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숨이 주인의 기분에 달려있던 시대에, 노예들은 그 어떤 것보다 생존을 가장 존엄한 가치로 붙들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느껴질만큼 견딜 수 없는 일을 겪을 때에도, 생존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였다. 구차하게라도 목숨을 보존해야 했다.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가 목숨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주인에 의해 결정되고, 어떤 권리도 없던 그들에겐 오로지 의무란 이름의 복종만이 주어졌다. 복종은 자식들에게도 기필코 가르쳐야 할 생존 수칙이었다. 그런 험악하고 무서운 시대를 '키친하우스'는 이야기하고 있다.
'키친하우스'는 18세기 말 남부 버지니아의 한 농장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아일랜드계 백인 노예인 라비니아다. 라비니아는 흑인 노예들이 거주하는 키친하우스로 보내져, 농장주의 딸인 흑인 노예 벨에게 맡겨진다. 벨은 자신을 홀대하는 주인에게 화가 나 라비니아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 또한 이곳에서 새 가족을 만난 기억을 되살려 라비니아를 가족으로 품는다. 그때 벨의 나이 열여덟, 라비니아는 일곱 살이었다. 키친하우스에는 제이콥 아저씨와 마마와 파파, 그리고 마마와 파파의 딸인 쌍동이 비티와 파니가 있다. 따로 살지만 마마와 파파의 아들 벤은 라비니아가 나중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다. 백인 노예에 고아였지만 라비니아는 그곳에서 그들의 보살핌 아래 따스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제임스가 주인으로 있을 때는 살만했다. 노예 감독관 랭킨이 아무리 잔혹하게 굴어도 견딜 수 있었다. 주인이 돌아오면 바로 잡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주인이 몇 년간 병석에 누워있을 때에도 노예들은 힘을 낼 수 있었다. 주인은 그런대로 관대했고 노예들을 챙길 줄 알았다. 비록 벨이 자신의 딸임을 숨겼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벨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런 은폐가 비극의 씨앗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안주인은 벨을 남편의 숨겨진 여자로 오해하곤 정신이 멀쩡했을 동안 고통 가운데 살았고, 아들인 마셜은 자신의 어머니를 힘들게 한 여자라며 누이인 벨을 증오했다.
결국 주인이 세상을 떴다. 그동안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아이를 몇이나 잃은 안주인은 아편 중독으로 침대에만 누워있었고, 노예감독관 랭킨의 악행은 차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셜은 가정교사의 가혹한 체벌과 훈육으로 이미 정상이 아니었고, 가정교사가 쫓겨난 후에는 노예감독관 랭킨과 어울려 나쁜 짓만 일삼았다. 호시탐탐 벨을 넘보던 랭킨은 벨과 사랑하는 사이인 벤을 미워해, 누명을 씌운 후 한쪽 귀를 자른다. 어린 나이인데도 술에 취해 살던 마셜은 벨이 자신의 누이인지도 모른채 어느날 그녀를 성폭행한 후, 아이까지 낳게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라비니아와 벨의 입을 통해 번갈아가며 들려진다.
마셜이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키친하우스에 위기감이 감돈다. 마셜이 공부하러 나가있던 동안에는, 주인이 농장을 맡게 한 감독관 윌이 있어 좋았다. 그는 공정했고 노예들을 배려했다. 그런데 마셜이 온다니, 마마와 파파를 비롯한 노예들은 농장이 결코 전 같을 수 없음을 알고 불안에 떤다. 게다가 자신의 이모네 집에 있던 라비니아를 부인으로 맞아 데려온단다. 마셜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잘알고 있던 키친하우스 사람들은 앞으로의 일에 걱정을 감출 수 없고, 순진한 라비니아만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거란 생각에 행복해한다. 마셜은 집에 오자마자 본색을 드러내고, 라비니아에게도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져 라비니아는 마음이 편치 않다. 마셜은 신분이 달라졌다며 키친하우스에 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고, 게다가 남편과 비티의 관계가 아무래도 수상하다. 여자로서의 질투와 예전에 함께 했던 시간들을 생각하곤 라비니아는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 예전 시어머니가 왜 그렇게 우울했으며 마약에 의존했는지를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마셜은 농장 경영엔 관심도 없고, 노예들에게도 가혹하게 대한다. 빅하우스에서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고, 그런 주인 밑에 있는 키친하우스도 그늘이 짙다. 비티는 이미 마셜의 아이를 몇이나 낳았다. 일상화된 강간과 폭력 때로는 살인까지,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키친하우스의 사람들은 마셜로부터 벗어나기로 마음 먹는다.
이 책에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비애와 견딜 수 없는 고통스런 이야기가 참 많았다. 키친하우스에는 노예들의 피와 같은 눈물이, 빅하우스에는 끊이지 않는 비극이 마른 눈물로 되풀이 되었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부리는 이상 빅하우스는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 지옥과 같은 그곳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오로지 키친하우스뿐이었다. 자신들이 키웠던 사람으로부터 자신들의 딸이 유린 당하고, 자신들의 손녀가 팔려가는 잔혹한 일을 겪었음에도 그들은 증오를 택하기보다 사랑을 붙들었다. 도덕을 지킬 수도, 항변할 수도 없는 곳이었지만 감내하며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냈다.
그러나 그토록 폭력이 난무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수시로 훼손됐지만 키친하우스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들의 주인은 빅하우스에서 노예들을 다스렸지만 실제 그 곳의 행복은 노예들이 거주하던 키친하우스에서 비롯되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품었던 그들이 있는 곳에만 행복이 머물 수 있었다. 마셜조차도 키친하우스에 있을 때에야 잠시나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부조리와 억압에 아무런 말도 못한채 무력하게 당하고 있었지만, 마침내 작은 바람을 이룬 키친하우스의 흑인 노예들을 통해 결국 사랑만이 모든 걸 이뤄내는 부드럽고 강력한 힘임을 실감한다. 오랜만에 도저하고 흡인력있는 책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