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비명 한 번 지를 틈도 없이운명의 손아귀에 붙잡혀산 채로 불구덩이로 던져진 그날.얼굴의 살가죽에 누군가 쉬지 않고 사포질을 해댔다.거기다가 고춧가루를 끓는 물에 풀어쉬지 않고 들이붓는 듯한 작열하는 고통이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켰다.강우는 대학교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불의의 사고로 심각한 화상을 입게 된다.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던 날들.그를 이 세상에 붙잡아둔 건 그의 어머니였다.그리고 가끔, 그 틈으로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다.아들, 아들.마치 이 한 단어만이 당신이 오로지 알고 있는 말인 것처럼처절하게 외치는 소리.그 두 글자가 달팽이관을 지나 몸속 깊은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나의 몸에 새겨진 절망의 흔적 사이사이를 곱게 씻겨주는 맑은 시냇물처럼.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무료한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사람들이 마스코트 인형을 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사고 이후 처음으로 가슴이 뛰는 걸 느낀다.흉측해진 몰골을 인형탈 속에 감추고강우는 그렇게 거리로 나와 춤을 추게 된다. 그러나 크나큰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어둠 속에서 가장 밝게 타오르는 별이 됐고,나는 암흑 속에 잠겨 울컥울컥 죽어가는 중이라는 점이었다.반짝이는 그들을 보면 나의 어둠이 더 짙어질 것만 같았다.미래가 기대된다는 건 현재가 빛나고 있다는 아주 분명한, 증거였다.어느 날 거리에서 춤추는 공룡 탈을 쓴 강우를 보고호기심을 가지게 된 카페 직원 연.서로 포개지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의 삶이어떤 사건을 계기로 교차하게 되고둘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간다.각자의 상처와 아픔이 드러나고삐걱거리는 순간들을 겪으며사람이 사람에게 진심을 다해 응원을 전하고또 곁에 있어준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담은 이야기.영상화를 애초에 상정하고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게 독특했다.세상에 상처받고 한껏 움츠러들었던 내 모습이 겹쳐서마음이 동기화된 상태에서 읽어 그런지 술술 잘 읽혔다.나중에 영상화가 된다면 어떤 장면들이 나타날지 기대된다.
「어느 여름, 사방에서 포털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포털]의 첫 시작부다.이 한 문장을 읽고 이 이야기에 궁금증을 품지 않을 사람은 없지 않을까?나는 속수무책으로 이 작가에게 빠지고 말았다.'영상화에 최적화된 단편'을 쓰는 사람으로 소개된 저자는설명글이 무안하지 않게단 몇 글자만으로도 그가 만들어 낸 새로운 세상 속으로우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놓아주지 않는다.<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라는내 마음을 몽땅 사로잡아버린 이 문장도 이 [포털] 속에 있다.잠시 무언가에 홀려 우주 너머 어딘가의 저세상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포털]도 [포털]인데 나는 [역노화]가 정말 도른놈이었다.주인공 나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의 임종을 맞으러 의료 기간을 찾았다.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소생술을 포기하되 2번을 선택했다고 한다.선택 2번이 무엇이냐?유전자 역전이다.하루에 10년씩 역노화가 진행되고 갓난 아기 상태로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함께 보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던 아버지와 일주일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착잡해지지만막대한 취소 비용을 낼 수 없어 결국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어쩔 수 없이 내 상황에 대입하여주인공 나에게 감정이 고스란히 전이되어 책을 읽었다.나름대로 그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오랜 결핍들을 상상하고내가 다치지 않게 위해, 내가 살기 위해억지로 노력했던 시간들이 비슷하게 거기 있었다.나는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이 오면결국엔 이해할 수 있게 될까?아니, 더 이상의 시간이 없으니그저 모든 걸 덮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얇디얇은 몇 장의 종이들이나를 심하게 뒤흔들었다.정식 출간되면 꼭 모든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다.아플 줄 알면서도휘청일 걸 알면서도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지구에게 미안하지 않을 삶」지금 내 프로필 소개란에 있는 문장이다.살아오는 내내 생각했다.지구야, 미안해.정말 너무 미안해.언제 어떤 계기로 내 안에 자리를 잡고이토록 긴 시간 동안 맴돌게 되었을까?내가 어릴 때는 지금처럼 지구온난화나 기후 위기라는 단어가 많이 거론되지는 않았었다.하지만 이미 그 시점에서도 나는 늘 지구에게 부채감을 느꼈다. 너무 많을 것을 소비하고 너무 많은 쓰레기를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시간이 많이 흐를수록 감정은 더 커져가고 무게도 늘었다.앞으로도 점점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 같다.페이지를 넘기면서 참 마음이 무거워졌다.이대로는 안 된다는 건 알지만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한 인간의 힘은 너무 미약하고세상은 내가 차마 손쓸 수 없는 사이에엄청난 기세로 소모되고 있으니까.미래의 이름도 얼굴도 모를 후손들의왜 지켜내지 못했냐고왜 막아내지 못했냐고원망 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벼락처럼 내리꽂혔다.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나.환경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비관주의가 깊어진다.그냥 다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어진다.하지만 눈 감고 귀 막고 입을 닫아도 마음이 여전히 그곳에 맴돈다.절대 모른 척할 수가 없다.당장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니까.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구니까.우리 개개인이 환경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행동하며더불어 부디 국가와 기업이 처절하게 고민하고 필사적으로 노력해서기후 위기 속도를 늦추는데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지금이 마지막 기회다.나는 정말 지구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한 삶을 살아내고 싶다.
