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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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마지막 일요일, 한강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의 사체가 발견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변사체에 대한 수사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작가는 한 가족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꽤나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김상호는 첫번째 결혼에서 은성과 혜성 남매를 얻지만 결혼은 파탄이 난다. 중국어 학원에서 강사를 하던 화교출신 진옥영과 재혼하여 막내 유지를 얻는다. 유지는 감정에 굴절이 없는 아이로 좋다든가 싫다든가 의사표현을 정확히 하지 않는 아이이다. 다만 음악에는 소질을 보여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

어느날 김상호는 사업 약속을 위해 집을 비우고, 진옥영 역시 대전의 친정집에 가면서 혜성에게 유지의 과외선생에게 과외비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집을 나선다. 그러나 혜성 역시 그날 여자친구를 만난 후 집에 늦게 돌아온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집에 남겨졌던 유지가 없어진다.

유괴라면 연락이라도 와야하건만, 연락이 없다. 가족 구성원 모두는 저마다 유지의 실종에 대해 떳떳하지 못하다. 김상호가 중국과 벌이고 있는 사업은 다름아닌 장기밀매이며, 이 때문에 원한을 품은 누군가가 유지를 납치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적에 대한 수사가 겁이 나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사립탐정 문영광을 고용하여 경찰을 사칭토록 한다. 진옥영이 친정집에 간다는 말은 둘러댄 핑계였을 뿐 옛 애인을 만나러 대만에 갔던 것이었고, 혜성 역시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충동에 못이겨 자동차에 방화를 저질렀었다. 은성 역시 예전 사귀던 남자친구와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복동생을 납치해 아버지에게 돈을 뜯어내자는 모의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 그들 모두가 자신과 관련되어 유지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책임질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한편 유지는 실종 당일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20대 초반의 언니를 찾아나섰는데, 함께 놀러간 대부도에서 언니와 헤어지고 연락이 닿지 않는 부분까지만 작가는 서술해 놓는다.

김상호와 사업상 거래하던 부산의 한선생이란 자가 유지를 보호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스무명의 장기를 확보할 것을 지시하고 김상호는 장기밀매조직에 대한 수사를 벌이던 중국공안에 체포된다. 체포된 후 면회를 간 진옥영에게 김상호는 그간의 얘기를 전하고, 옥영은 한선생을 만날 약속을 하지만 옛 남자친구이자 유지의 친부인 밍이 그 자리에 대신 나간 후 변사체가 되어 한강에 떠오른다.

그리고 유지는 살해목적, 혹은 교통사고로 머리에 심하게 상처를 입은 채 국도변에서 발견되고 불완전한 상태로 가족에게 돌아온다. 김상호가 없는 나머지 셋은 불완전하나마 가족으로서의 의미를 다시금 찾아가는 노력을 한다.

 

김상호는 출세와 돈,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하지만 바로 그 행동 때문에 가족을 파탄으로 몰아가는 인물이고, 진옥영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해 떠나보낸 밍에 대한 감정을 끝내 정리하지 못하고 양면적인 삶을 산다. 은성은 타인을 구속함으로서 외롭지 않으려 하나 남자들은 그런 그녀를 못 견뎌하고, 가장 현실에 잘 적응하고 덤덤한 듯 보이는 혜성도 타인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을 줄 모르고 방화를 통해 압박감을 해소하는 인물이다. 문영광은 자신의 직업에 꽤나 프로인 듯 하고 때로 번득이는 기지를 보이기도 하나 결국 가짜경찰일 뿐이다. 결국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간적이고 균형잡힌 인물은 밍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살해당한다.  

 

체신청이 수원으로 이사를 간 후 수원성균관대학교 우체국으로 업무를 보러 가야 하는데 그곳에 이 책이 꽂혀 있다. 자기개발서는 그다지 즐겨 읽지 않기 때문에 유독 이 책이 눈에 띄어 꺼내들지만, 손님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매번 두세장 읽기도 전에 내 차례가 오고 만다. 결국 목요일에 사다가 새로 산 침대 위에서 편안하게 읽었다. 순번대기표의 띵동 소리를 겁내지 않고서 말이다.

일단 책은 술술 잘 읽힌다. 변사체의 발견에서 가족 이야기로 넘어가고 마지막에 변사체의 신원을 밝히는 구성도 매끄럽다. 자극적인 소재를 차용했지만, 작가가 하고 싶어하는 얘기는 자극적이지 않게 잘 이야기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에 발간된 국내소설을 읽지 않다가 근간에 발간된 책을 읽으니 요새 이야기라 그런지 더 신선하다. 다만, 유지의 실종과 밍의 사망을  선명하게 처리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7051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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