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다 꼬끼오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8
허이 지음, 두전하 옮김 / 보림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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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봄만 되면 학교 앞에 병아리를 가져와 파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노란 털에 뾰족한 입을 한 병아리들이 박스 안에 옹기종기 있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때로 멀찍이서 쳐다보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을 땐 앞에 가 쭈그리고 앉아 넋을 놓고 쳐다보곤 했다. 어린 동물이 다 예쁘지만 병아리는 그 중에서도 유독 예쁜 것 같다. 그래서 병아리를 주인공으로 한 책이 다른 책들보다 더 친밀감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은 꼬끼오란 이름의 수평아리다. 가족으론 엄마와 열 셋이나 되는 누나들이 있고, 아빠는 병아리들이 태어나기 전 족제비에 당해 죽고 없다. 식구가 많지만 암평아리들은 엄마 말을 잘 들어 별 걱정이 없는데 꼬끼오는 제멋대로에 천방지축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꼬끼오만 예뻐해 혼내기보다 감싸기 바쁘고, 누나들에게도 꼬끼오를 잘 돌봐주라고 잔소리만 한다.

 

누나들이 놀아주지만 꼬끼오는 자꾸 눈을 다른 데로 돌리고, 그러다보니 위험한 일이 그치질 않는다. 아빠도 없는데 하나뿐인 수평아리까지 어떻게 될까 싶어 엄마는 단속을 하지만 꼬끼오를 막을 순 없다. 꼬끼오에겐 가족 못지 않게 노는 일도 중요하니까. 먹을 것도 풍부하고 좋은 이웃들도 있지만 지금 사는 이곳이 낙원은 아니다. 족제비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 날 꼬끼오가 엄마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다 하마터면 큰 누나가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 생긴다. 누나가 죽은 줄로만 안 꼬끼오는 죄책감에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을 떠돌다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아빠를 죽인 족제비는 다른 동물들에게도 위협의 대상이다. 친구들과 함께 족제비를 없애려는 계획이 쉽진 않았지만, 마침내 꼬끼오는 친구들과 족제비를 물리친다. 제멋대로에 고집만 피우던 철부지 꼬끼오가 어엿한 수평아리가 되었다.

 

말 안듣고 때쓰는 꼬끼오의 모습이 꼭 아이들의 모습 같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일관성 없는 양육을 하는 어미닭의 모습은 꼭 엄마들의 모습 같고. 현실을 비추는 가장 투명한 거울이 동화지 싶다. 그러나 가장 부드럽고 자연스레 교정하는 방식도 역시 동화지 싶다. 꼬끼오의 늠름한 모습에 미래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우리의 아이들도 그렇게 되겠지. 마음이 무척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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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 내가 원치 않아도 반올림 18
이상운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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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르의 소설 중에서도 나는 유독 청소년기의 갈등과 고민을 그려내는 성장소설을 좋아한다. 청소년기를 가리켜 폭풍노도라는데 내가 떠올리는 건 눈부신 햇살과 신록의 나뭇잎, 잔잔한 바람과 분수대의 하얀 포말처럼 곱고 아름다운 이미지들 뿐이다. 게다가 나를 움직이는 정서도 아련함과 같은 감정들이다. 그들의 핏빛 분노와 소리없는 아우성을 읽으면서도 왜 난 아름답고 고운 것들만 각인되는지 모르겠다.

 

모든 성장 소설은 아프다. 명랑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느낌들조차도 바닥엔 아픔이 숨겨져있다. 생의 실체를 자각했지만 아직은 미숙한 존재인 청소년들은 자신이 부담스럽기에 누구를 배려할 여지가 없고, 막연히 느꼈던 삶의 부조리 또한 전보다 깊게 체감한다. 거기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함도 힘겹게 한다. 처리되지 않는 감정의 조각들은 쌓여 이제 더는 참아낼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 청소년들의 아픔을 담아내어 쉬어갈 수 있도록 하기에 성장 소설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불어, 내가 원치 않아도'는 싸움짱 현태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범생이 지훈이를 축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교통사고로 어렸을 때 아빠를 잃은 현태는 아빠의 친구인 헬스클럽의 강관장을 아빠처럼 여기며 지내고,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읜 엄마는 카페를 열어 생계를 꾸려간다. 대기업 고위직에 있다는 아빠와 성악을 전공한 엄마 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사는 지훈이는 남 보기엔 행복해 보이는 아이다. 그러나 과학고에 가라며 숨쉴 틈도 없이 밀어붙이는 엄마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어떤 접점도 없고 대화도 통할 것 같지 않은 현태와 지훈이가 중학교 3학년 같은 반이 되면서, 둘은 친구가 된다. 처음에 현태는 지훈이에 어떤 관심도 없었고 더더구나 친구가 된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엄마의 말대로 '까닭 없이 누군가를 마음에 담게 되고, 우연한 여행처럼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줄줄 이어지게 되는' 그런 여로에 끼어들게 되었다. 지훈이의 일방적 관심과 접근이 없었다면 현태가 지훈이를 마음에 두는 일을 없었을 거다.

