다고 한다. 레닌의 죽음이 매독 때문이었다며 그의 사상 역시 매독과 다르지 않다는 식의 기사도 언젠가 얼핏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러한 저열한 인식에 대한 해답을 어쩌면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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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이진명 옮김 / 책세상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미시마 유키오, 본명은 히라오카 키미다케(平岡公威), 농림성 수산국장이던 아버지 히라오카 아즈사와 어머니 시즈에 사이의 장남으로 1925년 1월 14일 도쿄 시 나가스미초(지금의 신주쿠)에서 출생.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졸업 후 대장성(大蔵省) 금융국에 근무.

그가 정치 사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63년 <하야시후사오론(論)>을 발표한 이후이며, 그 이전은 오히려 '전후 세대'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정치에 무관심하였다고 한다. 서른이 되면서 보디빌딩, 복싱, 검도를 하면서 신체를 단련시키고 급격히 육체와 지성을 중시하는 문학 세계로 돌입하게 되는데, '여성적 원리'에서 '남성적 원리'로의 이행, '자기개조의 시도'가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1956년에 발표된 그의 대표작 <금각사>는 현실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하야시 쇼켄(본명은 요켄)이라는 자가 1950년 7월 2일 금각사를 방화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미시마는 그가 말더듬이였다는 점과, 범행 동기 중에 "미에 대한 질투"라고 진술한 부분에 착안하여 <금각사>를 완성시킨다. 영속적인 전통미를 상징하는 금각사는 매력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반발을 일으키는 대상이다. 패전으로 의지할 것을 잃어버린 일본인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름다운 대상밖에 없지만, 아름다움에 의지해 자신감을 회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전통이라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그 전통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은 애증을 불러일으킨다.

불균형과 이상성격을 다루던 그는 '문화 개념으로서의 천황', '문화 전체성의 통합자인 천황'의 권리 회복을 역설하며 내셔널리즘에 기울게 되고, 1970년 11월 25일, 당시 만 45세의 미시마 유키오가 자기를 지지하는 우익 사조직 '다테노카이(楯の會 방패의 모임)' 대원들을 이끌고 이치가야 육상 자위대에 난입하여 평화헌법을 뒤엎을 것과 자위대 궐기를 외친 후 할복자살한다.

1954년 발표된 <파도소리>는 그리스 소설 <다프니스와 클로에>에서 착안한 소설이라고 한다.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줄거리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염소를 기르는 어떤 사람이 버려진 사내아이(다프니스)와 여자아이(클로에)를 키우는데 두 아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해적의 침략과 전쟁, 클로에에게 나타나는 많은 구혼자 등으로 그들의 사랑이 여러가지 시련에 부딪히지만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출신이 모두 훌륭한 것임이 밝혀지고 행복하게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파도소리>의 내용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가난하지만 신실한 청년인 신지는 어느날 마을 부호의 딸인 하쓰에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하쓰에 역시 신지에게 호감을 느껴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아버지의 반대와 야스오의 비열한 행동으로 둘은 시련을 겪는다. 신지와 야스오가 한 배를 타고 출항한 후 신지는 성실함과 자기희생적인 행동으로 선원과 선장의 신뢰를 얻지만, 야스오는 본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주변의 비난을 받는다. 신지와 야스오의 사람됨을 알고자 한 배에 태웠던 하쓰에 아버지는 결국 신지를 사위감으로 맞아들인다.

 

미시마 유키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1969년 <반혁명 선언>을 발표하고 그해 5월 동경대전공투 학생들과의 토론을 벌였던 극우파 지식인으로서였다. <금각사>를 읽었을 때에는 전후의 그 불안정하고 탐미적인 이상 심리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자위대 궐기를 외치며 할복하였다는, 비록 사상은 다르지만 그 진정성을 존경하고 싶었던 그였기에 이번에 <파도 소리>를 읽었는데, 불안정과 이상심리를 다룬 초기도, 내셔널리즘으로 치달은 후기도 아닌 과도기적 작품이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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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임철우 지음 / 살림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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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벽 네시에 할머니의 부고를 알려 온 형님의 전화를 받고 깨어난 '나'는 잊고 있던 어릴 적 고향을 떠올리게 된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하는 낙일도(작가의 고향인 평일도인 듯)에서 지내던 어린시절 이웃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가슴 저릿함으로, 때로는 의뭉스런 웃음으로 다가온다.

