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리의 도시>

아내와 아이가 있었을 때 퀸은 서너권의 시집과 희곡, 평론을 썼고 장편소설 번역을 하였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가 죽고, 어느날 자신의 일부도 죽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그는 윌리엄 윌슨이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퀸은 윌리엄 윌슨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를 자기가 쓴 글의 작가라고 여기지 않았기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고, 그 글을 옹호하려는 생각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날 밤, 탐정인 폴 오스터를 찾는 전화가 잘못 걸려오자 퀸은 자신이 쓴 추리소설 주인공인 탐정 맥스 워크를 떠올린다. 자신이 창조한 탐정 맥스 워크와 퀸은 닮기는 커녕 상반된 모습이었지만, 퀸이 맥스 워크와 자신을 동일시 할 때, 그리고 자신도 맥스 워크처럼 될 소질이 있음을 알 때에는 힘을 얻을 수 있었기에 사건을 맡는다.

사건을 의뢰한 사람은 피터 스틸먼이라는 사람으로 자신이 살해 위협에 처해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피터 스틸먼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말을 하지 못하도록 그의 아버지(아버지 이름도 피터 스틸먼이다)에 의해 9년간 감금 당하였는데, 어느날 집에 불이 나는 사건으로 구조되고 아버지 스틸먼은 정신병원에 갖혀 13년이 지났다. 그런데 며칠 뒤면 그 아버지가 병원을 나오고, 그 길로 자신을 찾아와 살해할 것이라는 것이다.

아버지 피터 스틸먼은 보스턴의 명문가 출신으로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 종교학과의 교수직을 역임하였으며 16세기와 17세기 신학적 해석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학자이다. 그의 아내는 석연치않은 이유로 자살을 하였고 그 후로 자신의 아이를 직접 양육하겠다며 9년간 실험을 한 것이다. 그의 실험은 어린아이에게 말을 가르치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새로운 언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이 새로운 언어야 말로 인류를 구원할 언어라는 것이다.

퀸은 스틸먼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그의 논문을 조사하고, 그가 정신 병원에서 나온 후에도 우연을 가장한 접촉을 하며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다. 스틸먼은 목사 헨리 다크의 소책자 <새로운 바벨탑>에서 영감을 받아 하나의 이론을 세우는데, 최초의 바벨탑은 하나님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고 그 주인이 되어라> 라는 계명에 반하였기 때문에 신의 노여움을 샀는데, 당시에는 신대륙이 발견되지 않아서 아직 땅을 모두 채우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대륙이 발견되고 모든 땅을 인류가 채운 지금, 바벨탑을 세우고 하나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헨리 다크는 스틸먼이 창조한 가공의 인물임이 밝혀지는데 헨리 다크는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달걀, 험프티 덤프티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아직 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잠재적인 존재이며 어느 누구도 일으켜 세우지 못하였던 존재이다. 그런데 다른 또 하나의 달걀, 즉 콜롬버스의 달걀은 세워진 달걀인데 신대륙이 발견된 것과 같이 이제 달걀이 세워질 때가 되었다는 논리이다. 

퀸은 스틸먼을 계속 뒤쫓는 과정에서 그의 산책로가 하나의 글자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알고, 그 글자를 조합하면 <THE TOWER OF BABEL>이 되는 것을 알고 더욱 긴장을 한다. 그 글자를 마치는 때에 무언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날, 그가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사건을 의뢰하였던 피터 스틸먼과 그의 부인 버지니아 스틸먼 역시 전화를 받지 않는다. 

탐정 폴 오스터를 찾아가지만 그 역시 탐정이 아닌 작가이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애초에 자신이 의뢰된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맥스 워크와 자신의 동일시에 있었음을 기억하고 스틸먼 부부의 집을 감시하며 피터 스틸먼의 공격에 대비하기로 한다. 몇 달이 지나도록 그는 집을 감시하지만 피터 스틸먼은 나타나지 않는다. 돈이 떨어져 폴 오스터 앞으로 발행된 수표를 기억하고 그에게 전화를 하는데, 폴 오스터는 피터 스틸먼이 이미 자살했다고 말한다. 할 수 없이 몇 달만에 집으로 돌아가지만 자신의 집은 이미 치워지고 다른 세입자가 살고 있으며 스틸먼 부부의 집으로 가보니 그 집은 텅 빈 집이다. 그곳에서 그는 먹는 시간 외에는 빨간 공책에 농아 단체가 판매한 볼펜으로 무언가를 기록하는 일 외에는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빨간 공책에 더 이상 쓸 자리가 없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이다.

