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간 연주자
야마노구치 요 지음, 김난주 옮김 / 고도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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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가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매우 특출난 오르가니스트가 등장한다. 한스 라이니히 라는 이름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그를 음악잡지 <메리스마>의 촉탁 기자 메르클린이 눈여겨 본다. 메르클린은 몇 차례에 걸쳐 라이니히의 연주를 녹음하고, 이 음원은 독일의 테오도르에게 전해진다.

테오도르는 라이니히의 연주를 들으며 과거 절친하게 지냈던 요셉 에른스트를 떠올린다. 오직 오르간을 연주하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았던 요셉은 거장 로베르트 라인베르거에게 사사받으며 촉망받는 연주자로 성장했다. 하지만 테오도르가 운전하던 차가 전복되어 함께 타고 있던 요셉이 반신불수가 되고, 한쪽 손을 쓰지 못하게 된 요셉은 오르간을 연주하지 못한다는 절망에 괴로워하다 병원에서 홀연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 사건으로 사랑하는 제자를 잃게 된 로베르트 라인베르거는 테오도르를 심하게 원망했고,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테오도르는 한스 라이니히의 연주를 로베르트 라인베르거 교수에게 가져가 들려줘도 좋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고민 끝에 테오도르는 로베르트 라인베르거를 찾아가는데, 교수는 뜻밖에도 테오도르의 방문을 고마워했다. 그리고 연주도 성심껏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유보'. 좋다, 싫다 말이 없이 '유보'의 태도를 취한 것이다. 


신경을 재생시키는 장비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다시 오르간을 연주할 수 있게 된 요셉이 한스 라이니히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숨기고 연주여행을 다니며 증명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로베르트 라인베르거 교수는 라이니히가 요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왜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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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할 때부터 악기를 건물의 일부에 포함시켜 설계하고, 패달을 비롯한 여러 장치를 이용하여 미묘한 음색의 변화를 주는 매우 복잡한 악기인 오르간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닌 까닭에 오르가니스트의 삶 역시 다른 악기의 연주자와는 다른 듯 하다.


하지만 오르가니스트란 원래 이런거야.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오르간이란 악기 그 자체고, 오르가니스트는 오르간이란 제단에 무릎꿇고 신을 찬양하는 사제에 지나지 않아. 레코딩이나 연주회 같은 대외적인 활동도 하지만, 보통 때는 한 교회에 봉사하면서 일상적인 성무 일과를 다하는 것이 오르가니스트의 생활이지. 

 

연주를 위해 '만도라고라' 와 같은 장치를 척추에 부착하고 반신을 운용하다, 미묘한 좌우 차이가 발생하자 기꺼이 척추의 기능 전체를 포기하고 기계에 신체 기능 전부를 내맡긴 요한. 그의 연주를 과연 '거짓'이라고만 비난할 수 있을까. 

 

"악마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나?" "신을 닮은 사람을 찾아야지. 완벽에 가깝게 신을 닮은, 그러면서도 신이 아닌 자, 그런 자가 악마야."

 

로베르트 교수는 요한을 악마에게 영혼을 판 연주자로 폄하했지만,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밖에 없는 요한이야 말로 신의 돌봄을 받아야 할 가장 불쌍한 어린양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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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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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캥 부인은 베르농의 오래된 잡화상이었다. 그에게는 카미유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몹시도 병약했다. 병마는 카미유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고, 라캥 부인은 온갖 약을 아들에게 먹이며 십오년간 사투를 벌였다. 그 결과 카미유는 살아났다.

라캥 부인의 집에는 테레즈라는 이름의 계집아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테레즈는 라캥 부인의 오빠 드강 대위가 맡기고 간 아이였다. 그는 알제리 여자에게서 얻은 테레즈를 동생에게 맡기고 떠난 뒤 몇 년 지나지 않아 아프리카에서 사망한다.