 

<생일날 아침>

할머니는 '나'의 생일을 축원하기 위해 큰샘에 갔다가 '벌떡녀'와 한바탕 다툼을 벌인다. 묘하게도 '나'의 집 이웃은 '벌떡녀'와 '뒷간네'로 수상한 소문에서 비롯된 별명을 지닌 아낙들이다. 할머니는 큰샘에 손자의 생일을 맞아 정성을 들이기 위해 새벽부터 길을 나섰지만 '벌떡녀'가 서답빨래를 하기 위해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인자리에서 다툼이 일자 벌떡녀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 할머니는 손자인 '나'의 무탈을 빈다.

 

<우리 이모 옥님이>

옥님이 이모는 '나'의 사촌이모인데 어릴적 병을 앓은 뒤 지능이 모자라게 되었다. 마흔이 다 된 채 혼자서 살고 있는 옥님이 이모가 과연 남녀의 이치를 알까 하는 것이 동네사람들 초유의 관심사였는데 어느날 이 의문이 풀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벌떡녀'의 오빠가 술김에 옥님이네 집에 난입하여 어찌해볼까 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인데, 옥님이의 고함소리에 몰려든 마을 사람들에게 옥님이가 한 말은 "아, 내가 눈을 퍼뜩 떠 본께로 그 나픈 도둔놈이 옷을 훌러덩 빨개벗고는, 나한테 달개들어가꼬 몰래 내 돈을 훔텨 갈라고 하더랑께." 였던 것이다.

 

<목포의 눈물>

넙도에서 시집을 온 넙도댁은 마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부지런한 아낙이다. 반면에 그의 남편 강주병씨는 대놓고 바람을 피우고 걸핏하면 넙도댁을 때려 초주검을 만들기 일쑤이다. 작은집을 차려놓고 바람을 피우는 강주병씨에게 찾아갔다가 흠씬 두들겨 맞은 넙도댁이 실성하자 강주병씨는 강진에 있는 기도원인지 정신병자 수용소인지에 넙도댁을 보내버리고, 첫날 도망친 넙도댁은 사흘 후 산골짜기 저수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낙일도의 사랑>

봄이 오자 동네 빨래터에 모인 아낙들의 입에서 걸걸한 입담이 오고가던 중 벌떡녀와 응팔이네가 머리채를 쥐어 뜯고 싸우게 되는데, 그날 밤 여편네들이 할일없이 몰려 다니면서 창피스럽게 싸움질이나 하고 다닌다며 춘자 아버지와 응팔이 아버지는 저마다 제 여자들을 늑신하게 두들겨 패준다.

 

<약산 할멈의 기둥 뿌리>

남편을 먼저 보내 외로운 약산 할멈에게 조카 며느리가 교회에 다니자며 끈질기게 설득을 하여 교회에 갔다온 날 약산할머니의 영감님이 꿈에 나타나 '집안 기둥 뿌리 뽑아 묵을 할망구'라며 대뜸 집 기둥 뿌리를 도끼로 찍는다.

 

<곱사등이 별>

반임이는 곱추여서 동네 아이들은 '낙타등'이라고 놀린다. 반임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나이가 몇살인지 정확하지 않다. 어느날 마당 안 양지쪽 담벼락 밑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반임이는 병든 병아리마냥 몸을 잔뜩 웅크린채 해를 향해 얼굴을 반쯤 처들고 앉아 있었다. 그런 반임이에게 '나'와 친구는 모래를 던지며 놀렸고, 반임이는 겁에 질린 듯 벌떡 일어나려다가 옆으로 픽 고꾸라진다. 대문간에 홀로 나와 앉아서 학교 가는 우리들을 말없이 지켜보곤 하던 그 쓸쓸한 눈빛이나, 곱사등이라고 놀려대는 우리들을 향해 욕을 퍼부어 대다가는 끝내 제 풀에 먼저 엉엉 울음을 터뜨리던 모습을 이제 볼 수가 없다. 반임이가 죽던날 '나'는 반임이의 누렇게 여윈 뺨으로 줄줄 흘러 내리던 그 더러운 눈물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만 같다.

