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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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다.
대체 이 사건 뒤에 감추어진 진실은 무엇일까?
호기심을 억누를 길이 없어
틈만 나면 책장을 뒤적였다.
아, 그래서 그다음은요?
서평단 책은 정식 발간본의 반이 조금 넘는 글이 담겨 있어서 아직 마무리를 모른다.
당장 책 사야지!

작가의 이력부터 흥미롭다.
저자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청소년 시절 대부분을 캐나다에서 보냈다.
그러던 2015년의 어느 날, 주인공 정약용이 천주교와 연관이 깊었던 서양 학문에 매료되며 펼쳐지는 이야기인 한무숙 작가가 쓴 '만남'을 우연히 읽고 세상이 바뀐다.
한국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고
그렇게 탄생한 소설이 이 책이다.

원문을 보지 않아 잘은 모르겠으나
작가님의 필력도 좋고 번역가님의 실력도 좋은 것 같다.
읽으면서 이 책이 정말 영어로 쓰인 소설이 맞는지를 몇 번이나 의심하며 읽게 되었으니까.

왼쪽 뺨에 지져진 인두 자국 상처를 가진 다모 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어느 날 양반집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당시만 해도 남성이 직접 여성의 몸에 닿을 수 없다는 유교 사상에 의해 설은 그 여성의 시신을 관찰하고 거두는 역할을 수행하며 이 사건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다양한 인물들이 교차하고 의외의 사실들이 드러나며 진범에게도 한 발자국씩 다가가는 이야기다.

미천한 신분임에도 자꾸만 주머니 속 송곳처럼 호기심이 튀어나오는 설의 활약을 지켜보는 재미를 당신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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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퇴근길
ICBOOKS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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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이상하다.
야근과 회식으로 매일 귀가가 늦었던 사람이 요즘 칼퇴를 한다.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한다.
거기다 이제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해준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상하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구두에 흙먼지가 가득할 때도 있고
얼굴에 침 자국이 남아 있는 날도 있다.
심지어 낮 시간 극장 영화표까지 옷에서 나왔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여기 우리의 고 대리가 있다.
그는 얼마 전 회사에서 잘렸다.
아니, 정확히는 희망퇴직을 했다.
그거나 그거나...

아무튼 오늘도 그는 정장에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선다.
왜?
아내에게 말을 못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말을 하긴 해야겠지만 너무 미안해서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
퇴근시간까지 하루가 너무 길다.
그래서 낯선 곳에 가보기도 하고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해본다.
하지만 차곡차곡 아내에 대한 미안함은 자꾸 쌓인다.
그 미안함들이 400여 페이지에 육박하는 책 속에 한가득이다.

얼마 전 제 발로 회사를 걸어 나오고서 나도 방황했었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나라는 존재가 낯설었다.
시간은 차고 넘쳤지만 제대로 활용은 하지 못하고 변두리를 서성이기만 했다.
그러면서 '직장인'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했을 때는 깨닫지 못했던 이상한 부분들에 눈길이 갔다.
나도 북한에서 미사일을 쐈다는데도 출근을 걱정하는 K 직장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내가 했던 생각들이 고 대리의 글 속에도 많이 녹아 있어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며 읽어나갔다.

고 대리, 내가 그 마음 다 알아, 토닥토닥.

그래서 결국 고 대리는 아내에게 퇴직 사실을 고백하게 될까? 가
이 이야기의 큰 숙제이기도 한데
결과에 대해서는 책을 볼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
여기에 발설하진 않겠다.

이리 와서 수상한 고 대리의 퇴근길을 함께 걸어볼래요?
이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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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한권] 춤추는 초록 공룡을 본 적 있나요? - 나로 살아가게 해준 너를 위해
김수하 지음 / 잇스토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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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비명 한 번 지를 틈도 없이
운명의 손아귀에 붙잡혀
산 채로 불구덩이로 던져진 그날.

얼굴의 살가죽에 누군가 쉬지 않고 사포질을 해댔다.
거기다가 고춧가루를 끓는 물에 풀어
쉬지 않고 들이붓는 듯한 작열하는 고통이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켰다.

강우는 대학교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심각한 화상을 입게 된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던 날들.
그를 이 세상에 붙잡아둔 건 그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가끔, 그 틈으로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 아들.
마치 이 한 단어만이 당신이 오로지 알고 있는 말인 것처럼
처절하게 외치는 소리.
그 두 글자가 달팽이관을 지나 몸속 깊은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나의 몸에 새겨진 절망의 흔적 사이사이를 곱게 씻겨주는 맑은 시냇물처럼.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무료한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사람들이 마스코트 인형을 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사고 이후 처음으로 가슴이 뛰는 걸 느낀다.
흉측해진 몰골을 인형탈 속에 감추고
강우는 그렇게 거리로 나와 춤을 추게 된다.

