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뇌론 - 뇌를 향한 두렵도록 새로운 시선
요로 다케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재인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요로 다케시의 <유뇌론 唯腦論>은 '오직 뇌가 전부이다'라는 명제를 가지고 '유물론 唯物論'적인 입장을 취하는 책이다. 그러니까 실재적인 뇌뿐만이 아니라 관념론적인 뇌에 관한 저자의 고찰이 담긴 책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모든 현상을 뇌화腦化 과정의 부산물로 보고 있으며, 이 '뇌화'는 사회의 구조적 기능 담당을 뛰어넘어 생물학적으로 그러니까 다시말해 진화론적으로도 적용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이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이 모든것은 뇌화과정의 산물인 것이다.
 
먼저, 우리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때문에 개개의 독특한 인성이 드러나며 다른 삶들과 구별되어지는 독창성이 부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자아 自我'는 그 사람이 품고 있는 '마음'의 주체로 표현되어질 수 있다. 마음은 자아이기도 하지만, 자아는 좀 더 포괄적이다. 그리고 좀 더 철학적이다.
 
인체에는 각 기관이 있으며, 이들 기관은 우리를 구성하는 물리적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는 각각 독특한 기능을 행한다. 심장은 혈액순환을 시키는 기능을 하며, 신장은 노폐물을 걸러주는 기능을 하고, 위는 몸 속으로 들어온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 외에도 모든 기관들은 각자 맡은바 임무가 있다.
 
그렇다면 '뇌'라는 기관 혹은 구조는 어떤 작용을 할까?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모든 기관을 신경이라는 신호체제를 통하여 제어를 하는 것이다. 또한 여러 감각기관을 통합하여 우리가 자극을 느끼게끔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이것들은 우리가 쉽게 알고 있는 뇌의 물리적 기능들이고, 제일 중요한 기능은 역시나 기억의 보존, 생각,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등등 객체가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표출 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뇌의 여러 기능 중 하나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 혹은 '자아'를 생성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뇌가 시켜서 하는 것이다. 가령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역시나 나의 뇌가 시켜서 하는 것이다. 단순히 뇌가 나의 손을 움직이게 하여 글을 쓰게 끔 하는 것 보다 좀더 고차원적인 일,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하고, 이 글도 지금 꼭 써야한다는 것 까지 포함한 것이 나의 뇌가 시킨 하나의 단편적인 명령이다. 역시나 이 글 쓰기를 중단하고 내일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의 뇌가 내린 명령일 것이다(하지만 오늘 나의 뇌는 아마 나에게 이 글을 다 쓰라고 명령한 듯 하다). 그렇다면 '나'라는 것은 '나의 뇌'가 만든 하나의 이미지로 볼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뇌의 기능들을 조정하거나 제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뇌가 나(마음, 자아, 의지 등등..)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내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뇌'라는 말에는 모순이 생긴다.  왜냐하면 '나'야 말로 '뇌'의 소유물이 아닌가. 이것이 관념적인 뇌고, 유물론입장에서의 유뇌론이다. 더 들어간다면 과학적 관찰을 떠나 철학적 고찰로 넘어가게 된다.
 
철학적 고찰로 넘어가기 전에, 또 한가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뇌사'는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뇌의 모든 기능이 죽은 것은 아니다. '뇌사'상태의 사람 역시나 숨을 쉬고, 혈액을 순환시키며, 거의 모든 장기들을 제어하고 있다. 그렇다면 뇌의 무슨 기능이 고장난 것일까. 바로 '마음'이라는 정신상태, 즉 '자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한마디로 의식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하나의 기능만 작용하지 못하는데 왜 우리는 죽은 사람처럼 취급할까. 역시나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뇌의 '신체성'(한마디로 뇌와 떨어진 몸이라 생각하면 된다)이라고 이 책의 말미에 저자가 이야기한다. 즉, 뇌가 가장 두려운 것은 뇌가 뇌를 인지하지 못할때이다. 즉, 죽음인데 이를 작가는 '신체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신체가 뇌와 분리되어 있는 상태, 뇌가 신체에 작용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것이 곧 시체'이고 뇌 밖의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자신의 시체(혹은 '신체성')를 두려워 한 나머지 뇌가 가지고 있는 지식 혹은 정보를 다른 뇌들에게 전달한다. 결국엔 자신이 죽어도 이 사회의 뇌화는 멈추지 않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본다면 역시나 이 사회는 뇌화이다. 이 역시 작가의 고찰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단순히 뇌의 기능중 하나만을 고찰한 것이고, 이 책에는 그 밖의 여러 기능적, 구조적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가령, 우리의 언어에 관한 것이라든지, 우리의 감각에 관해서란든지 등등... 뇌에 대한 해부적 조감도 부터 시작하여 철학적 고찰을 넘나든다.
 
