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부사 - 일본 우주 강국의 비밀
쓰다 유이치 지음, 서영찬 옮김 / 동아시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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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주 동안 지구로부터 2억 4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소행성 류구에 다녀온 사람입니다.
네?
무슨 소리냐고요?
인간 주제에 그게 무슨 가당키나 한 소리냐고요?
근데 제가 진짜 갔다 왔거든요.
못 믿으시겠다고요?
자, 여기 증거가 있습니다.

이번에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발간된 하야부사,
저자는 하야부사2 팀 운영을 맡았던 츠다 유이치입니다.
하야부사는 일본어로 '매'라는 뜻입니다.

책머리 부분에는 하야부사2의 활동과 참여 팀원들의 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장대한 스토리를 접하기 전에 사진을 본 감상과 후에 사진을 본 감상은 전혀 다릅니다.
네, 긴 여정을 함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하야부사 2 프로젝트도 쉬운 여정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해도 계획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돌발 상황은 터집니다.
한 번 우주로 쏘아올려진 이후에는 지구에서 물리적인 수리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비의 순간마다 내리는 판단으로 인해 프로젝트의 성패가 크게 좌우되는 부담감도 장난이 아닙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여 대책을 강구하고 준비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단한지요.
팀과 팀 사이, 소속 집단과 집단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를 넘어 엄청난 양의 커뮤니케이션이 반복되는데 그 부분도 까마득합니다.
수많은 참여자들은 모두 자신의 일처럼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진심으로 몰두하는데 그 모습에 자꾸 마음이 따끈해지는 경험도 합니다.
하야부사2가 연이은 신기록을 달성할 때마다 온몸에 짜르르르 소름이 돋기도 여러번이었습니다.

10년의 준비 기간, 3년의 탐사 과정.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이 쌓이고 쌓여 하야부사2는 귀중한 자료들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결과도 결과이지만 과정의 아름다움과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지금 하야부사2는 지구에서 2억 7천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을 비행하며 프로젝트 성패에 대한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확장 미션을 위해 우주를 탐험하고 있습니다.

우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과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저자는 가능한 쉬운 말들로 기나긴 여정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다소 딱딱해질 수도 있는 기록이지만 중간중간 저자 나름의 유머가 남겨져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들이 재미있었습니다.
모히칸 군단의 이야기나 감전사 이야기, 타겟 마커 이야기 등이 그랬습니다.

저자는 일본의 우주 과학 기술의 대단함에 대해 전세계에 말하고 싶다는 한편, 어린이들에게 꼭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어린 자신이 우주를 보며 두 눈을 반짝였던 것처럼, 지금의 어른들이 지금의 아이들에게 그런 두근거림을 선사하고 싶다면서요.
그 대목도 참 인상 깊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현재 하야부사2가 보고 있을 우주를 찾아봅니다.
부디 무탈하게 2023년 목표했던 소행성 1998 KY26에 무사히 닿아 또다른 새 소식을 전해주길 기다리겠습니다.

여러분도 멀리 우주 여행 어떠세요?
후회 없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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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슐츠 씨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박상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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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부상이다.
짐의 종류와 양이 상당하기 때문에 큰 가방을 선호한다.
당연히 중량도 엄청나기 때문에 한쪽으로 무게가 치우치면 허리에 무리가 가 억 소리가 절로 나므로 주로 백팩을 이용한다.

그러다 날이 더워지면 나에게 작은 미니 백이 추가된다.
날이 덥다고 짐이 더 늘어나냐고?
아니.
가벼워지는 옷차림이 되면 휴대전화를 넣을 주머니가 마땅치 않고 백팩에 두면 사용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를 주머니나 미니 백에 넣어야 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하나, 혹여나 떨어뜨리면 수리에 상당한 출혈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둘, 평소에는 두 눈이 새빨개 지도록 액정을 들여다보지만 이동할 때는 정말 이동에만 집중해 부딪힘이나 다칠 가능성을 배제시키고 싶다.
셋, 짧게라도 독서 시간을 확보하고 싶으나 시야에 휴대전화가 걸리면 유혹을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에게 미니 백은 외출 필수 아이템이 되는 것이다.