 

o 폴 오스터와 퀸의 만남에서 등장한 <돈키호테>에 관한 이야기

폴 오스터는 <돈키호테>에서 중요한 점은 세르반테스 자신이 저자가 아니며 아메테 베넨겔리라는 아랍인이 실제 저자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세르반테스는 이 아랍어 원고를 스페인어로 번역하였을 뿐이고 원고의 편집자일 뿐이라는 밝히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는 것이다. 폴 오스터는 아메테 베넨겔리가 네 사람의 복합체이며 돈키호테를 계속 따라다니며 모든 사건을 지켜보는 산초가 이발사와 사제에게 구술하여 주며, 수습 기사인 삼손 카라스크가 스페인어를 아랍어로 번역하고 세르반테스가 다시 아랍어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미친짓을 사람들이 얼마나 참아낼까 시험하고 그 시험 결과 사람들은 얼마든지 참는다는 것을 알아냈고, 산초 등은 돈키호테의 광기를 치료하기 위해 돈키호테의 책들을 불태우고 갖가지 변장을 하여 돈키호테의 행동을 거울로 비추듯 보여준다는 것이다.

 

<유령들>

화이트는 탐정 블루에게 블랙을 감시해달라고 사건을 의뢰한다. 블루는 화이트의 부인과 블랙이 모종의 불륜관계에 있을 거라고 짐작만 할 뿐, 실제 어떤 이유 때문에 감시를 부탁한 것인지는 모른다. 블랙의 아파트 건너편에 자리를 잡은 블루는 블랙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블랙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읽거나, 몇 시간 동안이나 글을 쓰거나 할 뿐 특이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어느날 집을 나선 블랙이 어떤 여자와 식당에서 만나는데 블랙과 그 여자 모두가 슬픔에 잠겨 흐느끼지만 여자를 택시에 태워 보낸 블랙은 집으로 향하고 그 외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블랙은 블루를 계속 감시하면서 그가 읽는 책을 사서 읽기도 하는데 점점 블랙이 어떤 일을 할지, 어떤 생각을 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느날 길거리에서 애인이 다른 남자와 길을 걷다가 자신과 마주치는데 그 여자는 분노로 블루에게 화를 내고, 블루는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그 여성을 방치하였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자신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생각한다.

화이트에게 계속해서 보고서를 보내면서 블루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이해할 수도 없고, 블랙의 행동에서 어떤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도 없었기에 자신이 보고서를 보내는 사서함이 있는 우체국으로 화이트를 찾으러 간다. 그러나 화이트는 얼굴에 가면을 쓰고 나타나 편지를 가지고 사라져버리고, 그 후로는 화이트를 우체국에서 만날 수가 없다는 사실에서 자신도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음을 알아챈다. 블루는 그 후 블랙과 직접 접촉을 시도하고 난 후 거짓 보고를 보내자 화이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음번 만남에서 블랙은 자신이 사설 탐정이며 누군가를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블루는 블랙이 하는 일이 블루가 하는 일과 완전히 똑같다는 것을 안다. 블루는 블랙의 집을 변장하여 다시 방문하는데 이번에는 블랙이 자신의 직업을 작가라고 말한다. 마지막 방문에서 블루는 블랙의 집에서 화이트가 쓰고 있던 가면과 똑같은 것을 발견하고, 블랙은 '내가 하기로 되어 있는 일을 나 자신에게 떠올려 주기 위해 자신을 감시하는 블루의 존재가 필요했다'며 블랙과 화이트가 동일한 인물임을 밝힌다. 권총으로 위협하던 블랙을 블루가 제압하고 그를 마구 폭행한 후 블랙이 쓴 원고를 집으로 가지고 가서 읽고 나서 모자를 쓰고 방 밖으로 걸어나간다.

 

<잠겨 있는 방>

어느날 어릴 적 친구인 팬쇼의 부인 소피로 부터 편지가 온다. 소피는 팬쇼가 행방불명이고 아마 죽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가 지금까지 써온 원고의 처분을 나에게 위임할 것을 팬쇼가 말했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팬쇼를 동경과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나는 그의 원고들이 무척 탁월한 작품임을 알게된다. 작품을 발표하자 문단에서는 찬사가 쏟아지고 나와 소피는 막대한 인세 수입을 얻게 된다. 소피와 사랑에 빠진 나는 평온한 나날을 보내다가 어느날 죽었다고 믿고 있던 팬쇼로부터 한장의 편지를 받는데, 거기에는 소피와 아이를 보살펴주어 감사를 표하는 한편, 자신은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고 작품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을 것이지만 자기를 절대로 찾지 말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팬쇼가 살아있음을 소피에게 얘기할 용기를 내지 못한채 소피와 결혼하고 벤을 입양하고 팬쇼의 작품을 발표해가던 어느날 그에게 편집자가 팬쇼의 전기를 써볼 것을 권유하고 '나'는 이를 수락한다. 팬쇼의 행적을 따라가며 자료를 조사하는 도중, '나'는 팬쇼의 전기를 쓰기 위한 자료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팬쇼를 찾아내기 위한 일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팬쇼가 사실은 '나'의 필명이 아닌가 하는 의심과, 팬쇼 어머니가 '나'와 팬쇼가 너무 닮아서 어릴 적 종종 구분이 되지 않았다는 말들을 듣자 더욱 팬쇼를 찾는데 몰두하게 되고, 어느날 팬쇼의 어머니가 '나'를 유혹하자 그녀와 성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그 행위의 의미가 그녀를 이용해 팬쇼를 공격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리고, 팬쇼를 찾아내 죽이고 싶다고 느낀다.