카미유와 테레즈가 성인이 되자 라캥 부인은 둘을 결혼시킨다. 결혼 직후, 카미유는 베르농으로 가서 살겠다고 어머니에게 선언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라캥 부인이 새로 얻은 상점은 음습했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한 돈벌이는 되었다. 카미유 역시 펜대 굴리는 직업을 얻어 나름대로 만족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오직 테레즈만이 생활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 채 습기와 함께 집안에서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미유의 친구 로랑이 라캥 부인의 가게에 들른다. 테레즈가 로랑을 처음 본 순간, 그녀의 욕망에 불이 지펴진다. 로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서로의 욕망을 감지한 뒤 미묘한 몸짓과 속삭이는 대화를 이어가다 마침내 로랑의 다락방에서 관계를 갖는다. 

그 뒤로 둘은 정염의 노예가 되어 불륜을 이어간다. 불륜이 거듭될 수록 테레즈는 카미유를 못견뎌 했다. 병약한 그에게서 나는 체취와 나약한 분위기들이 로랑의 그것과 대비되어 역겨움을 불러 일으켰다.


악마적인 생각이 로랑과 테레즈의 머리 속에서 피어난다. 강가에 놀러간 어느 날, 배를 빌린 로랑이 테레즈에게 카미유를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속삭인다. 테레즈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지만 무엇엔가 홀린 듯 그들과 함께 배에 오른다.

강심에서 로랑이 카미유를 물에 빠뜨린 뒤 배를 전복시켜 테레즈만 구한다. 주변에 있던 뱃사람들이 구조하러 왔지만 카미유는 이미 흔적이 없었다. 그들은 배가 뒤집혀 카미유가 빠졌고 겨우 테레즈만 구할 수 있었다는 로랑의 말을 믿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가 본 것처럼 증언까지 해준다. 카미유는 사고사로 처리된다.


로랑이 2주일간 시체공시소를 드나든 끝에 마침내 물에 퉁퉁 불은 카미유의 시신을 발견한다. 퉁퉁 불어 회색으로 썩어가는 그 시체의 모습이 로랑의 뇌리에 강렬한 화인을 찍는다.


라캥 부인의 말할 수 없는 슬픔은 카미유와 로랑을 결혼시켜 자신의 곁에 두고 노년에 보살핌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다소간 치유된다. 그러나 테레즈와 로랑은 어찌된 일인지 과거처럼 붙어먹지 못했다. 카미유가 물어뜯어 생긴 목덜미의 상처에 피가 돌아 붉어지면 로랑은 끔찍한 고통에 휩싸였다. 둘 사이에 카미유의 썩어버린 몸뚱이가 누워있는 것 같았다.


카미유의 존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욕을 돋구어보려는 시도가 모두 무화된 뒤 싸움이 시작되었다. 낮동안은 그래도 어느 정도 평안을 얻을 수 있었지만 밤이 되어 둘만 남으면 그들은 서로를 비난했다. 둘만 남게 되면 어김없이 카미유가 찾아왔다. 

그래서, 테레즈와 로랑은 라캥 부인을 잘 대해 주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그나마 카미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캥 부인이 중풍에 걸리자 둘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녀가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음습한 상점에 로랑과 테레즈만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라캥부인이 몸을 움직이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게 된다. 테레즈와 로랑의 싸움도 점점 심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둘의 조심성이 바닥에 떨어진 어느 날, 라캥부인은 테레즈와 로랑의 언쟁을 통해 둘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카미유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라캥부인은 둘의 범죄를 고발하기 위해 목요일 모임을 기다린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잘 움직여지지 않는 손가락을 들어 철자를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문장은 완성되지 못한다. 그 손가락 움직임을 마지막으로 라캥부인은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에 어떠한 움직임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지옥같은 싸움이 반복되고 카미유에 대한 공포가 고조되자 이제 테레즈와 로랑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경찰에 밀고하러 가지나 않을까, 검사에게 모든 것을 실토하지나 않을까. 그러다 거의 동시에 둘의 머리 속에 상대편을 죽여야 이 지옥이 끝나리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테레즈가 준비한 부엌칼을 로랑이 보게된다. 그리고 로랑이 준비한 청산가리가 담긴 질그릇 병을 테레즈가 보게된다.


