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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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알랭 드 보통은 영국에서 성장했고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이십대 초반에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업작가로 전향한 그는 소설과 수필에 철학, 역사, 종교, 미술, 예술사 등 다양한 관심 분야를 알기 쉽게 녹여내는 재능있는 작가이다. 이 책 <동물원에 가기>는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문인들 70명의 작품 선집 중 70번째 작품이다. 


9편의 단상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알렝 드 보통은 사랑의 역설에 관해 통찰력 있는 견해를 제시한다. 이를테면 이런 글귀들...


함께 로맨틱해질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더 로맨틱한 사람은 없다. 정신을 팔 일이나 친구도 없어 깊은 외로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드디어 사랑의 본질과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자신 있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 상대를 향한 강렬한 욕망은 유혹에 필수적인 무관심에 방해가 된다. 또 상대에게 느끼는 매력은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완벽함에 자기 자신을 견주어 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능란한 유혹 솜씨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어줍게 유혹하는 사람이야말로 상대를 향한 진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관대하게 봐줄 수도 있다. 정확한 말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확한 말을 의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작품에서는 슬픔과 쓸쓸함이 주는 위안, 따분한 장소가 주는 매력, 일상의 소중함, 공항과 동물원에 대한 단상 들이 담겨 있다. 인용된 그림들은 걸작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어딘지 위안을 주는 면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런 점에 착안해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어딘가 황량하고 쓸쓸한 것들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찬 바람이 불고 나무들이 이에 부대끼는 황량한 겨울이 오면, 우리도 조금 더 위안을 얻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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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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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총과 칼이 나오지 않아도 폭력이 난무하는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데미언 샤젤 감독의 <위플래쉬> 같은 작품. 그런데 그런 작품들에는 공통된 룰이 있다. 절대로 '본심'을 드러내지 않을 것. 

이 룰을 적용시키면 심리게임은 선혈이 난무하는 잔혹한 양상을 띠게 된다. 자신의 '본심'을 감추면서도 상대편의 '욕망'은 백일하에 드러내야 하는 이 게임의 참가자는 '경쟁심과 질투심'이라는 연료를 무제한으로 태우며 결승점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결승점에 도달하면 '나'를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경쟁자'와 '질투심' 뿐. 소금물을 마시며 갈증을 견디는 이 게임은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아사이 료의 <누구> 역시 이런 심리 느와르 작품에 속한다. 


<기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로 스바루 신인상을 타며 화려하게 문단 신고식을 마친 아사이 료는 1989년생으로 <누구>로 2012년 하반기 148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누구>는 다쿠토, 고타로, 미즈키, 리카, 다카요시 다섯 명의 취업활동 분투기를 SNS와 현실을 직조하며 보여준다. 

'다른 이에게 뒤지고 싶지 않은 마음', '더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어하는 마음', 이런 마음들에 곁을 내주다 보면 어느 순간 '허세'만 남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 '내'가 싫어 결딜 수 없게 되면 '자아'가 분열하여 '제2의 나'를 창조하게 된다. <지킬과 하이드>이다. 


SNS 계정을 파서 또 다른 '나'를 창조해 다른 이를 공격하고 깍아 내리는 '나'. 그런 '나'를 알아차리는 '타자'는 공포스럽지만 낯설지는 않다. 그 역시 '자신의 냄새'를 '나'에게서 맡았기 때문에 알아차린 것이므로.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3244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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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문 - 나의 뱀파이어 연인 트와일라잇 2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변용란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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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트와일라잇>에서 제임스에게 공격 당해 큰 부상을 입은 벨라. 다행히 결정적인 순간에 에드워드에게 구출되어 목숨을 건진다. 

다시 마을로 돌아온 벨라는 생일을 맞아 칼라일 가족의 초대를 받는다. 여러가지 선물을 뜯어보던 벨라가 흠칫 하더니 손가락을 빼낸다. 종이에 손을 베고 만 것이다. 칼라일과 에드워드는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재스퍼는 즉시 으르렁 거리며 벨라를 노린다. 일촉즉발의 순간이 지나가고, 에드워드는 자신들의 존재가 언젠가 벨라의 목숨을 위협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벨라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얼마 뒤 칼라일 가족은 또 다른 선한 뱀파이어 가족이 사는 데날리로 떠난다.


에드워드의 빈 자리를 메워준 것이 제이콥이었다. 벨라는 제이콥과 오토바이 수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되고 에드워드를 잊는 듯 했다. 하지만 에드워드를 향한 마음은 갈 수록 커졌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에드워드의 목소리에 매혹 당한다. 결국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지 못한 벨라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려 한다.