 

<돼지꿈>

'나'의 태몽은 돼지꿈이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날 때에 급한대로 사기그릇으로 탯줄을 끊고 '나'를 받았다. 마을사람들이 달려오자 한껏 자랑스러움으로 넘쳐 외쳐대었단다. "고추여 고추! 아 글씨, 손을 쑤욱 집어넣자마자 토실토실 여문 불알 주머니가 대번에 물크덩하니 잽히지 않겄어? 세상에, 어찌나 오지든지 말이여!"

 

<잘한다, 업순네!>

매일 남편에게 죽도록 얻어맞던 업순네가 신이 내렸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셋씩이나 내렸는데 하필이면 시누이,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내렸다. 신내림굿을 하는 마당에서 시아버지 신이 내린 업순네는 남편의 뺨을 철썩철썩 때려가며 한바탕 호통을 친다. 그런데 바로 그 짧은 순간, 업순네의 입술 가장자리로 희미하게 얼핏 떠올랐다 지워지는 알 수 없는 웃음기를 '나'는 보았다. 남편의 못된 버릇이 다시 도져 업순네를 때리려는 찰나에 업순네는 시어머니 신이 내려 남편의 뺨을 쳐댄다. 어머니 신이 내린 업순네에게 뺨을 맞아가며 남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동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소리를 질러댄다. "잘한다, 업순네! 쳐라! 옳지! 더,더 세게 쳐! 더, 더......"

 

<소동이 아저씨>

옥님이 이모의 큰오빠 삼종씨가 떠돌이 엿장수를 꼬드겨 옥님이 이모와 짝을 지어주려 하지만 소동씨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옥님이 이모에게 방망이로 얻어맞고 쫓겨난다.

 

<천하장사 황설봉씨>

설봉이 고모부가 낙일도 마을 대항 운동회에 참석만 한다면 씨름으로 일등은 따놓은 당상이다. '나'의 할머니는 그런 설봉이 고모부를 위해 쇠고기를 두근이나 먹이고, 쇠기름만 따로 모아 힘을 내라고 먹인다. 아주 잘생긴 송아지가 쇠똥을 나무위에서 줄줄 흘리는 꿈을 꾸었으니 일등은 도맡아둔 것이라면서. 황설봉씨는 잔뜩 먹고 출전한 대회에서 배탈이 나 설사만 해댄다.

 

<우리 사촌 봉묵이 형>

봉묵이 형은 다리를 전다. 그가 동네 작부인 금옥이와 좋게 지내고, 결혼을 약속한다. 금옥이는 같은 술집에 팔려온 미자가 못내 안쓰럽다. 결국 미자를 도망시키기로 하는데 봉묵이가 힘을 써준다. 미자가 도망간 것을 알고 선표를 끊어주는 봉묵이를 술집 주인이 닥달하자 봉묵이가 말한다. "그 가시내가 아까 읍내까지 선표를 끊었어라우. 읍내에 닿을라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께, 빨리 읍내로 전화를 걸어서 미리 사람을 시켜 길목을 지키라고 하면 될 거신디라우." 미자가 "세상에, 이런 바보 천치같으니. 도와준다고 할 땐 언제구, 읍내로 갔다는 얘긴 왜 해. 이젠 다 틀렸어. 미잔 금방 잡혀올 거라구." 하지만 봉묵이는 히죽 웃음을 흘리기만 한다. "아따. 미쓰 오 양도 참, 이럴 줄 미리 알고 내가 미자한테 슬쩍 가르쳐 주었어라우. 읍내에 닿기 전, 꽃섬에서 일단 내렸다가, 거기서 여수 가는 '갈매기호'로 슬쩍 바꿔 타고 가라고라우. 그러니께 염려 마시요이. 지금쯤 여수 가는 배에서 편히 누워있을 것잉께, 으흐흣." 금옥이는 봉묵이가 대견스럽고 미더운 생각에 혼자 흐뭇하다.