 

엄마의 지나친 간섭과 주도에 별 반항도 못하고 시들어가던 지훈이는 현태를 만나 사는 재미를 느낀다. 지훈이가 보기에 현태는 자유인이다. 누구한테도 못하던 이야기를 현태에게 하며 지훈이는 자신의 아픔을 달래고 쉼을 얻는다. 하지만 엄마가 보기엔 지훈이에게 문제가 생긴 거다. 엄마는 현태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지훈이를 전학시키고 그후로 연락이 끊긴다. 지훈이와의 지난 시간도 흐릿해져 갈 무렵 고등학교생이 된 현태에게 지훈이 엄마가 찾아온다. 지훈이가 가출했다는 거다.

 

함께 한 시간이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 않았다. 토막 시간을 이용해 만나고 헤어졌으니까. 때로 현태가 이용당한다는 생각이 들만큼 부족한 시간과 만남이었다. 그렇게까지 힘들게 해놓고는 이제와 염치없이 찾아온 지훈이 엄마에게 현태는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훈이를 찾는 일이라는 생각에 현태는 예전 둘만이 아는 아지트를 찾아간다. 근 일 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현태와 지훈이는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한데 어떻게 알았는지 평소 현태를 벼르고 있던 동네 부랑배들이 나타나 현태와 지훈이를 심하게 때리고 사라진다.

 

병원에 실려간 현태는 지훈이를 만나지만, 지훈이는 엄마에 의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고 또 연락이 끊긴다. 현태는 적잖은 시간을 몸을 추스리는데 쓰고, 지훈이 때문에 다친 한 쪽 눈은 예전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현태는 어떤 원망도 하지 않은채 지훈이에게 마음 속 편지를 쓴다. 같이 가기로 약속한 여행을 나중에 꼭 떠나자고. 그때 네가 하지 못한 얘기를 다하라고. 죽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말이다.

 

현태와 지훈이의 시기를 거쳐, 두 아이들의 엄마보다 조금 더 들었으리라 생각되는 나이가 되어 가만히 돌이켜보니, 인생이 결코 쉽진 않았다. 조금 더 쉬워 보이거나 어렵게 느껴질 뿐이지 인생의 고통에서 제외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빠 없이 혼자된 엄마의 손에서 큰 현태의 고통도, 복에 겨워 배부른 소리하는 것 같은 지훈이의 고통도 더하거나 덜할 뿐이지 힘에 겹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희안한 건 아픔이나 고통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상처를 입으면 흔적이 남고, 어떤 흔적은 너무 커서 지워지지 않기도 한다. 하나 분명한 것은 누구나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자신의 아픔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는 힘이 필요하다. 성장통의 고통이 커도 결국은 지나가고, 나만 겪는 아픔도 아니라는 거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시기가 청소년기다. 그 찬란한 시기를 다루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성장 소설을 그래서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성장 소설을 읽은 내 느낌은 암울이 아닌 설레임이고 찬란함이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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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동이 - 중국 땅별그림책 10
전수정 옮김, 차이까오 그림, 포송령 원작 / 보림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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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향' 세대인 나는 지금도 여우하면 반사적으로 구미호가 떠오른다. 꼬리가 아홉 달렸다는 구미호 얘기는 무서우면서도 재미었었다. 고개를 홱 돌리며 손톱을 치켜세우는 구미호가 화면을 가득 채웠을 때, 어린 나는 심장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순간적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무서우면 안보면 그만인 것을 그래도 굳이 봐야한다며 그 시간만을 기다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매운 음식처럼 기이한 이야기에는 그런 매력이 있다.