한편, 미래를 보는 앨리스가 이 광경을 예견하는데 하필이면 에드워드가 앨리스의 생각을 읽게 된다. 사실 벨라는 구출되었지만 에드워드는 벨라가 자기 때문에 사망했다고 오인하여 이탈리아로 떠난다. 에드워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볼투리 일가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대중에게 노출함으로써 '자살' 목적을 이룰 계획이었다. 에드워드를 구하기 위해 앨리스는 벨라와 함께 이탈리아로 날아가 볼투리 일가를 만난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벨라의 '면역' 능력이 다시금 확인된다. 


한편, 제이콥은 늑대로 각성하여 칼라일 일가에게 오래된 평화조약을 상기시킨다. 조약에는 인간을 '죽이면' 조약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깨물면' 파괴된다고 쓰여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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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과 마찬가지로 책의 2/3를 하이틴 로맨스에 할애하고 있다. 2부는 <로미오와 줄리엣> 2막 6장을 책 서두에 적어놓은 뒤, 마치 알리바이가 확보된 양 대놓고 플롯을 차용한다. 

제이콥은 역시나 꿩 대신 닭 역할을 하다 가차없이 버려진다. 늑대인간쪽을 훨씬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전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26208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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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록을 부탁해 - 두시탈출 컬투쇼 이재익 PD의 로맨틱 하드록 에세이
이재익 지음 / 가쎄(GASSE)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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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전축을 사오셨다. 큰형은 부활 2집을, 작은형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 데뷔 앨범을 사다가 들었다. 나는 라디오에서 들은 '춘천가는 기차'와 '김성호의 회상'이 좋아 김현철과 김성호를 사다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학교가 갈렸던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Alice Cooper의 Lace & Whiskey 앨범을 듣고 놀라게 된다. 그후 친구가 들려준 Sex Pistols의 원초적인 사운드와 이웃나라 일본의 헤비메탈 그룹 Loudness와 Anthem이 준 충격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Helloween, Yngwie Malmsteen 따위를 빌려 들으며 조금씩 록음악을 접하다가 큰형에게 기타를 배우고, 멜로디 위주의 L.A.Metal을 쉬엄쉬엄 듣다가, 자연스럽게 3M(Metallica, Megadeth, Metal Church)과 Slayer, Anthrax, Kreator 등 스래쉬 메탈에 다다른다. Nirvana, Pearl Jam, Alice in Chains가 나오기 전까지의 스토리이다. 


Alternative 광풍이 분 뒤 헤비메탈 씬은 초토화 된다. Metallica가 Load와 Reload를 발표하며 무릎을 꿇었고, 기존 밴드들이 해체 분화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제대로 된 앨범들이 나오지 않게 되자 Progressive Rock이나 Art Rock으로 나아가는 녀석, 블루스나 재즈 쪽으로 눈을 돌리는 녀석들이 생겨나는 등 그야말로 춘추전국이 펼쳐지게 된다. 단 하나의 터부만 지키면 되었다. 가요와 팝은 멀리한다는 것. 그게 왜 그토록 불문율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이러한 음악 여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 잡지 Hot Music이었다.Rolling Stone 이나 일본잡지 Young Guitar에서 베낀 것임에 분명한 기획물들이었지만 폐간되기 전까지 정말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드록을 부탁해>는 80년대말 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스래쉬 메탈이 정점을 찍고 얼터너티브 록에 자리를 넘겨주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잘 쓰지 못했다.


사실, 다른 장르의 예술 영역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나마 그림에 대한 이야기라면 공감할 구석이 상대적으로 많다. 그림을 보여주면서 썰을 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악에 대해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들어봐야 한다. 그런데 옛날 노래들을 듣게 되는가? 아니다. 지금 노래 듣기도 바쁘다. 

90년대 중반, 한창 음악을 들을 때 전설처럼 회자되던 그룹들이 있다. Led Zeppelin, Cream 등이 그렇다. 하지만 그 그룹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혁명적인 사운드를 맛본 세대와, 그 이후의 세대가 느끼는 감정은 같을 수가 없다. 

꼰대 마인드 생각하면 된다. '나때는~' 마인드.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감수성은 동시대와 함께 하는 것이다. 물론 시대를 견디면 고전이 되지만, 고전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재미를 느끼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필연적으로 80년대말 부터 90년대 초반에 헤비메탈(하드록이라고 했지만 소개하는 그룹은 대부분 헤비메탈이다)을 들었던 사람으로 독자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책을 읽는 내내 모든 그룹, 모든 노래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어라, 그럼 나가린데... 여기 써 있는 얘기들은 그 시대에 음악을 들었던 메탈 키드라면 다 아는 얘기다. 음반 소개책자나 핫뮤직에 써있던 얘기들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다라면 책으로 만들 것까지도 없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소설가이자 두시탈출 컬투쇼의 PD이다. 책 표지에도 그 타이틀을 걸었다. 그쪽으로 뭔가 새로워야 한다. 근데 아쉽게도 그런 것은 없다. 그저 과거의 향수에 젖어 음반과 그룹 소개 중간에 에피소드를 하나 끼워 넣는 것에 만족하는데 '사귀던 여자애가 헤비메탈을 좋아했다'와 '그런데 사귀던 여자애가 죽었다!' 가 전부이다. 그외에는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이라면 누구나 거쳤을 법한 반항심리와 자기성찰이 전부이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책이다. 


