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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이름 ㅣ 푸른숲 새싹 도서관 10
호세 안토니오 타시에스 글.그림, 성초림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몇 페이지 안되는 책이었지만 읽은지 십여일이 지났음에도 어떤 말도 쓸 수 없었다. 단순히 무거운 주제여서라기보다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의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 아이에게 견딜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그 모습을 즐기는 또래 아이들을 보는 건 힘들었다. 이미 구조적인 문제처럼 되어버린 상황이기에 더 마음이 무거웠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짐작했듯이 이 책은 학교폭력을 다루고 있다. 최소한 중학생은 되어보이는 남자 아이가 학교에서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 아이의 심정은 이렇게 표현돼 있다.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햇살, 오븐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 발끝에 닿는 푹신한 잔디,
이런 것은 베르타, 카를로스, 다니엘, 플라비아, 헤르다를 위한 거야.
살랑살랑 부드러운 미소, 깔깔대는 웃음소리, 소곤소곤 속삭이는 말,
이런 것을 하이메, 누리아, 오리올, 파울라를 위한 거야.
세상의 좋은 것은 모두 라이사, 타니아를 위한 것!
나를 위한 것은 하나도 없어.
아이의 심경은 처절하다. 자신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아이의 말은 어떤 외침보다 더 강하다. 결코 입밖으로 나오지 않을 그 말은 그래서 더 슬프다. 한때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여자친구도 아이들의 훼방으로 끝내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아이 곁엔 아무도 없다.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이름대신 '공부벌레'나 '겁쟁이'로 불리고, 학교는 감옥과 같다. 아이는 수업이 끝나서도 곧바로 집으로 갈 수 없다. 다른 아이들이 돌아갈 때까지 운동장에서 서성인 후, 아이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집으로 갈 수 있다.
지금 아이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곳은 엘리베이터 안이다. 아이는 자신이 왜 남과 다른지 고통스러워한다. 이제 아이는 계단으로 발길을 돌려 옥상으로 향한다. 난간 사이로 보는 저 밑은 그리 무서워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그 아이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곳의 배경은 스페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과 이렇게 똑같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다르지 않다. 놀라야 하는가, 비통해해야 하는가. 왕따, 학교폭력은 이제 전세계적인 현상이 된 듯하다. 피해 학생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어른들은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쉬쉬 하거나 입막음하려 한다. 피해 학생은 도움을 받기 보다 오히려 질책을 듣는다. 아이 또한 그랬다. 아이가 도움을 청할 곳은,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쉽고도 아주 작은 답을 조용히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