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드의 여왕 (구) 문지 스펙트럼 3
알렉산드르 셰르계예비치 푸슈킨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 이반 폐트로비치 볠킨의 이야기>

 

o 그 일발

 

겉보기에는 러시아인 같지만 이름은 외국식인 실비오는 민간인임에도 불구하고 군인들 사이에서 일원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한때 경기병으로 복무했었으나 무슨 이유인가로 장교의 지위를 버리고 퇴역하였으며, 재산이나 수입이 얼마인지 아무도 몰랐고 책을 꽤 많이 가지고 있으며, 사격의 명수이다. 놀음을 하던 어느날 실비오가 한 장교에게 모욕을 당하자 우리 모두는 그가 장교에게 결투를 신청할 것이라 짐작했지만 이상하게도 실비오는 결투를 피하기만 하여 나는 그가 용기없는 자는 아닌가 하여 실망하고 만다.

어느날 실비오가 편지를 한 통 받은 후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부유하고 고귀한 가문의 젊은이와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그에게 따귀를 맞는 사건이 일어나고 결투가 벌어진다. 젊은이가 먼저 쏜 총알은 실비오를 맞추지 못하고 투구를 꿰뚫고, 내가 젊은이를 쏠 차례가 되었는데 젊은이에게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실비오는 자신의 한발을 나중에 쏘겠다며 그 결투를 미루고 복수심에 찬 하루하루를 보낸다. 편지가 전해온 소식에 의하면 그 젊은이는 곧 아름다운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실비오는 결혼을 앞둔 그가 예전과 같이 자신의 권총을 앞에 두고 아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지 보겠다며 마을을 떠난다.

몇년 후 내가 가난한 마을로 이사하여 우연히 옆집에 사는 백작과 교우관계를 맺고 있는데 백작의 집에 있는 그림에는 겹쳐진 두개의 총알 자국이 있다. 흥미를 느낀 나는 그 총알 자국의 유래를 백작에게 묻고, 백작의 이야기는 나에게 놀라움을 준다. 백작은 바로 예전의 젊은이었고 실비오는 그를 찾아왔었다. 다시 벌어진 결투에서 젊은이의 총알은 실비오를 맞추지 못하고 그림을 맞춘다. 실비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젊은이에게 '난 만족하네. 자네가 당황해하고 겁먹는 걸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네. 자네에게 날 쏘게 만들었으니 이제 됐네. 자넨 날 평생 기억할 테지. 자네를 자네 양심에 맡기겠네. 라면서 제대로 겨냥도 하지 않고 그림에 총알을 발사하고 집을 떠난다.

 

역자(김희숙)는 실비오가 '결코 사람을 쏘지 못하는 복수자'이며 죽임에 대한 공포가 그에게 사람 쏘기를 막고 있으며, 이 공포야 말로 자신에 대해서는 결코 인정하거나 용서하기 싫었고 그래서 더욱 백작에게서 보고 싶어했던 실비오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일 것이라는 해석을 한다. 그러나 나는 약간 생각이 다르다. 실비오가 만족한 점은 두 가지이다. 백작이 '당황해하고 겁먹었다'는 점과, '날 쏘게 만든' 점이다. 당황하고 겁먹은 백작을 보았을 때, 실비오보다 우위에 있다는 듯 두려워하지 않던 백작이 이미 죽어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기에 굳이 총알을 발사하여 그의 생명을 끊을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또 날 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만족한다는 말은 두번째 결투에서 실비오가 남은 한발을 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제비뽑기를 하자고 하였을 때 백작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실제 먼저 쏘았다는 점이다. 명예와 자존심을 중요시했다면 백작은 제비뽑기 자체를 거부했어야 옳다. 그래서 실비오는 '자네를 자네 양심에 맡기겠네'라고 하며 떠난 것으로 생각된다. 실비오는 그 후 전쟁에 참가한 후 전사한 것으로 나오는데 전쟁은 어찌보면 다수대 다수의 결투가 아니던가. 죽임에의 공포를 가진자가 전쟁에 참가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o 눈보라

 

