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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의 여름
루시 스티즈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8월
평점 :
#서평단
#에티의여름 #루시스티즈 #다산책방 #소설
세상을 다 태워버릴 듯, 연일 최고 기온 40도에 육박하는 강렬한 햇살의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습도도 높고 해가 진 후에도 좀처럼 달궈진 도시가 식지 않아 힘겨운 여름이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내딛는 단 한 걸음만으로도 목숨이 위태롭다는 느낌이 든다.
지글거리는 공기를 뚫고 내 앞에 이 소설이 날아들었다.
<에티의 여름>.
지금까지 서평단을 여러 번 해봤지만
교정지 형태의 인쇄물로 참여한 건 처음이라
묵직한 종이 뭉치를 갈색 서류 봉투에서 꺼내자
스스로가 담당 편집자가 된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말랑해진 입꼬리를 감추면 페이지를 넘겨본다.
한 이방인이 마을에 들어선다.
그는 먼지가 피어오르는 길을 따라 걷는다.
한쪽에는 라벤터밭이 펼쳐져 있고, 한쪽에는 초록빛 강이 잔잔하게 흐른다.
모자도 쓰지 않은 머리 위로 뙤약볕이 사정없이 내리쬐고,
한쪽 어깨에 낡아빠진 배낭 하나를 들러 메고 있다.
17p
맑은 공기와 버터를 녹인 듯한 황금빛 햇살이 쏟아지는 들판은 생경할 따름이다.
그는 껍질이 벗겨진 플라타너스 아래, 햇살이 아롱진 그늘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뒤틀린 올리브나무숲을 요리조리 빠져나오니 마침내 그것이 보인다.
야트막하고, 이리저리 증축해서 옆으로 길에 뻗은 농가다.
은은한 연노랑 돌로 지은 그 집은 오후 햇살에 황금빛으로 물든다.
지붕은 얽히고설킨 덩굴로 뒤덮였고, 창문은 열기를 막으려고 작게 냈다.
20p
손을 들어 눈가에 그늘을 만들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눈에 담는다.
황금빛 들판에서는 햇살이 뿜어져 나오고,
관절염을 앓는 듯 뒤틀린 모양새로 향기를 내뿜는 검은 올리브나무에는 먼지가 달라붙어 있다.
21p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감이 온다.
아, 요거 요거 예사롭지 않다!
조사를 해보니, 이 작품을 쓴 루시 스티즈는 95년 생 연구원으로
오랫동안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살다가
딱 1년이라는 도전의 시간을 갖기로 하고 작업에 돌입한다.
그렇게 태어난 이 작품이 무려 9곳의 출판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정도로 매력적이라는 게 밝혀졌고
신인 작가에게는 이례적으로 억대 선인세로 계약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그랬구나.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세밀한 묘사가 곳곳에 흩뿌려져 있고
문장을 눈으로 읽고 있을 뿐인데도
뇌 속에서는 총천연색으로 그려진 그림은 물론,
소설 속 장면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경험을 자동적으로 하게 된다.
게다가 소설의 주요 배경인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뜨거운 여름이
지금 계절과 딱 맞아떨어져 더더욱 현실성을 짙게 가져간다.
이야기는 1957년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그림을 보는 한 여인에 대한 짧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명작을 보며 그녀는 말한다.
자신이 그 그름에 불을 질렀다고.
메인 이야기는 1920년의 프로방스를 찾은 조지프의 이야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는 미대를 짧게 다녔으나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학교를 자퇴한 후,
현재는 미술 평론가로 이름을 알리려 노력 중이다.
그러던 와중에 천재 화가라 칭송받지만 은둔자이자 폭군이라고도 불리는,
에두아르 타르튀프라는 노년의 화가를 취재하러 길을 나서게 된다.
노화가에게 용기 내서 편지를 보냈고,
'오라'는 한마디와 서명만 담긴 답장에 설레어 부리나케 날려왔건만
화가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그를 문전 박대하려 한다.
그때, 에티라는 화가의 여자 조카가 나타나 조지프가 그의 그림 모델이라 말해주었고,
조지프는 취재를 할 꿍꿍이로 화가의 모델이 되기로 하며 그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그는 이상한 일을 겪게 된다.
화가의 그림이 불타오르는 장면을 보지만, 자고 일어나면 그 그림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뒷이야기가 흥미진진한데 여기서 말을 못 하겠네.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닌 미스터리 요소도 가미되어 있고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잘 버무려진 인상 깊은 작품이다.
뜨거운 여름이 아직은 좀 더 이어질 테니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잠시 프로방스로 여행을 다녀오는 걸로
휴가를 보내는 건 어떨지,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