내향적인 성향 탓도 없지는 않겠지만어릴 때부터 힘든 일이 생기면나는 조용히 내 방에 틀어박히곤 했다.똬리를 틀고 있는다고 무언가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은연중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려 했던 것 같다.최근에는 이전 직장에서 지속된 악질 상사 괴롭힘으로마음이 산산이 부서져 퇴사 후 꽤 오랜 시간을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나라는 존재가 너무 심하게 고갈되어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그저 숨만 쉬고 있었던 것 같다.그리고 내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오래도록 잠만 잤다.1인 가구인 탓에 몇 날 며칠을 목소리를 내지 않은 날들도 허다했고하루 종일 누군가에게 연락 한 번 오지 않는 날들도 많았다.모두 바쁘게만 사는데나만 상처투성이인 하자품이 되어세상에서 격리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다시 괜찮아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시간만 축내고 있었다.현재 우리나라에 최소 10만여 명에서최대 50~60만 명의 은둔형 외톨이가 존재하다고 한다.이 책은 10년 동안 그런 친구들의 상담을 해온 선생님의 책이다.다양한 당사자들의 사례들이 소개되고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당사자의 가족들의 사례들도 언급된다.저자는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당신을 당신 그대로 인정하고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간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죽고 싶은 건 아니지만10년 후에는 이 세상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아이의 마음을나는 너무도 잘 알아서 가슴이 먹먹했다.멈칫할 수 있다고,방황할 수 있다고,혼자가 아니라고,나도 내 말을 보탠다.
모든 작가님은 저마다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기존의 세계가 어떻게 변했을지,혹은 기존의 세계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을지 기대된다.이번에는 어떤 색이 담겨있을지그 색으로 그린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은 또 어떨지 늘 짜릿하다.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설재인 작가님과의 만남은 작품이 아니었다. 우연한 기회로 참가하게 된 합동 북토크에서인간 설재인으로서 이야기를 먼저 들어볼 수 있었는데나는 그만 그녀의 매력에 홀딱 빠져들고 말았다.수학을 전공했으나 지금은 소설을 쓰고 있고예비 생활체육지도자로서 복싱으로 몸도 다부지게 단련하고 있는이과와 문과 대통합과 더불어 문무를 두루 겸비한 육각형 휴먼인데다가유머도 넘친다.아, 진짜 사기캐 아님?순수 문학 너는 무엇이기에, 하는 마음으로 대학원도 다닌다고 들었다.진짜 이 사람 뭐지?만화 캐릭터 아님?아, 추임새가 길었다.그런 작가님의 신작이 나왔다.<레드불 스파>.전직 아이돌이었다가 작은 사건에 휘말려 은퇴 당한 후죽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살지만 활동 당시 개인 팬을 자처했던 승유의 도움으로현재는 소소하게 복싱 선수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현지현.태국에서 무에타이 선수로 활약하다지금은 관광객용 쇼 무대에 오르고 있는 두 딸아이의 엄마, 39세 쌈루타.두 사람의 경기가 시작되어야 하는데갑자기 좀비가 창궐했다.당연히 경기는 중단되겠지 싶었으나어쩐 일인지 모든 일은 이 난리 통에서도 진행된다.이 이야기, 대체 어쩌려고 이러지?아, 입이 근질거리지만 당신의 재미를 지켜주기 위해 꾸욱 참겠다.제발 좀 읽어줘라.마냥 가볍게 오락 위주인 것처럼 보이지만읽다 보면 꽤 여러 대목에서 커다란 송곳이 가슴을 꾸욱 꾸욱 찌른다.이런 무서운 작가님 같으니.생각할 거리도 많고 재미도 있고.아 진짜 한 번만 읽어보시라니까는요?작가님은 자신이 대중적이지 않다고 했지만누가 뭐래도 나는 작가님이 오래 글을 써주면 좋겠다.설재인만이 구축할 수 있는 세상이 앞으로도 너무 기대되니까. P.S 책 표지 벗겨내면 경기 포스터가 된다.한끼 선생님들, 절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