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늑대 스토리콜렉터 16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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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악함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듯한 범죄들이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범죄라 불리는 행위들이 다 악하지만, 그 중에서도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인 범죄가 죄질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성적인 도구로 전락시키는 일들은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요즘 들리는 소식 중에는 친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성폭행했다는 소식도 들어있다. 기가 막힐 일이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같은 탄식도 별 소용이 없는 듯,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 착취는 이제 지하에서 버젓이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세상의 추악한 현실을 넬레 노이하우스의 '사악한 늑대'는 다루고 있다. 

 

 

한 아이가 아버지로부터 성적인 농락을 당했다. 아이는 아버지가 재미있는 장난이라 말하며 멋진 선물을 주어도 그것이 옳지 않은 일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아이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편은 기억을 지우는 수 밖에 없었다. 아이의 기억은 군데군데 지워져 있고, 감정의 기복도 심해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되었다. 후에 아이는 가출해 가족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고, 사람들은 아이의 특이한 증상을 해리성 장애라 불렀다. 아이는 십대 후반에 이미 세상을 다 산 여자처럼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로부터 적잖이 세월이 흐른 어느날, 처참하게 찢긴 소녀의 시체가 강에 떠오른다. 너무 마른 아이의몸은 아이가 살아있을 때 잔혹한 학대를 받은 흔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십여년 전 일어났던 미제사건과 매우 흡사하다. 형사들을 풀고 방송의 협조를 받아도 조그마한 단서조차 찾을 수 없자 보덴슈타인과 피아는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유명 앵커인 한나 헤르츠만이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자동차 안에서 발견된다. 평소 원성이 자자했던 한나였지만 그녀가 당한 성폭행은 경악할만큼 지독했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이유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나를 담당했던 심리상담사가 시체로 발견된다.

 

소녀의 시체가 떠오르던 날 피아는 여고 동창들의 모임에 참석했었다. 그곳에서 피아는 엠마라는 친구를 만났다. 엠마는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의사인 남편과 결혼해 현재 여섯 살 된 딸 을 두고 있고, 좀 있으면 아이를 또 출산할 예정이다. 엠마는 자신의 시아버지가 '태양의 아이들'이라는 미혼모와 고아 시설의 대표라 이야기하며 자랑스러워 한다. 그날 짧은 만남을 갖고 헤어졌는데 엠마에게 연락이 왔다. 딸 아이에게서 성추행의 흔적을 발견했다며 피아에게 도움을 청한다. 엠마는 남편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고, 피아는 남자친구의 손녀를 잠시 돌보고 있는 상황이라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한편 한나와 모종의 만남을 가졌던 그룹이 있었음이 밝혀진다. 그들 중에는 어린이 성추행으로 변호사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도 있고, 전직 범죄 조직의 일원이었던 사람도 있다. 범인은 오리무중이고, 각 사건들은 분리된 채 어떤 그림도 그려지지 않는다. 단지 작은 편린들을 붙잡고 나아갈 뿐이다. 죽은 소녀의 시신과 엠마네 집에서 일어난 가족간의 성추행의 흔적, 그리고 한나가 만났던 그룹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사건과 사건 사이엔 보이지 않는 끈이 있고, 수면 밑에는 상상도 못할 거대 범죄 조직이 자리를 하고 있다.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인가.

 

넬레 노이하우스는 사회 지도층이란 사람들이 신사의 탈을 쓴 후 벌이는 온갖 잔인하고 더러운 악행들을 하나씩 보여준다. 자식에게까지 손을 뻐친 그들의 비도덕적이고도 악랄한 행태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그들은 가족간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렸고, 회복할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삶의 최절정에 오르던 날, 천륜을 저버린 죄에 대한 응징을 받는다. 그들의 끔찍한 결말은 늑대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날 이미 예정됐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것도 모자라 감금과 폭행에 살인까지, 거기다 아이들을 이용해 돈벌이까지 하는 그들의 모습은 지옥의 사자를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시급한 문제인데도 함부로 손댈 수 없다며 손 놓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넬레 노이하우스가 보내는 경고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녀가 아무리 애써도 아동 대상의 포르노 산업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직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끊어내기도 여간 힘들지 않을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포르노 산업이 요즘 가장 빨리 성장하는 산업의 하나란다. 그러나 효과가 미비하고 금새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할 때, 우리는 한 아이의 인생을 수렁에서 건지는 것이며, 망가져버린 인생만이 아닌 실제 겪고 있는 두려움과 고통에서 아이를 구원하는 것이다. 그런 바람을 소설을 통해 설득력있게 전개하는 넬리 노이하우스를 보며 책 한 권의 힘이 어떤지를 나는 지금 체감하고 있다.    