 

'귀동이'도 그런 이야기에 속한다. '요재이지'라는 책에 수록된 이 이야기는 17세기의 중국 사람인 포송령에 의해 쓰여진 글로, 기이하면서도 흥미로워 아이들도 읽을 수 있도록 이 책의 그림작가이자 편집자인 차이까오가 윤색했다 한다. 으스스하면서도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현실과 환타지의 경계 뿐 아니라 사람과 동물의 경계마저 넘나드는 설화적 요소 때문인지 술술 읽힌다.

 

아빠가 장사 하러 집을 비운 사이, 요사스런 여우가 나타나 엄마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걱정이 된 귀동이는 엄마를 넋나게 한 요괴를 잡기로 마음 먹고, 한밤 중 집을 찾아온 요괴의 꼬리를 자른다. 며칠 뒤 아빠가 돌아왔지만 엄마의 병을 고치지 못하고 아빠도 근심에 젖는다. 엄마의 병이 요괴 때문인 것을 아는 귀동이는, 요괴가 사라졌던 정원으로 가 요괴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아빠를 졸라 여우 꼬리를 사둔다. 그리고는 이모네 집으로 가 쥐약을 얻은 후, 술 가게에서 산 술병에 쥐약을 넣은 다음 주인에게 술병을 맡긴다.

 

 

저녁 무렵 요괴 중 한 명인 늙은 하인이 나타나자, 귀동이는 여우 꼬리를 이용해 자신이 요괴인 것처럼 행세한다. 요괴와 친분을 튼 귀동이는 요괴에게 자신의 술을 가져가 마시도록 유도하고, 그 술을 먹은 요괴들은 전부 죽게 만든다. 다음 날 아침 아빠와 함께 요괴들이 있는 정원으로 간 귀동이는 요괴들의 죽음을 확인하고 아빠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집에 돌아와보니 엄마의 병은 나아있었고 그후 귀동이네는 행복하게 잘 산다.

 

'귀동이'는 단순한 기담에 머물지 않고, 어린 소년인 귀동이의 활약상을 통해 난제가 해결되는 구조가 돋보이는 책이다. 아빠의 부재도 버거운데 엄마마저 정신이 나간 상황 속에서 어린 귀동이는 침착하게 문제를 풀어나간다. 아빠에게조차 말을 가리는 신중함은 여우들로 뭉친 요괴들을 완벽히 속이고 없앨 수 있게 만든다. 어려서 아이들이 아무 것도 모른다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이 책은 아이도 어려울 때는 거뜬히 자신의 몫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전한다.

 

아이가 밤에 잠 안온다고 치근대거나 책 읽어달라고 조를 때 으스스한 느낌과 동화적 교훈을 동시에 전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그것도 늦은 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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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랑은 너무너무 엉뚱해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7
탕쑤란 지음, 김순화 옮김 / 보림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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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자니 슬며시 웃음이 났다. 아이들이 가진 특성을 다 담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부모의 바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하고 싶은데로 하고, 노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아이들을 보는 것 같았다. 때론 엉뚱하고 때론 기발하며, 때론 어이없어서 웃게 만드는 아이들. 그래서 더 귀여운 장난꾸러기 아이들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책은 뻔랑이란 어린 늑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뻔랑네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다. 중국어로 뻔랑이라는 말은 바보 늑대란 뜻이란다. 엄마, 아빠, 뻔랑 이렇게 셋인 뻔랑네 식구는 순수한데다 남을 의심할 줄 모른다. 그러다보니 온갖 동물들이 모여 사는 숲 속에서 별별 일을 다 겪는다. 남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기분만 생각하거나 이익만 챙기는 동물들, 혹은 남을 속이는 동물들도 있지만 뻔랑네는 이용 당할지언정 남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간혹 알면서도 속아넘어가주는 이해심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받는 상처가 있지만, 대개는 상처보다 더 큰 삶의 지혜와 숨겨진 아름다움을 선물로 받는다. 뻔랑네가 가는 곳은 따뜻하고 정겹다.

