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MIDNIGHT세트] 비곗덩어리
기 드 모파상 (지음) 임미경 (옮김) 열린책들 (펴냄)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이 <비곗덩어리>와 <두 친구>의 시대적 배경이 된다. 읽고 있는 다른 도서 에밀 졸라의 "패주"와도 시대가 겹친다.
표지의 디자인을 첫번째 단편인 <비곗덩어리>를 읽고나서 유심히 보게 되었다. 진분홍빛 입술과 그 아래에 찍힌 점이 유난히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비곗덩어리>에서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간의 이기심,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다녀올 때의 마음이 다른 자기 위주의 변덕과 이중성도 보인다.
살던 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주인공은 욱하는 다혈질로 애국심을 표출하다가 급히 떠나온 터다. 그녀와 함께 마차를 타고 가는 여러 계층의 인물들은 나름 자칭 지식, 재산, 교양 등을 지니고 있는 계층의 사람들이지만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음식에 굶주리고 지쳐 비곗덩어리라 불리우는 매춘부가 나눠주는 음식에 그녀를 '부인'이라 호칭하며 칭찬 일색이었다. 한 여관에서 프로이센 장교에게 발이 묶이기 전까지는.
공동의 적이 있음에도 그 적이 가진 힘이 강할 때에는 같은 편 안에서 분열이 일어나거나 희생양을 찾는다. 힘이 없거나 신분이 낮거나 연합할 세력을 갖지 못하는 가장 약한 존재로 말이다. 가진 것은 먹을 것뿐이었던 그녀가 굶주렸던 자신들에게 베푼 호의는 잊고 그녀의 희생을 제물삼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모습은 인간의 민낯을 보는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신들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을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해 자존심마저 버려야 했던 여인을 위로는 커녕 멸시하고 무시했다.
"45. 전쟁은 평화로운 이웃을 공격하면 만행이고, 조국을 지키는 것이라면 신성한 의무죠." 하룻밤 사이에 숭고한 희생이 더러운 매춘이 되어버린 이것과 무엇이 다른가.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철저한 이기심은 타인의 희생을 도구로 삼았음에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은 끝까지 그녀의 배고픔마저도 외면했다. 진짜 더럽혀진 것은 어느쪽인가?
하지말라고 해도 꼭 그것을 하고야마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19로 모임이나 집회가 제한되고 마스크 없이는 이동이 금지되는 이 시기에도 여전히 남몰래 모이고 자유를 외치며 난동을 피우는 사람들. <두 친구>의 소바주와 모리소는 낚시를 즐기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가 목숨으로 대가를 치뤘다. 자유와 방종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수많은 소바주와 모리소들은 무엇으로 그 책임을 질것인가. 자신이 싼 똥은 자신이 치우면 좋으련만 운이 없어 피해를 입어야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측은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마지막 단편은 유명하고 유명한 <목걸이>다. 인간의 허영심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4. 그 여자는 자신이 삶의 온갖 세련됨과 호사를 누리도록 태어났다고 느끼는 터라 늘 괴로웠다." 허영심만 있는 게 아니라 오만함도 있다. 아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남편이 어렵사리 구해온 연회 초대장을 걸치고 갈 옷과 보석이 없다는 이유로 집어 던지는 태도에도 남편은 그런 아내가 가슴 아플 뿐이다. 빚을 갚기 위해 십년을 어렵게 살면서도 아내와 함께 한 이 남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가 진짜 값지게 여겨야 했던 것은 목걸이가 아니라 끝까지 곁에 함께 해준 남편이었을 것이다.
목걸이를 빌려주었던 친구는 십년 뒤에도 여전히 젊고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자신의 모조품 목걸이가 진짜가 되어버린 사실을 몰랐으니 보석이 그녀 삶의 활력은 아니었을게다. 마틸드 루아젤은 허영에 가려진 시각으로 진짜와 가짜를 알아보는 눈도 없었다. 어차피 모를 가치라면 귀하게 여기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처럼 말이다.
인간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이중성과 욕망, 허영심, 당연하게 여겨서 소중함을 모르는 것들에 대해 허를 찌르는 뜻밖의 결말이 (비곗덩어리 주인공은 안타까웠지만) 다른 고전들에 비해 사이다여서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