사족이 길었다.
본론은 여기부터다.
주머니가 없어서 참 불편하다고만 생각하고 이날 이때까지 살아왔는데 세상에나!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여성 의복의 주머니는 의도적으로 제외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성별의 구분 없이 커다란 천을 두르는 형태로 옷이 존재하다가 중세에 들어 갑옷을 만들게 되면서 남자를 위해 바지가 생기고 각 성별의 의복이 다른 갈래로 뻗어나갔다고 추정한다.
남자들의 경우, 칼이나 소지품들을 허리 끈에 차던 것이 의복에 주머니를 삽입하여 붙이는 형태로 발전해 지금의 주머니로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성의 경우에는 별도의 주머니에 끈을 달아 길게 늘어뜨려 치마 위 무릎 언저리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형태를 취했다.
이후 이 주머니가 치마 안에서 대롱대롱 늘어뜨리는 형태가 되거나 따로 핸드백을 드는 식으로 변화를 겪었다.
당시 여성의 바지에 주머니가 부착되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은 이유에 옷 핏이 망가진다거나 여성들이 주머니를 원치 않는다거나 하는 말들이 있었다는데 정말 속이 뒤집어지는 이야기다.
여성이 인간으로 인정받고 참정권을 얻기까지의 오랜 역사를 생각해 보면 여성에게 주머니가 제공되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와서 하나하나 따지고 보니 정말 분노가 차오른다.
지금도 여전히 실제 사용은 불가하고 주머니 모양으로만 존재하는 장식도 여성복에는 많고 주머니가 있어도 너무 얕거나 작아서 주머니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분통은 터지지만 이 책은 이토록 흥미로운 소재로 다각도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원래 여성은 마라톤 참전도 불가했었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스누피로 국내에서는 더 유명한 찰스 슐츠의 '피너츠' 작품 속에서 여성 캐릭터인 페퍼민트 패티가 운동을 잘하는 아이로 그려진 이야기, 흑인 캐릭터인 프랭클린 암스트롱이 그려진 이야기의 배경도 들어있다.

아직 정식 출간 전이라 맛보기로 이 정도의 이야기를 먼저 읽었는데 하나같이 너무 흥미로워 정식 출간되면 냉큼 전체를 읽어보고 싶어 출간일이 너무 기다려진다.
자신 있어서 대대적인 홍보용 가제본으로 서평단을 100명이나 꾸렸다더니 진짜였다.
뻔한 말이지만 정말 정말 너무너무 완전 완전 재미있게 읽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널리 가닿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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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소설Y
조은오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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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생각한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고.
다들 조용히 있으면 안 되나?
진짜 중요한 말만 하고 쓸데없는 참견은 좀 넣어두고.
서로 선 좀 지키고.
나는 최근 그 세상을 만났다.
조은오 작가가 쓴 '버블' 속에서 말이다.

책은 중앙 지역에 사는 주인공 '07'의 1인칭 시점으로 쓰여있다.
이 세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버블에서 지급받는 물품으로 알뜰하게 산다.
그녀가 사는 곳은 타인과의 교류가 철저히 제한되어 집을 나설 때도 누군가를 만날 때도 눈을 감아야 하고 일상적인 대화도 나누어선 안 되는 곳이다.
심지어 자신의 보호자와도 예외는 없다.
주인공 '07'은 이 세계가 너무 외로웠다.
사람과는 눈을 마주치고 싶었고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 모든 건 금지된 일이기에 삶이 고통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 주민들의 삶과 직업에 대해 평가하는 평가원으로 살고 있는 '07' 앞에 눈을 뜨고 꼭 필요하지 않는 말로 대화를 시도하는 상대 '126'이 나타난다.
그렇게 주인공은 '중앙'에서 '외곽'으로 터전을 옮기게 되고 이제까지 알고 있던 세상이 크게 변모하는 순간들을 마주하며 성장하게 된다.

서두에 말했다시피 사람과의 관계가 버거울 때가 있다.
두더지가 땅굴을 파고 지하로 숨어버리듯 움츠러들 때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상처를 받고 너덜너덜하더라도 영영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에는 나 아닌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그 무엇으로든.

자라오는 동안 보고 들어 알던 세상이 실제 세상과 달라 아프고 깨진 적이 있을 것이다.
설령 그게 팩트였다고 해도 개개인이 겪어내는 세상은 모두 한 가지 모습은 아닐지 모른다.
상처받은 채로 세상을 등질 수도 있고, 붕대를 칭칭 감고 이전의 실패를 복기하면서도 어떻게든 다음 장으로 걸어나가는 사람도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

아마 대부분의 우리는 수많은 피딱지를 딛고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자신을 믿고, 자신 곁의 사람들을 믿으며, 내일을 눈부시게 맞이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작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버블의 세상에서,
나는 당신을 떠올렸다.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은 세상이지만 부디 당신도 나를 떠올리며 잘 살아주면 좋겠다.
나도 형편없는 나를 끌어안고 어떻게든 살아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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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 - 공감부터 설득까지, 진심을 전하는 표현의 기술
정문정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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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는 책 제목은 누구나 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호기심을 가졌을 것이다.
대체 그 방법이 뭘까?
저 제목을 보고도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았던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무례함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거나 울음이 터질 만큼 상처받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게 된 <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는 앞서 이야기한 책의 저자인 정문정 작가의 신작이다.
책은 250여 페이지 분량이고 작가가 의도한 대로 누구든 쉽게 읽을 수 있게 문장을 만졌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읽힌다.

