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밖의 삶』
아니 에르노 (지음) |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펴냄)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감각은 우리 안에 있지 않다. 그 감각은 밖에서부터, 자라나는 아이들, 떠나가는 이웃들, 늙어 가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로부터 온다.
- 『밖의 삶』 본문 18페이지
첫눈에 반하는 기적같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어떤 대상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찰이 선행된다. 그렇다고해서 모든 관찰이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 아니 에르노가 『밖의 삶』에서 보여주는 많은 대상들에 대한 관찰은 그 대상을 넘어 보다 넓은 세상을 사랑하고 포용하고 싶은 바램이 느껴졌다.
RER을지나치며 마주치는 노숙인들과 온정을 베풀기를 호소하는 극빈자들 에게 사람들과 아니 에르노가 보이는 행동들은 값싼 동정심보다 피하고 싶은 거리감이 보이지만 그런 무심함을 탓하고 싶진 않다.
지하철에서 구걸 대신 껌을 파는 선량해 보이는 노인이 사실은 억대 건물의 소유주였다더라는 경악할 만한 사실과 힘든 육체적 노동보다 구걸과 범죄의 길을 택한 이들에 관한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보아온터다. 가까이 있는 타인의 불행보다 멀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피해자들에게 더 마음이 쓰이고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하는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 더 안타까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릎 아래 다리가 절단되었다며 구걸을 하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엉덩이에 깔고 앉은 정강이를 본 듯하다는 아니 에르노도 그러했을까? 『밖의 삶』에서는 보스니아 전쟁에 대한 언급이 잦다.
가난한 사람들의 조롱은 별거 아니라서, 그것은 흉기가 아니라 그저 성가신 정도.(『밖의 삶』본문 29페이지) 동정을 강요하는 이들에게는 무심함을 보이면서도 보스니아에서 자행된 가혹 행위에 대해서는 자신의 기록을 증거로 남기려 한다. 하지만 먼 곳의 그들의 비극이 우리들에겐 얼만큼의 아픔으로 전해질 수 있을까.

RER 생미셸역에서 터진 폭탄처럼, 대구 지하철에서 일어난 방화처럼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 일어난 대형 참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특정인에 대한 관찰을 하게 만든다. 관심이 아닌 경계와 적대의 눈빛으로.
하지만 사람들은 선한 일을 하려고 타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랑받으려고 준다.(『밖의 삶』본문 68페이지)이토록 아플 수가! 아니 에르노의 의 펜이 어떤 비수보다 날카롭다.
자신의 출신이 서민임을 들먹이는 이른바 성공한 자들의 발언에 동조 대신 비난을 하면서도 대놓고 따져 묻지 못하는 비겁함, 대주주들의 부유를 위해 가족이라 불리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되는 현실, 다이애나의 죽음에는 뒤따르던 거대한 애도가 전쟁에서 참수된 사람들에게는 무관심으로 대조되는 현실에 대해 아니 에르노는 기록의 행위로 아파한다.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그들의 삶이 과연 나와는 무관할까?
밖의 삶이 결코 밖의 삶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타인에 대한 관찰로만 기록했음에도 바깥의 삶에 눈감고 귀막는 결과는 누군가의 바깥인 내게도 닥칠 수 있는 공포로 다가온다. 책은 가볍지만 메세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밖의 삶』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