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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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열린책들 (펴냄)

일기는 개인의 기록이다. 하루동안 있었던 일이나 개인적인 반성, 각오, 바램들로 채워지는 비밀스러운 지면의 공간이다. 그런데 아니 에르노의 『바깥 일기』는 일기라는 단어가 풍기는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있다. 그녀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타인들에게 머물러 있고, 날짜를 기록하는 일기의 기본 형식에서도 거리를 두어 연도만을 적어 기록했다.

아니 에르노의 책은 이번에 처음 읽어봤는데 그 문체 또한 여타의 작가들에게선 자주 볼 수 없는 어투다. 문장의 마침이 명사나 명사형으로 끝나는 곳이 많았다. 작가를 알지 못한채 읽어도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눈에 띈다는 말은 아마도 이러한 그녀만의 문체 때문일 것이다.

『밖의 삶』과 『바깥 일기』 두 권 중에 『바깥 일기』를 먼저 펼친 이유는 단순하다. 작가의 집필 순서대로다. 『바깥 일기』에서 자주 거론되는 장소는 RER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하철 쯤 되려나. 이제는 손바닥만한 휴대폰을 들여다 보느라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예전에는 그 작은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와 목적지를 일부 공유하며 가는 동안 누군가를 관찰하거나 말을 건네며 시간을 보내는 일들이 드물지 않았다. 『바깥 일기』에서 아니 에르노가 얘기하고 있는 것 또한 그렇게 바라보고 관찰하고 관찰한 행동들의 이면을 생각해보는 것들이다.

그녀가 관찰한 이야기들은 바다 건너 문학인의 눈에만 띄는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열차 안에서 글을 모르는 아이가 외워서 읽는 그림책 이야기, 역 앞에서 구걸하는 노숙인, 부패한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평범한 국민들의 증오와 선망의 이중적인 시선, 일명 바바리맨으로 불리우는 노출증 환자, 슈퍼마켓과 미용실에서 노출되는 제 3자들의 뒷담화, 말로는 평등과 공평을 부르짖으면서 자기 자신은 누구보다도 높게 자리하려는 정치인, 극빈층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안타까움보다는 통상적이라고 여기는 생각들, 같은 행위를 두고도 누리는 경제적 지표를 기준으로 달라지는 평가 등 1980년 대에 씌여진 『바깥 일기』에서 오늘날의 우리가 여전히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과연 그것이 타인의 이야기이기만 할까?'라는 생각이다. 불합리한 일들에 "나는 너와 다르다"고들 말하지만 결국 수많은 나와 수많은 너가 만든 우리, 사회가 아니던가. 나에게 너가 너 이듯이, 너에게 나도 너일 수 밖에 없는, 모두가 타인이지만 모두가 하나일 수 밖에 없는 모순. 이제야말로 모두가 달라져야 할 때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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