그 뒤로 소피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파국에 이를 지경이 되고 '나'는 팬쇼의 전기를 쓰는 일이나, 팬쇼를 찾는 일을 계속하면 모든 것이 끝장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며 집으로 돌아오고, 팬쇼로부터 두번째 편지가 도착한다. 다시 만난 팬쇼는 그동안에 살아왔던 일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는 모두 빨간 공책에 적혀 있다고 말하며 '나'에게 건내주고, 나는 공책에 적힌 것을 모두 읽고 난 후 쓰레기통에 버린다.

 

<뉴욕 3부작>은 세 작품은 서로 관련을 가지고 있어서 모두 읽고 난 후에야 각각의 이야기가 연결된다. 각각의 작품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유리의 도시>  : 퀸, 피터 스틸먼, 피터 스틸먼(아버지), 버지니아 스틸먼, 폴 오스터

<유령들> : 블랙, 화이트, 블루

<잠겨있는 방> : 나, 팬쇼, 소피, 피터 스틸먼, 퀸

 

두 가지 이야기를 보자. 먼저 <잠겨있는 방>의 '나'가 술집에서 팬쇼를 발견했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말을 걸지만 그가 자신의 이름은 피터 스틸먼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팬쇼가 마지막 만남에서 '나'에게 한동안 자신이 퀸에게 추적을 받았다고 하는데, 소피는 퀸이 5주정도 찾아보다 찾지 못했다고 하지만, 팬쇼는 퀸이 자신을 찾아내었으며 한동안 도망다녔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퀸을 함정에 빠뜨렸다는 말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가정이 가능하다. 팬쇼가 도망친 후 퀸은 팬쇼를 찾기 위해 애를 쓰고, 팬쇼는 피터 스틸먼이라는 이름으로 가공의 피터 스틸먼을 만들어내어 살해 위협에 처해있다며 사건을 의뢰한다. 가공의 피터 스틸먼(실제로는 피터스틸먼 자신의 변장, 혹은 팬쇼)을 퀸이 쫓아다니는 동안 팬쇼는 사라지고 퀸은 마지막에 자신이 왜 1969년에 스틸먼이 체포되었을 당시의 신문 기사를 찾아보려 하지 않았었는지 의문을 갖는다. 즉, 1969년에 스틸먼의 체포 기사는 없었을 것이고, 그가 찾아다니던 피터 스틸먼은 허구의 인물임을 어렴풋이 알아챈 것이 아닐까? <잠겨있는 방>에서 '나'가 팬쇼를 발견하지만 팬쇼라고 지목된 사람은 자신의 이름은 피터 스틸먼이라고 하면서 도망치는 장면도 이를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유리의 도시>에서 퀸이 방문한 폴 오스터가 사실은 <잠겨있는 방>의 나는 아닐까? 팬쇼가 사라지고 소피와 결혼한 시기쯤으로 보면 적당할 것 같고, 폴 오스터가 쓰고 있는 작품들과 <잠겨있는 방>에서 '나'가 쓰고 있는 글들도 비슷하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짝짓기를 애써 부정하는 듯 아내의 이름은 시리, 아들의 이름은 대니얼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는 아이의 이름이 대니얼이라고 밝힌 후 아이가 "모두가 다 대니얼이네"라고 하자, 퀸이  "그렇구나, 나는 너고 너는 나고"라는 말을 함으로서 언어가 지칭하는 것이 반드시 그 사물의 속성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암시를 한다.

다음으로 <유령들>에서 블랙과 화이트는 동일 인물이다. 화이트는 자신을 감시해 달라며 블루에게 사건을 의뢰하고 보고서를 받는데, 그 보고서를 통해 타인의 눈으로 자신(블랙)을 바라본다. 그리고 타인의 눈을 통해서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화이트(블랙)이 팬쇼이고, 블루가 퀸이라면 어떤가? 그러나 작가 자신이 이러한 명확한 가정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블랙,화이트,블루로 처리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하든 일반적인 추리소설처럼 딱 들어맞는 경우는 없다. 왜냐하면 작품 전체에서 이름에 관한 불확실성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의 가정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는 있으나 얼마든지 부정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토록 복잡한 상황을 만들고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일까? 작품을 읽다보면 일반적인 추리소설처럼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의 실마리도 있지만 사건이 완벽하게 해결되지는 않으며, 어느사이엔가 '글을 쓰는 사람의 딜레마'로 회귀한다. 