 

* 사진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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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랑 세계문학의 숲 32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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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거리도 가깝고 겉으론 비슷해 보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달라도 그렇게 다를 수 없는 나라가 일본이다. 보이지 않는 질서가 확고히 자리잡고 있고, 정해진 범위 안에서 움직이기에 타국인이 보기엔 때로 숨 막힐 것처럼 답답한데, 그래서인지 역으로 개성 강한 사람들이 꽤 있다. 우리 정서로는 상상도 못할 만큼 엉뚱하고 기발한 사람들은 좀 더 극대화된 모습으로 소설에도 등장한다. 예전에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읽으며 별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때문에 적잖이 웃었는데,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미친 사랑'도 꽤 황당하고 특이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나는, 그의 책보다 그의 이름을 따 제정한 상의 수상작으로 먼저 알게 됐다. 2회 수상작인 엔도 슈사쿠의 '침묵'과 가와카미 히로미의 '선생님의 가방'은 이 책의 가치를 되짚어 생각할 만큼 잘 쓰여진 책이었다. '침묵'은 그 어떤 표현으로도 설명이 안될 만큼 묵직하고 진지한 책이었고, '선생님의 가방'은 30여년이란 나이차가 나는 선생님과 제자의 사랑을 담담하고도 깔끔하고 그려낸 수작이었다. 일본에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오에 겐자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 기리노 나쓰오등이 이 상을 받았다 한다. 그래서 다니자키 준이치로란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내심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의 일본 작가의 책까지 찾아가며 읽게 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 운좋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1920년대에 쓰여진  책이라 공감이 될런지도 의문이었고, 탐미주의 문학의 상징이란 말도 부담스러웠는데 책을 펴보니 괜한 우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양의 D. H. 로렌스로 불렸다는 말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미친 사랑'은 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독특하게 그리고 있다. 나는 일본사람도 아니고 탐미주의에 별 관심도 없으니 이 책이 가진 문학적 성취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단지 소설이 꼭 감동적인 이야기여야만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와이 조지란 남자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나오미와의 동거 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스물여덟 살의 전기회사의 기사인 가와이 조지는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결혼 적령기의 남자다. 직장에서는 군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평판이 좋으며 키는 작지만 자칭 미남이다. 그런 조지가 카페의 여급으로 있던 나오미를 만난 건 나오미의 나이 열다섯 살 때였다. 조지는 나오미를 데려와 잘 돌봐주고 싶었고, 자신의 바람만큼 자라준다면 아내로 삼을 계획도 있었다. 아이였던 나오미가 여자가 돼가면서 조지는 나오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준다. 몇 년이 채 못돼 모아놓은 돈은 나오미의 뒷바라지에 다 들어가 버리고, 시골에 있는 노모에게 돈까지 부쳐달라고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조지를 우습게 여긴 나오미는 조지 몰래 남자들을 만나고 다니다 조지에게 들키고 만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일삼는 나오미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조지는 나오미를 쫓아내고, 나오미는 기다렸다는 듯 집을 나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산다. 그러면서도 나오미는 조지를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는 쥐락펴락하고, 결국 조지의 애걸로 다시 집에 들어온다. 이제는 조지는 남편으로서의 어떤 권리도 행사하지 못한채 이용만 당하면서도 과분하다 생각하며 산다는 이야기다. 

