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상처가 아니다 - 나를 치유하고 우리를 회복시키는 관계의 심리학
웃따(나예랑)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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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나에 대해 설명할 때 꼭 쓰는 표현이 있다.

"나는 보통 사람들과 마음의 경도(단단함)가 달라."

내 말에 대한 반응은 대개 3가지 정도로 나뉜다.

무슨 괴변이냐며 코웃음을 치는 사람.

이해는 잘 안되지만 이해해 보려 노력하는 사람.

드물지만 내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

당연히 처음 부류의 사람과는 더 이상 깊은 관계로는 발전이 어렵다고 생각되어 몰래 마음의 문을 닫는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조심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며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이 온전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을까?

전 세계 인구를 다 만나고 겪어본 건 아니기 때문에 알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절대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확하게 안다.

이제 곧 마흔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내가 너무 어렵고 버겁다.

나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니 인간관계에서도 매번 서툴고 부서지고 깨졌다.

모든 게 내가 부족하고 못난 탓인 것만 같아 상처를 입을 때마다 나 자신에게 가장 독한 말을 내뱉고 누구보다 상처를 주며 살아왔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당시 내 안의 감독관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거대하기만 했다.

그렇게 서서히 내가 나를 망쳤고, 나와 주변 사람들과의 사이도 망가뜨리면서 살았다.

그즈음 심리학 관련 책들을 많이 찾아보고 자동 모드처럼 움직이는 내 안의 부정 회로를 멈춰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지만 너무도 괴로웠던 10대, 20대의 나에게서는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 책 <감정은 상처가 아니다>를 읽으면서 자동 모드 부정 회로의 느슨해지고 자주 말썽을 부리는 정지 버튼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새 마음으로 꾸욱 눌러보는 계기가 되었다.

총 5부 구성이고 각 부에는 3~5개의 작은 이야기들이 구체적 사례와 함께 담겨 있다.

저자는 각각의 사례에 대한 우리 생각의 악순환을 하나하나 쉽고 간결한 말들로 다정하게 반박하고 각 이야기의 끝부분에 요약문 형태로 심리 처방전을 내려준다.

한 번씩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힘들 때 이 이야기들을 찾아보고 처방전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1부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감정의 경계선과 5부 나 자신과의 건강한 관계 다시 맺기 부분이 많이 와닿았다.

날씨가 시시각각 변하듯, 우리 인생도 맑은 날 흐린 날이 쉴 새 없이 교차되며 펼쳐진다.

누구나 가슴속에 상처 하나쯤은 품고 산다.

아프다고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울기만 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고, 실컷 울고 난 다음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 새로운 날들을 기꺼이 맞이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모든 건 당신 손에 달려 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우리는 언제든 나아질 수 있다.

내가 온전히 내 편이기만 하다면.

부족하고 아픈 나를 끝까지 잘 다독이며 인생이란 레이스를 완주하고 싶다.

나처럼 마음의 경도가 약한 사람들도 여차저차 이렇게 저렇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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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살인 - 폭주하는 더위는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가
제프 구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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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30도를 가뿐히 넘는 불타는 낮이 이어지고 있다.

시기로 보면 아직은 초여름, 본격적인 한여름은 오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공포스럽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몸 안에 쌓인 뜨거운 공기를 후우후우 입으로 내뱉고 있다.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지금, 따가운 햇볕에 억지로 노출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밥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더위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몸을 움직이고 있을 이름 모를 사람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다.

잔인한 폭염 앞에서 인간은 그저 무력할 뿐이다.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2023년은 인간이 산업적 규모로 화석연료를 태우기 전인 19세기 말(지구온난화 측정의 기준시점)에 비해 1.48도 더 더웠다(10p).

약 1.5도.

예를 들면 25도와 26.5도.

이 정도 기온차라고 생각하면 별다를 게 없게 느껴지지만 그 기온차로 인해 인류에게 다가오는 결과물의 형태를 보면 절대 우습지 않는 수치다.

1년에 전 세계에서 극단적인 더위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가 무려 48만 9천 명이고 2070년에 극단적인 더위 속에서 살아갈 확률이 높은 사람의 수는 2억 명으로 추산된다.

더위와 가뭄으로 인해 지난 20년 새에 줄어든 전 세계의 농업 생산량은 21%에 육박하고 2019년 이래 극심한 식량 불안정에 처하게 될 사람의 수도 2억 1천만 명으로 예상된다.(8~9p)

고작 더위가 아닌 것이다.

더위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인류는 지구에게 몹쓸 짓을 너무 많이 해왔다.

끊임없이 화석연료를 태우고 자연을 훼손시켰다.

지구의 자정 능력은 이미 한계를 초과한 지 오래고 당장의 화석연료 사용량을 전 세계적으로 조절해야 함에도 모두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보고 차일피일 적극적 노력을 미룬다.

