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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임철우 지음 / 살림 / 1991년 4월
평점 :
절판
새벽 네시에 할머니의 부고를 알려 온 형님의 전화를 받고 깨어난 '나'는 잊고 있던 어릴 적 고향을 떠올리게 된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하는 낙일도(작가의 고향인 평일도인 듯)에서 지내던 어린시절 이웃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가슴 저릿함으로, 때로는 의뭉스런 웃음으로 다가온다.
<생일날 아침>
할머니는 '나'의 생일을 축원하기 위해 큰샘에 갔다가 '벌떡녀'와 한바탕 다툼을 벌인다. 묘하게도 '나'의 집 이웃은 '벌떡녀'와 '뒷간네'로 수상한 소문에서 비롯된 별명을 지닌 아낙들이다. 할머니는 큰샘에 손자의 생일을 맞아 정성을 들이기 위해 새벽부터 길을 나섰지만 '벌떡녀'가 서답빨래를 하기 위해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인자리에서 다툼이 일자 벌떡녀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 할머니는 손자인 '나'의 무탈을 빈다.
<우리 이모 옥님이>
옥님이 이모는 '나'의 사촌이모인데 어릴적 병을 앓은 뒤 지능이 모자라게 되었다. 마흔이 다 된 채 혼자서 살고 있는 옥님이 이모가 과연 남녀의 이치를 알까 하는 것이 동네사람들 초유의 관심사였는데 어느날 이 의문이 풀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벌떡녀'의 오빠가 술김에 옥님이네 집에 난입하여 어찌해볼까 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인데, 옥님이의 고함소리에 몰려든 마을 사람들에게 옥님이가 한 말은 "아, 내가 눈을 퍼뜩 떠 본께로 그 나픈 도둔놈이 옷을 훌러덩 빨개벗고는, 나한테 달개들어가꼬 몰래 내 돈을 훔텨 갈라고 하더랑께." 였던 것이다.
<목포의 눈물>
넙도에서 시집을 온 넙도댁은 마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부지런한 아낙이다. 반면에 그의 남편 강주병씨는 대놓고 바람을 피우고 걸핏하면 넙도댁을 때려 초주검을 만들기 일쑤이다. 작은집을 차려놓고 바람을 피우는 강주병씨에게 찾아갔다가 흠씬 두들겨 맞은 넙도댁이 실성하자 강주병씨는 강진에 있는 기도원인지 정신병자 수용소인지에 넙도댁을 보내버리고, 첫날 도망친 넙도댁은 사흘 후 산골짜기 저수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낙일도의 사랑>
봄이 오자 동네 빨래터에 모인 아낙들의 입에서 걸걸한 입담이 오고가던 중 벌떡녀와 응팔이네가 머리채를 쥐어 뜯고 싸우게 되는데, 그날 밤 여편네들이 할일없이 몰려 다니면서 창피스럽게 싸움질이나 하고 다닌다며 춘자 아버지와 응팔이 아버지는 저마다 제 여자들을 늑신하게 두들겨 패준다.
<약산 할멈의 기둥 뿌리>
남편을 먼저 보내 외로운 약산 할멈에게 조카 며느리가 교회에 다니자며 끈질기게 설득을 하여 교회에 갔다온 날 약산할머니의 영감님이 꿈에 나타나 '집안 기둥 뿌리 뽑아 묵을 할망구'라며 대뜸 집 기둥 뿌리를 도끼로 찍는다.
<곱사등이 별>
반임이는 곱추여서 동네 아이들은 '낙타등'이라고 놀린다. 반임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나이가 몇살인지 정확하지 않다. 어느날 마당 안 양지쪽 담벼락 밑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반임이는 병든 병아리마냥 몸을 잔뜩 웅크린채 해를 향해 얼굴을 반쯤 처들고 앉아 있었다. 그런 반임이에게 '나'와 친구는 모래를 던지며 놀렸고, 반임이는 겁에 질린 듯 벌떡 일어나려다가 옆으로 픽 고꾸라진다. 대문간에 홀로 나와 앉아서 학교 가는 우리들을 말없이 지켜보곤 하던 그 쓸쓸한 눈빛이나, 곱사등이라고 놀려대는 우리들을 향해 욕을 퍼부어 대다가는 끝내 제 풀에 먼저 엉엉 울음을 터뜨리던 모습을 이제 볼 수가 없다. 반임이가 죽던날 '나'는 반임이의 누렇게 여윈 뺨으로 줄줄 흘러 내리던 그 더러운 눈물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만 같다.
<돼지꿈>
'나'의 태몽은 돼지꿈이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날 때에 급한대로 사기그릇으로 탯줄을 끊고 '나'를 받았다. 마을사람들이 달려오자 한껏 자랑스러움으로 넘쳐 외쳐대었단다. "고추여 고추! 아 글씨, 손을 쑤욱 집어넣자마자 토실토실 여문 불알 주머니가 대번에 물크덩하니 잽히지 않겄어? 세상에, 어찌나 오지든지 말이여!"
