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셋이 모이면 집이 커진다 - 부담은 덜고, 취향은 채우고, 세계는 넓어지는 의외로 완벽한 공동생활 라이프
김은하 지음 / 서스테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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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
입고 먹고 사는 것.
사람이 사는 데 꼭 필요한 것.
이 중 가장 골머리 아픈 것이 바로 주, 주거 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수도권으로 몰려든다.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타향에서 온 사람의 설움이 있다.
나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케이스라 집 문제는 늘 큰 스트레스였다.

책을 쓴 김은하 저자처럼 나도 다양한 주거 환경을 경험했다.
침대와 책상을 빼고는 사람 하나 누울 자리 없는 고시원부터
원룸, 투룸, 그리고 지금의 쓰리룸까지.
운이 좋게도 서서히 집을 늘려오긴 했지만 매 순간순간이 시련의 연속이었고
지금도 자가는 아니기 때문에
언제고 지금의 생활은 막을 내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늘 안고 산다.

초반부 '손바닥만 한 햇볕의 사용료는 한 달에 5만 원이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저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아주 잘 알기 때문이다.
고시원은 엄밀한 의미의 주거 공간은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하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음, 공용 화장실, 냉난방 온도, 식사 등등.
달리 선택지가 없어 고시원에서 지낸 시간들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작가는 룸메이트를 찾고
삶의 장소도 서서히 진화시켜 나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현재는 2명의 친구들, 반려견과 함께
약 34평 아파트에서 월세를 살고 있다.

이제는 결혼이 필수인 시대도 아니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한다.
마음이 맞는다면 피가 섞이지 않더라도 가족을 이룰 수 있고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더 다양한 주거 환경을 선택할 가능성도 늘어난다.
다양한 고비를 넘고 넘어
지금 이대로 완벽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작가가 너무 부러워졌다.

나도 넓은 집에 살고 보니
사람이 살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과 구분이 중요함을 느낀다.
당장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여전히 취약한 주거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다양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다 보면
분명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판도라 상자에 마지막 남은 것이 희망이라면
이건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닐 수도 있겠다고 늘 생각하지만
희망이라도 없으면 또 어찌 사나 싶어서 굳이 이렇게 써본다.
그래도 나아질 거라는 그 믿음 없이 각박한 현실을 어떻게 버티겠는가?

모두의, 식, 주가 잘 보장되는 세상에서 조금 덜 고달프게 살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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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선택 (크리스마스 패키징 에디션)
이동원 지음 / 라곰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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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_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지금의 나는 수많은 선택의 결과치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모습이다.
그렇기에 현실이 힘에 부치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때 내가 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현재의 내가 존재하는 현실에서는 시간을 되돌릴 수도, 이미 한 선택을 물릴 수도 없다.
다중우주의 또 다른 나는 어쩌면 내가 하지 않은 선택의 길을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어때?라고 물어보고 싶지만 다른 우주의 나에게 연락할 길은 없다.
만약 다른 내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좋은 상황에 놓여있다면
이 우주의 나는 현실이 더 괴로워질 것이고
만약 다른 내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면
이 우주의 나는 현실이 조금 덜 버겁게 느껴질까?
이러니저러니 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싶지만 역시 현실이 시궁창일수록 중독처럼 자주 떠오르는 생각이다.
그때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그때 저렇게 했어야 하는데...

오늘의 이야기 속 주인공은 우리의 상상을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
변변찮은 작가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존재감 없는 명운은 과거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었다.
계속 꿈같은 날들이 이어질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한없이 초라하고
10년 넘게 사귄 여자친구 연우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매한 관계만 지속되고 있다.
어느 날 길을 지나다가 사거리 중앙에 만취한 상태로 누워 있는 마동석과 꼭 닮은 사람을 보았다.
무시하고 가고 싶었지만 12월의 밤은 얼어 죽기 좋았고 운이 좋아 얼어 죽지 않는다 해도 차에 치여 죽을 것 같았다.
결국 취객을 일으켜 세워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자리를 뜨려는데 고맙다며 술을 한 잔 사겠다는 마동석 닮은 꼴.
다양한 버전의 마동석 중 험한 인상의 마동석과 닮았기에 급히 자리를 뜨려는데 그냥 가면 후회할 거라고, 이미 많은 걸 후회하고 있지 않냐고 말하는 그.
명운은 그 말에 낚여 술을 한잔하게 되고 이상한 말을 듣는다.
당신이 가지 않은 인생의 길을 가보는 게 어떠냐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하다가 정신을 차리니 집이었다.
어느새 명운의 팔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인 피에르 가르뎅 메탈 시계가 있었다.
시계방에서도 너무 오래돼서 수리가 불가하다 했던 고장 난 시계가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명운은 마동석 닮은 꼴의 말대로 선택하지 않았던 인생의 순간순간을 랜덤으로 맞이하게 되는데...