 

참 독특한 책이었다.  이런 별다른 시각은 어떻게 하면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소녀를 데려다 잘 먹이고 입힌 후 아내를 삼는다는 발상이 나로선 이해가 안갔지만, 소설이니 가능하지 싶다. 작가의 실제 삶도 매우 특별했다고 하는데, 연재 당시 변혁적인 여성상으로 일대 반향을 일으켰다 한다. 쾌락과 굴종, 일탈과 방종의 성애 이야기였지만 가볍고 지나치지 않아 읽을 수 있었다. 고전의 반열에까지 이르렀다는 데 까지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다른 문화의 유입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변화를 이방인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흥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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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예쁜 여자입니다
김희아 지음 / 김영사on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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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TV에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난 그녀의 지난 삶을 짐작하고 말았다. 내게 어떤 신통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나 또한 이땅에 살고 있으니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의 고단했을 삶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왔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내 귀엔 마치 우는 것처럼 들렸다. 그녀는 자신을 고아원에 버렸다는 엄마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했다. 그리고 이렇게 태어나서 죄송하다고 했다. 지금껏 한번도 못 본 엄마에게 '잘 살고 있으니 걱정마시라' 말을 늘 하고 싶었다며, 그래서 출연하게 됐다고 했다. 그날 앞 부분을 보지 못해 자세히 알 수 없었던 나는 그녀의 삶이 궁금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책이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빨리 읽혀지진 않았다. 그 안에 담긴 그녀의 눈물 때문이었으리라. 그녀가 출연한 TV 프로의 담당 PD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에게는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하며 움켜쥐고 태어나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부모, 형제, 이름, 정확한 출생의 기록도 없었다. 대신 그녀는 얼굴에 커다란 붉은 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 책은 고통을 감사로 이겨낸 그녀가 온전히 홀로 겪어낸 삶의 기록이자, 우리가 삶에서 늘 갈구하는 생존과 치유와 희망의 증거이다." 그렇다. 이 책은 그녀, 김희아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하는 자서전이며, 감사의 찬가이자 그녀가 믿어온 신에 대한 간증문이었다.

 

부모가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어쩔 줄 몰라하는 게 아이들이다. 때로 심하다 싶게 설치는 아이들도 부모가 없으면 금새 풀이 죽는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하늘이자 땅이다. 그런데 아이를 지켜줄 부모가 없다. 어린 아이가 어떻게 살았을까? 그 생각만 해도 가슴이 짠해진다. 그래도 고아원에 있을 때는 몰랐단다. 다들 처지가 같았으니까. 학교에 입학하고서야 희아씨는 자신이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의 가슴 한 쪽에 달린 손수건이 그녀에겐 없었고, 제 때 준비물을 챙겨갈 수 없었다. 비가 오면 학교 앞에 와 있는 엄마도 없었고, 고아원의 우산은 그녀의 차지가 되기엔 너무 적었다. 학교 생활이 결코 쉬울 수 없었다.

 

그러나 희아씨가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건 사람들의 말이었다. 차라리 시선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 말은 비수가 되어 그녀를 찔렀다.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들었던 말이지만 들어도 들어도 아팠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희아씨는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희아씨는 시설에 남아 선생님이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학생이었다 선생님이 된 희아씨를 아이들은 부담스러워했다. 희아씨는 아이들을 엄하게 대했다. 그것이 아이들을 사람들의 손가락질로부터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고, 사랑의 표현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아이들의 거부감을 불러왔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사랑하는 방법을 희아씨는 몰랐다.

 

그렇게 선생님으로 지내다 희아씨도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남자친구와 만난지 2년쯤 되었을 무렵 희아씨의 오른쪽 뺨에서 상악동암이 발견되었다. 뼈를 다 들어내야 된다고 했다. 얼굴이 꺼지고 변형이 올거라고 했다. 오른쪽 얼굴이 멀쩡했을 때, 사람들은 붉은 점만 없었으면 예뻤을 얼굴이라고 했다. 몸도 날씬해서 보육원에선 멋쟁이 선생님이라 불렸다. 수술이 끝났다. 그러나 워낙 중한 수술이라 쉬어야했다. 보육원을 나와 근처 옥탑방에 거처를 마련했다. 깊은 절망에 빠진 희아씨에게 신의 선물이 왔다. 중학교 동창을 근처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동창은 그 후 희아씨에게 가족이 되었다. 남자친구와는 아이가 생겨 희아씨는 자연스레 결혼도 하게 되었고, 꿈꿔왔던 가정도 꾸리게 되었다.

