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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입니다 - 2005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대상 수상작 ㅣ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 11
이혜란 글 그림 / 보림 / 2005년 10월
평점 :
얼마전 한 월간지에서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유명한 여성학자
박혜란씨의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녀는 네
살짜리 손녀와 있었던 일을 소개하더군요. 하루는 손녀가 그러더래요. "할머니, 할머니 가족은 누구예요?" 그래서 손녀 이름을 대며 "응, 우리
○○이가 내 가족이지." 그랬더니 할머니는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이 아니라며, 나중엔 눈물까지 글썽이더래요. 아무리 가족의 개념을
설명해줘도 아이는 아니라며 고개를 내젓더래요.
그 글을 읽은지 얼마 안돼 저희 딸이 "엄마, 친할머니는 우리 가족이야?" 이렇게 묻는 거예요. 그
질문을 받으니 즉시 말이 안나오대요. 시어머니니 당연히 친족이라 여겼지만 어머니를 우리 가족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친정 엄마 또한 그랬던 것 같아요. 아마 가족의 개념을 무의식적으로나마 같이
사는 친족으로 정해놓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만약 저희 딸이 공부 때문에 외국에서 산다면 같이 안살아도 당연히 가족이라 생각하겠죠. 같이 살아야
가족이라는 개념과, 같이 안살아도 내 자식이니 가족이라는 개념이 제 안에 혼재돼 있었어요.
그래서 가족이 진짜 어떤 관계를 말하는지 알고 싶어 검색해 봤어요. 다음엔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그로부터 생겨난 아들˙ 딸˙ 손녀등 가까운 혈육으로 이뤄진 집단'이라 나왔더군요. 그러나 그 의미만으론 이 시대의 가족 관계의 변화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러기 가족의 경우, 너무 오래 헤어져있다보니 부모 자식간, 때론 부부간에도 서먹서먹해지는 일들이
생기고 있으니까요. 가족이란 한 집에 함께 살면서 끼니를 해결하는 식구(食口)가 됐을 때 비로서 그 의미를
충족하는 관계가 되는 게 아닐까라 결론지었답니다. 식구가 됐을 때 타인도 품지만, 식구가 되지 못하면 가족조차도 남이 되는 일들이 생기니까요.
그런 가족 이야기를 다루는 동화책이
있어 펴봤어요. 처음 보는 책이라 생각했는데 출간된지 벌써 8년이나 됐더군요. 언제 이런 책이 나왔을까요? 너무 시간이 흘러 만난 건 아닌가
싶어 좀 아쉬웠답니다. 이 책은 보림창작그림책 공모전 수상작이래요. 저자를 몰랐다면 제가 좋아하는 작가 이형진의 그림책이라고 오해할뻔 했어요.
이 책엔 특징적인 부분들이 많아요. 우선 아이의 시점에서 아이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글은 많지 않은데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구요, 그 짧은 말 속에 아이의 가족이 처한 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이야기는 간단해요. 비록 여유는
없지만 엄마아빠가 짜장면 가게를 하며 오손도손 사는 아이의 집에 어느날 느닷없이 할머니가 택시를 타고 들이닥쳐요. 할머니는 아빠와 따로 살고
있었고, 어릴 때도 그랬대요. 그런데 할머니가 뭔가 이상해요. 어디서 옷을 주워 오질않나, 밥을 흘리고 먹질 않나,
게다가 지저분하기 짝이 없어요. 요강을 엎지르지를 않나, 옷에 실례를 하지를 않나, 그것도 모자라선지 손님앞에서 옷도 자꾸 벗어요.

이외에도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무엇보다 문제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신 거예요. 그런 할머니가 아이는
싫어요. 그런대도 아빠는 할머니를 돌려보낼 수 없대요. 우리는 가족이니까요. 이게 다예요. 추측컨대 어린 시절
아빠는 할머니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도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늙고 병들자 할머니는 아빠를 찾아온 거예요.
그런 할머니를 아빠는 방이 딸린 가게에서 모셔요. 아빠가 할머니를 모시는 것은 단순한 체념이자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기 때문이 아니예요. 모시지 않는다해도 뭐라 할 사람 없지만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하려는 것 뿐이지요. 그러나 아빠는 마지못해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할머니를 돌봐요. 그런 아빠와 엄마를 사랑하기에 아이는 더 이상 할머니를 싫어하지 않고 가족으로 받아들여요.
이 책은 할머니가 가족이라고 결론을 내려요. 저도 부모님이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할머니는 당연히 우리 가족이었어요. 할머니없는 제 어린 시절은 상상도 할 수 없구요. 그런 저조차도
같이 살지 않는 시어머니를 우리 가족으로는 생각치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또한 친정 엄마도 우리 가족은
아니었던거지요. 앞에서 가족에 대한 정의를 제 나름대로 내렸지만 다시금 혼란이 오네요. 그럼 같이 살지 않는
시어머니나 친정 엄마는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하지요? 가족은 가족인데 우리 가족은 아닌건가요? 시대적 상황이 너무 달라져 이제
가족의 의미가 전처럼 단순할 수 없게 됐네요. 그럴 때 이 책은 진지하게 가족이 무엇인지를 생각케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