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지만 뭔가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나라가 있다. 발해다. 발해가 한반도 북부와 중국 만주 및 러시아 연해주를 아우르는 큰 나라였고, 주변 나라와 다양한 문물을 주고 받는 무역국가였다는 말은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실체감은 적다. 이는 우리가 발해에 대해 아는 것이 적기 때문이고, 발해와 우리와의 먼 공간적 거리에 마음의 거리마저 멀어진 데 있다. 실제로 우리가 발해를 유적으로나마 접하려면 중국이나 러시아로 건너가야 하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발해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뭔가 낯설고 심지어 이질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런 발해에 대해 친근하고도 사실감있게 전하는 동화를 만났다. '짜장면 불어요'라는 동화집으로 개성있고 재미있는 글을 선보인 이현의 역사동화 책이다. 이현은 발해에 관한 얼마 되지 않는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발해와 우리 사이에 놓인 거리를 좁혔다.

이 책의 주인공은 13살 짜리 소녀 홍라다. 홍라는 발해 상경성에 있는 금씨 상단의 대상주 금기옥의 딸로, 어머니를 따라 일본과 청해진을 다녀오다 어머니를 잃는 큰 일을 당한다. 이제 홍라 곁엔 어머니의 호위무사였던 말못하는 친샤와 열 일곱살짜리 수습 천문생 월보와 몇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어머니의 사고 소식을 안 사람들의 빚 독촉으로 홍라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특히 어머니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 섭씨 영감에게 빌린 돈은 비단 천 필에 달하는 금액으로, 이자는 무서울 정도다. 게다가 내년 봄, 부왕의 혼례식에 쓰일 비단 오백 필은 어머니가 바쳐야 할 물품이었다. 그런데 비단은 바닷 속에 가라앉았고, 사장시의 영은 첫눈이 내리기 전까지 물품을 바치지 못할 때는 관아의 부곡이 되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고도 어린 홍라가 딱했는지 영은 상단을 넘기고 아버지를 찾아가라 말한다. 아버지는 홍라가 두 살 때 고향인 흑수로 돌아가면서 소동인이라는 청동인형만 남겼다.
홍라는 어머니가 큰 위기를 만났을 때 쓰라고 준 열쇠를 찾아 상단의 묘원으로 가 은화를 꺼낸다. 이 은화를 사마르칸트로 가져가면 큰 돈을 벌 수 있지만 홍라에겐 시간이 없다. 홍라는 머잖은 곳에 있는 솔빈의 소그드人 마을에 가서 은화를 팔고 솔빈의 말을 사기로 마음 먹는다. 솔빈의 말을 당나라 장안으로 가져가면 비싼 값에 팔 수 있고, 그 돈으로 비단을 싸게 사온다면 몇 배의 이문을 남길 수 있다. 그러면 금씨 상단을 지킬 수 있다. 홍라는 교역을 떠나기로 하고 주변 사람들 모르게 상단을 꾸리지만 상단 소식이 섭씨 영감에게 전해지고 말았다. 섭씨 영감은 아들 쥬신타를 보내 상단을 넘기면 모든 빚을 탕감하고 홍라가 먹고 살 수 있는 돈과 작은 집을 준다고 했다. 홍라는 매몰차게 거절하고 친샤와 월보, 비녕자, 그리고 쥬신타까지 데리고 길을 떠난다.
여정은 쉽지 않았다. 홍라는 도중에 아버지를 만났고 신라인이라는 사람에게는 큰 사기를 당한다. 그 와중에 월보를 잃었고, 돈도 잃었으며, 친샤는 중병이 든 이모 곁에 두고 오게된다. 무엇보다 비녕자가 부모의 복수를 위해 신라인과 꾸몄다던 이번 일은 홍라에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큰 의지가 됐던 쥬신타마저 구도자가 되기 위해 인도로 떠나자, 홍라 곁엔 아무도 없게 된다. 홍라는 금씨 상단을 섭씨 영감에게 넘긴 후 남은 돈으로 장사를 해 돈을 모은다. 얼마 뒤면 홍라는 사마르칸트로 갈 생각이다. 할 수만 있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가 볼 계획이다. 그래서 자신만의 비단길을 만들고 싶고, 아버지에게는 자신이 교역길을 이어가려는 이유에 대해 대답할 계획이다.
이 책은 어린 소녀 홍라가 어머니를 잃고 세상의 온갖 일에 부딪치면서 참 상인으로 커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우리 역사로 배우긴 했어도 일체감을 가지기 어려웠던 발해가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발해가 고구려, 신라, 백제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 속에서 만난 발해는 다양한 사람들이 편견없이 사는 나라였고, 비단길 못지 않은 발해의 길을 만든 진취적 기상의 나라였다. 그런 발해와 좀 더 친밀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동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주어져 반가웠다. 역사도 우리가 아끼고 보듬어야 가치를 발휘한다. 단지 역사이기만 했던 발해를 오늘로 불러와 우리의 발해로 만들어준 어린 소녀 홍라가 나는 고맙기만 하다.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토리버섯마을, 한국경제,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