 

아이를 낳은 후 희아씨는 그토록 그리워했고 원망도 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을 안고 억장이 무너졌을 엄마를 생각하니 한없이 가엾고 너무도 미안했다. 엄마를 이해하게 되면서 희아씨의 가슴에 감사란 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졌지만, 세상의 편견은 여전했고 혹여 어린 딸들이 상처입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이는 돌봐야겠고 사람들의 시선은 따가웠기에 희아씨는 아이들과 같이 밖에 나갈 때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러다 공방을 열게 되었다.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희아씨의 손재주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씩 입소문을 타 자리를 잡게 되었고, 어린 딸의 격려로 TV 프로의 연사가 되어 서게 되었다. 그 결과 이렇게 책도 내게 된 것이다.

 

희아씨의 지난 날은 마치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총량이 어느 정도인가를 시험하는 것처럼 힘든 나날이었다. 아무도 의지할 데 없는 어린 아이를 격려하기 보다 아프게 하거나 찌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희아씨는 잘 참았고 견뎌냈다. 가슴 속의 응어리를 생에의 분노나 불만으로 표출할 수도 있었건만 그리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녀의 인생도 좌초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존재하는 그 자체로 다른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 그녀의 아픔이 어느 한 여인의 처절한 개인사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대속의 아픔이 되어 참 다행이고 기쁘다. 그녀의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는 그 시간, 나는 TV 밖의 방청객으로 있었다. 그리곤 공간을 벗어나 함께 마음을 나누었다. 그 특별한 시간에 내가 함께 했다는 사실이 참 자랑스럽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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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로 간 따로별 부족 일공일삼 21
오채 지음, 이덕화 그림 / 비룡소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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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마음을 닫으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가족일 수 있다. 언제부터랄 것도 없이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한번 소원해진 사이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지경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모와 자식간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하지만 조금만 삐끗하면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문제의 해법을 동화작가 오채가 깔끔하게 알려주었다.

 

준이네가 지금 그렇다. 아빠와 준이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지는 언제인지 까마득하고 그런 부자를 지켜보는 엄마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아빠는 최근 엄마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 아빠는 아빠대로 할 말이 많다. 가정을 위해 휴가도 반납하고 돈을 벌어다 주었건만, 고마운지도 모른채 투정하는 마누라와 아이에게 서운한 점이 많다. 누구는 놀줄 모르며 누구는 휴가가 좋은 줄 모른단 말인가!

 

그러나 엄마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이러다가는 돌이킬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체감하고 있다. 이미 엄마는 약간의 우울증 증세를 겪고 있고 최근엔 병원에서 상담도 받았다. 엄마의 생일날, 엄마는 아빠에게 폭탄 선언을 하고는 준이와 함께 캠프를 다녀오라 한다. 엄마의 행동에서 심각함을 느낀 아빠는 마지못해 수락하고는 캠프를 떠난다.

 

준이도, 아빠도 어색해 어쩔 줄 모른다. 그러나 더 죽겠는 것은 준이다. 아빠와 무슨 말을 하며 3박 4일을 무슨 수로 버티란 말인가. 이 캠프에서 서먹하기로는 준이네가 최고일 거다. 촌장님과 훈련 교관님들은 일상에서의 모든 소지품을 다 맡기라하며 무인도의 제한된 환경속에서 마음껏 즐기라 한다. 앞이 깜깜한 준이와는 달리 옆 팀의 아빠와 딸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

 

준이네의 팀명은 따로별 부족이다. 아빠는 은행원 답게 모든 걸 돈으로 계산한다. 집에선 만사가 귀찮다는 듯 누워지내던 아빠다. 자기 밖에 모르는 아빠도 여기서도 그렇다. 자식에게도 양보할 줄 모르고 시키기만 한다. 게다가 섬에서 아빠가 할 줄 아는 건 별로 없다. 허당인 아빠의 모습이 준이는 좀 우습다. 그런데 희안하다. 교관님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아주 조금씩 아빠와 가까워짐을 느낀다. 몇 센티미터나 가까워졌을까?