그 사이 바닷속에서는 물고기들이 높아진 수온에 익어죽거나 질병에 취약해지고, 지상의 동, 식물들은 수십 킬로미터의 단위로 발 빠르게 시원한 고지대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

바짝 말라버린 대지에는 거대한 산불이나 화재가 발생하거나 집중호우, 허리케인 등의 자연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와중에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악화일로를 걷는 기후 변화가 너무도 큰 공포로 다가온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에게 더위는 점점 더 무서운 살인 병기가 될 것이고 우리는 절대 그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개인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서로 폭탄 돌리기는 그만두고 국가적, 시스템적 차원의 제도 개선이 시급히 이루어지면 좋겠다.

정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나는 지구를 잃고 싶지 않다.

우리의 미래도 잃고 싶지 않다.

제발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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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한 내일 트리플 24
정은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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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 이방인으로 살았던 경험이 있다.

다행히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한국과 완전히 다른 인종 속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치게 외로웠던 날들이 있었다.

모국어였다면 마음의 8,90%는 표현했을 말이, 외국어로는 좀처럼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주변만 맴도는 느낌이었다.

내가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 해도 그들은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모두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속내를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그래, 그랬던 적이 있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독일에 머물고 있다.

타향살이만 해도 서러움은 최고치인데 팬데믹까지 겹쳐버린 상황이다.

일상생활에 수많은 제약이 생기고 외출 한 번 하는 것도 어려웠던 그때.

날이 덥거나 춥거나 상관없이 모두 하얗고 두꺼운 마스크로 호흡기를 꽁꽁 동여매야 했던 그때.

전염병의 발원지가 아시아라는 이유로, 그 나라의 인종이 아닌 타 인종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입지는 점점 좁아져만 간다.


글을 읽어나가면서 등장인물들의 막막함이 고스란히 전해져와 숨이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태어나 고른 이름은 아니지만 내게 주어진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름이 잘못 불릴 때마다 세상이 아주 미묘하게 뒤틀리고 붕괴되는 기분을 나도 안다.

알아서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내일이 올 것이다.

매번 좋은 날만 늘어서 있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분명 오늘보다는 나은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불쑥불쑥 불안으로 날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잠자리에 들 것이다.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나에게도.

내일이 올 것이다.

안녕한 내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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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상처 - 오늘도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선생님들을 위한 위로와 치유의 심리학, 최신 개정판
김현수 지음 / 미류책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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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학교와는 접점이 없는 생활을 한 지 오래라 최근의 교육 현실이 어떤지에 대해 무지했고 무관심했다.

나는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구세대와 신세대의 중간에 끼여있다고 생각한다.

구세대를 통해 배운(혹은 세뇌된) 가치관과 변해버린 세상을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깨우친 자유와 풍토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느낀다.

부모님의 말은 낡고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면서도, 어린 친구들의 말은 너무 도전적이고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 꼴이다.

그래서 내 안에서는 아파도 학교는 가야 하는 곳이며, 선생님 말씀은 부모님 말씀만큼이나 거역할 수 없는 강력한 권력이었다.

그런 나에게 서이초 사건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상은 늘 정신없이 변해가지만 이렇게까지 변해버렸다고?

저자 김현수는 정신건강의 이면서 '성장학교 별(대안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자 사단법인 '별의 친구들' 대표라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얼굴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곳에 아이들이 있다.

10여 년 전에 동일한 제목으로 나왔던 책에 현재의 교육 현실을 반영하고 내용을 일부 수정, 보완하여 이번에 개정판으로 탄생했다.

책 전체에 선생님과 아이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하는 작가의 마음이 녹아 있어 진정성이 느껴졌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맞벌이나 오래 일을 해야 하는 가정들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홀로 방치되는 시간이 늘었다.

대가족은 이제 멸종했다고 봐도 무방하고 일하러 나간 부모를 제외하면 아이들을 케어해줄 수 있는 다른 가족들이 없다.

학교라는 사회를 경험하기 전에 가정에서 충분한 교육과 정서 발달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사전 준비에 공백이 발생한다.

시간이 흐른다고 이 공백은 메워지지 않고 부모는 여전히 바쁘고 아이들도 계속 혼자다.

서로 정서적 교감을 하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모와 아이의 스트레스가 교사에게 옮겨온다.

교사 혼자 보듬어야 하는 학생 수는 여전히 너무 많고 수업과 아이 지도만으로 버거운 업무에 각종 행정 업무와 학교 내 인간관계도 엮여 들어온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부모나 아이들의 민원까지 처리해야 하니 아무 곳에도 기댈 수가 없다.

교사 내부에서의 유대와 연대가 필요하지만 이미 너무 지쳐버려서, 희망을 잃어서,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교사는 고립되고 상처받고 서서히 말라간다.