 


** 아, 그리고 중간중간 여자애가 기타 거꾸로 맨 사진이 있는데 어떤 컨셉인지 모르겠다. 스토리와도, 책 컨셉과도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데 줄기차게 등장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2083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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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길에서 나 홀로
최일남 외 / 강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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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아메리카 - 최일남 >


신문사 문화부장을 하는 '나'를 시골 노인네가 찾아온다. 용건은 아들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니 신문에 실어 달라는 것.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는 일이 흔치 않았을 뿐 더러, '미국' 이라면 일단 한 수 접고 숭앙하던 시기였으니 과히 이상한 일도 아니었으나, 노인의 태도가 좀 미심쩍었다. 결국 '나'는 노인에게 학위증의 보완을 요구하며 돌려보낸다.

얼마 뒤 알아보니 노인은 고향으로 돌아간 길로 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노인은 아들 하나가 좌익에 연루되어 온 가족이 연좌제에 걸리자 미국 간 큰아들이 정치학 박사 학위를 땄다는 허위 기사를 신문에 실어 연좌제 건을 휘갑치려 하였던 것.


< 長而里 개암나무 - 이문구 >


비가 오지 않아 가물어 농사를 망칠 지경이 되자 마을 사람들, 특히 주인공 '전가'의 매제와 동생을 중심으로 기우제를 지내야 하리라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서울 사람이 쓴 묘를 파헤쳐 내는 것을 기우제의 방편으로 삼는다는 것인데, '전가'는 안될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순박한 농심', '미풍양속' 짓찧어싸며 여론을 몰아갔다. 

그러나 남편이 '월부책장수' 방문하듯 잠자리를 한다며 타박하는 아내나, 조카 학문이 등은 똑바로 박힌 정신을 갖고 있어 '전가'를 응원한다. 


< 샛길에서 나 홀로 - 김원우 >


화자 '나'는 한때 대기업에서 잘 나갔으나 지금은 명퇴를 당해 이런저런 궁리 중이다. 아내가 '대학 접장' 노릇을 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지는 않다. 다만 후사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것, 그리고 막내 동생이 급사하여 의지가지 할 데 없게 된 조카를 양자로 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에 골몰하고 있다.

이런 '나'에게 두 가지 사건이 떠오른다. 하나는 과거 한때 자기네 집에서 일꾼이자 양자 비슷하게 생활했던 '봉이'에 관한 추억이다. 그러나 인연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고 어느 순간 봉이와의 연락은 끊기게 된다. 다른 하나는, 동료 아들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과 관련된 사건이다. 그 여인과는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는데 자리를 옮겨 계산을 따져보니 하룻밤을 함께 보낸 사이였다. 그런데 여자는 자신이 '나'의 아이를 배태했다가 떼어낸 적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녀에게 명함을 건네지만 그후로 여자는 나에게 연락해오지 않았다. 

노친네가 조카를 정식으로 입양하라고 성화다. 우리네 인연의 구도는 결국 잔정 끼얹기와 덧정 일구기 인데 '나'는 그 어느 것에도 인색하니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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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아메리카>는 다분히 작위적인 작품이다. 마감에 쫓겨 이야기를 부랴부랴 급조해낸 느낌으로 '미국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제3세계 국가로서의 남한'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에피소드를 만들어낸 느낌이 커 시쁘지 않다. 


<장이리 개암나무>는 다섯번에 걸쳐 읽어 나갔다. 조금 읽다 책을 덮고 웃고, 조금 읽다 다시 책을 놓은 채 이문구 선생의 다른 작품들에 관해 생각하고... 그저 웃음으로 일관했다. 선생의 이른 타계가 안타깝다.    


<샛길에서 나 홀로>의 김원우는 인간에 대한 탐색을 심도 깊게 소설로 풀어내는 작가로 사변적이면서도 현실의 끈을 놓지 않는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여기 실린 작품은 샛길 연작의 2편으로 곳곳에 문체 실험을 가해 놓았는데 다소 생경한 느낌이 들어 성공적인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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