<유리의 도시>에서 폴 오스터가 말한 <돈키호테>에 관한 해석을 보자. 자신이 작품을 썼으면서도 자신은 원작자가 아니며 번역본의 원고 편집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스스로 검열을 통해 제3의 인물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작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지만 온전히 거기에 몰두할 수가 없다. 작가에게는 독자가 필요하며 독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독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나의 부모, 심지어 나 자신도 될 수가 있기에 그들을 의식하다 보면 끊임없이 제3의 인물의 이름으로 작품을 쓰고 싶은 유혹이 일 것이다. 퀸이 윌리엄 윌슨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면서도 그 작품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상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퀸이 일거리를 맡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윌리엄 윌슨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작품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유령들>에서는 작가인 화이트가 '내가 하고자 한 일을 타인이 떠올려 주길 바라면서' 감시역 블루를 고용한다. 그리고 원고를 가져가는 것도 스스로 내어 주는 것이 아니라 블루와의 폭력적인 결말 끝에 블루가 탈취해가는 형태이다.

<잠겨있는 방>에서 팬쇼는 자기의 작품을 스스로 발표하지 못하고 가정을 버리고 증발해 버림으로서 발표 이후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친다. 팬쇼는 자신의 작품들이 발표될 줄도 몰랐고 모조리 쓰레기라고 생각했다면서 추후 작품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팬쇼는 권리를 주장하여 막대한 인세수입을 얻는 것보다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된 작품들에 책임을 지는 일이 더 무서웠던 것은 아닐까? 

또 마찬가지의 이유로 공책과 원고들은 읽히고 난 뒤 사라지거나 내용이 불분명하다. 공책의 내용에 대한 언급이 없고(유리의 도시), 원고를 가지고 나간 후의 일을 알 수가 없거나(유령들), 원고를 찢어서 버리거나(잠겨있는 방) 하는 것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98136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멜리 노통브는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베이징, 뉴욕, 방글라데시, 보르네오, 라오스 등지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소설은 22살의 벨기에인 아멜리가 유미모토(弓本)라는 일본회사에 취직하여 1년 동안 겪은 내용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며, 제목은 '과거 일본 황실의 의전(儀典)에, 천황을 알현할 때는 <두려움과 떨림>의 심정을 느껴야 한다는 규정'에서 따온 것이다. 일본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아멜리는 일본회사에서 통역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취직하여 사장인 하네다 , 부장인 오모치, 그리고 사이토와 모리 후부키(吹雪 : 눈보라)를 상사로 두고 있는 계선제 조직의 말단 사원이 된다.

처음 맡은 일은 골프접대에 응한다는 영문편지 쓰는 일이었는데 일본식 규범에 익숙치 못한 그녀의 편지는 상사의 비웃음만 산다. 다른 일이 주어지지 않자 우편물 배달하는 일을 하기로 했지만 그 일은 이미 하는 사람이 있어 달력의 날짜를 바꾸는 일에 만족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타인의 주목을 끈다는 이유로 상사의 꾸지람을 듣는다.

그녀에게 두번째로 주어진 일은 천여장의 인쇄물을 복사하는 일. 하지만 상사는 복사물의 중심이 어긋났다는 이유를 대며 다시 해오라는 지시만 반복한다. 그 즈음 타부서의 부장 덴시(天使 : 천사)가 벨기에와 관련된 보고서 작성을 그녀에게 제안하고, 드디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생겼음에 기뻐한 그녀는 최선을 다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하지만 보고서의 내용과는 상관 없이 계선제 조직의 위계를 어겼다는 이유로 아멜리와 덴시 모두가 상사로부터 모욕에 가까운 질책을 듣는다. 그리고 그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아멜리이고 그로 인해 조직의 위계가 흐트러졌음을 보고한 것은 다름아닌 후부키, 아멜리의 직속상관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경탄으 눈으로 바라보았고 직장 내에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로 여겼기에 아멜리는 대화를 통해 화해를 시도하지만, 후부키는 이를 항명으로 받아들이고 아멜리에게 출장명세서의 계산 작업을 맡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계산서의 작업을 끝내지 못하자 후부키는 아멜리를 지적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인간으로 취급한다. 어느날 상사로부터의 치욕스러운 호통에 울고있는 후부키를 화장실에서 위로하려던 아멜리의 행동 역시 후부키에게는 울고있는 모습을 봄으로서 치욕을 안겨준 행동으로 여겨져 결국 화장실 청소를 하는 직무로까지 떨어진다. 그리고 1년간의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아멜리는 화장실청소 업무 외에는 아무일도 맡지 못한다.