가령, 우리가 느끼는 감각, 특히 시각과 청각의 차이에 대한 그의 설명은 독특하다. 시각은 디지털 적이며, 청각은 아날로그적으로 보고 있는데, 예를 들어 영화를 보고 있다가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움직이는 그림이 순간적으로 멈춘 상태이며 우리의 뇌는 그것을 시각계라는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다. 누군가 지나가다 멈추었다고 해도 우리는 멈춘 상태를 인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음악을 듣는다고 생각해보자.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일시정지를 눌렀다고 해보자. 과연 어떻게 될까. 우리가 가진 오디오기기에는 일시정지가 없다. 물론 있긴하다. 그렇지만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자마자 음악은 중단된다. 곧 소리(음)가 제거된 상태라는 뜻이다. 만약 제거되지 않고 일시정지된 상태에서 음을 듣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니다. 하나의 주파수만이 끊임없이 똑같은 음으로 퍼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고음일 경우 상당한 고통일 수도 있다. 암튼 그 밖에 시각과 청각의 다른 설명들이 많긴 하지만 이 정도에서 줄인다. 그만큼 우리의 뇌는 특이하다. 책에서는 이 청각과 시각을 통합시키는 뇌의 역할까지도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은 앞서 몇가지 설명한 것 처럼 우리도 가끔 궁금히 여기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는것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해부학적 지식이 녹아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더 이상 뇌에 관해 생각치 않은 걸까. 그것은 역시나 철학의 세계이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것을 더 생각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뇌는 생각말자라는 명령을 내릴 것이다. 왜냐하면 뇌 자신이 힘들어하니까 말이다. 그 영역을 뛰어 넘은 사람들이 바로 철학자이다. 내가 보기엔 그들의 직업정신은 투철하다. 아니 상당히 강화된 뇌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의 작가는 해부학자이다. 그는 '신체성'이 이루어진 후(뇌가 관여하지 못하게 된 후, 즉 사람이 죽은 후)의 여러 기관들을 다룬다. 물론 뇌도 다룬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호기심으로 뇌를 이야기하고 싶어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굉장한 지적 호기심을 풀어줄 듯도 보이지만, 역시나 철학이라는 벽을 어느정도 뛰어 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은 매우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고, 철학적으로 흐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어떤 뇌는 힘든 나머지 '이 부분은 뛰어 넘어서 읽어라'라는 명령을 내리거나 '책을 덮어라'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좋은 책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재미없는 책일 수 있다는 말...^^
 
또한 이 책은 답을 내놓진 않는다. 그냥 뇌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전부이다라고 말할 수있다. 결국, 작가 '요로 다케시'의 사람들의 뇌에 관한 고찰쯤으로 봐두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작가의 시각은 특이하다. 그러니까 작가의 말대로 '요로 다케시의 뇌'는 특이하다.
 
<덧붙임>
 
일반적인 기관은 물질이며 또한 물질을 다룬다. 이를 대사작용(물질대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뇌는 물질이지만 물질을 다루지 않는다.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다룬다. 이 역시 뇌의 독특한 특징이다. (일례로..심장은 피를 다루며, 신장은 오줌을 다루고, 폐는 일반적으로 공기(산소)를 다루고, 그 밖에도 여러 기관들은 호르몬이라든지 그 밖의 물질을 다룬다.) 그런데 인체에는 뇌와는 반대의 기관 두 개가 있다. 즉, 물질을 다루는데... 어떤 두 기관은 물질이 아니다. 즉 구체성이 없다. 이 기관을 내놓으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내 놓을 수 없다. 이 또한 예를 들어... 눈을 내놓아라..하면 눈을 내놓을 수 있다. 심장을 내놓아라 하면 심장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기관을 내놓아봐라' 하면 내 놓을 수는 없다. 상당히 고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이 두 기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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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마우스로 드래그 하시면 답이 보여요~~~)
 
--> 답은 입과 항문이다. 이 두가지는 엄밀히 말해서 입구와 출구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입의 범위를 규정지을 수도 없고, 항문도 마찬가지이다. 입과 항문을 내놓으라하면 글쎄...피부정도나 내놓을 수 있나? 입의 피부는 역시나 입술이 될테니 엄밀히 말해서 입은 아닐것이고, 항문은 피부정도는 내 놓을 수 있겠다. ㅎㅎ... 암튼 이 두가지 기관은 구체적인 기관은 아니지만, 역시나 물질을 다룬다. 입을 통해 음식이 들어가고, 항문을 통해 대변이 나오니까 말이다.
재밌다...(이부분도 책에 나오는 부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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