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포인트의 연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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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수 없으리만큼 서정적이고 애상적이면서도 지긋이 들여다보는 듯한 관조적인 자세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정서를 아름답게 드러내는 장치 중 하나다. 그녀가 그리는 삶의 풍경들은 차분하고 나긋하며 사랑스럽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글을 읽으면 잔잔하면서도 가슴 따뜻해지는 기쁨과 묘한 설레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요시모토 바나나를 다 나타낼 순 없다. 깊숙한 상처와 아픔을 향해 다가서는 그녀의 태도는 전사와 같기 때문이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의도적이라 느껴질만큼 죽음을 비롯한 생의 질곡들을 작품 안에 밀어넣는다. 그녀는 죽음이 마치 친구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매번 그려낸다. 또한 생의 질곡들은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인양 서술한다. 폭풍처럼 다가와 무섭도록 흔들지만 그녀가 그리는 생의 고통들은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다시 세우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녀가 그리는 삶의 고통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그리는 삶의 어려움은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겪는 성장통이다. 그런 점에서 '사우스포인트의 연인'도 요시모토 바나나가 그리는 삶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화자인 나, 테트라는 아빠의 사업실패로 엄마와 함께 야반도주를 하게 된다. 유일한 친구이자 첫사랑인 다마히코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한채 헤어지는 게 아쉬워 테트라는 몇 자 적어 다마히코네 우편함에 넣어둔다. 앞날에 슬픈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테트라의 막연한 예감은 들어맞았고, 엄마는 아빠와의 결혼 생활을 마감해 버린다. 그때 테트라는 12살에 불과했다.

 

군마에 잘 정착한 엄마와는 달리, 사업 실패와 이혼의 충격으로 아빠는 술에 절어 살다 몇 년 후 세상을 뜬다. 자유분방한 엄마 밑에서 테트라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고, 엄마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그때마다 다마히코와의 만남은 테트라를 지탱케하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다마히코가 하와이로 떠나게 되면서 테트라는 소식을 끊어버린다. 그후 테트라는 퀼트 아티스트가 되어 활동하고, 어느날 슈퍼마켓의 음악 코너에서 어릴 때 다마히코에게 썼던 편지 내용을 가사로 한 노래를 듣게 된다.

 

때때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생이 전개될 때가 있다. 테트라의 인생이 그랬다. 우쿠렐레의 선율을 타고 나직히 전해지는 느낌은 다마히코를 떠올리게 했다. 무서우리 만큼 선명하게 떠오르는 다마히코와의 추억에 테트라는 하와이로 떠난다. 다마히코는 일년 전 세상을 떠난 동생을 대신해 동생의 삶을 살고 있고, 다마히코의 어머니 마오는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테트라는 당분간 하와이에 남아 다마히코와 마오의 빈 구석을 채워주기로 마음먹는다.

 

만남과 이별, 그리고 단순한 재회가 아닌 또다른 만남을 요시모토 바나나는 하와이의 남국의 정서와 그녀 특유의 정서로 멋지게 버무린다. 사우스포인트는 휴양지로서의 하와이가 아니라 특별한 만남과 치유의 장소로 아름답게 그려지며, 마치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같은 생의 양 극단을 한 장소에서 만나게 한 후 자연스레 이어가도록 이끈다. 윗 세대 하치와 마오의 사랑은 이제 그들의 아들인 다마히코와 연인 테트라로 계속되어 사우스포인트를 감싼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시야는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에서 확장되어 나타난다. 그녀는 한 세대 뿐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품으며 두 세대가 결코 별개가 될 수 없음을 그린다. 삶의 내진이나 고통도 생의 일부이기에 지나치거나 경감될 수 없음을 자연의 질서 속에서 보여준다. 사랑에 대한 환상과 죽음에 대한 이해는 요시모토 바나나를 감싸는 일관된 주제다. 그 주제의 자연스런 소화와 안착은 여기 사우스포인트에서 조화롭게 이뤄진다. 사랑이 단지 감정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숙명적 만남임을 요시모토 바나나는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에서 신비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미지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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