둘은 서로의 당황한 얼굴에서 은밀한 계획을 읽으면서 서로 가엾게 여기고 서로 무서워했다. 별안간 테레즈와 로랑이 울음을 터트렸다. 감사의 시선을 교환한 뒤, 테레즈와 로랑은 질그릇에 담긴 청산가리를 나눠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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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라캥>에서, 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기를 원했다. 이 책 전체는 바로 그것을 담고 있다. 나는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육체의 필연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들의 동물성 속에서 열정의 어렴풋한 작용을, 본능의 충동을, 신경질적인 위기에 뒤따르는 돌발적인 두뇌의 혼란을 조금씩 쫓아가려고 노력했다. 나의 두 주인공들에게 있어 사랑은 필요의 만족이다. 살인은 그들이 저지른 간통의 결과이며, 그들은 마치 늑대가 양을 학살하듯 살인을 한다. 내가 그들의 회한을 촉구해야 했던 부분은, 단순한 생체조직 내의 무질서, 파괴를 지향하는 신경체계의 반란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영혼은 완벽하게 부재한다. 나는 그것을 시인한다. 

 

에밀 졸라는 1868년 제2판에 이와 같은 서문을 달아 독자와 평론가에게 자연주의 소설의 기초에 대해 辯 하고 있다. 


전통적 문학은 인식으로서의 문학의 기능을 잘 수행하지 못했다. 플로베르와 졸라가 각각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라는 이름으로 의도했고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은 이와 같은 기존의 문학의 결함을 수정하여 문학의 본래적 기능인 인간과 그 삶에 관한 진리를 밝혀내는 문학을 하자는 데 있었다.  

에밀 졸라는 플로베르의 사실주의 문학이론을 발전시켜 자연주의 문학일이론을 발명함과 동시에 그 구체적 예로서 장편소설 <테레즈 라캥>을 창작함으로써 당대는 물론 그후에도 세계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친다.(박이문)

 

욕망과 정념에 두 남녀를 몰아넣어 극단까지 밀어붙인 뒤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고, 불멸의 밤을 선사하여 파멸의 과정에 이르도록 설계한 작가 에밀 졸라. 이 두 남녀를 지켜보는 에밀 졸라는 어찌보면 마조키스트적인 조물주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기계적 유물론을 연상시키는 작가의 자연주의의 소설 이론에도 불구하고 에밀 졸라의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과학'과 '객관' 이라는 이름 뒤에서 읽히는 인간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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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1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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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을 정리하고 현장으로 떠났던 최민화의 부음으로 과거 민주시화회를 통해 민중미술 운동을 했던 이들이 다시 만난다. 7년 만이었다.

잡지사 기자가 된 진은혜, 미술선생이 된 구운형, 요가강사가 된 김시현, 그리고 민중미술 운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민형조.

가장 감수성이 민감했던 시기를, 민주와 반민주라는 명확한 대립 구도를 보며 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은 밥벌이를 하기 위해 사회에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운동' 과 '관계'가 정리되지 못한 채 숙제처럼 남아있음을 확인한다.

누가 누구를 사랑했었는지 뒤는게 깨달으면서 느끼는 헛헛함, 양심 때문에 투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성과 맞지 않아 괴로웠던 운동판, 불가항력적인 패배의 원인이 자신의 불성실 때문이라며 끊임없이 자학하는 활동가의 원죄적 고통...


가장 찬란한 시절을 좋은 것만 보며 지내도 시간이 아까웠을 젊은이들이 투쟁의 전선으로, 거리로 내몰려 양심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했던 그 시기가 지나고... 장년이 되어가는 그들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뒤돌아보며 눈물 짓는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약하고, 어려서... 더 보호받고 더 사랑받아어야 할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동정과 연민. 제 이름을 부르며 울어야 했던 세대...


"새들이 울 때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 거 알아? 딱따구리는 딱따구르르 하고 부엉이는 부엉부엉 하고 까마귀도 소쩍새도 다 그래.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울지. 그 생각을 하면, 세상에서 제일 슬프게 우는 동물은 새인 것 같아."