 

1999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2003년 알랭 코르노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화제가 되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내용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과연 출간되었을지 궁금해 일본 아마존을 검색해 보았는데 출간되지 않은 듯 하다. 소설의 도입부에서는 동양적인 가치에 대한 서양인의 왜곡된 시선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지만 계속 읽어나갈수록 작가는 그런 함정을 벗어나 조직과 체면, 위계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개인이 어떻게 말살되어 가는지, 그 결과 인간관계가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93278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두 얼굴의 여자 킨제이 밀혼 시리즈 2
수 그라프튼 지음, 나채성 옮김 / 큰나무 / 2011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주인공 킨시 밀혼. 20살에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산타 테레사 경찰국의 경관으로 일했으나 '여경관에게 쏟아지는 호기심과 조롱들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터프한지 증명하고 모욕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재앙으로 부터 벗어나기로 결심'하여 현재는 탐정으로 일하고 있다. 32살이며 두 번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다.

어느날 비버리 댄지거라는 여성이 자신의 언니인 엘레인 볼트를 찾아달라며 사건을 의뢰한다. 친척 중 한명이 사망하여 상속인 모두가 서명을 하여야하는데 엘레인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엘레인 볼트는 부유한 여성으로 비아 마드리나가 주소이며 일 년 중 몇 개월은 플로리다의 보카에서 지내곤 했기 때문에 두 곳을 조사하지만 엘레인의 종적은 묘연하고, 킨시 밀혼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였음을 직감한다.

엘레인이 사라지기 직전 옆집에 사는 여성 마티 그리스가 강도에게 살해당하고 그 집이 불타는 사건이 있었고, 엘레인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조사를 진행시키는 즈음, 플로리다의 콘도에 엘레인의 친구라 주장하며 머물던 팻 어셔라는 여성이 콘도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사라져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애초의 사건 의뢰자였던 비버리 댄지거가 사건 조사를 끝낼 것을 요구하고 그녀의 남편과 엘레인이 불륜관계였음이 드러나자 킨시 밀혼은 그녀가 용의자가 아닌가 의심한다. 마티 그리스의 사망으로 남편이 이득을 얻을 것이라 생각하고 조사를 하였으나 그가 별다른 이득을 얻지 못하였으며 폐인과 같이 되어 혐의가 벗겨질 무렵 마티 그리스의 남편이 어떤 여성과 만나는 것이 목격되고 이로써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옆집에서 살해된 사람은 마티 그리스가 아닌 엘레인 볼트이며 그녀의 치과기록은 조작된 것이고 그날 밤 엘레인이 먹은 음식은 쓰레기통을 뒤져 알아낸 것이다. 마티 그리스는 성형수술을 받은 후 펫 어셔라는 인물로 행세하며 플로리다에서 지내다가 꼬리가 밟힐 위기에 처하자 도망친 것이다.

 

수 그라프튼의 알파벳 시리즈 중 B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원제는 "B" is for Burglar, 강도에 관한 작품이다. 앤서니상과 샤무스 어워드 작가상 수상작인데 의외로 맥빠지고 재미 없다. 물론 85년 발표 당시를 감안하면 이미 죽은 시체가 범인이라는 설정이 당시엔 참신했을지도 모르겠다. 추리보다는 조사에 가까운 작업들이 주되고, 사건의 실마리는 우연히 알게된다. 수 그라프튼은 알파벳 시리즈를 주로 써 내는데 2011년 현재 'V'까지 발표하였고 국내에는 세 권의 책이 번역되었다.

 

참고로 발표된 알파벳 시리즈는 아래와 같다. 작품 제목은 "A" is for Alibi 하는 식이고, 괄호 안은 발표 연도와 국내 출간 제목이다.

 

Alibi(82, 여형사K), Burglar(85, 두 얼굴의 여자), Corpse(86, 말 없는 목격자), Deadbeat(87), Evidence(88), Fugitive(89), Gumshoe(90), Homicide(91), Innocent(92), Judgment(93), Killer(94), Lawless(95), Malice(96), Noose(98), Outlaw(99), Peril(01), Quarry(02), Ricochet(04), Silence(05), Trespass(07), Undertow(09), Vengeance(11)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93011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울 보는 여자
김이소 지음 / 민음사 / 1996년 5월
평점 :
품절


주인공 '나'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유한 고객층을 상대로 디자이너의 옷을 파는 A숍에서 일하고 있다. 설악산 여행을 위해 고속도로를 운전하던 중 백미러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던 남자가 관심을 보이자 그와 얘기를 나누고 식사를 한다. 그의 직업은 문화평론가이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몇 번의 만남 후 그가 '나'에게 동거를 제의하면서 '얽매이는게 싫어  결혼은 싫지만 책임은 다하겠다' 고 말한다.

