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1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현장으로 떠났던 최민화의 부음으로 과거 민주시화회를 통해 민중미술 운동을 했던 이들이 다시 만난다. 7년 만이었다.

잡지사 기자가 된 진은혜, 미술선생이 된 구운형, 요가강사가 된 김시현, 그리고 민중미술 운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민형조.

가장 감수성이 민감했던 시기를, 민주와 반민주라는 명확한 대립 구도를 보며 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은 밥벌이를 하기 위해 사회에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운동' 과 '관계'가 정리되지 못한 채 숙제처럼 남아있음을 확인한다.

누가 누구를 사랑했었는지 뒤는게 깨달으면서 느끼는 헛헛함, 양심 때문에 투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성과 맞지 않아 괴로웠던 운동판, 불가항력적인 패배의 원인이 자신의 불성실 때문이라며 끊임없이 자학하는 활동가의 원죄적 고통...


가장 찬란한 시절을 좋은 것만 보며 지내도 시간이 아까웠을 젊은이들이 투쟁의 전선으로, 거리로 내몰려 양심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했던 그 시기가 지나고... 장년이 되어가는 그들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뒤돌아보며 눈물 짓는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약하고, 어려서... 더 보호받고 더 사랑받아어야 할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동정과 연민. 제 이름을 부르며 울어야 했던 세대...


"새들이 울 때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 거 알아? 딱따구리는 딱따구르르 하고 부엉이는 부엉부엉 하고 까마귀도 소쩍새도 다 그래.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울지. 그 생각을 하면, 세상에서 제일 슬프게 우는 동물은 새인 것 같아."


91년도에 소련이 붕괴되고 운동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가속도에 의해 그 후로도 십년 가량은 이런저런 조직들이 이합집산하며 명맥을 유지했다. 객관적인 정세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여전히 질곡 속에 있지 않느냐'며 할 일을 하자던 낭만적인 부류들이.

 

94년도에 인하대학교에 담장이 있었다. 담장으로 빙 둘러쳐진 학교는 정문과 후문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정문을 나서면 집창촌과 대우전자 공장이 보였고, 후문을 나서면 200원짜리 계란빵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통일광장, 학생회관, 인경호, 그리고 한진재단을 상징하는 비행기가 생각난다.

그리고 운동장 한켠에 줄줄이 늘어서 있던 가건물과 5호관 지하와 탑에에 음습하게 자리잡고 있던 동아리들. 95년도에 운동장의 가건물은 홀라당 불에 탔다. 불을 낸 사람은 우리학교 사람이 아니었다. 불이 피워진 난로에 휘발유를 보충하다 불을 냈다고 했다. 아마도 그 불의 경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한 밤중에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타던 그 가건물은 나중에 나빌레관이라는 이름의 동아리 전용 건물로 바뀌게 된다. 한국사회연구회, 새벽을 여는 사람들, 시사토론모임 백사, 사회과학연구회... 그 정다운 이름들.

사진첩이나 날적이 등을 챙기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후배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 역시 가슴 한 켠이 허전한 느낌에 며칠을 부쩌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당시의 나에게, '너무 힘들지' 라고 위로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힘내지 않아도 좋다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 그렇게 큰 짐을 지지 않아도 좋았을 나이였는데...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702729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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