91년도에 소련이 붕괴되고 운동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가속도에 의해 그 후로도 십년 가량은 이런저런 조직들이 이합집산하며 명맥을 유지했다. 객관적인 정세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여전히 질곡 속에 있지 않느냐'며 할 일을 하자던 낭만적인 부류들이.

 

94년도에 인하대학교에 담장이 있었다. 담장으로 빙 둘러쳐진 학교는 정문과 후문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정문을 나서면 집창촌과 대우전자 공장이 보였고, 후문을 나서면 200원짜리 계란빵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통일광장, 학생회관, 인경호, 그리고 한진재단을 상징하는 비행기가 생각난다.

그리고 운동장 한켠에 줄줄이 늘어서 있던 가건물과 5호관 지하와 탑에에 음습하게 자리잡고 있던 동아리들. 95년도에 운동장의 가건물은 홀라당 불에 탔다. 불을 낸 사람은 우리학교 사람이 아니었다. 불이 피워진 난로에 휘발유를 보충하다 불을 냈다고 했다. 아마도 그 불의 경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한 밤중에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타던 그 가건물은 나중에 나빌레관이라는 이름의 동아리 전용 건물로 바뀌게 된다. 한국사회연구회, 새벽을 여는 사람들, 시사토론모임 백사, 사회과학연구회... 그 정다운 이름들.

사진첩이나 날적이 등을 챙기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후배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 역시 가슴 한 켠이 허전한 느낌에 며칠을 부쩌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당시의 나에게, '너무 힘들지' 라고 위로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힘내지 않아도 좋다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 그렇게 큰 짐을 지지 않아도 좋았을 나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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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술의 여자
모리무라 세이이치 지음 / 동하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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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은 주인공 나카미치 도키코의 기묘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그녀가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시절의 일인 듯 한데,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인지 아닌지조차 분명치 않았다. 밤이 이슥한 산 속 숲에서 모닥불을 둘러싸고 수십 명의 남녀들이 손을 잡고 둥그렇게 원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외워지는 "에코, 에코, 자라와크, 에코, 에코, 자라와크..." 라는 주문. 흰 옷을 입은 사제가 움켜진 긴 칼 끝이 도키코를 향해 있는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실신했던가... 부모님은 그것이 도키코의 착각이거나 꿈이었다고 했다. 도키코는 아버지의 따뜻한 말이 사실일 것이라 믿었다.


부동산 회사에 다니는 전도유망한 젊은 3인조 오가, 우나하라, 야마기와는 최근 못된 버릇을 들였다. 고급 차를 타고 다니며 적당한 여자를 물색하여 태운 뒤 한적한 곳으로 끌고가 겁간하는 것이었다. 윤간 당한 여자들은 입을 다물기 마련이었기에 이들의 수법은 점점 대담해져 갔다.

어느 날도 이들 3인조는 두 명의 여성을 유인하여 늪 부근에서 강간을 시도한다. 여자 중 한 명은 이내 체념하여 3인조는 목적을 달성하지만, 다른 한 명의 여성은 처녀라 그런지 '몸이 딱딱하여' 윤간 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이들은 여자들을 팽개고 도망친다. 이튿날 그 중 한 여성이 시체로 발견되고 경찰이 수사를 개시한다.

경찰은 세 남자가 두 여자를 태웠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살해되지 않은 다른 여성의 행방이 묘연했다. 그녀는 3인조와 공범이었을까? 아니면 피해자였지만 살해만은 면한 것일까? 만약 그녀가 범인들의 마수를 피했다면 어째서 살인사건의 목격자로 나서지 않는 것일까?


또 다른 여성의 정체는 바로 나카미치 도키코였다. 그녀는 그 사건 이후 전도유망한 젊은이와 결혼하여 행복을 구가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갈 수 없었다. 남편이 친구라며 집에 초대한 젊은이가 3인조 중 하나였던 우나하라였던 것이다. 우나하라는 도키코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의 방문이 거듭될 수록 도키코는 불안해졌다. 


