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의 정원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88
김혜정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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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를 몇 장 넘기지 않고도 알아버릴 때가 있다.
아, 사랑에 빠지겠구나.
한동안 이 세계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겠구나.
<솔라의 정원>이 꼭 그랬다.

자신을 명명할 이름을 스스로 부여하고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타투를 새기고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솔라 할머니.

우연히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지만
서로의 가슴속 구멍을 알기에,
같은 결핍을 가졌기에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된 아이들과 할머니와 등장인물들.

기쁠 희, 아이 아를 쓰는 기쁨의 아이 희아.
다들 희야로 부르는데 이 열다섯 사춘기 소녀의 내밀한 심리 변화도 문장에 잘 구현되어 있어 이젠 남의 기억인 것만 같은 10대 사춘기의 내 모습도 다시금 떠올리는 기회가 되었다.

부디 모두에게 따스한 햇살이,
적당한 양분이 계속 주어져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기를.
따뜻하게 데운 손으로 살며시 책을 덮고 그대로 조금 멈춰있었다.

나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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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 우리의 삶을 넘어선 본질에 대한 이야기 세스 시리즈
제인 로버츠 지음, 매건 김 옮김 / 터닝페이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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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머리가 꽤 굵어질 때까지
양가의 조부모들은 살아계셨다.
명절 때마다 친가와 외가를 오가며
1년에 최소 2번은 짧게라도 그들을 만나며 자랐다.
친가에서는 내가 첫 손주였기에
나는 부모의 사랑과 더불어
조부모와 친가 친척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외가에서는 내 앞에 많은 손주들이 있었기에
내 존재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많은 형제들이 있음에도
누구보다 살뜰히 부모를 챙긴 엄마 덕에
나름의 관심과 사랑을 먹었던 것 같다.
영원할 것만 같던 그들과의 만남은
지금 모두 끝을 맞았다.
때로는 버거웠고 때로는 벅찼던 그 사랑이
요즘 부쩍 생각이 난다.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준 엄마 아빠의 뿌리가 된 그들이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나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만 같아
종종 한기를 느끼고 부르르 몸을 떨곤 했다.
내가 운이 좋았구나.
다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토록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던 마음은
이제 영영 사라진 걸까?
죽음 이후의 상태는 어떤 것인지 자주 생각했다.
생각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죽어보지 않았으므로.

이 책을 읽으면서 닭살이 돋았던 팔을
보이지 않는 손이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 들었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나라는 외형에서 벗어나 아주 작디 작인 분자가 되어
공기 중을 떠도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사물을 이루는 입자들의 진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깨어있지만 잠들어 있는 듯한 묘한 상태에 빠졌다.
직접 닿을 수는 없지만 나를 만들어준 내 뿌리에게
지금 내 마음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별한 독서 경험이었다.
책의 전편인 세스 매트리얼도 읽어보고 싶다.

조금 덜 외로워졌고
조금 더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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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밍 소설Y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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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봉쇄됐다.
벌써 9년 전 이야기다.
어느 6월의 햇살 좋았던 날, 인류 멸종의 카운트다운은
조용히, 시시하게, 그러나 막을 수 없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덮쳤다.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거나 죽어갔고
병원으로 이송된 사람들이 미라처럼 말라붙다가
몸에서 뿌리가 자라나며 나무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재앙의 검은 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각질화된 세포들을 쏟아내며
비명과 함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 현상은 세계적 대도시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서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생화학 무기라는 둥 빙하가 녹으며 풀려난 고대의 바이러스라는 둥
신의 심판이 떨어졌다는 둥 원인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학자들은 자신 없는 어투로 '그것'을 생명체의 유전자 전반에
구조적 변이를 일으키는 일종의 바이러스로 규정했다.
그 무형의 폭발이 일어난 폭심지가 분명하고
증상의 중증도도 그 거리와 반비례한다는 사실 앞에서
인류는 화합했다.
대도시의 외곽에 높이 50미터의 방벽을 쌓기 시작했다.
'그것'이 공기보다 무거워 지표면에 깔리는 성질이 있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서울은 봉쇄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인류는 우산이라는 광역 방역 시스템을 개발했다.
바이러스로 절여진 땅에 핵폭탄을 떨어트리는 역하을 할 것이고
가동 전후에는 오염 수치가 크게 개선되어
곧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뉴스가 세상에 흘러나온다.

