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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컨스피러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2년 10월
평점 :
김진명을 나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만났다. 재미핵물리학자 이휘소를 주인공으로 하는 당시 3권짜리 소설을 나는 무슨 로맨스물이라도 되는듯 매우 애틋해하며 읽었다. 그 시절 이휘소에 대한 내 감정은 그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고 아플 정도였다. 아니 저릿하고 아픈 정도가 아니라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었다는 안타까움과 애국의 의미, 과학자가 갖는 힘의 크기들이 맞물려 어린 내 가슴을 쳤던 것 같다. 김진명이 이 책을 쓰기 전에 이미 이휘소에 대한 글을 읽었지만,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는 영화처럼 입체적으로 이휘소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 후 김진명이 쓴 소설을 나는 몇 권 빼놓고는 거의 다 읽었다.
김진명이 신간을 냈다해서 관심이 갔다. 눈길을 끄는 제목에 미묘한 시국적 상황이 오버랩되며 궁금증이 더해졌다. 책을 펴니 '바이 코리아'의 개정판이란다. 김이 새는 느낌이 들었지만 읽기로 했으니 읽어내려갔다. 요즘 같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아무리 급박하다해도 10년 전 상황을 읽으려니 긴박감은 아무래도 덜 생겼다. 그런데 김진명은 작가 서문에서 시점만 바꾸면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같다고 했다. 한두 달 전 나는, 정의사제구현단 함세웅 신부의 '껍데기는 가라'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엔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의 불법 비자금 문제와 권력세습을 강하게 질타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국정원보다 앞선다는 정보력으로 자신들의 비자금 문제를 감추기 위한 비열하고도 노골적인 삼성의 압박을 老신부는 고발하고 있었고, 우리의 자부심이자 경제권력인 삼성공화국의 두 얼굴이 정밀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그러니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바이 코리아'가 개정되어 나왔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각설하고, 이 책은 삼성을 전면으로 내세워 과학기술 전쟁에 대한 이 시대의 보이지 않는 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드러나는 것은 과학자와 과학 인재를 둘러싼 국제적 기업이나 단체들의 음모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삼성이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속에서 어떻게 생존해왔고, 적대적 M&A에서 어떻게 구사일생해 귀환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병철 회장대부터 등장하는 도입부는 능력이 되지 않으면 효도도 못하게 하는 자연인 이병철과 기업인 이병철 사이의 고독한 투쟁을 그려내고 있다. 반도체 산업을 일으키기까지의 선대 회장의 비화와, 이건희 회장대에 일어난 여러 급박한 일들이 나라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이 상충됐을 때를 기점으로 앞 뒤로 포진돼 있다. 김진명은 삼성을 밑바탕에 깔고 세계적 흐름과 우리시대의 이공계에 대한 처우 문제와, 우수인력의 해외유출과, 그런 이유로 암울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 상황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제기하려는 것 같았다. 그런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됐다.
이 책의 구조는 그동안 김진명이 보여준 여타 소설의 구조와 비슷하다.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고분분투하던 한 기자가 죽임을 당하고 그 기자의 석연찮은 죽음에 관심을 가진 다른 기자가 뛰어드는 구조다. 그런 구조하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보이지 않는 손들의 행태를 드러내고 있으니 속도감 때문에라도 재미는 있었다. 김진명 소설의 특징인 가독성 또한 여전히 좋다. 아쉬운 것은 딱딱 끊어지는 듯한 구성 때문에 맨 마지막에 이르러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점이다. 좀 더 리드미컬하게 흐름을 탔으면 소설로서의 자연스런 마무리가 됐을텐데 그러지 못해 이야기를 하다 끊은 듯한 느낌이 든다. 또한 박정희의 비자금과 스위스 은행, 바이스로이 재단과 천재과학자, 삼성과 미 CIA가 개입한 적대적 M&A등이 좀더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읽을만 했고 우리가 어떤 세계경제적 상황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한번쯤 생각케 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