이 소설 재미있다.
작가님의 유머 코드가 나와 잘 맞나 보다.
마동석이 등장하는 순간들도 너무 주옥같다.
현실과 선택하지 않았던 삶을 오가며 명운은 다양한 순간들을 맞이한다.
인생이 늘 내 뜻대로는 흘러가지 않고 완벽해 보였던 모습들 뒤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 숨어있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얻어터지고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리던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주변 공기가 묵직해졌다.
어느 쪽의 삶이든 산다는 건 참 녹록지 않은 일이고 내 선택만이 다가 아니라 그 선택과 맞물린 주변 사람들의 선택이나 상황들이 내 삶에도 큰 영향을 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나의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뿐.

앞으로의 나도 지금까지의 나처럼 종종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미련을 뚝뚝 흘리겠지만 그럼에도 어찌 되었든 지금의 엉성한 현실을 잘 매만지고 받아들여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그 순간순간 이 책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나는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참고로 12월 2일(월)에 정식 출간도 되었으니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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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는 토요일 새벽 - 제1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
정덕시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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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희가 세상을 떠났다.
17년을 함께했던 나의 반려동물.
움직일 때마다 붉게, 푸르게, 보랏빛으로 일렁이던 무늬를 가졌던 아이.
생이 사그라진 후에야 처음으로 두희를 마음껏 쓰다듬어 본다.

두희의 정체를 알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왜냐하면 두희는 타란툴라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방금 전 문장에서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는가?
그런 반응들 때문에 나는 두희의 이야기를 남들 앞에서 하지 않는다.

나는 이 소설에 매혹되었다.
흠뻑 사랑에 빠졌다.
수많은 인덱스가 내 마음의 증거다.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는 차분하게 진행된다.
시끄럽지도, 어수선하지도 않다.
눈으로 문장을 훑어내리다 보면 잔잔한 마음의 수면 위에 작은 파동이 생긴다.
두희가 놀라지 않게, 감정을 조심조심 씹어 삼킨다.
오른쪽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읽는 속도를 늦췄다.
언젠가 다가오고 말 끝을 되도록 멀리 밀어두고 싶어서.

책을 읽는 동안 몇 번 두희 꿈을 꾸었다.
내가 두희가 되어 비바리움과 유리 너머 수현의 방을 바라보는 꿈이었다.
기묘한 경험이었고 애틋한 경험이었다.

너무 다른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이 통하지도 않고
생김새도, 생활 방식도 하나부터 열까지 무엇 하나 닮지 않은 너를
왜 나는 기어코 사랑하고 말았을까?

단순한 펫로스를 넘어
종과 종의 이해에까지 가닿은 어떤 사랑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축축하고 뜨끈하고 말랑하고 매끈한 심장 하나를 움켜진 기분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과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작품이다.
꼭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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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미 마인 워프 시리즈 8
배리 B. 롱이어 지음, 박상준 옮김 / 허블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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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0년 언저리의 미래.
인간은 새로운 행성 개척에 혈안이 되어
우주의 또 다른 생명체 드랙 종족과
영역 문제로 마찰을 빚게 된다.
이내 인간과 드랙은 곳곳에서 전투를 벌이게 되고
인간 윌리스 데이비지와 드랙 제리바 쉬간은
치열한 싸움 끝에 전투기가 망가지며
무인 행성 파이린 4호에 불시착하게 된다.

둘은 서로에게 결코 좋은 감정을 가지지 못했지만
구조대가 언제 올지,
어쩌면 구조대가 오기는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외딴 행성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동을 같이 하게 된다.

드랙 종족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하자면
그들은 두꺼비 같은 얼굴에 코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노란 눈동자와 세 개의 손가락을 가졌다.
그리고 한 몸에 남성과 여성의 생식 기관을
함께 가진 양성체라 홀로 임신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탈만이라는 여러 위대한 스승들의 이야기가 담긴,
인간의 성경과 같은 가르침을 중시한다.

