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이상하다.야근과 회식으로 매일 귀가가 늦었던 사람이 요즘 칼퇴를 한다.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한다.거기다 이제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해준다고 하는 게 아닌가?이상하다.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구두에 흙먼지가 가득할 때도 있고얼굴에 침 자국이 남아 있는 날도 있다.심지어 낮 시간 극장 영화표까지 옷에서 나왔다.이상하다.정말 이상하다.여기 우리의 고 대리가 있다.그는 얼마 전 회사에서 잘렸다.아니, 정확히는 희망퇴직을 했다.그거나 그거나...아무튼 오늘도 그는 정장에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선다.왜?아내에게 말을 못 했기 때문이다.언젠가 말을 하긴 해야겠지만 너무 미안해서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퇴근시간까지 하루가 너무 길다.그래서 낯선 곳에 가보기도 하고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해본다.하지만 차곡차곡 아내에 대한 미안함은 자꾸 쌓인다.그 미안함들이 400여 페이지에 육박하는 책 속에 한가득이다.얼마 전 제 발로 회사를 걸어 나오고서 나도 방황했었다.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나라는 존재가 낯설었다.시간은 차고 넘쳤지만 제대로 활용은 하지 못하고 변두리를 서성이기만 했다.그러면서 '직장인'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했을 때는 깨닫지 못했던 이상한 부분들에 눈길이 갔다.나도 북한에서 미사일을 쐈다는데도 출근을 걱정하는 K 직장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내가 했던 생각들이 고 대리의 글 속에도 많이 녹아 있어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며 읽어나갔다.고 대리, 내가 그 마음 다 알아, 토닥토닥.그래서 결국 고 대리는 아내에게 퇴직 사실을 고백하게 될까? 가이 이야기의 큰 숙제이기도 한데결과에 대해서는 책을 볼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여기에 발설하진 않겠다.이리 와서 수상한 고 대리의 퇴근길을 함께 걸어볼래요?이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