처음 얼마간은 관계가 잘 유지되는 듯 했으나  점차 그가 '나'의 학력과 친구들의 수준에 혐오감을 표명하기 시작하여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나'는 그가 원하는 옷을 입고 그가 원하는 장소에서 예쁜 여자친구 역할을 할 뿐, '나'의 생각이나 취미는 무시된다. 결국 그가 떠난 후 다른 여자와 머물고 있는 집에 찾아가 스스로 머리카락을 가위로 마구 잘라낸 후 교통사고를 내 병원에 입원하고, 정신과치료를 받아보라는 권유에 상담은 받지만 그 상담을 통해 자신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작중 여성들의 공통점은 대상화 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문화평론가인 '그'가 말하는 모습을 좋아할 뿐 내용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도 못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장소에 동석한다. '나'의 동료는 불륜상대로 이혼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버림 받는다. '나'의 엄마 역시 어렸을 적 남편을 잃은 후 생계를 꾸려오다가 뒤늦게 '아저씨'를 만나 외로움을 달래고 있지만 이를 떳떳하게 생각하지는 못하는 듯 하다.

 

작중에서 '신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의 관람 후 연출가와 나의 대화는 '그'의 허위의식을 드러낸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두 명의 등장인물이 끊임없이 부조리한 대화만을 하는 것을 보며 '나'는 끔찍하다는 느낌을 얘기하지만, '그'는 그녀가 예술을 이해할 능력이 없으며 훌륭한 작품을 매도한 것처럼 불쾌해한다. 하지만 정작 연출가는 그 연극을 보면서 관객이 지루하고 끔찍한 느낌을 받기를 의도하였으나 허위의식에 가득찬 관객은 마치 그 안에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지루하고 끔찍하다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며 한탄한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감정표현을 직접 하지 않는다. 동일한 상황에 대한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자신이 하는 일 조차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것 처럼 처리하기도 한다. 작가의 시도가 신선하고 성공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또 작중에 '그'와 예술가 무리의 대화 중 '소설은 일단 재밌어야 하며 독자는 재미가 없으면 책을 덮으면 그만'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자신의 작품에는 그런 기준을 왜 적용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소설은 재미가 없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92004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페이드의 여왕 (구) 문지 스펙트럼 3
알렉산드르 셰르계예비치 푸슈킨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5월
평점 :
품절


<고 이반 폐트로비치 볠킨의 이야기>

 

o 그 일발

 

겉보기에는 러시아인 같지만 이름은 외국식인 실비오는 민간인임에도 불구하고 군인들 사이에서 일원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한때 경기병으로 복무했었으나 무슨 이유인가로 장교의 지위를 버리고 퇴역하였으며, 재산이나 수입이 얼마인지 아무도 몰랐고 책을 꽤 많이 가지고 있으며, 사격의 명수이다. 놀음을 하던 어느날 실비오가 한 장교에게 모욕을 당하자 우리 모두는 그가 장교에게 결투를 신청할 것이라 짐작했지만 이상하게도 실비오는 결투를 피하기만 하여 나는 그가 용기없는 자는 아닌가 하여 실망하고 만다.

어느날 실비오가 편지를 한 통 받은 후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부유하고 고귀한 가문의 젊은이와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그에게 따귀를 맞는 사건이 일어나고 결투가 벌어진다. 젊은이가 먼저 쏜 총알은 실비오를 맞추지 못하고 투구를 꿰뚫고, 내가 젊은이를 쏠 차례가 되었는데 젊은이에게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실비오는 자신의 한발을 나중에 쏘겠다며 그 결투를 미루고 복수심에 찬 하루하루를 보낸다. 편지가 전해온 소식에 의하면 그 젊은이는 곧 아름다운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실비오는 결혼을 앞둔 그가 예전과 같이 자신의 권총을 앞에 두고 아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지 보겠다며 마을을 떠난다.

몇년 후 내가 가난한 마을로 이사하여 우연히 옆집에 사는 백작과 교우관계를 맺고 있는데 백작의 집에 있는 그림에는 겹쳐진 두개의 총알 자국이 있다. 흥미를 느낀 나는 그 총알 자국의 유래를 백작에게 묻고, 백작의 이야기는 나에게 놀라움을 준다. 백작은 바로 예전의 젊은이었고 실비오는 그를 찾아왔었다. 다시 벌어진 결투에서 젊은이의 총알은 실비오를 맞추지 못하고 그림을 맞춘다. 실비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젊은이에게 '난 만족하네. 자네가 당황해하고 겁먹는 걸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네. 자네에게 날 쏘게 만들었으니 이제 됐네. 자넨 날 평생 기억할 테지. 자네를 자네 양심에 맡기겠네. 라면서 제대로 겨냥도 하지 않고 그림에 총알을 발사하고 집을 떠난다.