직접 선생님과 아이들과 대면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여다보자니 모두 너무 고립되어 있어 속이 상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도 사람인데, 그 사실을 아예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음을 깨닫는다.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학교 선생님은 인격적으로도 더 안정되어 완성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학원 선생님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슈퍼맨도 아니고 수업도, 아이 지도도, 상담도, 학교 업무도, 인성도 완벽한 사람이 있을 수 있나?

사람들의 이런 무의식도 교사들에게는 상처가 된다고 한다.

나와 직종이 다른 직업인으로 바라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공감이 갔다.

고충은 많겠지만 교사들이 아이들을 이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단순 수업 내용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이나 가치관 등에 대한 교육은 초등학교 입학 후 12년 동안 부모보다 교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부분이 절대적으로 많다.

교사의 손에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있다.

부담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그 미래를 위해 교사도, 아이도 행복하게 다닐 수 있는 학교 만들기가 꼭 필요하다는 게 요점이다.

사회적으로도 학교 일은 학교에서, 교사가 알아서,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교사와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힘써야 한다.

더 이상 무관심하지 않게, 더 이상 무지하지 않게 제대로 들여다보고 힘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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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숨결 가까이 - 무너진 삶을 일으키는 자연의 방식에 관하여
리처드 메이비 지음, 신소희 옮김 / 사계절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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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강을 찾았다.
탁 트인 풍광을 찾기 위해 산책로를 한참 걸었다.
인적이 드문 강가 근처 자리에 작은 돗자리를 펴고 드러누웠다.

언젠가 비 오던 날 길가로 나왔다가 미쳐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짓이겨 말라버린 지렁이가 보였다.
아님 누군가에게 밟혔던 걸까?
이름을 알 수 없는 아주 작디작은 벌레들도 보았다.
까맣고 통통한 개미들도 여럿 있었다.
개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돗자리 가장자리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돗자리에 올라타지도 못하고 돗자리 아래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가느다란 팔, 다리와 더듬이를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이동을 하진 못했다.

아!
내가 너희들의 길을 막고 있구나.
아이고, 이런...
미안해서 어쩐다...
하지만 나도 진짜 큰마음 먹고 나온 거라 우리 서로 양보 좀 하자, 어때?
최대한 생명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나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후후 바람도 불어보고 장애물을 이용해 진로를 변경해 주기도 했다.

건물에 잘려 조각난 하늘이 아닌 진짜 하늘 다운 하늘은 얼마 만인가?
끝장나는 노을을 기대했지만 지면 가까이로 구름이 두텁게 깔려있어 볼 수가 없었다.
대신 하늘을 나는 새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대형을 이루다가 흩어졌다가 금세 멋진 문양을 하늘에 새기는 날개 달린 친구들.
마침 읽고 있는 책<야생의 숨결 가까이>에서도 다양한 동물과 자연의 이야기가 담뿍 담겨있던 덕분에 오늘의 외출은 모든 장면이 새롭게 다가왔다.

<1장 둥지를 떠나 날아오르다>에서 작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다.
하여 페이지를 넘기면서 작가의 마음 상태에 동화되고 몰입하기 쉬웠다.

작가는 오래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늘 자연을 바라보고 즐거움을 찾던 그였지만 우울증으로 인해 그 모든 것에서 시선을 거둔지 오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대를 거쳐 머물렀던 집을 처분하기까지 해야 했다.

15p
내 발목을 잡아둔 것은 과거, 아니 과거의 결핍이었다.
나는 습관과 기억에 갇혀 너무 오래 한자리에 묶여 있었다.
내가 뿌리를 내렸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었다.
그러다 결국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쓸 수 없어졌다.

22p
우리가 이 집에서 산 시간을 합치면 110년이나 되는데, 텅 비어 휑뎅그렁한 식당에 의지 하나만 놓고 앉아 있노라니 고아가 된 듯했다.
아니, 눈이나 귀를 잃은 기분이었다.
그 장소의 추억은 집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집 안의 세간들, 일상의 살림살이에 깃들어 있으니까.
두 세대에 걸친 손가락 자국으로 군데군데 움푹 팩 찬장.
어머니가 앉아 네 아이 모두에게 젖을 먹였던 낡고 나지막한 고리버들 의자.
50년 동안 거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부엉이 모양 저금통을 재활용해 만든 문버팀쇠("PAT.SEPT 21&28 1880"이라는 명문이 새겨져있다).
문을 열 때마다 "부엉이 조심해"라고 외치듯 문버팀쇠 소리가 집 안 곳곳에 울려 퍼지곤 했다.
사물은 일종의 외적 기억, 사건과 감정의 구현이 된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부양하기 위해 어떻게든 글을 쓰고 살아내야만 했던 날들.
가끔은 과감하게 오래 머물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어야 하는 순간들이 인생에는 찾아온다.
작가에게는 노년의 그 지점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모두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자연의 환희가 서서히 작가의 눈을 다시 뜨이게 만들어주었다.