 

<안녕, 칠성이 형>

사람 좋기로 소문난 칠성이 형이 군대에 갔다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칠성이 형 엄마가 군대에 찾아갔지만 자살했다는 말과 함께, 시신을 찾아가면 아무런 보상도 못해주고 안좋을 것이라며 을러대는 통에 그냥 빈손으로 내려오고 만다. 사병 하나와 장교 하나가 칠성이 형의 유골을 가지고 내려오지만 마을 청년들은 그들을 쫓아내다가 결국 서로 주먹질을 해댄다. 칠성이 형의 친구도 울고, 유골을 지고 온 사병도 운다. "다들 왜, 왜 이러는 거래유. 몰라유.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단 말이유. 나도 고, 고향에...... 친구들이랑 어무니가 있는 몸이란 말이유우. 어허엉......"

 

<동백꽃>

옛날 우리 마을과 화포리 사이에 에미끼미 마을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 마을에 젊은 내외가 살았는데 아낙은 어린 여자애 하나를 업고 다니며 행상을 하였다. 어느날 여자애 엉덩이에 조그만 반점이 생겨났는데 그것이 점점 커져서 병원을 데려가보니 소록도에 있는 진료소를 찾아가보라고 한다. 소록도에서 문둥병 검사를 하고 돌아온 아낙은 어린애를 데리고 산으로 간다. 가는길에 동백꽃을 쥐어 주자 아이는 까르르륵 웃는다. 구덩이에 아이를 뉘인 아낙은 도망쳐왔다가 며칠뒤에 그 자리로 돌아가보니 잠든 것처럼 허리를 꼬옥 웅크린 채 어미가 따서 준 동백꽃을 그러안고 숨져 있었다. 열손가락이 죄다 흙이랑 피범벅이 되어 훌렁 뒤집혀 있는채로.

 

전라도 사투리는 언제나 나에게 상반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아련한 그리움과 되돌아가고 싶지 않음. 

5월에 청산도로 여행갈 생각을 했었는데, 낙일도가 바로 그 옆이라고 하니 한번 들러보고 싶어졌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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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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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사건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 포와로와 헤이스팅스는 다시 스타일즈 저택에서 재회한다. 포와로는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지경으로 건강이 안 좋아졌고, 헤이스팅스 대위는 지나가버린 젊음을 한탄하는 나이가 되었다. 옛 추억을 회고하기 위해 포와로가 자신을 불렀을거라는 짐작과 달리, 포와로는 다섯 건의 서로 다른 살인사건을 스크랩한 신문을 보여주며 스타일즈 저택에 또 한번의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 말한다.

폭군 남편을 살해한 아내, 모르핀을 과용하도록 하여 아주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조카, 간통한 아내를 살해한 남편, 부정을 저지른 남편을 독살한 아내, 자식을 학대한 부모를 살해한 맏딸. 서로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건에 대해 포와로는 미지의 인물 X의 흔적을 발견했으며, 그 X가 현재 스타일즈 저택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X는 다섯 건의 살인에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체포할 수도, 살인을 저지를 것을 알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도 소용이 없다. 스타일즈 저택에 머무르고 있는 인물들 모두가 헤이스팅스는 의심스럽다. 과연 누가 X인가?