저자는 작가이자 강연자로 일을 하고 있기에 각각의 분야에서 어떻게 글을 쓰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오래 고민하고 그 끝에 얻은 결론을 우리에게도 공유해 준다.
우선 시작부에서는 글쓰기와 말하기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집어주며 말과 글을 신경 써서 사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한다.

20p
작가로서의 태도와 강연자로서의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요.
글쓰기와 말하기에는 각기 다른 에너지가 사용됩니다.
(중략)
예컨대 글쓰기의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확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에세이 같은 글은 고민에 천착한 과정과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해 보고자 노력한 흔적을 섬세하게 표현할수록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중략)
반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할 때는 주제의식이 명확해야 합니다.

27p
말을 하면서는 더욱 친절한 표현을 찾도록 애쓰고, 글을 쓰면서는 세심한 표현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32p
이런 대화들 앞에서 제일 먼저 체감하는 것은 '반향실 효과 echo chamber effect'예요.
반향실 효과는 소리가 울려 메아리치도록 설계한 방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반향실 안에 있으면 같은 소리를 반복해 듣듯,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 모여 동일한 의견만 나눈다면 설득이나 설명을 위한 새 언어를 개발하지 못하고 매번 비슷한 어휘만 쓰게 된다는 것이죠.
(중략)
저는 '언어 표현의 외주화'에 대해서도 심각한 문제를 느끼고 있습니다.
메신저로 소통할 때 길게 말을 쓰려다가도 귀여운 이모티콘 표정 하나로 대체해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어떤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다가 유행어를 써버리고 말 때도 자주 생깁니다.

69p
다른 사람들에게도 예외 없이 소변 주머니가 달려 있음을 확인하면, 이 두려움이 나에게만 찾아오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고요.
그러면 조금 더 솔직해도 되겠다는 용기가 생겨나고, 용기를 낸 자신과 대면하다 보면 타인을 덜 부러워하게 되며 자기혐오의 밤이 줄어든다고 말이죠.

다음 장에서는 어떻게 글을 쓰고 말을 해야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127p
우리가 자주 하는 말들은 최초에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입 밖으로 튀어나오죠.
그러다 오래 입은 잠옷 같아진 말을 계속해서 쓰다 보면 그 말이 자꾸만 자기 귀에 들림으로써, 말이 드리운 자장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경우가 생긴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142p
엄마의 행동에 단순히 싫은 감정만 드는 게 아니라 마음이 뒤죽박죽 괴로운 상황이네요.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지만 답답하고 죄책감마저 드는 거죠.
좀 더 들여다보면 '엄마는 내가 원치 않았던 걸 주면서 자신의 진심만 강조하고 감사를 강요하기 때문에' 힘든 것으로 느껴져요.

144p
결국 좋은 에세이는 실패담인 동시에 성장담인 것 같아요.

다음 장에서는 불쾌함을 어떻게 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거절도 잘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경상도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으로 작가의 이야기가 매우 공감이 갔고, 특히 자신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에 대해 쓴 부분이 인상 깊었다.

183p
잘 따져보면 결국 거절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부탁의 내용과 자기 자신이 찐득찐득하게 들러붙어 있는 거죠.

202p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행복해질까 봐 무서워하는 사람 같아요.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순간 시샘 많은 귀신의 저주에 걸릴까 봐 겁내는 사람이요.

204p
그런데 저를 가장 오랫동안 괴롭혀온 부분은 분노가 일렁일 때 비아냥거리고 싶은 걸 참는 일이에요.
더 날카로운 표현을 찾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턱이 얼얼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노력합니다.
임이나 당뇨 등 가족력이 있다면 더욱 건강에 신경 쓸 필요가 있듯이, 분노의 말을 다듬는 건 제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약점이라 생각해요.