<잘한다, 업순네!>
매일 남편에게 죽도록 얻어맞던 업순네가 신이 내렸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셋씩이나 내렸는데 하필이면 시누이,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내렸다. 신내림굿을 하는 마당에서 시아버지 신이 내린 업순네는 남편의 뺨을 철썩철썩 때려가며 한바탕 호통을 친다. 그런데 바로 그 짧은 순간, 업순네의 입술 가장자리로 희미하게 얼핏 떠올랐다 지워지는 알 수 없는 웃음기를 '나'는 보았다. 남편의 못된 버릇이 다시 도져 업순네를 때리려는 찰나에 업순네는 시어머니 신이 내려 남편의 뺨을 쳐댄다. 어머니 신이 내린 업순네에게 뺨을 맞아가며 남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동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소리를 질러댄다. "잘한다, 업순네! 쳐라! 옳지! 더,더 세게 쳐! 더, 더......"
<소동이 아저씨>
옥님이 이모의 큰오빠 삼종씨가 떠돌이 엿장수를 꼬드겨 옥님이 이모와 짝을 지어주려 하지만 소동씨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옥님이 이모에게 방망이로 얻어맞고 쫓겨난다.
<천하장사 황설봉씨>
설봉이 고모부가 낙일도 마을 대항 운동회에 참석만 한다면 씨름으로 일등은 따놓은 당상이다. '나'의 할머니는 그런 설봉이 고모부를 위해 쇠고기를 두근이나 먹이고, 쇠기름만 따로 모아 힘을 내라고 먹인다. 아주 잘생긴 송아지가 쇠똥을 나무위에서 줄줄 흘리는 꿈을 꾸었으니 일등은 도맡아둔 것이라면서. 황설봉씨는 잔뜩 먹고 출전한 대회에서 배탈이 나 설사만 해댄다.
<우리 사촌 봉묵이 형>
봉묵이 형은 다리를 전다. 그가 동네 작부인 금옥이와 좋게 지내고, 결혼을 약속한다. 금옥이는 같은 술집에 팔려온 미자가 못내 안쓰럽다. 결국 미자를 도망시키기로 하는데 봉묵이가 힘을 써준다. 미자가 도망간 것을 알고 선표를 끊어주는 봉묵이를 술집 주인이 닥달하자 봉묵이가 말한다. "그 가시내가 아까 읍내까지 선표를 끊었어라우. 읍내에 닿을라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께, 빨리 읍내로 전화를 걸어서 미리 사람을 시켜 길목을 지키라고 하면 될 거신디라우." 미자가 "세상에, 이런 바보 천치같으니. 도와준다고 할 땐 언제구, 읍내로 갔다는 얘긴 왜 해. 이젠 다 틀렸어. 미잔 금방 잡혀올 거라구." 하지만 봉묵이는 히죽 웃음을 흘리기만 한다. "아따. 미쓰 오 양도 참, 이럴 줄 미리 알고 내가 미자한테 슬쩍 가르쳐 주었어라우. 읍내에 닿기 전, 꽃섬에서 일단 내렸다가, 거기서 여수 가는 '갈매기호'로 슬쩍 바꿔 타고 가라고라우. 그러니께 염려 마시요이. 지금쯤 여수 가는 배에서 편히 누워있을 것잉께, 으흐흣." 금옥이는 봉묵이가 대견스럽고 미더운 생각에 혼자 흐뭇하다.
<안녕, 칠성이 형>
사람 좋기로 소문난 칠성이 형이 군대에 갔다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칠성이 형 엄마가 군대에 찾아갔지만 자살했다는 말과 함께, 시신을 찾아가면 아무런 보상도 못해주고 안좋을 것이라며 을러대는 통에 그냥 빈손으로 내려오고 만다. 사병 하나와 장교 하나가 칠성이 형의 유골을 가지고 내려오지만 마을 청년들은 그들을 쫓아내다가 결국 서로 주먹질을 해댄다. 칠성이 형의 친구도 울고, 유골을 지고 온 사병도 운다. "다들 왜, 왜 이러는 거래유. 몰라유.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단 말이유. 나도 고, 고향에...... 친구들이랑 어무니가 있는 몸이란 말이유우. 어허엉......"
<동백꽃>
옛날 우리 마을과 화포리 사이에 에미끼미 마을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 마을에 젊은 내외가 살았는데 아낙은 어린 여자애 하나를 업고 다니며 행상을 하였다. 어느날 여자애 엉덩이에 조그만 반점이 생겨났는데 그것이 점점 커져서 병원을 데려가보니 소록도에 있는 진료소를 찾아가보라고 한다. 소록도에서 문둥병 검사를 하고 돌아온 아낙은 어린애를 데리고 산으로 간다. 가는길에 동백꽃을 쥐어 주자 아이는 까르르륵 웃는다. 구덩이에 아이를 뉘인 아낙은 도망쳐왔다가 며칠뒤에 그 자리로 돌아가보니 잠든 것처럼 허리를 꼬옥 웅크린 채 어미가 따서 준 동백꽃을 그러안고 숨져 있었다. 열손가락이 죄다 흙이랑 피범벅이 되어 훌렁 뒤집혀 있는채로.
전라도 사투리는 언제나 나에게 상반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아련한 그리움과 되돌아가고 싶지 않음.
5월에 청산도로 여행갈 생각을 했었는데, 낙일도가 바로 그 옆이라고 하니 한번 들러보고 싶어졌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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