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 완벽하지 않아 완전한 삶에 대하여
마리나 반 주일렌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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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이라는 걸 처음 해본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 생각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였다.
어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싶었다.
모두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욕망은 또렷했지만 현실의 나는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일 뿐이었다.
꿈과 이상의 엄청난 괴리 사이에서 늘 고통스러웠다.
이럴 거면 왜 태어났나,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많이 했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꽤 나이를 먹은 지금도 사실 저 욕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래도 아주 조금 현실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내가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깨닫고 몸도 마음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쉽지는 않지만.

이 책의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그만하면 괜찮다'라는 말이 더 이상 푸대접 받지 않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네? 작가님, 뭐라고 하셨어요?
그만하면 괜찮다니요?
작가님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없나요?
왜요?
어째서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머릿속에 거대한 물음표 하나를 품은 채로 책장을 넘겼다.

물론 이 책의 저자도 나와 같은 욕망을 안고 오랜 시간을 고민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세계적인 현자로 손꼽히는 쇼펜하우어, 프루스트, 체호프, 톨스토이, 레비나스 등이 남긴 기록 속에서 평범함에 대한 찬사들을 오랜 기간 수집하며 평범한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완전한 삶인지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물음표는 점점 크기를 줄여나갔고 마지막에 들어서서는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집필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나는 작가가 쓴 에필로그와 프롤로그의 글들이 가깝게 다가왔다.
유명인들의 글도 울림이 있었지만 정말 인간 대 인간으로 눈높이를 맞추고 진심으로 누군가가 내게 이야기를 건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한 편두통으로 고생하던 저자는 진단을 위해 뇌 MRI 사진을 찍었다.
이때 실력 없는 방사선사의 실수로 사진이 잘못 찍히게 되었고 의사에게 뇌의 일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는다.
언짢은 마음도 들었으나 저자는 이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그 진단이 자신의 한계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인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랬구나,의 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이 잘못 찍혔음을 알게 되어 이 일은 반쪽짜리 뇌 사건으로 일단락되었지만 말이다.

모두 내려놓기에는 아직 더 시간과 수행이 필요하겠지만 이번 독서로 인해 등 뒤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조금 걸어가는 이 길이 편해질 것 같다.

324p
가장 끔찍한 일은 '그렇게 될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 나'를 원망하는 일이다.

337~338p
나는 완벽함에 대한 열망에서도,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에서도 결코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열린 시선으로 나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젊은 시절의 나를, 모든 일에 타협이란 없었던 나를 그렇게 혹독하게 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339p
나는 '그만하면 괜찮다'라는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보다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결코 책을 빨리 읽지 못할 것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지금껏 내가 왜 그토록 고통을 겪었는지를 이해하면서 편협함과 관대함을 가르는 모호한 경계를 성찰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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