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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장의 참극 ㅣ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24년 11월
평점 :
명랑장(名琅莊)은 메이지(1867~1912)의 권신 후루다테 다넨도(=후루다테 구라노스케)가 후지산 남쪽에 지은 저택이다. 그는 절경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이 저택을 짓고 암살을 막기 위해 집안 곳곳에 미로와 탈출구를 설치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인가부터 명랑장을 미로장(迷路莊)이라고 불렀다.
후루다테 다넨도가 메이지 45년 천수를 누리고 영면한 뒤 2대 가즌도 백작이 명랑장의 주인이 된다. 그는 선대에 비해 평범한 인물이었고, 이런 저런 사업에 실패한 탓에 쇼와 2년 금융공황 시기 파산하고 만다. 선대가 물려준 재산 대부분을 상실하고 겨우 명랑장만 건진 그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즌도 백작의 첫째 부인은 다쓴도라는 외아들을 남겨두고 일찍이 세상을 떴다. 후처로 맞아들인 가나코는 55세의 가즌도 백작에 비해 스물일곱 살이나 어린 28세였다. 화족의 딸로 빼어난 미모를 지녔지만 집안이 몰락해 후처로 들어온 그녀에게서 7년이나 아이가 생기지 않자 가즌도 백작은 차츰 그녀가 자신을 차갑게 대하고 경멸한다는 망상에 빠지고 만다.
한편, 별장에는 오가타 시즈마라는 일꾼이 있었는데 그는 가나코의 소개로 들어온 청년이었다. 가즌도는 오가타 시즈마와 가나코가 불륜 관계라는 망상에 빠져 있었는데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쇼와 5년 가을 10월 20일, 명랑장 안뜰 정자에서 엄청난 분노에 찬 외침과 비명이 들려왔다. 하인들이 달려가 보니 거기에는 가나코 부인과 가즌도 백작이 칼에 찔려 무시무시한 피 웅덩이 속에 쓰러져 있었다. 또 현장에는 어깻죽지에서 잘라낸 듯한 왼팔이 있었는데 왼팔에 붙어있는 작업복 한쪽 소매로 보아 오가타 시즈마의 한쪽 팔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자에서 오가타 시즈마와 가나코 부인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가즌도 백작이 일본도를 휘두르며 뛰어들어 단칼에 가나코를 베어 죽이고 오가타 시즈마의 한쪽 팔을 베어버렸다, 그러나 이후 일본도를 떨어뜨리거나 빼앗겨 거꾸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오가타 시즈마의 핏자국은 명랑장 뒤쪽 절벽 기슭의 동굴까지 이어졌으나 끝내 그의 시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명랑장은 이후 3대인 후루다테 다쓴도에게 소유권이 넘어간다. 하지만 다쓴도는 명랑장을 건사할 형편이 되지 못해 신흥 재벌 시노자키 신고에게 소유권을 넘기는데, 엽기적인 것은 미모의 아내 시즈코 마저 넘겨주었다는 점이다.
어쨌든 명랑장을 인수받은 신고는 저택을 활용해 호텔로 개조하고 운영하는데 어느 날 외팔이 남자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났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명랑장을 떠돌자 신고는 사건을 긴다이치 고스케에게 의뢰하는데, 역시나 그나 명랑장에 도착한 직후 후루다테 다쓴도, 다쓴도 생모의 동생인 덴보 구니타케, 여종업원 다마코 등이 차례로 죽어 나간다.
명장장의 종업원이자 혼혈의 전쟁고아인 다혈질의 하야미 조지, 가나코의 친동생이자 시즈코의 과거 연인인 야나기마치 요시에 등 새로운 인물이 떠오르지만 정작 이렇다할 혐의점을 특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명랑장 지하의 미로는 점차 붕괴해 간다.
과연 범인은 누구이며, 외팔이의 정체는 무엇인가?
역시나 괴기스러운 분위기 연출에는 일가견이 있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답게 명랑장이라는 저택을 둘러싼 기괴한 사건들로 긴장감이 한껏 고조된 상태에서 스토리가 시작된다.
긴다이치 고스케가 등장하는 작품이 으레 그렇듯 죽을 사람이 모두 죽어 나가야 범인이 밝혀지는데, 수수께끼 풀이를 모두 끝나면 초반부의 피가 식을 듯한 긴장감에 비하면 너무나 형편없는 결말부에 실망하고 만다.
미스터리 작품으로서의 평가는 높게 주기 어렵지만 메이지 시대의 망령과 유령이 쇼와 시대에서 결착되고 마무리되는 전개는 나쁘지 않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미스터리 버전으로 편집한 것이라고 보면 어떨지.
끝간데 모를 미로와 장치들이 시간이 흐르자 끝내 붕괴되어 쥐떼가 들끓고 그 쥐떼가 사람을 갉아 먹는 엽기적인 장면, 몰락한 화족들의 허세만 남은 모습과 자본주의적 가치에 매몰되어 인간성을 벗어 던지는 모습들, 전쟁고아인 혼혈아 하야미 조지의 되바라진 성격 등을 통해 요코미조 세이시는 변화된 시대의 새로운 모랄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기괴한 이야기 속에 담아 피력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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