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덕이 푸른숲 어린이 문학 28
임정진 지음, 이윤희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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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패는 조선후기 장터와 마을을 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를 공연했던 유랑연예인 집단이다남사당패는 꼭두쇠(우두머리) 밑으로 4, 5명의 연희자를 갖는 연희집단으로 일정한 거소(居所)가 없는 독신 남자들만의 남색사회다. 서민들에게는 제법 환영을 받았으나 상류층에는 배척을 받았는데 이것은 남사당패가 숫동모와 암동모로 이루어진 남색사회였기 때문이다. 대략 40~50명이 움직이며 그들의 여섯 가지 놀이를 가지고 일정한 보수 없이 숙식만 제공받으면 마을의 큰 마당에서 밤새워 서민들만의 놀이를 벌였다. 남사당패는 전국을 돌며 공연해 왔으며 남사당패의 여섯 가지 놀이는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베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음)이다.

 

이 패거리는 특히 철저한 계급사회여서 맨 위에는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있고, 그를 보좌하는 ‘곰뱅이’가 있으며, 그 아래에는 각 놀이 분야의 선임자를 뜻하는 ‘뜬쇠’가 있다. 뜬쇠 아래에는 ‘가열’이 있고, 가열 밑에는 초입자인 ‘삐리’들이 있다. 이 삐리들은 대부분 암동모 노릇을 하였는데 이들의 동성애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기에 함부로 마을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잘 보이는 높은 언덕 같은 곳에 모여 갖은 재주를 부렸고, 꼭두쇠를 보좌하는 곰뱅이가 마을 사람들과 협상을 하여 성사가 되면 비로소 마을로 들어가 놀았던 것이다.

ㅡ네이버 지식백과

 

동화책을 읽으며 어렵다고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남사당패에 대한 얘기를 자주 들었던 것 같은데 실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책을 읽으며 곰뱅이쇠, 꼭두쇠도 낯설었지만 어름, 버나, 벅구등도 익숙치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렇게도 우리 전래놀이에 대해 몰랐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남사당패는 1964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단다.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왠지 미안해졌다. 그리고는 화들짝 놀란 것이 남사당패의 구성과 그들의 세계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이런! 동성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있는 것인가? 아~머리 복잡하다. 

 

각설하고, '바우덕이'는 남사당패 최초의 여성 꼭두쇠에 대한 이야기다. 남사당패는 태생적으로 여성의 진입을 허락할 수 없는 집단이다. 그런 곳에 여자 아이가 들어가 꼭두쇠가 되어 대원군으로부터 당상관 정3품의 옥관자를 하사받게 된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 아이는 어떤 아이기에 이런 일을 해냈을까? 지금도 여성이 사회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보이지 않는 장애물과 걸림돌들이 있는데, 19세기 말에 어린 여자 아이가 어떻게 그런 일을 이루었을까? 이 책은 그런 의문들을 내게 남겼다. 그래서 한 번 읽고 또 읽었다. 그건 아이의 보이지 않은 눈물과 가시밭길에 대한 내 예의였다.

 

바우덕이는 천애 고아다. 어미는 아비가 죽기 2년 전에 집을 나갔고 아비는 병이 들어 거동도 못하고 있었다. 그 때 바우덕이의 나이는 예닐곱 살 정도였다. 아비의 몸은 등창으로 생살이 썩어들어가고 있어서 곁에 있는 사람이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어린 것이 그런 아비와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아비의 친구인 곰뱅이쇠 덕기는 남사당패의 일 년치 놀이판이 접힌 후 늘상 하던대로 청룡사 요사채에 짐을 풀었다. 그 곳의 공양주 보살이 덕기에게 친구가 다죽게 생겼다는 기별을 한다. 덕기는 친구를 찾아 나서고 친구는 자신의 딸을 부탁하고는 그 날 새벽 죽음을 맞는다. 그 아이가 바우덕이다.

 
남사당패는 내일을 알 수 없다. 그런데다 금녀의 패거리에 어린 계집애를 데려오게 된 곰뱅이쇠는 앞이 캄캄하다.  그런 곰뱅이쇠의 마음을 아는 듯 바우덕이는 눈치껏 재빠르게 행동한다. 바우덕이는 기예가 없으면 이 곳에서 지낼 수 없음을 알고는 틈틈이 이것 저것을 어깨 넘어로 배운다. 계집아이의 암팡진 모습을 본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기예 중 가장 힘들다는 어름을 어느날 어름사니가 가르쳐준다. 눈을 감고 걷는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바우덕이는 몰랐다.

 

 

 

욕심을 내어 줄타기 연습을 하던 바우덕이 앞에 호택이가 나타난다. 호택이는 기예를 선보이다 인대를 크게 다친 오라비뻘의 사람이다. 남사당패에서는 자기 몸도 자기가 알아서 관리해야 한다. 몸을 다치게 되면 남사당패는 다친 사람을 버려두고 갈 수 밖에 없다. 피붙이보다 더 가깝게 지내지만 가족은 아니었다. 호택이가 지게에 지워져 보내졌을 때 바우덕이는 대금을 부는 이경화 앞에서 소리내어 울었다. 버림받는 것이 무엇인지, 혼자 남겨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아이였기에 그 울음은 통곡이었다. 호택이 또한 뻣뻣하게는 굴었지만 바우덕이가 여동생 같았기에 먹고 사는 일이 보장되는 포목점으로 데려가려 온 것이었다. 그러나 바우덕이는 자신이 어름사니가 될 거라며 매몰차게 거절한다.

 

열 살 짜리 계집아이가 줄을 탄다는 소문은 전국에 퍼졌다. 이제 바우덕이는 사람들이 한번쯤 보고 싶어하는 예인이 되었다. 더이상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된 꼭두쇠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으로 바우덕이를 추천한다. 그 길만이 남사당패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호구를 해결하는 일은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었다. 바우덕이는 열 다섯 나이에 남사당패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도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담력이 있고 기예가 출중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우덕이는 줄을 탈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 하나 하나에 환호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신의 줄타기는 근심을 잊게 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줄 위에 섰다. 또한 줄 위에 서 있으면 모든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아야 했다. 왕의 아버지조차도 자신을 보기 위해서는 올려다 보아야했다. 바우덕이는 하늘을 쳐다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하늘에서 자신을 내려다 볼 아비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동화의 결말은 이렇게 아름답지만 바우덕이는 스물 셋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병으로 죽은 그녀가 묻힌 곳은 개천가 어디라고 한다. 묻힌 장소를 몰라 오늘날 바우덕이의 묘는 가묘이다. 그러나 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바우덕이는 남들이 긴 시간을 살고도 해내지 못한 일을 마치고 갔기 때문이다. 천하다 무시하고 여자라 무시하던 그 시대, 그 환경 속에서 자신의 기예에 최선을 다했고, 나라가 인정하는 기량과 리더십을 바우덕이는 보였다. 짧고 슬프고 한 이 많은 인생이었지만 바우덕이는 남사당놀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고, 백 년이 흐른 지금 이제 남사당놀이는 전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이 되었다. 바우덕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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