 

역자(김희숙)는 실비오가 '결코 사람을 쏘지 못하는 복수자'이며 죽임에 대한 공포가 그에게 사람 쏘기를 막고 있으며, 이 공포야 말로 자신에 대해서는 결코 인정하거나 용서하기 싫었고 그래서 더욱 백작에게서 보고 싶어했던 실비오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일 것이라는 해석을 한다. 그러나 나는 약간 생각이 다르다. 실비오가 만족한 점은 두 가지이다. 백작이 '당황해하고 겁먹었다'는 점과, '날 쏘게 만든' 점이다. 당황하고 겁먹은 백작을 보았을 때, 실비오보다 우위에 있다는 듯 두려워하지 않던 백작이 이미 죽어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기에 굳이 총알을 발사하여 그의 생명을 끊을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또 날 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만족한다는 말은 두번째 결투에서 실비오가 남은 한발을 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제비뽑기를 하자고 하였을 때 백작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실제 먼저 쏘았다는 점이다. 명예와 자존심을 중요시했다면 백작은 제비뽑기 자체를 거부했어야 옳다. 그래서 실비오는 '자네를 자네 양심에 맡기겠네'라고 하며 떠난 것으로 생각된다. 실비오는 그 후 전쟁에 참가한 후 전사한 것으로 나오는데 전쟁은 어찌보면 다수대 다수의 결투가 아니던가. 죽임에의 공포를 가진자가 전쟁에 참가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o 눈보라

 

마리야 가브릴로브나는 부유한 집안의 딸로 프랑스 소설을 읽으며 자란 터라 낭만적인 사랑에 경도되어 있다. 그녀는 가난한 육군 소위인 블라지미르 니콜라예비치와 사랑에 빠졌지만 둘은 집안의 반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블라지미르는 마리야 가브릴로브나에게 집을 도망쳐 자신과 몰래 결혼하자는 제안을 한다. 둘이 만나기로 한 날 심한 눈보라로 블라지미르는 약속한 교회에 제 시간에 갈 수가 없었고 마리야 가브릴로브나는 집으로 돌아온 후 심한 열병에 시달린다. 상심한 부모는 마리야 가브릴로브나의 병이 상사병이라고 생각하여 블라지미르에게 결혼을 허락한다는 서신을 보내지만 그는 부대로 돌아간 후였고, 거절의 내용을 담은 반쯤 미친 답장을 보낸다. 얼마 후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설상가상으로 블라지미르마저 전사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전쟁이 끝나고 귀환한 멋진 군인들의 갖은 구애에도 마리야 가브릴로브나는 냉담한 태도만을 취한다. 그러나 경기병 대령인 부르민에게만은 마리야 가브릴로브나도 마음이 끌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는데, 어느날 부르민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자신은 결혼한 몸이라 이루어 질수가 없다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1812년, 어느 눈보라가 치는 날 그는 우연히 교회를 지나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를 교회로 끌고 들어간다. 부르민을 신랑으로 오인한 사람들과 반쯤 장난어린 그의 행동의 결과 그는 어느 여자와 결혼을 하고, 정신을 잃고 의자에 앉아있던 신부에게 키스하려는 순간 신부가 신랑이 바뀌었음을 알고 다시 기절을 하자 부르민은 그곳을 떠나 목적지로 향한다. 하지만 그가 조롱했던 그 여자에게 아직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이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부르민은 그의 이름 속에 '폭풍 burja'이 들어있으며, 사건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힘의 하나가 초인간적인 동기, 즉 눈보라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초인간적인 신비한 힘 말고도 블라지미르의 불완전한 준비, 부르민의 행동 등 산문적인 이유가 가세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푸슈킨이 낭만주의의 특징인 운명과 초자연적인 힘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상대화시키고 산문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낭만주의 소설적 전통을 따른다면 블라지미르와 마리야가 결혼하여야겠지만 푸슈킨은 마리야를 바람 같고 재치 있는 부르민과 맺어준다.

 

o 장의사

 

장의사인 아드리안 프로호로프는 새 집으로 이사를 간다. 얼마 후 술자리에서 '자네의 망자들을 위해 한잔 하라'는 말에 모욕을 느낀 그는 술에 취해 집들이에는 '자신에게 일거리를 주는 이들인 죽은 정교도들', 즉 망자들을 초대하겠다고 중얼거리다 잠이 든다. 그날 밤 그의 집에 정말로 망자들이 잔뜩 들이닥치자 프로호로프는 얼이 빠져버리고, 뼈뿐인 퇴역 근위 중사 표트르 폐트로비치가 자신을 껴안으려 하자 비명을 지르며 그를 떠밀어 버리고 자신도 기절하고 만다. 다음날 잠에서 깬 그는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알고, 트류히나가 죽지 않아 관을 팔 수 없게 되었음을 알고도 기뻐한다. 망자들을 초대하여 집들이를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망자들이 찾아오자 오히려 망자들을 밀쳐내고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이 대비를 이루면서 죽음이 이득이 되는 아이러니한 직업인 장의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푸슈킨의 시에서 '새집'이나 '집들이'는 종종 죽음의 메타포로 등장한다고 한다.

