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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왕 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86
소포클레스 지음, 장시은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평점 :

『오이디푸스왕 외』
소포클레스 (지음) | 장시은 (옮김) | 열린책들 (펴냄)
필멸의 인간은 저 최후의 날을 기다려 보면서,
누구도 행복하다 말해서는 안 되리라.
고통을 겪지 않고 삶의 경계를 넘어서기 전까지는.
- 『오이디푸스왕 외』중 오이디푸스왕 120페이지
"테바이 3부작"으로 불리는 <오이디푸스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를 이해가 쉽도록 저작 연도가 아닌 진행 순서로 배치한 열린책들의 버전으로 읽어보았다.
'우와~ 오이디푸스가 이렇게 재미있는 내용이었어?' 희곡이라고 지레 겁먹었던게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 중에서도 <오이디푸스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극찬을 받았다고 하는데 반전과 대립이 주는 긴장감이 그 재미를 더한다.
『오이디푸스왕 외』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립에서는 선과 악의 절대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정당하다고 여기는 사유가 있고, 이를 비튼 것은 예언을 통한 신의 장난, 당하는 이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의 운명인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테베이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로부터 해방시켜준 영웅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패륜아로 곤두박질시킨다.
주어진 상황을 어떤이는 오만하게, 어떤이는 의도치 않은 실수로, 어떤이는 상황자체나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며 받아들인다. 오이디푸스의 패륜을 오염이라 칭하며 추방한 크레온의 행동을 마냥 비판하기만 해야할까? 그렇다면 친족의 허물을 정으로 감싸고 고의가 아니었다며 눈감아줘야 했을까? 크레온의 위치가 한 나라인 테베이를 다스리는 왕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쉬운 답은 아니다. 그렇다고해서 오빠의 장례를 치룬 안티고네를 비난할 수도 없다.
크레온은 기성세대의 기준과 통치자로서 엄수해야하는 법, 외국 군대를 끌고와 신전마저 파괴하려 들었던 반역자 폴리네이케스에게 다른 반역자들과 공평하게 벌을 내렸다. 반면 안티고네는 여성임에도 당대의 남자들이 하는 자기소신의 발언과 행동으로 변화하는 청년 정신을 보여주었으며 법보다는 관습, 행위의 원칙보다는 존재의 가치에 더 무게를 두었다.

크레온과 안티고네는 대립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오이디푸스과 크레온은 공통적인 모습과 운명을 지녔다. 권력자라면 반드시 경계해야 할 피해망상과 권력에 대한 집착, 가족들의 죽음이 그것이다. 진실에 눈 감고 입바른 충언에 귀를 닫는 아집. 진실을 마주했을때 크레온과 테이레시아스를 한통속이라 몰아붙이며 의심했던 오이디푸스왕, 민심을 전하는 아들 하이몬과 충언을 하는 테이레시아스를 협박하는 크레온을 보며 과연 이것이 2500년 전에 쓰여진 이야기가 맞는가하는 감탄이 절로 인다.
아무리 벗어나려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예언된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자라왔던 코린토스를 떠나왔던 오이디푸스가 끝내는 테바이에서 그 운명을 마주하고 만 것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영역과 존재를 소포클레스는 이 비극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이었던지 모른다. 영원한 행복은 없으니 오만 대신 현명함이 그 자리를 채우는 것도.
단연코 현명함이 행복의 으뜸이라네.
신들에 대해서는 불경한 어떤 행동도 하지 말지어다.
오만한 자들의 큰 소리들은 큰 타격을 갚고서야 노년에 현명함을 가르쳐 준다네.
- 『오이디푸스왕 외』 중 안티고네 338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