마리야 가브릴로브나는 부유한 집안의 딸로 프랑스 소설을 읽으며 자란 터라 낭만적인 사랑에 경도되어 있다. 그녀는 가난한 육군 소위인 블라지미르 니콜라예비치와 사랑에 빠졌지만 둘은 집안의 반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블라지미르는 마리야 가브릴로브나에게 집을 도망쳐 자신과 몰래 결혼하자는 제안을 한다. 둘이 만나기로 한 날 심한 눈보라로 블라지미르는 약속한 교회에 제 시간에 갈 수가 없었고 마리야 가브릴로브나는 집으로 돌아온 후 심한 열병에 시달린다. 상심한 부모는 마리야 가브릴로브나의 병이 상사병이라고 생각하여 블라지미르에게 결혼을 허락한다는 서신을 보내지만 그는 부대로 돌아간 후였고, 거절의 내용을 담은 반쯤 미친 답장을 보낸다. 얼마 후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설상가상으로 블라지미르마저 전사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전쟁이 끝나고 귀환한 멋진 군인들의 갖은 구애에도 마리야 가브릴로브나는 냉담한 태도만을 취한다. 그러나 경기병 대령인 부르민에게만은 마리야 가브릴로브나도 마음이 끌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는데, 어느날 부르민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자신은 결혼한 몸이라 이루어 질수가 없다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1812년, 어느 눈보라가 치는 날 그는 우연히 교회를 지나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를 교회로 끌고 들어간다. 부르민을 신랑으로 오인한 사람들과 반쯤 장난어린 그의 행동의 결과 그는 어느 여자와 결혼을 하고, 정신을 잃고 의자에 앉아있던 신부에게 키스하려는 순간 신부가 신랑이 바뀌었음을 알고 다시 기절을 하자 부르민은 그곳을 떠나 목적지로 향한다. 하지만 그가 조롱했던 그 여자에게 아직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이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부르민은 그의 이름 속에 '폭풍 burja'이 들어있으며, 사건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힘의 하나가 초인간적인 동기, 즉 눈보라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초인간적인 신비한 힘 말고도 블라지미르의 불완전한 준비, 부르민의 행동 등 산문적인 이유가 가세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푸슈킨이 낭만주의의 특징인 운명과 초자연적인 힘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상대화시키고 산문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낭만주의 소설적 전통을 따른다면 블라지미르와 마리야가 결혼하여야겠지만 푸슈킨은 마리야를 바람 같고 재치 있는 부르민과 맺어준다.

 

o 장의사

 

장의사인 아드리안 프로호로프는 새 집으로 이사를 간다. 얼마 후 술자리에서 '자네의 망자들을 위해 한잔 하라'는 말에 모욕을 느낀 그는 술에 취해 집들이에는 '자신에게 일거리를 주는 이들인 죽은 정교도들', 즉 망자들을 초대하겠다고 중얼거리다 잠이 든다. 그날 밤 그의 집에 정말로 망자들이 잔뜩 들이닥치자 프로호로프는 얼이 빠져버리고, 뼈뿐인 퇴역 근위 중사 표트르 폐트로비치가 자신을 껴안으려 하자 비명을 지르며 그를 떠밀어 버리고 자신도 기절하고 만다. 다음날 잠에서 깬 그는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알고, 트류히나가 죽지 않아 관을 팔 수 없게 되었음을 알고도 기뻐한다. 망자들을 초대하여 집들이를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망자들이 찾아오자 오히려 망자들을 밀쳐내고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이 대비를 이루면서 죽음이 이득이 되는 아이러니한 직업인 장의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푸슈킨의 시에서 '새집'이나 '집들이'는 종종 죽음의 메타포로 등장한다고 한다.

 

o 역참지기

 

늙은 역참지기의 아름다운 딸 두냐가 젊고 부유한 기병 사관 민스키와 함께 페테르부르크로 달아난다. 민스키가 꾀병을 핑계로 두냐와 가까와진 후 두냐를 유혹할 때 두냐는 머뭇거리지만 역참지기는 두냐에게 '나리는 늑대가 아니니까 잡아먹지 않을 거야. 교회까지 타고 가려무나'라며 제 손으로 두냐를 넘겨준다. 하지만 교회에 두냐가 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역참지기는 민스키의 꾀임에 빠졌다고 생각하여 딸 두냐를 찾아나선다. 그들을 태워다 준 마부는 '두냐 자의로 따라 나선 듯이 보였지만 내내 울고 있었다'고 말하는데 역참지기는 '내내 울고 있었다'에만 무게를 두어 두냐가 민스키의 꾀임에 빠졌다는 생각을 더욱 확신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민스키와 두냐를 본 후에도 딸의 행복을 인정하지 못하고 두냐가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몇년 후 역참지기가 죽고, 그 무덤을 두냐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찾아온다.