 

o 역참지기

 

늙은 역참지기의 아름다운 딸 두냐가 젊고 부유한 기병 사관 민스키와 함께 페테르부르크로 달아난다. 민스키가 꾀병을 핑계로 두냐와 가까와진 후 두냐를 유혹할 때 두냐는 머뭇거리지만 역참지기는 두냐에게 '나리는 늑대가 아니니까 잡아먹지 않을 거야. 교회까지 타고 가려무나'라며 제 손으로 두냐를 넘겨준다. 하지만 교회에 두냐가 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역참지기는 민스키의 꾀임에 빠졌다고 생각하여 딸 두냐를 찾아나선다. 그들을 태워다 준 마부는 '두냐 자의로 따라 나선 듯이 보였지만 내내 울고 있었다'고 말하는데 역참지기는 '내내 울고 있었다'에만 무게를 두어 두냐가 민스키의 꾀임에 빠졌다는 생각을 더욱 확신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민스키와 두냐를 본 후에도 딸의 행복을 인정하지 못하고 두냐가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몇년 후 역참지기가 죽고, 그 무덤을 두냐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찾아온다.

 

역참지기는 자신의 믿음에 근거하여 여러가지 상황을 판단하지만 모두 그릇된 판단 뿐이다. 민스키를 오인하여 두냐를 안심시키고, 자의로 따라나선 두냐는 꾀임에 빠졌다고 생각하며, 행복한 두냐의 모습은 인정하지 못하고 버려질 바에는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가 죽은 후 두냐는 유모와 사내아이 셋, 그리고 개까지 데리고 온 것으로 보아 역참지기의 예상과 달리 행복한 삶을 꾸렸던 것으로 보인다.

 

o 귀족 아가씨 - 농사꾼 처녀

 

전형적인 러시아 귀족 볘례스토프와 영국식에 사족을 못 쓰는 무롬스키는 앙숙 관계이다. 무롬스키에게는 장난꾸러기인 딸 리자가 있는데 그녀가 볘례스토프의 아들 알롁셰이에게 농사꾼 처녀 아쿨리나로 변장을 하고 나타난다. 알롁셰이는 농사꾼의 딸이지만 아름다운 아쿨리나에게 반하여 글을 가르쳐주고 편지를 보낸다. 앙숙이던 볘례스토프와 무롬스키가 우연한 사고로 화해를 하고 두 아버지는 자신의 딸과 아들을 결혼시키려 하지만 알롁셰이는 아쿨리나에게 반하였기 때문에 리자가 싫다며 거절하고, 아버지는 한푼도 유산으로 주지 않을 것이라며 알롁셰이를 윽박지른다. 무롬스키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으로 그의 집에 찾아갔다가 리자를 발견하고, 그녀가 아쿨리나임을 알게된 알롁셰이는 그녀의 손에 키스하고 이를 본 무롬스키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귀족 볘례스토프의 이름은 영국식이고 영국식 추종자 무롬스키의 이름은 전형적인 러시아 이름이라고 한다. 아쿨리나는 농사꾼 딸이지만 알롁셰이는 아쿨리나가 귀족의 딸과 같이 총명하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한다. 결국 겉으로 보이는 것과 본질적인 것 사이의 불일치, 그리고 이로 인한 긴장관계를 푸슈킨은 해피앤딩으로 마무리한다.

 

<스페이드의 여왕>

 

주인공 계르만은 야심만만한 사나이지만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만한 재산과 배경이 없다. 그는 도박을 좋아하면서도 '여분의 것을 얻길 바래서 꼭 필요한 것을 희생하지 않는' 금욕을 철칙으로 살아가며 근면과 성실로 야망을 이루리라 다짐한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기묘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백작 부인이 3장의 카드를 맞추는 비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백작 부인의 양녀 리자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은 그는 리자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백작 부인의 집에 숨어든다. 백작부인에게 비법 전수를 부탁하나 부인은 이를 거절, 혹은 정말 비법 따윈 없는 것인지, 한다. 권총으로 백작부인을 위협하다가 백작부인이 심장마비로 죽자 그는 리자의 사랑을 이용하여 집에서 무사히 탈출한다.

어느날 꿈에 백작부인이 나타나 세장의 카드 번호, 3과 7과 1을 알려주며 하루에 한번만 도박을 할 것과 불쌍한 양녀와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면 모든 것을 용서해주겠다고 한다. 도박장에 간 그는 첫번째와 두번째 도박에서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 도박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드디어 1이 나와 그의 야심은 실현되는 듯 한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1이 아닌 스페이드 퀸이 었으며 백작부인을 닮은 카드 속 스페이드 퀸이 계르만에게 눈을 가늘게 뜨고 싱긋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르만은 미쳐서 오부호프 병원에 앉아 무엇을 물어보아도 "삼, 칠, 일! 삼, 칠, 퀸!"하고 중얼거릴 뿐이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후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미성년>, 솔로구프의 <작은 악마>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볠린스키는 "러시아 문학은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찬사를 했고, 루카치는 이에 비견하여 "<스페이드 여왕>에 대해서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88934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