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명로진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언론사 시험을 앞둔 기자 지망생들이 시간은 없고 필력은 늘지 않을 때, 비책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필사라 한다. 어디 기자 지망생 뿐일까, 작가 지망생들의 경우 필사는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글쓰기 방법의 하나다. 또한 대입 논술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도 글쓰기는 반드시 넘어야하는 산이다. 한때 강남의 유명 대입 논술 학원에서는 글 잘 쓰기로 소문난 어떤 작가의 글을 필사하게 한 후, 아예 외워버리라고 했다 한다. 원론을 따질 겨를이 없을 때 필사 즉, 베껴쓰기는 최적의 방법이지 싶다.
예전부터 베껴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싶었다. 베껴쓰기가 좋다는 말을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은지 알고 싶었고, 무엇보다 좋은 작가의 빼어난 문장을 소개받고 싶었다. 그래선지 이 책의 재출간 소식이 반갑게 다가왔다. 책을 읽기 전 마침 기회가 되어 소개 글을 잠시 보게 됐는데, 몇 마디 문장이 꽤 가슴에 와닿았다. 지극히 당연한 내용인데도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바라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는 박웅현의 광고 카피가 어떤 의미인지를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문장이었다.
『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것은 접속사가 아니다. 저자가 가진 의식이다. 그 의식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 』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것을 접속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자각이 처음 들었다. 이렇게 피상적인 눈으로 사람과 사물을 대하고 글을 썼을 걸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왜 그동안 내 생각은 의식이란 데에까지 나가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이 세 문장은 나를 당혹스럽게도 했지만 동시에 아름다움도 선사해, 마치 시어처럼 나는 몇 번이나 되뇌었다.
이 책은 목차안의 제목만 유념해도 글 쓸 때 적잖이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중 몇을 옮겨보자면 '무엇을 쓸지보다 어떻게 쓸지를 생각하라', '쉽게 쓰는 게 정답이다', '어미를 잘 써라', '잘난 척하는 마음을 버려라', '그리고 그런데 그래서? 어쩌라고-불필요한 접속부사 빼기', '소리내어 읽으며 어색한 문장을 찾아라', '한 번에 하나씩 써라', '독자의 입장이 되라', '독자의 이해를 구하지 말라', '글은 이어진 사슬이다', '글을 쓰려면 탄탄한 플롯을 짜야 한다', '끝을 위한 비장의 무기를 마련하라', '틀린 부분이 없는지 사전을 찾아라', '책이 내 것이라야 책 속 내용도 내 것이 된다'등이 있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다시금 생각케 하는 제목들이었다. 가만히 점검해보니 나는 이 책의 지침과 어긋나게 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쓸지 보다 무엇을 쓸지를 생각했고, 쉽게 쓰기보다 어려운 말 몇 개를 넣어 현학적인 느낌이 나도록 쓰고 싶어했으며, 잘나지 못해선지 잘난 척 하고 싶어했다. 또한 접속부사를 끔찍이도 사랑했으며, 어색한 문장이 고쳐지지 않을 때는 그냥 내버려두었다. 한 번에 하나씩 쓰기보다 서너 개 쓰기를 원했고 그런고로 갈팡질팡하기도 했다. 독자의 입장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에 내 입장만 생각했고, 그럼에도 독자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쓸데없는 눈치를 보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글은 이어지지 못하고 딱딱 끊어졌으며, 탄탄한 플롯을 짜기도 전에 서두가 잡혀지면 글부터 썼다. 또 결론은 대충 얼버무렸고, 서론과 결론이 따로 놀 때도 있었다. 책이 내 것이 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에 책 속 내용은 좋은 얘기에 그치고 말았고 이런 적은 부지기수다. 총 30강의 내용대로 가자면 내 부족한 점은 끝도 없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독자를 생각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해서가 아닌가 싶다. 각 장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려주고 그 강에 부합한 좋은 글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정혜윤과 김연수, 박범신과 성석제를 비롯 글 잘 쓰기로 유명한 작가들의 글이 30여편 가까이 예시돼 있다. 그 글을 읽는 맛이 솔솔찮지만,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았던 것은 어느 누구의 글이 아닌 저자 명로진의 글이었다. 그는 젊음과 늙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 '젊다'는 형용사이고, '늙다'는 동사다. 형용사는 양태를 나타내고, 동사는 움직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젊다는 건 순간이고 늙는다는 건 쉼 없이 지속된다. '너 때문에 내가 늙는다 늙어!'라는 말은 있어도, '너 때문에 내가 젊는다 젊어'라는 말은 문법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젊음은 한 때의 이미지지만 늙음은 시간의 흐름이다……중략……사랑이 형용사가 아닌 세상에 살고 싶다. 살아오면서 사랑 하나 갖지 못했던 이유는, 늘 동사로 늙어가는 내 추함 때문이다. 늙어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알고 싶다. 타락하고 문란하고 퇴색한 이 땅에서, 오롯이 솟아 오른 뿔 같은 사랑 하나 간직하고 싶다……. 하략 』
젊음과 늙음을 새로운 각도로 풀어쓰니 더 참신하게 다가온다. 이 글을 읽지 않았다면 늘 그랬듯이 반의적인 단어, 또는 각 단어가 생성하는 이미지 그 이상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문장을 읽기만 해도 달라지는데 하물며 공들여 베껴쓴다면 글쓰기의 도움은 기대 이상이리라 생각된다. 전문적으로 쓰든 아니든,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람대로 되기보다 그리 되지 않을 때가 더 많고, 머리를 쥐어짜도 마땅한 글이 나오지 않을 때, 재능이 있네 없네 하며 한탄하기 보다 차분히 좋은 문장을 베껴쓰면 어떨까 싶다. 읽을 때는 스치고 지나갔던 글이 가슴에 확 들어오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글은 체화돼 내것이 될 수 있을 터다.
저자는 서문에서 하루에 한두 페이지씩 일년만 베껴쓰기를 해보라 권했다. 그러면 분명 달라져 있을 거라 했다. 덧붙여 그는 베껴쓰기가 가장 쉽고 빠른 글쓰기 해결책이라 했다. 믿져야 본전이니 당신도 해보면 어떨까? 난 이미 시작했다.

사진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