여운은 국립재난대응연구소의 수습 연구원이다.
갑작스러운 대피 상황에서 엄마를 만나지 못한 채
이모 손에 겨우 서울을 벗어났다.
9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엄마를 찾는다는 희망을 내려놓지는 못했다.
어느 날 연구소로부터 메일을 받는다.
우산 가동에 문제가 생겨 선발 대응팀이 직접 투입되었으나
여운도 보조 인력으로 충원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프로젝트 종료 시 높은 보수를 약속한다는 말과 함께
엄마를 찾고 싶은 마음에 그녀는 서울로 진입한다.
R이라는 유능한 인형과 함께.

정인은 9년 전 서울에 갇혔다.
차마 대피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여
피가 섞이지 않은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어린 정인은 어른들의 보살핌으로 무사히 청소년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바이러스 감염으로 몇몇 가족들은 나무가 되었고
지금은 나무로 변해가는 삼촌과 할머니, 레슬링 인형 미호와 함께다.
다행히 정인은 그것에 면역이 있는지 증상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두 사람과 두 인형은 우연한 계기로 교차한다.
각각의 사연이 서서히 밝혀지고 다양한 생각과 마음이 쉴 새 없이 부딪힌다.

문장을 읽으면 장면이 떠오른다.
인물들이 등장하고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영상이 재생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소리가 들리고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나거나 탄내가 나기도 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VR 보다 생생한 감각으로
나는 봉쇄된 서울 속을 헤매고 있다.

문장이 거북하지 않고 담백하면서 감정을 쉴 새 없이 자극한다.
화자가 변할 때마다 그 마음이 온전히 이해되고 공감된다.

서글픈 미래상 앞에, 인류의 실망스러운 대처방안에
가슴이 답답하고 울적해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온기가, 서로의 존재가
더 애틋하고 값지게 다가온다.

책을 읽는 동안 꿈도 자주 꿨다.
오랜만에 만난 잔상이 오래 남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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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의 현 네오픽션 ON시리즈 31
강민영 지음 / 네오픽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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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시골 할머니 집 근처에 있는 냇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진 적이 있다.
상류의 물이 하류로 흘러가기 전
작은 둑이 있었는데
둑 사이사이는 몇 개의 홈이 패어있었고
그 부분을 지나는 물은 유독 속도가 빨랐다.
왜 거기 섰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홈에 발을 넣었고
순식간에 물살에 휩쓸려 풍덩,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아, 이대로 죽는 건가?
어린 마음에도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섭지는 않았다.
그저 죽음을 떠올렸다.
평온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고 위를 보니
한낮의 햇빛이 물속에서 투명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오묘한 빛깔을 보고 잠시 넋을 잃었다.
어쩌면 평생 이 장면을 바라봐도 좋겠다던 마음이 아직 또렷하게 남아있다.

나는 물을 좋아했다.
그 사건을 겪었어도 여전히 물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인어에 환장한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인어의 존재를 믿고 살아왔다.
이 책에 내게 닿은 것은 운명일까?

지구는 인간의 욕심과 오만으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
바다는 검게 변했고 각종 쓰레기들로 엉망이 된지 오래다.
푸른 하늘은 이제 옛 추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자원 부족을 겪고 있는 인간들은 바닷속 자원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고
유진은 심해에서 육지의 자원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엘드시티 프로젝트의 연구원이다.
지난 탐사 때 전 세계적으로 희귀해진 아귀가 무차별하게 포획되고
난도질당하는 모습에 크게 충격을 받은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과학자다.