208-209p
비폭력대화의 언어로 부모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번번이 저는 실패합니다.
딱히 실망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부모님은 바뀌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애초에 부모님을 바꾸는 건 제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도달할 수 있는 목표는 제가 바뀌는 것뿐이에요.
그것만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연애와 결혼까지 십 년을 함께한 남편과 거의 싸워본 적이 없다는 게 증거 중 하나입니다.
부부가 서로 상처 주지 않고 지내는 게 가능함을 삶에서 직접 목격 중이죠.
제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가족에게만은 실패하지 않을 거예요.

225-226p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츠루는 교양의 가장 큰 역할을 '쪼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도 배운 사람, 즉 언어가 있는 사람에겐 쪼갤 수 있는 미세한 차이가 보인다는 거죠.
그는 이를 해상도에 비유했습니다.
높은 해상도로 세상을 볼 수 있으면 차이를 분별해서 더욱 섬세하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마치 48색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더 세밀하고 다채로운 언어를 사용하면 글 역시 풍부해지고 삶의 해상도도 높아집니다.
(중략)
글을 쓸 때는 자신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표현하고 싶은 생각들을 머릿속에 소장 중인 어휘들과 일대일로 짝지어나가는 것이 글의 기본이기 때문이지요.
신문을 인쇄하기 위해 판을 준비하는 조판공처럼 중간에 흔들리지 않고 결론까지 뚝심 있게 밀고 가야 힘이 생깁니다.
적확한 단어를 고르는 데 힘을 써야 하지요.
반면 말하기에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기본입니다.
(중략)
또, 말을 하는 순간에도 타인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권장하고 싶다.
내가 어렸을 때 이 책을 만났다면 수많은 무례함 앞에 죄송하지도 않은 일에 죄송합니다만 연발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일일이 마음이 무너지지도 싶은 상처를 받지도 않을 수 있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너무 모든 감정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조금 떨어져서 제대로 의견을 피력하고 나를 거칠게 대하는 말들에는 불편함을 확실히 표현할 줄도 아는 말과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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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 완벽하지 않아 완전한 삶에 대하여
마리나 반 주일렌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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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이라는 걸 처음 해본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 생각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였다.
어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싶었다.
모두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욕망은 또렷했지만 현실의 나는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일 뿐이었다.
꿈과 이상의 엄청난 괴리 사이에서 늘 고통스러웠다.
이럴 거면 왜 태어났나,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많이 했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꽤 나이를 먹은 지금도 사실 저 욕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래도 아주 조금 현실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내가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깨닫고 몸도 마음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쉽지는 않지만.

이 책의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그만하면 괜찮다'라는 말이 더 이상 푸대접 받지 않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네? 작가님, 뭐라고 하셨어요?
그만하면 괜찮다니요?
작가님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없나요?
왜요?
어째서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머릿속에 거대한 물음표 하나를 품은 채로 책장을 넘겼다.

물론 이 책의 저자도 나와 같은 욕망을 안고 오랜 시간을 고민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세계적인 현자로 손꼽히는 쇼펜하우어, 프루스트, 체호프, 톨스토이, 레비나스 등이 남긴 기록 속에서 평범함에 대한 찬사들을 오랜 기간 수집하며 평범한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완전한 삶인지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물음표는 점점 크기를 줄여나갔고 마지막에 들어서서는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집필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나는 작가가 쓴 에필로그와 프롤로그의 글들이 가깝게 다가왔다.
유명인들의 글도 울림이 있었지만 정말 인간 대 인간으로 눈높이를 맞추고 진심으로 누군가가 내게 이야기를 건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한 편두통으로 고생하던 저자는 진단을 위해 뇌 MRI 사진을 찍었다.
이때 실력 없는 방사선사의 실수로 사진이 잘못 찍히게 되었고 의사에게 뇌의 일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는다.
언짢은 마음도 들었으나 저자는 이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그 진단이 자신의 한계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인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랬구나,의 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이 잘못 찍혔음을 알게 되어 이 일은 반쪽짜리 뇌 사건으로 일단락되었지만 말이다.

모두 내려놓기에는 아직 더 시간과 수행이 필요하겠지만 이번 독서로 인해 등 뒤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조금 걸어가는 이 길이 편해질 것 같다.

324p
가장 끔찍한 일은 '그렇게 될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 나'를 원망하는 일이다.

337~338p
나는 완벽함에 대한 열망에서도,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에서도 결코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열린 시선으로 나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젊은 시절의 나를, 모든 일에 타협이란 없었던 나를 그렇게 혹독하게 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339p
나는 '그만하면 괜찮다'라는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보다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결코 책을 빨리 읽지 못할 것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지금껏 내가 왜 그토록 고통을 겪었는지를 이해하면서 편협함과 관대함을 가르는 모호한 경계를 성찰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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