 

그런 엄마 아빠 밑에서 자라서일까 뻔랑도 친구들을 좋아하고 남을 의심할 줄 모른다. 게다가 곧이곧대로인 성격이라 선생님이 잔디밭을 치우라 하시면, 나뭇잎이 한 잎도 떨어지지 않을 때까지 치우는 우직함을 보인다. 엄마 아빠가 먼 여행을 떠난 후 혼자 집을 지키게 된 뻔랑은 외로움도 겪고, 찍찍이 쥐에게 집을 빼앗길 뻔한 곤경에도 처하며, 꼬리를 잃어버렸다는 착각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 때마다 친구들이 나타나 도움을 준다.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도 뻔랑은 옳고 그름 보다는 서로에게 좋고 즐거운 쪽을 선택한다. 그래서 뻔랑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돕는 이들이 나타나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예전과는 다른 환경 때문인지 자기중심적이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말이 들린다. 뿐만 아니라 양보도 잘 못하고 친구의 소중함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아이들이야 예나 지금이나 뭐가 그리 다르랴.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을 뿐이라 생각된다. 책을 읽는 내내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떠올랐다. 조금 엉뚱하고 약간 늦된 듯해 보이지만 뻔랑이 나는 사랑스럽기만 하다. 더불어 사는 지혜를 알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지혜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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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렇게 읽고 통달하라
이문장 지음 / 두란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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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처럼 쉬운 책도 없다는 데 교인이 된지 얼마 안되었던 시절, 내겐 성경처럼 어려운 책도 없었다. 당시만 해도 관주성경을 읽던 시절이라 아무런 보조적 설명 없이 성경을 읽어내려 가자니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와닿지도 않는 이야기들이 내게는 외국어만 같았다. 요즘 성경책만 같았어도 그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았으련만, 마땅히 도움 청할 데도 없던 내게 성경 읽기는 정말 고역이었다. 당시 그나마 읽을 수 있던 곳은 시편과 잠언 정도였다.

 

 

그후 십 년쯤 지나서야 좀 읽을만 했지만, 성경 읽기가 여전히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차선으로 택한 것이 신앙 서적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남들은 처음부터 성경읽기로 들어갔다는 데 그렇지 못했기에 조금 속상하기도 했지만, 내게는 성경과 친해질 수 있는 적절하고도 적합한 방법이었다. 신앙 서적을 읽으니 그제서야 조금씩 성경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성경이 하나님의 편지라는 말은 가슴에 와닿지 않았고, 그런 말을 하는 분의 얼굴을 부러워하며 쳐다보곤 했다. 나도 저런 말을 할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꿈꿀 수 없는 꿈처럼 가슴 속 깊이 간직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무릎이라도 치고 싶을 정도로 기가 막혔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도 성경 속의 보조적 설명이나 일 주일에 한 두번 듣는 설교만으로는 갈증이 생겼다. 그렇다고 주석서까지 찾기는 힘들고 그 중간 어디쯤 안내서로서, 성경 읽기의 전체적인 흐름과 맥을 잡아줄 수 있는 책이 나왔으면 했다. 어떤 관점으로 성경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이며 구체적 실천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길잡이로서의 책이, 전방위로 열려있는 요즘 같은 시대의 크리스천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게도 이문장 교수의 책이 나왔다. '목회와 신학'을 통해 이름을 접했던 기억이 있기에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또한 말씀에 매진한 분의 책이라 신뢰가 갔다. 단순한 신학자가 아닌 한국 교계의 전체적 상황과 분위기를 잘 알고, 문제점과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돼 열심히 읽었다. 무엇보다 글이 깔끔하고 평신도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 좋았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평생 신앙생활을 하고 성경을 배우면서도 자신들은 성경에 아마추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성경을 배우는 누구라도 말씀에 프로가 될 수 있고, 또한 프로가 되길 바라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

 

 

' 수십 권의 신학 서적을 독파하고 많은 강해서를 읽어 말씀의 이치들을 섭렸했다고 해서 성경의 가르침들을 몸에 체득한 것은 아니다. 성경 읽기의 궁극적 목적은 변화에 있다. 말씀을 지정의로 깨달은 후 실천을 통해 체득하면, 우리 자신이 변하게 된다. 더 깊은 깨달음과 더 깊은 체득이 더 깊은 변화를 가져온다. '

 

 

그의 글은 관습인양 고착화되어있는 생각들을 교정하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 더 나아가도록 촉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읽기의 최종 목표가 하나님을 아는 것만이 아닌, 우리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임을 천명한다. 말씀의 실천은 생각했지만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고 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좀 부끄러웠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말씀의 흥왕과 체화만이 한국 교회의 미래와 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보겠다고 조용히 결단해 본다. 책의 놀라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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