그러나 크나큰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어둠 속에서 가장 밝게 타오르는 별이 됐고,
나는 암흑 속에 잠겨 울컥울컥 죽어가는 중이라는 점이었다.

반짝이는 그들을 보면 나의 어둠이 더 짙어질 것만 같았다.

미래가 기대된다는 건 현재가 빛나고 있다는 아주 분명한, 증거였다.

어느 날 거리에서 춤추는 공룡 탈을 쓴 강우를 보고
호기심을 가지게 된 카페 직원 연.
서로 포개지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의 삶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교차하게 되고
둘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간다.

각자의 상처와 아픔이 드러나고
삐걱거리는 순간들을 겪으며
사람이 사람에게 진심을 다해 응원을 전하고
또 곁에 있어준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담은 이야기.

영상화를 애초에 상정하고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게 독특했다.
세상에 상처받고 한껏 움츠러들었던 내 모습이 겹쳐서
마음이 동기화된 상태에서 읽어 그런지 술술 잘 읽혔다.
나중에 영상화가 된다면 어떤 장면들이 나타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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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줄리애나 배곳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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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사방에서 포털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포털]의 첫 시작부다.
이 한 문장을 읽고 이 이야기에 궁금증을 품지 않을 사람은 없지 않을까?
나는 속수무책으로 이 작가에게 빠지고 말았다.

'영상화에 최적화된 단편'을 쓰는 사람으로 소개된 저자는
설명글이 무안하지 않게
단 몇 글자만으로도 그가 만들어 낸 새로운 세상 속으로
우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놓아주지 않는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라는
내 마음을 몽땅 사로잡아버린 이 문장도 이 [포털] 속에 있다.
잠시 무언가에 홀려 우주 너머 어딘가의 저세상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포털]도 [포털]인데 나는 [역노화]가 정말 도른놈이었다.

주인공 나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의 임종을 맞으러 의료 기간을 찾았다.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소생술을 포기하되 2번을 선택했다고 한다.
선택 2번이 무엇이냐?
유전자 역전이다.
하루에 10년씩 역노화가 진행되고 갓난 아기 상태로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함께 보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던 아버지와 일주일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착잡해지지만
막대한 취소 비용을 낼 수 없어 결국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어쩔 수 없이 내 상황에 대입하여
주인공 나에게 감정이 고스란히 전이되어 책을 읽었다.
나름대로 그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오랜 결핍들을 상상하고
내가 다치지 않게 위해, 내가 살기 위해
억지로 노력했던 시간들이 비슷하게 거기 있었다.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이 오면
결국엔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아니, 더 이상의 시간이 없으니
그저 모든 걸 덮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얇디얇은 몇 장의 종이들이
나를 심하게 뒤흔들었다.
정식 출간되면 꼭 모든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다.
아플 줄 알면서도
휘청일 걸 알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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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2084 - 개정판 라임 틴틴 스쿨 1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박종대 옮김 / 라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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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게 미안하지 않을 삶」
지금 내 프로필 소개란에 있는 문장이다.

살아오는 내내 생각했다.
지구야, 미안해.
정말 너무 미안해.

언제 어떤 계기로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이토록 긴 시간 동안 맴돌게 되었을까?

내가 어릴 때는 지금처럼 지구온난화나 기후 위기라는 단어가 많이 거론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미 그 시점에서도 나는 늘 지구에게 부채감을 느꼈다.
너무 많을 것을 소비하고 너무 많은 쓰레기를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흐를수록 감정은 더 커져가고 무게도 늘었다.
앞으로도 점점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 같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참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건 알지만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한 인간의 힘은 너무 미약하고
세상은 내가 차마 손쓸 수 없는 사이에
엄청난 기세로 소모되고 있으니까.
미래의 이름도 얼굴도 모를 후손들의
왜 지켜내지 못했냐고
왜 막아내지 못했냐고
원망 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환경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비관주의가 깊어진다.
그냥 다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어진다.
하지만 눈 감고 귀 막고 입을 닫아도 마음이 여전히 그곳에 맴돈다.
절대 모른 척할 수가 없다.
당장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구니까.

우리 개개인이 환경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행동하며
더불어 부디 국가와 기업이 처절하게 고민하고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기후 위기 속도를 늦추는데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나는 정말 지구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한 삶을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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