28p
나는 평생 숲속에서 살아왔다.
봄의 눈부시고 힘찬 폭발, 여름의 짙푸르고 기나긴 황홀, 가을의 호화로운 쇠락, 겨울의 순수하고 헐벗은 나날 - 작업과 절제의 계절.
숲에서의 1년은 메트로놈 움직임처럼 규칙적이다.
숲이라는 공간뿐만 아니라 그곳의 나무결과 갈라진 줄기, 느리게 순환하는 빛과 그늘로 겹겹이 에워싸인 역사의 층에 내가 언제까지나 빠져들 줄만 알았다.
숲에는 수 세대에 걸친 인간의 삶을 넘어 문명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운이 서려 있다.
숲, 즉 원시림은 개인에게나 인류 전체에 있어서나 '자라며 떠나온' 곳이라고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숲에 들어서면 항상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숲은 오래된 기억과 회복력을 지난 장소다.

외국 작가임에도 문장이 수려하고 아름다워서 한국 작가의 글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작가 본인의 능력도 있을 테고 번역가님의 센스도 한몫했다고 생각된다.
물론 낯선 지명들, 처음 듣는 동식물의 이름 앞에서 잊고 있던 사실을 기억해 내곤 했지만 말이다.
그의 묘사가 아주 성실해서 곧잘 머릿속에서 상상의 세계를 그려낼 수 있었다.

16p
아침에 깨어났을 때 다락방에서 갓 태어난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둥지에서 떨어진 아직 날 줄 모르는 새가 초승달 모양 날개를 뻣뻣하게 편 채 누워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아기 새의 깃털은 한여름 하늘을 휙 스쳐 가는 어미 새의 실루엣처럼 신비로운 검은색이 아니라 잿빛과 갈색, 순백색이 어룽어룽 섞여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공중에서 보내는 삶에 완벽히 적응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도 알아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동식물을 검색했다.
세상은 내가 모르는 수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늘 막막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나의 무지가 그리 거북하지 않았다.
이 나이가 되어도 새로울 것이 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작가가 인용한 다른 작가들의 글들도 적재적소에 배치되었고 하나같이 아름다워서 감탄하면서 읽었다.

35p
알도 레오폴드는 "해마다 빛과 먹을거리를 맞교환하러" 미국을 찾아오는 칼새 덕분에 "대륙 전체가 어두운 하늘에서 떨어지는 야생의 시를 순이익으로 얻는다"라고 썼다.
칼새는 인간의 신경계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는 기억이자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다.

38p
테드 휴스는 시 칼새에서 새들이 돌아올 때 느끼는 감정("그들이 다시 돌아왔다")에 관해 썼다.
새들은 여름이 돌아왔다는 것뿐만 아니라 "지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라는 걸 보여준다고.

54p
에드워드 윌슨이 저서 아마조니아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듯이 말이다.

다시 태양이 나와서 숲 표면을 빛과 그림자의 요철로 조각냈다.
나뭇잎 앞면에 강렬한 빛이 쏟아지자 나무껍질에 2,3센티미터 깊이로 길게 팬 고랑이 축소판 협곡처럼 보였다.
바닷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위쪽에서 걸러져 내리는 빛이 곧추선 나무둥치의 가장 낮고 움푹한 틈바구니를 끈질기게 비추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자연과 동물 앞에서 인간이 모든 것을 멋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오만함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작가님.

18p
인생이 기묘하고도 희한하게 꼬이면서, 나는 다른 피조물과 어울리지 못하고 공허한 대기 속을 떠도는 불가해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당시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인류 전체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30p
산림 파괴와 해양 오염부터 멸종하는 생물이 1,000배 가까이 늘어난 상황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저질러온 비참한 실패의 목록은 더 이상 스스로를 동물 세계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 생물종의 모든 징후를 보여준다.
우리는 기술을 통해 자연의 물리적 명령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자처하지만, 실은 자의식 때문에 자연의 관능과 직접성으로부터 추방된 섬뜩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지구에서 우리 역할이 위태로워진 것은 우리의 위력보다도 이런 오만함, 다시 말해 자의식이라는 특정한 능력이 인간에게 다른 모든 생물종의 삶을 멋대로 평가하고 처리할 유일무이한 특권을 부여했다는 신념 때문이다.

좋은 문장이 너무 많아서 이러다 책 한 권을 다 필사해야 할 기세이기에 이쯤에서 줄이겠다.
팍팍한 도시 생활에 지치고 상처받고 쪼그라든 당신에게 자연의 기운을 보낸다.
부디 회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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