서로 으르렁거리던 두 생명체는
혹독한 무인 행성의 긴 겨울을 버티면서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서서히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 상태였던 드랙 친구가 출산을 하다 죽게 되고
인간은 지식이 전무한 아기 드랙과 덜렁 둘이 남겨진다.
인간은 죽은 드랙 친구의 부탁에 따라
아기 드랙 자비스에게 드랙의 언어와 문화, 탈만을 가르친다.
결코 이해될 수 없던, 이해하고 싶지도 않던 이종족의 생명체들이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잠을 자면서
가족이 된다.

이 이야기는 무려 1979년 중편소설 분량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였고
영미문화권의 양대 SF 문학상인 휴고상과 네뷸러상,
그리고 로커스상과 존 W. 캠벨 신인작가상을 받았다.
이토록 권위 있는 상을 동시에 석권한 최초의 기록을 가진 작품이고
이 기록은 무려 38년이 지난 2018년에야 겨우 갱신이 되었다고 하니
당시의 위상이 어떠했을지는 쉬이 감이 온다.
이 책은 1979년의 초판 버전이 아닌 분량이 추가된 버전이 번역된 거라고 한다.
영화화된 작품이 있다고 해서 조만간 한국영상자료원 가서 찾아볼 예정이다.

그만큼 이 책이 무지막지하게 흥미로웠다.
이런 상상을 하고 소재를 채택해 이야기로 부풀린 작가의 센스에 감탄하고
인간과 외계인의 외피를 둘렀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심도 있는 논의들에 크게 공감했다.

중반부의 손가락 장면이 후반부에 되살아날 때
눈물이 다 날 정도로 흠뻑 몰입해서 읽었다.

많은 독자들에 가 가닿았으면 좋겠다.
나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까운 이야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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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주하는 일 - 완벽하지 못한 내 몸을 사랑한다
김주원 지음 / 몽스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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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인생에서 공연에 미쳐 지낸 몇 년의 시간이 있다.
뮤지컬과 연극으로 시작한 취미가 정신을 차리니
각종 무용 분야까지 넓어져 있었다.

무용에 대해 기초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도
언어가 없는 무대 위 무용수들의 몸짓에 늘 황홀경을 느꼈다.
그중 발레 공연을 특히 좋아했는데
중력을 무시하고 허공으로 높이 솟아오르는 발레리나, 발레리노의 모습에
입을 떡 벌린 채 자주 숨 쉬는 걸 잊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후 이런저런 사정으로 무대에서 멀어졌다
최근에 스테이지 파이터에 푹 빠져 살았다.
모든 무용이 다 압도적인 매력을 뽐냈지만
역시 발레에 가장 마음이 끌렸다.
당연한 수순으로 고고한 백조처럼 우아한 자태와
부드러운 미소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가는
김주원 마스터에게도 푹 빠지게 되었다.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수상한
유명한 발레리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녀의 발레 인생을
처음부터 현재까지 같이 걸어올 수 있어 뜻깊은 경험이었다.

부산 태생이란 점에서 진한 친밀감을 느끼며 시작된 독서는
중학교를 자퇴하고
당시 소련이란 이름으로 교류도 별로 없던 낯선 나라로
발레 하나만 믿고 유학을 떠난
당찬 소녀 김주원도 만나게 되었다.
볼쇼이 발레학교 시절,
어릴 때부터 거르고 걸려져 들어온 최정예 발레 엘리트 학생들 사이에서
언어도 서툴고 체형도 상대적으로 아쉬운 동양의 어린 여자아이는
좌절도 맛보았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부지런히, 오래 연습하고 또 연습하며 자신을 단련했다.

이후 그녀의 발레 인생에서도 동일한 양상은 드러나고
늘 자신이 안전하거나 게을러진다고 느껴지면
두려움 없이 낯선 환경으로 자신을 내몰아
자발적인 '추방자'가 된다고 한다.
편안함을 한 번이라도 맛본다면
쉬이 모험에 나설 용기를 내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김주원은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갈고닦는 수행 현재진행형 발레리나다.
누구나 최고가 되고 싶어 하지만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곳에서
그녀의 이름이 긴 시간 오르내리는 건
그녀의 이런 노력 덕분일 것이다.
나이가 들고 주변 환경이 바뀌는 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현명하게 발레리나 김주원으로 살기 위해
여전히 다양한 움직임에 도전하고
아이들의 예술 교육에도 관여하고 있다.

말과 글로 쓰고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 삶을 앞선 문장들처럼 살아내는 건
보통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뇌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늘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사람.
김주원은 그런 사람이다.
그녀의 단단함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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