네하는 심해에서 삶아가는 인간과 아주 닮은 발라비 종족 생명체다.
발라비들은 해파리와 같은 반투명한 은은한 색의 피부를 가지고
손목과 팔목 그리고 종아리 뒤와 등을 가로질러 긴 지느러미가 붙어 있다.
네하는 호기심이 많아 해류에 떠밀려온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친구 키라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빛이 일렁이는 경계해역까지 몰래 나가기를 좋아한다.

어느 날 잠수정에서 떨어진 측정기를 네하가 가지게 되고
우연한 기회로 측정기의 데이터가 육지의 유진에게 닿는다.
데이터 속 흐릿하게 찍힌 네하의 모습을 보고
유진은 탐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둘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엔딩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인간들로 인해 황폐화되어버린 지구,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 아래 다른 생명들에게 자행되는 무자비한 살육과 폭력들.
책을 읽으며 지구에게, 다른 생명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마무리 작가의 말 문장들이 무겁게 남았다.
나와 다르지만 아름다운, 사랑하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한다.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을 오늘도 기억한다.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있기를,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망가져 있지는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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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무레 요코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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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얘기지만
내 지인들이 이 책의 제목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았다면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반박할 수 없다.
너무나도 나 그 자체인 제목에 눈을 떼지 못하고
서평단 신청도 했기 때문이다.

가제본 상태로 정식 출간본의 한 챕터를 받았다.
제목은 '쌓아두는 엄마'.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아니 그게 아니고...)

오늘도 딸 토모미는 엄마의 부름을 받고
신칸센에 몸을 실었다.

72세의 어머니는 토모미가 고등학생일 때 갑자기 남편을 잃었다.
대학 때 맞선을 보고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해서 직장 생활 경험이 없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도 사치하지만 않으면 일은 안 해도 된다면 집에만 있었다.
장례식 등의 준비는 엄마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이모가 도맡아주었다.
그런 이모가 돌아가신 뒤에는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고 있다.

그래도 아직 젊은 편이라 생각하면서도
토모미는 혼자 있는 엄마가 걱정스럽다.

오늘은 무슨 일로 호출한 거냐 물으니 뜸을 들이는 엄마.
그리고 이내 혼자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고 고백한다.
대체 뭘까?

엄마의 목소리를 따라 오빠가 어릴 때 쓰던 방으로 들어간 순간,
토모미는 얼어붙었다.
방 안에는 온갖 종류의 택배 상자가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엄마를 추궁하니 얼마 전 큰 지진이 있고 나서 두려움에
비상식량을 사두려고 했단다.

그런데 양이 많아도 너무 많다다.
일인용 비상식량 세트가 열 상자.
2리터짜리 생수병 48개에 각종 통조림.
즉석카레 24개.
컵라면 33상자. 396개.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들도 수두룩했다.

주문을 잘못한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사놓고 먹어치우질 않아 계속 쌓이기만 해
방은 엉망이었다.

토모미를 가능한 한 물건들을 정리하고
먹어치울 수 있는 것들을 먹어치울 수 있게 부지런히 움직였다는 이야기다.

아이고, 어머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데 너무나도 이해가 되어서
안절부절못하며 읽었습니다..
저도 늘 물건이 차고 넘치는데
왜 자꾸 사고 쌓아놓게 되는 걸까요?...

저장 강박에 대한 책도 읽고
쓰레기 집에 대한 영상들도 보면서
반성하고 고치려고 하는데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제일 간절하게
제대로 살아보고 싶지 않겠어요?

저도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잘 살아볼게요.
저는 토모미 같은 딸도 없으니까요.

지난 1월 13일(월)에 정신 출간본이 발행되었으니
전체 이야기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출간 이벤트로 알라딘에서는 무레 요코 지우개,
예스24에서는 무레 요코 카펜터 연필,
교보문고에서는 무레 요코 포스트잇 증정 이벤트도 있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체크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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