 

o 주디스 헤이스팅스 - 헤이스팅스 대위의 딸. 존 프랭클린 박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살아갈 가치가 있는 인간을 위해 다른 사람이 희생되어도 좋다는 과격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o 존 프랭클린 박사 - 열대 의학 분야의 권위자.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함. 아프리카로 연구하러 떠날 기회가 있었으나 아내가 원치 않아 포기하여 부인을 원망할 것이라는 주위의 인식이 있음. 그러나 본인은 결혼 생활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는 인물.

o 바바라 프랭클린 - 존의 부인. 육체적으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으나 병석에 누워있는 역할을 자처함. 세속적인 가치에 집착하여 남편의 아프리카행을 좌절시킴. 중독되어 죽었으나 평소 비관적인 말을 하였으며 증거가 없어 자살로 처리된다.

o 루트렐 대령 - 스타일즈 여관의 현재 주인. 돈밖에 모르는 루트렐 부인으로부터 비참한 대접을 받고 있다. 한때 명사수이기도 했던 그는 루트렐 부인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면박한 직후 부인을 토끼로 오인하여 총으로 쏘는 사건을 일으킨다.

o 루트렐 부인 - 한때는 재기발랄한 아가씨였으나 현재는 돈밖에 모르는 스타일즈 여관의 안주인.

o 스티브 노튼 - 키가 작고 야윈 남자. 새를 연구하는 자. 망원경으로 무언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았으나 이를 다른사람에게 발설하지 않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이마에 총을 맞은 채로 발견됨. 그러나 그가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발견되었고, 열쇠는 주머니에 있었기 때문에 자살로 처리됨.

o 보이드 캐링튼 경 - 바바라 프랭클린을 애틋해 하는 성공한 인물.

o 엘리자베스 콜 - 35세의 아름다운 여성

o 앨러튼 소령 - 사십대 초반의 바람둥이 남자. 주디스에게 집적이는 한편  크레이븐 간호사와도 모종의 관계가 있음.

o 크레이븐 - 프랭클린 부인의 개인 간호사. 바바라 프랭클린이 자신을 하녀 부리듯 하는데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함.

 

각각의 인물은 모두 누군가를 살해할 동기를 가질 수가 있으며, 심지어 헤이스팅스마저 앨러튼을 주디스의 인생을 망치려 한다는 이유로 살해할 결심을 하기까지 한다.

 

결말은 다음과 같다.

 

바바라 프랭클린은 자신이 남편을 독살하고 보이드 캐링튼 경과 재혼하기 위해 독을 탄 커피를 준비하였으나 헤이스팅스 대위가 책을 뽑기 위해 회전 서가를 돌리는 바람에 자신이 그 잔을 마시고 죽고 만다. 스티브 노튼이 문제의 X인데, 그는 교묘한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의 살인 충동을 부추겨 범행을 실현시키는 인물이다. 따라서 전혀 증거는 남기지 않으나 그가 가는 곳마다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포와로는 노튼을 수면제로 재운 후 자신이 노튼으로 변장하고 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헤이스팅스에게 보여주어 노튼이 스스로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근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후 노튼을 살해한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1975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 <커튼>은 처녀작인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무대를 동일하게 설정한 듯 하다. 오직 심리적인 작용만으로 살인을 조정하는 범인을 법 테두리 내에서는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달은 포와로가 직접 범인을 살해하는 약간 충격적인 내용이며, 포와로 역시 이 작품에서 심장마비로 죽는다.  

사실 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에 포와로만이 알고 있는(독자는 알지 못하는) 어떤 사실을 끄집어내며 '사실은 이러이러 했었다'는 식의 결말이 많기 때문에 모처럼 추리소설로서의 카타르시스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도 그다지 훌륭한 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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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흥규 2013-09-0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집의x다
 
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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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마지막 일요일, 한강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의 사체가 발견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변사체에 대한 수사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작가는 한 가족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꽤나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김상호는 첫번째 결혼에서 은성과 혜성 남매를 얻지만 결혼은 파탄이 난다. 중국어 학원에서 강사를 하던 화교출신 진옥영과 재혼하여 막내 유지를 얻는다. 유지는 감정에 굴절이 없는 아이로 좋다든가 싫다든가 의사표현을 정확히 하지 않는 아이이다. 다만 음악에는 소질을 보여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

어느날 김상호는 사업 약속을 위해 집을 비우고, 진옥영 역시 대전의 친정집에 가면서 혜성에게 유지의 과외선생에게 과외비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집을 나선다. 그러나 혜성 역시 그날 여자친구를 만난 후 집에 늦게 돌아온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집에 남겨졌던 유지가 없어진다.