얼마 뒤, 도키코 부부는 우나하라의 권유로 유니트 하우스를 구입한다. 그런데 얼마 뒤, 바로 그 유니트 하우스에서 우나하라가 청산가리가 든 위스키를 마신 뒤 사망한 채 발견된다. 유니트 하우스는 밀실이었고 열쇠 중 하나는 죽은 우나하라의 주머니에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열쇠는 도키코가 코인 캐비닛에 보관한 가방 속에 있었는데, 코인 캐비닛에 맡긴 날짜를 따져보면 도키코가 열쇠를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동창회에 다녀왔다는 알리바이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따라서 유력한 용의자는 우나하라를 제일 처음 발견한 아리자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리자와는 자신이 도키코의 요청을 받고 유니트 하우스에 왔다며 결백을 주장했는데...둘 중 한 명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얼마 뒤 아리자와가 도로변에서 피살된 채 발견되자 형사들이 우나하라의 주변인물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과거 3인조 사건과의 연관성을 의심한 형사들이 차를 뒤지자 도키코의 지문이 묻은 레코드 바늘이 나온다. 그 사건에서 또 한 명의 여성의 정체가 드디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녀는 살해당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침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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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술의 여자>는 1974년 <소설보석>에 신년호부터 5회에 걸쳐서 연재된 소설로, 연재 당시 제목은 <어둠 속에서 불이 보인다> 였다.  

소설에 등장하는 흑마술과 악마숭배 의식은 작품을 모두 읽고 나면 일종의 양념일 뿐이지만 작가의 뛰어난 기교 덕에 분위기 고조에 한 몫을 한다. 


도키코가 3인조에게 겁간 당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선천적으로 성기가 없이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3인조는 그녀가 처녀라 '몸이 딱딱해' 그런 것으로 오인해 그녀를 내버려 두고 다른 여자를 통해 욕정을 채우고 떠나가버린다. 

도키코는 나중에야 다른 여자에게 신체의 비밀을 들키는데, 그녀는 뜻밖에도 겁간을 당했음에도 정상인 몸이어서 다행이라는 듯 도키코의 불구를 동정했다. 도키코는 그것에 격분하여 여성을 살해하고 이후 인공 성기를 이식받는 수술을 받고 결혼을 하게 된다.

우나하라가 도키코의 집에 거듭 드나들다 그녀를 기억해내고 만다. 도키코는 우나하라를 살해하고 아리자와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 하지만, 아리자와가 자신의 약혼녀를 겁간한 복수를 결행했다고 오인한 3인조에게 살해당함으로써 사건이 복잡해진 것이다.


모리무라 세이치는 <추리작가의 고뇌> 를 통해 복격파로서의 고민을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사회파의 대두에 의해 현대의 독자는 리얼리즘의 세례를 받았다. 제아무리 뛰어난 수수께끼일지라도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면 납득하지 못한다. 또한 독자도 '뛰어난 수수께끼를 논리적으로 해명'만 하면 되었던 종래의 추리소설에 대한 소설로서의 깊은 맛, 사회적인 지식과 정보, 멜로드라마적인 요소, 혹은 문학성 등 여러가지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수수께끼 풀이만 가지고는 대다수의 독자가 만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와 더불어 사회파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면서도 본격파적 요소에 대한 고민 역시 소홀히 하지 않았던 모리무라 세이치. 미우라 아야꼬는 그를 '왜곡된 인간상을 고발함과 동시에 인간성의 근원을 파헤치는' 작가로 평가 하였다. 군중에서 소외되어 개인이 느끼는 우울함을 미스터리와 결합시켜 최후에는 인간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모리무라 세이치의 소설은 70년대 고도성장기 일본사회의 이면을 묘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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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이긴 두 여인 한국문학사 작은책 시리즈 1
홍상화 지음 / 한국문학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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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숙모>

 

여의도 집필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전화 속 목소리는 자신이 성백희의 아내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성백희는 '나'의 외삼촌이니,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외숙모가 된다. 서울에 한강 유람선을 타러 왔다가 전화를 걸었노라고, '내'가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신문을 통해 알았노라고 했다. 40년 만의 연락이다. '나'의 기억은 과거로 치닫는다. 