 

벌써 둘째날이다. 오늘의 점심 미션은 고기를 잡아 식사를 해결하는 거다. 집에서 그리 위풍당당하던 아빠는 어디로 갔는지 위축된 모습이다. 아빠와 낚시를 하던 준이가 발을 헛디디면서 물에 빠졌다. 아빠는 일초도 지체하지 않고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준이는 즉시로 구조 됐지만 아빠는 시간이 좀 지체됐다. 준이는 처음으로 사람이 순식간에 죽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된다. 아빠가 살아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함께 하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준이와 아빠는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대화의 부족으로 서로간에 오해가 있었음을 알게 되고, 아빠가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지도 알게 된다. 아빠가 그렇게 기타를 잘 치는지를 처음 알게 된 준이와 아빠 또한 준이가 별을 볼 때 얼마나 행복한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준이네와 자주 어울린 다나네가 있어 어쩌면 은근히 자극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3박 4일의 일정이 끝나던 날 촌장님은 준이네에게 이 섬에 하루 더 묵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아빠와 준이는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로 마음 먹는다. 4박 5일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그 시간은 초등학교 5학년인 준이가 살아온 햇수보다 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엄마도 함께한 마지막 날은 준이네 가족이 가장 행복한 하루가 되었다. 이제 엄마와 아빠에게 이혼은 조그만치도 생각할 거리가 안되는 말이 되었다.

 

마치 눈 앞에서 보는 것처럼 동화작가 오채는 준이와 아빠의 3박 4일을 생동감있게 그려냈다.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르는 준이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더 딱딱해진 아빠의 모습이 조금은 웃기고 조금은 안타까웠다. 자식이라곤 단 셋 밖에 없는데 소통을 힘들어하는 아빠와 준이의 모습에 왠지 속상하기도 했다. 가족을 위해서 달렸지만 실상 가족은 해체 직전까지 갔던 준이네 집의 얘기가 경종이 되었으면 좋겠다.그리고 다른 가족들도 준이네처럼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어떤식으로든 가정을 위해 시도하는 모든 것은 의미있는 시도이기에. 준이와 아빠의 행복해하는 얼굴이 다른 가정의 얼굴이 되길 기대하며 기분좋게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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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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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아무도 없는 거리를 고개 숙인채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은, 쓸쓸하다 못해 처연하다. 남자의 등은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한 인간의 빈 구석을 무방비하게 드러낸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는 자청하거나 떠맡겨진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알고 있다는 듯 동행으로 함께한다. 가족이란 이름의 부채는 남자의 자존심을 무장해제시키고, 사랑이란 말로 포박한다. 죽고 못살 것 같던 그녀도 이젠 예사스럽고 어린 자식이 주는 기쁨도 잠시 스쳐가는 환희일 뿐, 머리 크면 언제 봤냐는 듯 무덤덤하다. 아버지란 자리는 그렇게 덧없다.

 

박범신의 '소금'은 빼앗긴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금 생각케하는 책이었다. 평생을 혹사당하고도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한채 불쌍하게 살다 간 전(前) 세대 아버지들의 이야기는, 눈물나도록 서글펐다. 자식은 낳아놨고 먹여 살릴 길은 없었던 아버지들은, 인간적인 삶을 포기해야만 자식들을 키울 수 있었다. 손톱이 빠지고 지문이 닳도록 일했건만 가난을 벗어나는 건 지난한 일이었다. 가난은 사람을 처절하게 만들었다. 부모의 고통을 지켜보는 아이는 늘 가슴이 미어졌고, 자식에게만큼은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부모의 다짐은 때론 가정의 붕괴마저 초래했다.  

 

그렇게 윗세대는 자식을 키워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노고를 너무 빨리 잊었다. 할아버지의 삶이 아버지의 삶이 되고, 아버지의 삶이 결국 우리의 삶이 될거라는 것도 모른채 마치 남의 일인양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빨대와 깔대기를 꽂고도 무심했고, 당연하고 마땅한 일인양 요구했다. 아버지의 뒷거래로 근사한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명품 가방을 들고 다녔는데도 고마운 줄 몰랐고, 끝없이 요구만 했다. 그 돈을 모으기위해 아버지가 치뤄야할 밤이 얼마나 추할지 생각하지 않았고, 아버지에게도 견디지 못할 압박감이 있으리라곤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니 일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한 염전의 소금 더미에 한 염부가 코를 박고 죽었다. 그날은 식구들의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서울에 유학보낸 아들의 졸업식 날이었다. 소금을 지천에 두고도 염부는 체내 소금이 모자라 죽었다고 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단 며칠만에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잊어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 아들은 운명에 이끌려 원치 않는 결혼을 했고, 그럼에도 아내와 세 딸에게 최선을 다했다. 돈 벌어오는 기계처럼 취급 받았지만 서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결혼이 뜻하지 않았던 것처럼 막내딸의 생일날에 뜻하지 않았던 일이 생겼다.

