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머리가 꽤 굵어질 때까지양가의 조부모들은 살아계셨다.명절 때마다 친가와 외가를 오가며1년에 최소 2번은 짧게라도 그들을 만나며 자랐다.친가에서는 내가 첫 손주였기에나는 부모의 사랑과 더불어조부모와 친가 친척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외가에서는 내 앞에 많은 손주들이 있었기에내 존재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많은 형제들이 있음에도누구보다 살뜰히 부모를 챙긴 엄마 덕에나름의 관심과 사랑을 먹었던 것 같다.영원할 것만 같던 그들과의 만남은지금 모두 끝을 맞았다.때로는 버거웠고 때로는 벅찼던 그 사랑이요즘 부쩍 생각이 난다.나라는 존재를 만들어준 엄마 아빠의 뿌리가 된 그들이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나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만 같아종종 한기를 느끼고 부르르 몸을 떨곤 했다.내가 운이 좋았구나.다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그토록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던 마음은이제 영영 사라진 걸까?죽음 이후의 상태는 어떤 것인지 자주 생각했다.생각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죽어보지 않았으므로.이 책을 읽으면서 닭살이 돋았던 팔을보이지 않는 손이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 들었다.문장을 따라가다 보면나는 나라는 외형에서 벗어나 아주 작디 작인 분자가 되어공기 중을 떠도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나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사물을 이루는 입자들의 진동이 느껴지기도 했다.깨어있지만 잠들어 있는 듯한 묘한 상태에 빠졌다.직접 닿을 수는 없지만 나를 만들어준 내 뿌리에게지금 내 마음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특별한 독서 경험이었다.책의 전편인 세스 매트리얼도 읽어보고 싶다.조금 덜 외로워졌고조금 더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