'내'가 열 살 때 1.4 후퇴 직후 부모와 헤어져 능바우에서 살았다. 나는 외숙모와 1년 반을 함께 살았다. 외숙모는 신혼생활 2주일 만에 의용군에 끌려간 외삼촌을 기다리며 시부모와 살고 있었는데, 그때 갓 스물을 넘었을 무렵이었다. 외숙모는 고아가 된 큰시누이의 아들인 '나'에게 정을 붙이고 외로움을 견뎌냈다. '나' 역시 그런 외숙모에게 의지했던 것 같다. 그런 시절이, 죽었던 아버지가 '나'를 찾으러 오면서 끝이 난다.

다시 만난 외숙모는 그 시절과 많이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두 손을 덥석 쥐며 소회를 나누며 40년 세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외숙모를 태우고 온 관광버스가 출발하려 할 때에, '나'는 외숙모에게 다급하게 40년 전에 둘이 함께 골방에서 불렀던 노래가 뭐였는지 묻는다. 잠시 생각하던 외숙모가 웃으면서 <타향살이> 였노라고 말한다. '나'는 '타향살이 몇 해던가'로 시작하는 그 노래를 삼절까지 거침없이 부르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노래가 끝났을 때, 40여 년 동안 사라졌던 그 무엇이, 아마도 세상살이에 꼭 필요했던 그 무엇이 노래가 시작되면서 찾아졌다가 방금 노래가 끝나면서 사라져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진 이후 세 남자의 품속을 거치면서 사내들의 땀냄새를 맡아왔고, '나'는 스무 살 때부터 현재까지 20년 동안 분냄새를 맡으며 카바레 악단원으로 섹소폰을 불어오는 처지다.

어떤 연유로 '나'는 중국에 사는 큰아버지의 딸 금자누나와 연락이 닿게 되었고, 그 편을 통해 북한에 있는 아버지와도 연락이 닿는다. 

아버지는 과거 사상운동을 하다가 보도연맹증을 받고 두어달 마음을 고쳐먹는가 싶더니 인민군이 내려오자 그들을 따라 입북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에 대한 막연한 반발심을 지닌 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 금자누나의 집에서 아버지와 상봉하기로 계획을 하고 3개월을 체류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출국 전날 까지도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실망한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려할 때에 아버지가 북에서 중국으로 오게 되고, '나'는 만 하루동안 아버지와 시간을 보낸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어떤 악심이 승해서 어머니에게 이북의 아버지 가족 사진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반응이 의외였다. '사상에 미쳐서 북에 간 줄 알았더니 동료 여교사와 바람이 나서 북에 갔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후처가 3년 전에 죽었다고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뜻밖에도 '우째 그리 험한 팔자를 타고났을꼬......' 하실 뿐이다. 잠시 후 어머니는 코를 '헹' 하고 풀었다. 나는 마음이 놓였다. 어머니가 코를 '헹' 하고 풀 때면 기쁨, 슬픔, 분노 할 것 없이 어떤 감정이라도 끝장을 보게 마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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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에서인지 회사에 이 책이 이십 여 권 쌓여 있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가져다 보라길래 집으로 가져와 책꽂이에 꽂아두고선 잊어버렸다가, 어제 짤막한 소설을 읽고 싶어 집어 들었는데 그런대로 읽힌다. 


작가는 1989년 <피와 불>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는데, 이 작품이 일본 도쿠마 문고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후에 <꽃 파는 처녀>로 개작된다. <꽃 파는 처녀>라면 김일성이 직접 창작에 관여했다는 설이 있는 혁명가극이 아닌가. 게다가 이 영화의 주인공 홍영희가 홍상화의 재종누이가 된다고 한다.   

이수문학상(과거 21세기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모으는데 하필 2005년도 작품집이 없다. 2005년도 수상자가 홍상화이고, 수상작은 <동백꽃>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693387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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