 

죽은 염부의 아들이자 세 딸의 아버지였던 선명우는 당시 췌장암 말기였다. 딸 중에서도 가장 사랑했던 막내딸 시우의 생일날 그에게 닥친 일은 평온했던 삶을 하루 아침에 뒤바꿔 놓았다. 운명은 인간에게 거역할 의지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평생 한번도 결근한 적 없던 회사와, 청지기처럼 살아왔던 가정도 놓아버린 채 명우는 운명이 이끄는대로 끌려가고 말았다. 주인마님처럼 남편을 부리고 경멸했던 혜란은 명우가 돌아오지 않자 자신을 놓아버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로 세상을 뜬다. 딸들은 그제서야 엄마에게 아버지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실감한다. 집은 엉망이 되었고 자매는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십 년이 지나 시우가 아버지를 찾겠다며 강경땅을 밟는다. 시우는 화자인 나와 우연찮게 알게 된 사이다. 시인인 나는 선명우를 찾겠다 마음 먹고 이리저리 수소문 한다. 화자인 내가 선명우를 찾는 여정은 우리의 지난 시간을 아프게 만나게 했다. 어찌 그리 서럽게 살아야했는지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많았다. 만일 내 아버지의 이야기였다면 내 가슴은 터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저 왔어요!"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무엇인가에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사람처럼 멈칫 서서 그를 뿌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몇 달 만에 본 아버지는 그사이 얼굴이 더 까매졌고 상반신이 수수깡처럼 마른 듯했다. 목이 메어서 그는 얼른 말을 보탰다. "여름방학이어서요, 아버지 혼자는 소금을 다 못 거두잖아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긴 했으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아주 자랑스러워졌다. 제가 아버지를 도울 거예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중략……

 

아버지의 쇳소리가 계속 고막을 찢었다.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를 살기기 위해서, 동생들을 살리기 위해서, 작은형을 살리기 위해서 그는 저수조 방향으로 절룩절룩 도망쳤다. "아버지!" 그는 울었다. 대파 자루로 맞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뼈가 부러져도 참으라면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가가 번질거리는 것이 아버지의 눈물 때문이라는 걸 느꼈을 때, 그는 비로소 그곳에 돌아온 것이 죄라는 걸 확연히 깨달았다. 자신이 돌아오는 것은 아버지의 모든 희망을 무너뜨리는 짓이라는 걸.

pp 173~175

 

아버지를 돕기 위해 100리가 넘는 길을 이제 중학생이 된 아이가 걸어갔다. 그럼에도 명우는 아버지에게 맞아야했다. 자식들을 가난의 질곡으로부터 빼내려는 아버지의 집념은 무서웠고, 그 사랑은 질겼다. 매를 맞고 간 아들이 아직 돌아오지않았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는 물 한모금 먹지 못한 채 먼 길을 달려갔고, 아이를 확인하자마자 되돌아 나왔다. 아버지에겐 단 일 분도 쉴 새가 없었다. 그러나 한없이 불쌍한 아버지를 슬프게 쳐다보면 안되었다. 그건 아버지를 더 힘들게 하는 일이었다. 자식들이 살 수만 있다면 자기 하나 희생하는 건 아무 것도 아닌 아버지의 사랑은 그 깊이만큼 처절했고, 이보다 더 장엄한 생의 서사도 없었다.  

 

거칠고 악착같이 살아야만 살 수 있었던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아니, 시공간과 삶의 양태만 다를 뿐 이 시대 모든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가족을 위한다며 열심히 살았지만 가족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그들에겐 이제 늘어진 어깨와 슬픈 눈만 남았다. 오로지 앞만 보았지 두루 볼수 있는 여유가 그들에겐 없었다. 삶에 미숙했기에 그렇게 살아야 잘사는 것이라 생각하고 내달렸을지도 모른다. 작가 박범신은 소금에도 달고, 시고, 쓰고, 짠맛이 있다고 했다. 소금으로 비유된 아버지의 맛이 각집마다 조금씩 달랐을 터다. 그러나 자신을 녹여야했다는 아픔은 공통이었다. 이 책은 박범신이 그런 초라한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우리에게 건내는 충고다. 아버지가 외로운데 내가 외롭지 않을 순 없으니 말이다. 좋건 싫건 이미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가족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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