 

역참지기는 자신의 믿음에 근거하여 여러가지 상황을 판단하지만 모두 그릇된 판단 뿐이다. 민스키를 오인하여 두냐를 안심시키고, 자의로 따라나선 두냐는 꾀임에 빠졌다고 생각하며, 행복한 두냐의 모습은 인정하지 못하고 버려질 바에는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가 죽은 후 두냐는 유모와 사내아이 셋, 그리고 개까지 데리고 온 것으로 보아 역참지기의 예상과 달리 행복한 삶을 꾸렸던 것으로 보인다.

 

o 귀족 아가씨 - 농사꾼 처녀

 

전형적인 러시아 귀족 볘례스토프와 영국식에 사족을 못 쓰는 무롬스키는 앙숙 관계이다. 무롬스키에게는 장난꾸러기인 딸 리자가 있는데 그녀가 볘례스토프의 아들 알롁셰이에게 농사꾼 처녀 아쿨리나로 변장을 하고 나타난다. 알롁셰이는 농사꾼의 딸이지만 아름다운 아쿨리나에게 반하여 글을 가르쳐주고 편지를 보낸다. 앙숙이던 볘례스토프와 무롬스키가 우연한 사고로 화해를 하고 두 아버지는 자신의 딸과 아들을 결혼시키려 하지만 알롁셰이는 아쿨리나에게 반하였기 때문에 리자가 싫다며 거절하고, 아버지는 한푼도 유산으로 주지 않을 것이라며 알롁셰이를 윽박지른다. 무롬스키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으로 그의 집에 찾아갔다가 리자를 발견하고, 그녀가 아쿨리나임을 알게된 알롁셰이는 그녀의 손에 키스하고 이를 본 무롬스키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귀족 볘례스토프의 이름은 영국식이고 영국식 추종자 무롬스키의 이름은 전형적인 러시아 이름이라고 한다. 아쿨리나는 농사꾼 딸이지만 알롁셰이는 아쿨리나가 귀족의 딸과 같이 총명하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한다. 결국 겉으로 보이는 것과 본질적인 것 사이의 불일치, 그리고 이로 인한 긴장관계를 푸슈킨은 해피앤딩으로 마무리한다.

 

<스페이드의 여왕>

 

주인공 계르만은 야심만만한 사나이지만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만한 재산과 배경이 없다. 그는 도박을 좋아하면서도 '여분의 것을 얻길 바래서 꼭 필요한 것을 희생하지 않는' 금욕을 철칙으로 살아가며 근면과 성실로 야망을 이루리라 다짐한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기묘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백작 부인이 3장의 카드를 맞추는 비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백작 부인의 양녀 리자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은 그는 리자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백작 부인의 집에 숨어든다. 백작부인에게 비법 전수를 부탁하나 부인은 이를 거절, 혹은 정말 비법 따윈 없는 것인지, 한다. 권총으로 백작부인을 위협하다가 백작부인이 심장마비로 죽자 그는 리자의 사랑을 이용하여 집에서 무사히 탈출한다.

어느날 꿈에 백작부인이 나타나 세장의 카드 번호, 3과 7과 1을 알려주며 하루에 한번만 도박을 할 것과 불쌍한 양녀와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면 모든 것을 용서해주겠다고 한다. 도박장에 간 그는 첫번째와 두번째 도박에서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 도박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드디어 1이 나와 그의 야심은 실현되는 듯 한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1이 아닌 스페이드 퀸이 었으며 백작부인을 닮은 카드 속 스페이드 퀸이 계르만에게 눈을 가늘게 뜨고 싱긋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르만은 미쳐서 오부호프 병원에 앉아 무엇을 물어보아도 "삼, 칠, 일! 삼, 칠, 퀸!"하고 중얼거릴 뿐이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후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미성년>, 솔로구프의 <작은 악마>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볠린스키는 "러시아 문학은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찬사를 했고, 루카치는 이에 비견하여 "<스페이드 여왕>에 대해서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88934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