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의 현 네오픽션 ON시리즈 31
강민영 지음 / 네오픽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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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시골 할머니 집 근처에 있는 냇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진 적이 있다.
상류의 물이 하류로 흘러가기 전
작은 둑이 있었는데
둑 사이사이는 몇 개의 홈이 패어있었고
그 부분을 지나는 물은 유독 속도가 빨랐다.
왜 거기 섰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홈에 발을 넣었고
순식간에 물살에 휩쓸려 풍덩,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아, 이대로 죽는 건가?
어린 마음에도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섭지는 않았다.
그저 죽음을 떠올렸다.
평온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고 위를 보니
한낮의 햇빛이 물속에서 투명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오묘한 빛깔을 보고 잠시 넋을 잃었다.
어쩌면 평생 이 장면을 바라봐도 좋겠다던 마음이 아직 또렷하게 남아있다.

나는 물을 좋아했다.
그 사건을 겪었어도 여전히 물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인어에 환장한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인어의 존재를 믿고 살아왔다.
이 책에 내게 닿은 것은 운명일까?

지구는 인간의 욕심과 오만으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
바다는 검게 변했고 각종 쓰레기들로 엉망이 된지 오래다.
푸른 하늘은 이제 옛 추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자원 부족을 겪고 있는 인간들은 바닷속 자원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고
유진은 심해에서 육지의 자원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엘드시티 프로젝트의 연구원이다.
지난 탐사 때 전 세계적으로 희귀해진 아귀가 무차별하게 포획되고
난도질당하는 모습에 크게 충격을 받은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과학자다.

네하는 심해에서 삶아가는 인간과 아주 닮은 발라비 종족 생명체다.
발라비들은 해파리와 같은 반투명한 은은한 색의 피부를 가지고
손목과 팔목 그리고 종아리 뒤와 등을 가로질러 긴 지느러미가 붙어 있다.
네하는 호기심이 많아 해류에 떠밀려온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친구 키라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빛이 일렁이는 경계해역까지 몰래 나가기를 좋아한다.

어느 날 잠수정에서 떨어진 측정기를 네하가 가지게 되고
우연한 기회로 측정기의 데이터가 육지의 유진에게 닿는다.
데이터 속 흐릿하게 찍힌 네하의 모습을 보고
유진은 탐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둘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엔딩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인간들로 인해 황폐화되어버린 지구,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 아래 다른 생명들에게 자행되는 무자비한 살육과 폭력들.
책을 읽으며 지구에게, 다른 생명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마무리 작가의 말 문장들이 무겁게 남았다.
나와 다르지만 아름다운, 사랑하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한다.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을 오늘도 기억한다.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있기를,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망가져 있지는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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