유괴라면 연락이라도 와야하건만, 연락이 없다. 가족 구성원 모두는 저마다 유지의 실종에 대해 떳떳하지 못하다. 김상호가 중국과 벌이고 있는 사업은 다름아닌 장기밀매이며, 이 때문에 원한을 품은 누군가가 유지를 납치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적에 대한 수사가 겁이 나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사립탐정 문영광을 고용하여 경찰을 사칭토록 한다. 진옥영이 친정집에 간다는 말은 둘러댄 핑계였을 뿐 옛 애인을 만나러 대만에 갔던 것이었고, 혜성 역시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충동에 못이겨 자동차에 방화를 저질렀었다. 은성 역시 예전 사귀던 남자친구와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복동생을 납치해 아버지에게 돈을 뜯어내자는 모의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 그들 모두가 자신과 관련되어 유지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책임질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한편 유지는 실종 당일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20대 초반의 언니를 찾아나섰는데, 함께 놀러간 대부도에서 언니와 헤어지고 연락이 닿지 않는 부분까지만 작가는 서술해 놓는다.

김상호와 사업상 거래하던 부산의 한선생이란 자가 유지를 보호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스무명의 장기를 확보할 것을 지시하고 김상호는 장기밀매조직에 대한 수사를 벌이던 중국공안에 체포된다. 체포된 후 면회를 간 진옥영에게 김상호는 그간의 얘기를 전하고, 옥영은 한선생을 만날 약속을 하지만 옛 남자친구이자 유지의 친부인 밍이 그 자리에 대신 나간 후 변사체가 되어 한강에 떠오른다.

그리고 유지는 살해목적, 혹은 교통사고로 머리에 심하게 상처를 입은 채 국도변에서 발견되고 불완전한 상태로 가족에게 돌아온다. 김상호가 없는 나머지 셋은 불완전하나마 가족으로서의 의미를 다시금 찾아가는 노력을 한다.

 

김상호는 출세와 돈,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하지만 바로 그 행동 때문에 가족을 파탄으로 몰아가는 인물이고, 진옥영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해 떠나보낸 밍에 대한 감정을 끝내 정리하지 못하고 양면적인 삶을 산다. 은성은 타인을 구속함으로서 외롭지 않으려 하나 남자들은 그런 그녀를 못 견뎌하고, 가장 현실에 잘 적응하고 덤덤한 듯 보이는 혜성도 타인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을 줄 모르고 방화를 통해 압박감을 해소하는 인물이다. 문영광은 자신의 직업에 꽤나 프로인 듯 하고 때로 번득이는 기지를 보이기도 하나 결국 가짜경찰일 뿐이다. 결국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간적이고 균형잡힌 인물은 밍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살해당한다.  

 

체신청이 수원으로 이사를 간 후 수원성균관대학교 우체국으로 업무를 보러 가야 하는데 그곳에 이 책이 꽂혀 있다. 자기개발서는 그다지 즐겨 읽지 않기 때문에 유독 이 책이 눈에 띄어 꺼내들지만, 손님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매번 두세장 읽기도 전에 내 차례가 오고 만다. 결국 목요일에 사다가 새로 산 침대 위에서 편안하게 읽었다. 순번대기표의 띵동 소리를 겁내지 않고서 말이다.

일단 책은 술술 잘 읽힌다. 변사체의 발견에서 가족 이야기로 넘어가고 마지막에 변사체의 신원을 밝히는 구성도 매끄럽다. 자극적인 소재를 차용했지만, 작가가 하고 싶어하는 얘기는 자극적이지 않게 잘 이야기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에 발간된 국내소설을 읽지 않다가 근간에 발간된 책을 읽으니 요새 이야기라 그런지 더 신선하다. 다만, 유지의 실종과 밍의 사망을  선명하게 처리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7051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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